<제82호> [개념] "헤아리다"에 대하여 (7) | 2002년 01월 13일 |
마나( )와 프세피조( ' ) 마지막으로 "헤아리다"가 "세다"의 뜻으로 사용되었던 점은 한글 개역판 성경의 번역어를 통해서도 뒷받침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이사야 53:12에 보면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여기서의 "헤아림"은 영어 흠정역본에서는 넘버드(numbered)로 번역됐고, 히브리어 원어로도 "세다"는 뜻인 "마나( )"가 쓰였습니다. 다시 말해 "헤아리다"의 뜻에는 "세다"가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성경 전권을 통해서 "헤아리다"가 "세다"의 뜻으로 쓰인 것은 이것이 유일하다는 점입니다. 예컨대 "세다"는 뜻의 마나는 창세기 13:16에서는 "세다"로, 민수기 13:10와 시편 90:12에서는 "계수하다"로 번역되었습니다. 또 신약성경에서도 "세다"는 뜻인 프세피조( ' )가 누가복음 14:28에서는 "예산하다"로, 요한 계시록 13:18에서는 "세다"로 번역되었고, 역시 "세다"는 뜻인 숨프세피조( ' )가 사도행전 19:19에서 "계산하다"로 번역되었습니다. 앞으로 보겠지만, 19세기말의 성경번역자들은 성경을 되도록 고유어로 번역하려는 성향을 보였습니다. 예컨대, 신약성경에서 피스티스를 신앙(信仰)대신에 "믿음"으로, 아가페를 애(愛)대신에 "사랑"으로 번역했습니다. 다만 엘피소의 경우는 "바램"이라는 고유어 대신에 소망(所望)이라는 한자어로 번역했는데, 뒤의 글에서 밝힌 것처럼, 이는 엘피소가 단순하고 주관적인 바램이 아니라 객관적이고 확실한 바램을 가리키는 개념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성경 번역자들인 되도록 고유어를 선호하되 불가피한 경우에 한자어를 사용했던 성향을 읽을 수 있습니다. 마나( )와 프세피조( ' ), 숨프세피조( ' )의 번역어에서도 비슷한 성향이 발견됩니다. 이 낱말들이 문맥내에서 "단순히 수를 알아내는 것"을 가리킬 경우에는 반드시 "세다"를 사용했습니다. 창세기 13:16의 마나와 요한계시록 13:18의 프세피조가 바로 그 경우입니다. 창세기 13:16에서는 "자손의 수를 세다"는 뜻으로 쓰였고, 요한계시록 13:18에서는 "짐승의 수를 세다"는 뜻으로 쓰였습니다. 그러나 "수를 알아내는 것"을 넘어서 다른 더 복잡하거나 구체적인 뜻이 첨가된 경우에는 이를 "계수하다"거나 "예산하다"거나 "계산하다" 등의 한자어를 사용해서 그 뜻을 구체화했습니다. 예컨대 민수기의 전편에 나오는 마나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전민족적으로 인구조사를 했던 공식적인 과정"을 표현하기 위해 단순한 "세다"보다는 "계수하다"를 번역어로 선택했습니다. 누가복음 14:28의 프세피조는 문맥상 망루를 세우는 데에 들어갈 "비용을 세다"는 뜻을 나타내기 위해서 "예산하다"는 말을 썼고, 사도행전 19:19의 숨프세피조는 "책값을 세다"는 뜻을 표현하기 위해 "계산하다"로 번역됐습니다. 이렇게 보면 정작 "헤아리다"를 "세다"의 뜻으로 사용한 것은 거의 없습니다. 영어 흠정역본에서도 "넘버드"(numbered)로 번역된 "마나( )"를 개역 한글판 성경에서 "헤아리다"로 번역한 것은 이사야서 53:12 단 한군데 뿐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조차도 그 "헤아리다"는 단순히 "수를 알아내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는 구절인데, 비록 여기서의 "헤아림을 입었다"는 표현이 영어로는 "넘버드"라고 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뜻은 "수를 알아내다"가 아니라, "--로 여기다, 간주하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로 생각되다"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 번역자들은 이 마나를 "헤아림"이라고 번역했던 것입니다. "세다"는 뜻이 "헤아리다"로 번역된 듯한 구절이 예레미야서에 또 한번 나옵니다. 예레미야 52:20에 보면 "솔로몬 왕이 여호와의 전을 위하여 만든 두 기둥과 한 바다와 그 받침 아래 있는 열 두 놋소 곧 이 모든 기구의 놋 중수를 헤아릴 수 없었더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여기서 "이 모든 기구의 놋 중수를 헤아릴 수 없었더라"는 구절은 영어로는 "the brass of all these vessels was without weight"로 번역되었습니다. 이 영역 구절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이 구절에 동사가 없다는 점입니다. 그런데도 개역 한글판 성경에서는 "헤아리다"는 동사를 썼습니다. 의미상 "놋의 무게를 셀 수 없다"이기 때문이었겠습니다. 그렇지만 심지어 여기서도 "헤아리다"는 "세다"라는 뜻이라기 보다는 "추측하다"에 가깝습니다. 그 기구들을 만드는 데에 사용된 놋의 무게가 하도 무거워서 "그 무게를 추측조차 할 수 없었다"는 의미라는 말입니다. 이렇게 보면 성경에는 "헤아리다"가 순수하게 "세다"는 뜻으로 사용된 적이 단 한번도 없습니다. 그것은 "신중하게 생각하다"거나 "추측하다"는 뜻으로만 사용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개역 한글판 성경의 번역어에서는 "헤아리다"는 "세다"로 사용된 적이 전혀 없다는 말입니다. 조정희 드림. (성경의 한국 개념 살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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