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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군요... ^^; 당시 로마는 혼란의 연속이었다. 네로 황제를 시작으로 제명에 죽은 황제가 없었다. 그런 혼란 중에 베스파시안은 자기의 부하들에 의해 황제로 추대되어 로마로 떠나고, 유대인과의 전쟁은 그의 아들 티도에게 넘겨졌다. 요세푸스는 티도 장군과 함께 전쟁터를 다니며 유대인과 로마군이 어떻게 전쟁을 했는지 유대의 몰락과정이 어떠했는지를 목격할 수 있었다. 그는 유대인들이 로마에 대항하여 벌인 전쟁을 무모한 것으로 여기고 유대인이 동족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강도떼라고 부르기를 서슴지 않았다. 전쟁이 끝난 후 요세푸스는 로마로 건너가 플라비우스 황제가문의 이름까지 얻고 황제의 보호아래 남은 여생을 보냈다. 요세푸스는 전쟁이 끝난 뒤 주후 75년경 전쟁의 기록을 『유대인 전쟁사』라는 책으로 자세히 남겼다. 그리고 20년 후에는 유대 역사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는 로마인을 위해 인간의 창조부터 로마의 네로황제 때까지의 역사인 『유대인 고대사』를 저술하였다. 그 외에도 요세푸스는 『자서전』『아피온 반박문』을 남겼다. 요세푸스가 남긴 저서의 역사적 가치는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요세푸스에 대한 연구 논문이 요세푸스의 저서보다 더 많다는 사실이 이를 보여준다. 이스라엘이 멸망하던 주후 1세기 당시 요세푸스는 이스라엘의 유일한 역사가였다. 특히 구약이후 이스라엘의 역사는 요세푸스의 기록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세푸스는 이런 업적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당대의 유대인으로부터는 배신자라는 모욕을 감수해야만 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요세푸스의 저작은 유대인이 아니라 이방인의 손에 의해 보존되어 왔다. http://www.shalomisrael.com/htm/josephus.ht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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