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누군가 박근혜를 미쳤다고 할 때, 박근혜가 최순실의 아바타로 무당춤을 춘 것을 예로 든다면, 박근혜는 귀신이 들린 상태이거나 영적으로 최순실에게 홀린 상태로서 미쳤다는 것을 의미한다. 혹은 박근혜 집안에서 마약을 한 박지만이 제일 정신적으로 온전하다고 누군가 말했을 때는, 박근혜의 정신 상태가 마약 환자 이상의 정신적 불완전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아무리 박근혜가 "혼이 비정상"으로 보일지라도 청와대 진돗개를 물어 버릴 만큼 인사불성 상태는 아닌 것 같고, 영적 주문을 외워 대고 최태민·최순실이 빙의된 상태까지는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박근혜가 미쳤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치신학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정치신학적 분석. (사진 출처 청와대) |
바운더리 상실한 그녀
박근혜가 미쳤다는 것은 한마디로 그녀가 '바운더리'를 상실했음을 의미한다. 무당의 신권정치가 다양한 이유로 가능했겠지만, 청와대가 집이고 대통령을 가업으로 알고 자란 박근혜에겐 어쩌면 공과 사를 구분하는 것만큼 어려운 숙제도 없었을 것이다. 공과 사를 구분할 수 없는 자가 네덜란드 칼빈주의자이며 정치가였던 아브라함 카이퍼의 '영역 주권'을 이해할 리 만무하다.
하나님께서 정치는 정치대로, 종교는 종교대로, 가정은 가정대로 그 나름의 원칙에 의해 운행할 수 있는 권위를 주셨다는 사상이다. 박근혜의 예를 가지고 영역 주권을 설명해 보자. 최태민과 박근혜의 관계를 수상히 여긴 박정희는 최태민을 친국하게 된다. 그러나 박정희는 최태민의 죄과를 알고도 딸 박근혜로 인해 처벌하질 못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대통령으로서 박정희는 최태민의 죄과 즉, 박근혜를 이용한 국정 문란을 알았다면, 그에 응당하는 죄과를 묻는 것이 대통령으로서 그 정치 영역의 원리에 충실한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 박정희는 최태민의 죄과를 알고도 묵인했다. '아버지' 박정희로서의 영애에 대한 연민이 개입했기 때문이다.
또 박정희는 딸을 둔 아버지로서 최태민의 거세를 지시한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가 딸을 최태민에게서 보호하고 싶은 마음 십분 이해하지만, 이것 역시 가정과 정치의 영역 주권을 구분하지 못해서 생겨난 일로 볼 수 있다.
카이퍼가 말한 영역 주권의 또 하나의 장점은, 하나님께서 각 영역은 그 영역의 원칙에 따라 운행하도록 하셨으므로 다른 영역의 침범이나 간섭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최태민의 종교가 최순실을 통해 박근혜의 정치에 간섭할 수 없다. 여기서 간섭할 수 없다는 의미는 종교가 정치에 영향력을 전혀 발휘할 수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정치는 정치 나름의 원칙에 따라 움직이므로 종교적 원리가 정치의 영역에 감 놔라 배 놔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공공성의 기반이 전혀 없는 종파적인, 아니 더 나아가 이단 혹은 사이비에 가까운 종교적 원리, 즉 최순실의 2017년 통일 예언에 따라 '통일 대박' 발언이나 '개성공단 폐쇄'를 결정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미르재단 등에서 드러난 비선 개입 전횡들은 정치 영역에 사적인 친목 모임 원리, 즉 우정이나 의리가 공정과 정의라는 정치 영역의 주권을 깔아뭉갠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어쩌면 억울한 그녀
사실 박근혜에게도 억울한 측면이 많다. 아버지가 대통령이어서 20여 년을 가정 영역과 정치 영역이 섞여 있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전문 정치인이 되어서도 그녀를 여왕으로 대우하는 내시·시녀들 때문에 우산을 씌워 주지 않으면 비를 맞고, 포크를 갖다 주지 않으면 식사를 할 수 없는 존재가 된 듯하다. 스스로 연설문을 작성할 수도 없고 스스로 국가 정책에 대한 판단도 내릴 수 없었지만, 박정희를 대한민국의 구원자로 맹종하는 지지자들 덕분에 대통령이며 박정희 종교의 영매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런 그녀가 정치·종교·가정 영역이 각각의 원리에 따라 환원할 수 없는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이해한다는 말인가. 다시 말하지만, 박근혜가 미쳤다는 것은 일국의 대통령으로서 국가와 종교와 가정의 영역을 구분하지 못하는 상태가 아니었을까. 대한민국과 영세교와 박근혜·최순실 일가가 구분되지 못하고 섞이게 되어 봉건제도에도 있을 수 없는 사태에 이르게 된 것은 아닐까.
독일의 미친 왕들
<르네상스 독일의 미친 왕자들(Mad Princes of Renaissance Germany)>의 저자 에릭 미델포트(H. C. Erick Midelfort)는 15세기 중반에서 16세기 중반에 이르는 남부 독일 지역의 미친 왕족들을 연구했다. 약 30여 명의 미친 왕자가 왕권에서 폐위되었다.
여기서 미친 왕자들 역시 개를 문다든지 하는 인사불성 상태에 도달했다기보다는, 혼이 비정상(mental disorder)이거나 지속적인 우울증(melancholy) 혹은 무력감(helplessness)을 보인 경우가 흔했다.
특히 '무력감으로서의 광기(madness as helplessness)'는,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킬 때 반드시 부모 같은 타인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의미한다. 이는 마치 박근혜 대통령의 최태민·최순실 일가에 대한 영적 의존, 문고리 3인방에 대한 의존, 김기춘·우병우의 사정 당국을 조정하는 능력에 대한 의존, 안종범을 통해 재벌을 조정하는 것에 대한 의존 등을 보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역사를 통해 배우는 길을 택한다면 미친 왕자들에 대한 처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15세기 중반에는 주로 왕권이나 권력에서 폐위하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미친 왕자들에 대한 치료에는 무관심했다. 그러나 16세기 중반으로 갈수록 폐위된 미친 왕자들에게 치료도 제공해 인간적 배려를 잊지 않았다.
바운더리를 상실한 그녀는 대통령으로서 국가·종교·가정의 영역을 구분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각 영역이 그 원칙에 따라 발전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없다. 이미 그녀 스스로가 본인이 대통령인지 최순실의 아바타인지 구분할 수가 없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의존 없이 스스로 판단하고 분별할 수 없다면, 누군가에게 계속해서 아바타로 이용당하지 말고 하야하라!
한편 영역 주권을 이해하지 못하고 누군가에게 의존해야 하는 상태의 대통령도 결국은 인간이다. 치료를 받고 당당하게 주체적인 인간으로 세워지기를 기도한다.
김은득 / CRC 소속 칼빈신학교 박사과정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