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 후에 그들의 얼굴이 더욱 아름답고 살이 더욱 윤택하여 왕의 진미를 먹는 모든 소년보다 나아 보인지라"(1:15)
나라가 패하고
수 많은 사람들이 비참한 주검으로 던져지거나 노예로 팔려가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왕국이라는 자부심 넘치던 다윗왕의 나라가 완전히 망해가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도 40년에 가까운 일본에 의한 지배를 받아본 나라이므로 어느정도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애국지사들이 변절이란 과정을 겪었고 극소수만이 절개를 지키다가 스러져 갔을 뿐입니다.
민족혼은 말살되어 갔으며 한글도 죽은 언어가 되어가는 중이었습니다. 성도 일본식으로 창씨개명이 이루어졌습니다.
이 때 만약 일본 왕궁에 끌려가 거기서 일 하기 위하여 내시가 된 조선인 청년들이 있었다면 아마 다니엘과 세 친구 하나냐 미사엘 아사랴와 비슷하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포로로 바벨론에 끌려간 사람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하나님은 어떤 분이었으며 조국은 어떤 존재였을까요?
어떤 사람들은 포기하고 원망하고 어떤 사람들은 순응하고 어떤 사람들은 반발하다 소멸되어갔을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순응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나라에선 그런 이들을 친일파라고 부르고 적대시 합니다만 다니엘서의 인물들은 자신들의 처지에서 순응하며 새로운 미래를 개척해 나갑니다.
순응은 비겁한 것이 아닙니다. 약자들의 소멸되지 않는 길이며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징벌을 순하게
받아들이는 방식이었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그런 상황 속에서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원한으로 자신을 학대하지 아니하고
그들이 선 그 자리에서 그들의 힘으로 지킬 수 있는 작은 것을 지키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이런 선택은 상대방을 자극하지 않고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키는 지혜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명령으로 내려온 왕의 음식과 포도주를 거절하였습니다. 아마 왕의 음식과 포도주는 율법이 정한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진 것임을 알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비록 다른 율법의 명령들을 지킬 수는 없었을지라도 이 작은 것 하나, 왕의 음식과 포도주 대신 채식을 선택한 것은 이들이 하나님을 경외함의 시작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일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그들을 도우셨음은 불문가지의 일입니다.
우리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 아버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혹 회사를 위하여 술을 마셔야 하고 과도한 선물을 뿌려야 하고 탈법적 일에 개입될 수 있어도 말입니다.
이 세상이 바벨론이기 때문입니다. 고자가 된 다니엘과 그 친구들이 바벨론의 왕을 위해 일 했듯이
이 세상에서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서도
하나님 사랑하는 것을 포기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비록 완전하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처음부터 모든 면에서 부딪쳐 가지 못할지라도
'작은 시작'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것도 결코 쉽지 않은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시작이 있어야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나는 술은 먹지 않겠다' 든지 '나는 뇌물성 선물을 받지 않겠다' 든지 '세속적 유흥에 참여하지 않겠다'든지
하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이런 일도 실상은 매우 어렵지만 작은 실천으로 하나님 사랑하는 것을 스스로에게 증거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그런 그리스도인들의 시작들이 성공해야
위로 올라갈수록 더욱 악한 인간들만 남는다는 이 세상의 철칙이 무너져 내리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그 시작이 무르익고 완성되어 그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이 이 세속에 물들어 사는 이들보다 열배나 나은 줄 온 세상이 알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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