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로 지나다가 자기에게 상관 없는 다툼을 간섭하는 자는 개 귀를 잡는 자와 같으니라"(26:17)
이 말씀은 제3자로서 남의 다툼에 간섭하는 것의 어리석음과 위험성을 지적하는 것이지만
그러나
비록 남의 다툼일지라도
거기서 불의를 보고 외면하면서 자신의 비겁함을 이 말씀을 근거로 내세워 정당화 한다면
참으로 말씀을 농단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사사건건 남의 일에 개입하여 문제를 확대시키는 부류의 사람은 가까이 하기에 매우 피곤한 사람이지만
정 반대로
만일 남의 일이라면 모두 외면해버리는 세상이 온다면 이 또한 우리가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될 것입니다.
본문의 가르침의 의도와는 좀 다른 각도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지만
사회의 정의란
남의 일에 개입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이루어져 가는 것입니다.
개 귀를 잡으면 깜짝 놀란 개가 공격받는 줄 알고 물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런 위험성을 능히 알고도 개 귀를 잡듯이 자기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다툼에 끼어드는 사람이 어쩌면
진실로 용기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우리 시대는
개 귀를 잡는 사람들이 너무 없어서 큰 일입니다.
불의한 일이 백주에 벌어져도 외면해 버리는 일이 너무 허다합니다.
변명은 그렇습니다. 끼어들다 자신만 억울하게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산상수훈중 팔복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5:9)
끼어들지 않고 화평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요?
개 귀를 잡을 용기를 내지 않고 끼어 들 수 있을까요?
나아가 예수님도 이 세상일에 당신의 목숨을 내놓고 끼어든 것 아닐까요?
그러므로
쓸데없는 일에 끼어들기는 화를 자초하겠지만
정의를 위한 끼어들기는
혹 자신에게 화가 미치는 일이 있더라도 하나님의 자녀다움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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