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그러하뇨 이는 저희가 믿음에 의지하지 않고 행위에 의지함이라 부딪힐 돌에 부딪혔느니라"(9:32)
바울선생은
로마서 1장에서 시작하여 로마서 8장까지
인간의 죄와 죽음에 대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어떻게 역사하는가
논리적이고도 격정적으로 가르치고 설득하여 복음의 오의를 설파하고
마침내 찬미의 절정을 찍은 뒤
잠시 후(로마서를 읽으실 때 8장을 읽고 재빨리 책을 덮은 뒤 한 시간 쯤 있다가 9장을 읽으시길...^^)
정말 슬픈 자신의 현실을 한탄합니다.
그것은 자기의 민족에 대한 슬픔입니다.
그가 얼마나 자기 민족을 사랑했는지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9:3)라고 자기 심경을 토로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민족애를 너무 구차한 것이라고 치부합니다. 세계열방을 사랑해야 한다고 주창합니다.
그러나 자기 민족도 사랑하지 않는 자가 어떻게 세계열방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또 어떤 이는 천국 시민이 되었으니 세속적 국적따위는 무의미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천국은 하나님이 은혜로 주시는 것이요, 이 땅, 이 민족은 우리에게 사명으로 주어지는 곳입니다.
대한민국의 그리스도인은 참으로 바울의 이 마음을 배워야 합니다. 나라가 어떻게 되든 나는 천국가면 된다고 생각 하였다면 회개해야 합니다. '내가 지옥에 가더라도 이 민족을 구원에 이르게 할' 그런 마음가짐이 바로 사도 바울의 마음이었으니 말입니다.
각설하고
바울의 그런 마음에도 불구하고
바울의 민족 유대인들은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습니다.
택함을 받은 믿음의 조상들이 있고, 그들에게만 주어진 하나님의 율법이 있고, 수 많은 선지자들과 그들의 계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그리스도 주 예수께서 그들에게 오셔서 복음을 전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믿음을 버리고 행위를 의지함으로 망하였습니다.
행위로는 구원받을 수 있는 자가 '한 사람'도 없음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구세주를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도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을 부정하고 오히려 구세주를 십자가에 달아 죽였습니다.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마27:25)라고 외치면서 말입니다.
행위를 의지하는 자는 겉보기엔 매우 깨끗하고 정결해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것을 회칠한 무덤같다고 단정지어 말씀 하셨습니다.
구세주 예수를 믿음으로 의에 이르고 구원에 이르는 것 말고는 그 누구에게도 길은 없습니다.
바울의 자기 민족에 대한 그 처절한 안타까움이 거기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