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절의 시험과 13정부터 15절에 나오는 시험은 번역본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분명히 그 의미하는 바가 다르다 보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12절의 시험은 시련으로 13절부터의 시험은 유혹으로 보는 것이 옳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유혹하여 죄에 빠지게 하는 분이 아닙니다.
기독교를 반대하는 안티들이 가장 많이 언급하는 부분중 하나가 바로 이점입니다.
왜 에덴동산에 선악과를 두고 못 먹게 하고 결국 따먹어 죄를 짓게 했느냐는 것입니다. 전지전능하니 이미 다 알고 있었을텐데 말입니다.
실제로 어떤 이단은
하나님이 마귀를 멸하시기 위하여 마귀로 하여금 사람을 죄짓게 함으로서 마귀를 합법적으로 징벌하기 위해 유혹한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하나님은 사람이든 마귀든 유혹하는 분이 아닙니다.
그 전지전능하심도 하나님의 절재성에 대한 우리의 신앙고백적 표현이지 논리적으로 또는 문자 그대로 전지전능하신 분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당신의 능력을 제한하시며 스스로의 법칙에 복종하시기도 하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고 싶다고 마음대로 다 하시는 그런 독재자형이 아니하는 말입니다.
실낙원에서 존 밀턴은 사탄이 에덴동산에서 인간을 범죄케한 죄는 인간에 대한 시기에서 나왔다고 이야기합니다.(하두 오래전에 읽은 기억이라 확실하진 않습니다. ) 밀턴의 말처럼 인간에 대한 시기인지는 모르겠으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유혹이 아니라 사탄 스스로 자기 욕망을 따라 그렇게 하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하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그녀를 유혹한 것이 아닙니다. 마귀의 감언이설에 속아서 그녀의 마음속에 생겨버린 욕망이 그녀로 하여금 선악과를 따 먹게 한 것입니다.
유혹이란 마치 주방에서 새어나오는 프로판 가스같은 것입니다.
가스가 새는 것을 알아채고 창문을 열어 환기를 하면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가스가 새는지 알지 못하고 가스렌지에 불을 붙이려고 하는 순간 엄청난 폭발이 일어납니다.
그 불이 바로 욕심입니다.
욕심은 사람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판단력을 흐리게 하며 고집스럽게 만들어 버립니다.
그 욕심이 유혹을 만났을 때 그 유혹이 가져다 줄 파괴력을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폭발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 폭발이 바로 죄이고, 그 결국이 죽음인 것입니다.
...
날마다 성경을 보면서 거기에 비쳐진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 보는 사람, 기도하면서 주님 앞에 자신을 낮추는 사람
비록 유혹이 앞에 있어도 거기에 미혹되지 않고 흘려버릴 수 있는 사람입니다.
성경을 읽을수록 기도를 할수록 하나님으로부터 이 세상의 것들을 더욱 많이 얻고자 욕심을 부리는 사람
스스로 미혹되어 죄를 범하는 자가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욕심을 다스리는 자만이 유혹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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