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우리/30초 성경묵상

베드로전서 1(1:1-12)

주방보조 2020. 7. 24. 07:07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1:7)

 

개역성경에서 '믿음의 시련'이 개역개정에서 '믿음의 확실함'으로 바뀌어 있습니다.  

공동번역과 새번역은 단련, 현대인의 성경은 시련, 일본어역본들도 試練, NIV는 생략되어 있고 KJV은 trial, 가톨릭성경은 순수성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헬라어δοκίμιον (도키미온)의 뜻이 시험, 연단, 순수한 것 등으로 나타나는데

제 생각엔 시험이나 연단을 거친 것이 순수해지기 때문에 연결되는 의미같아 보입니다. 개역개정의 확실성이란 번역은

거기서 조금 더 나아간 것 같아 보입니다. 

어쨌든 저는 시련이라는 번역에 마음이 더 갑니다. 

 

시련없는 믿음은 위선으로 흐를 수 있습니다. 

시련이 오면 무너지는 믿음, 시련이 오는 것을 부정해버리는 믿음, 시련을 마귀역사라고 정죄하는 믿음 등은 

바른 믿음일 수 없습니다.

"믿으면 복받는다"는 의미는 시련을 피하거나 부정하는 복을 지칭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시련을 넘어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는 복입니다. 

 

믿음은 시련을 통해 훈련되고 강화됩니다.

그리고 나아가 시련이야말로 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약속을 신뢰하는가에 대한 답을 주는 열쇠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8장에서 이렇게 외치십니다.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8:18)

고난이라는 안경을 껴야만 영광이라는 세계가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련은 영광에 이르는 과정이며

믿음의 시련은 이 세상 그 어떤 가치있는 것보다 더 하나님의 영광에 가까이 가게 하는 복된 조건입니다.

 

시련이 왔을 때 왜 나에게만 이런 시련이 오는가 이상하게 여기지 말고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는 첩경임을 감사히 여기는 자가 된다면

그 어떤 시련도 그 믿음을 흔들지 못할 것이며

오히려 그 믿음대로 더욱 성장하고 빛나게 되는 날을 보게 될 것입니다.

마침내 다가올 그 영광은 너무나 당연히 누릴 약속의 성취이고 말입니다. 

 

믿으면 복됩니다. 

그 어떤 시련도 넘어서고 뚫고 나갈 수 있는 힘이 그 믿음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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