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스트레일리아/다섯아이키우기

남하...양평역까지

주방보조 2015. 9. 30. 12:13

연휴가 길어

마지막 날은 두 아들을 데리고 오랫동안 마음먹은 자전거 타고 남행길을 가기로 하였습니다.

고구마 감자 배즙 닭다리 식빵 쨈 초코우유, 비옷, 돈, 카드...바퀴마다 빵빵하게 바람을 채워 넣고

두 달간 살곶이를 매주 두세번 왕복하며 어느정도 체력도 길렀다 생각하여 1차 목표를 충북 충주로 잡고

7시 45분 집을 출발하였습니다.

 

두 아들과 이렇게 자전거를 타는 일은 사실 매우 힘든데

맏아들은 항상 바쁜 놈이고, 둘째 아들은 언제나 따지는 게 많은 때문입니다.

그래도 충신이 제대기념 남성 단합대회...란 이름으로 이 일을 성사시켰습니다.

 

한강에 접어들어 보니 날이 무척 맑고 기분도 상쾌하고 우리 셋의 컨디션도 다 좋아보였습니다.

다만 잠실대교 오르막을 오르다가 왼쪽 다리에 잠간 뜨끔하는 통증이 있었는데

일단은 그리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춘천 갔을 때 장경근 인대문제로 고생한 이후, 한번도 재발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혹 재발한다 해도 지난번엔 몰라서 당한 것이고 이번엔 조심하여 쉬어가면서 가면 되리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얼마 못가 장경근 인대의 통증이 제법 묵직하게 왼쪽 무릎부근을 압박해 왔습니다.

겨우 구리시 코스모스 꽃밭에서 쉬어야 했습니다.   

 

 

 

 

조금 쉬었더니 괜찮아진듯 하여 다시 출발하였습니다.

남양주와 하남을 잇는 미사대교 아래서 다시 쉬었습니다. 패달을 구를 때마다 뜨끔 뜨끔 장경근인대가 아파왔기 때문입니다.

원래 계획은 능내역까지 쉬지 않고 달린다였는데...

아들들이 걱정을 하였습니다.

 

충신이-돌아갑시다.

교신이-충주까지는 안 되겠네요.

 

 

 

 

 

점점 강해지는 통증때문에 팔당대교 아래에서도 잠시 쉬고

평지와 내리막은 자전거를 타고

조금만 언덕이 나와도 걸으면서

그럭저럭

능내역에 도착했습니다.

화장실 외벽에 붙어 있는 벤치에서 밤새 준비한 감자, 고구마, 닭다리, 그리고 진실이가 준 배즙을 먹고 마셨습니다.

 

충신이: 다음에 나오는 운길산 전철역에서 돌아가요.

교신이: 어차피 전철들이 있으니까 아버지 가실 수 있는데까지만 가죠. 

 

 

 

 

약간의 허기를 채우고 교신이가 준비한 압박붕대를 왼쪽 무릎근처 통증이 있는 곳에 두르고

평지와 내리막은 달리고 오르막은 걷고...하여 통증의 증가를 최소화하며 자전거도로가 된 옛양수철교길을 넘었습니다.

우리들의 자전거여행에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순간이었습니다. 거기서부터는 초행길이니 말입니다.  

다리건너 휴게실에서 충신이가 화장실을 간 사이 상당시간^^ 쉬고 나서

결국 충주까지 가는 것은 포기를 선언했습니다. 수정 목표는 양평역까지...

 

충신이:그러지 마시고 요 아래 양수역에서 전철타고 돌아가요.

교신이: 아버지 뜻대로... 

 

 

 

 

 

 

 

 

 

 

그렇게 그렇게 양수역을 지나고 신원역을 지나고 국수역을 지나고

충신이가 아신역을 잘 안다면서 거기서 점심먹자는 것을 모른척 그냥 아신역을 지나고

사탄천을 만났습니다. 이름이 하두 특이하여 거기서 한참을 놀았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충신이는 바로 곁에 있는 옥천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옥천냉면집을 지적하며 냉면먹자고 졸라서

양평에 도착하여 먹으려 하던 점심을 거기서 먹게 되었습니다.

충신이는 냉면을 광적으로 좋아하고, 교신이는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한그릇에 8천원이나 하는 냉면인데...몇년전 우리 동네 어린이 대공원근처 서북면옥의 맛과 비슷...손님은 바글바글...

교신이는 딱 한 입 먹고 맛 없다고 우리 둘에게 넘겨버렸습니다. 그래서 저와 충신이는 1만2천원짜리 냉면을 먹었습니다. ㅋ  

 

거기서부터

내리막은 자전거를 타고 오르막과 이젠 평지까지도 걸어야 했습니다. 대부분 걸었지요. 아름다운 자연을 훌씬 더 가까이 즐겼다는 유익은 있었습니다.

오빈역에서

 

충신이: 여기서라도 돌아가야 해요. 아버지 다리가 더  망가지면 안 돼요.

교신이: 걸어서라도 가죠. 양평까지는 가야죠.

 

...

 

양평은 생각보다 큰 도회지였습니다. 자전거길이 양평미술관?을 돌아가도록 설계하였더군요. 거기서 양평역까지는 그냥 걸어서 끌바^^를 한 셈입니다.

 

 

 

 

 

 

 

...

 

양평역 앞 편의점에서 배고픈 교신이에게 컵라면을 사주고 30분 정도 기다려 전철을 탔습니다.

그리고

전철은 또 다른 지옥이었습니다. 마지막칸 자전거들로 얽히고 섥힌 아비규환... 전철을 타면 이젠 편하리라는 생각은 환상에 불과 했습니다.

다리만 아프지 않다면

차라리 자전거길을 택하는 편이 나았겠다 할 정도였습니다.

 

겨우 상봉에 내린 후

계단을 내려갈 때마다 아들들이 나서서 저를 도와주어야 했습니다.

 

늙어간다는 것...

점점 자식들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말과 동치임을 실감했습니다.

기꺼이 자신들의 힘을 아비를 위해 써 주는 모습에 뭉클하였습니다. 이 세상 어느 자식이 아버지 다리 아픈데 돕지 않을 리 없건마는...

마치 저 혼지 그런 호사를 누리는 아버지가 된듯...말입니다.

 

...

 

집에 도착하니 5시쯤 되었습니다.

아내는 딸들과 잘 지냈다고 하고...3주간의 병가를 마치고 다음날 직장에 복귀할 마음의 준비를 하는듯 보였습니다.

 

...

 

또 다시 자전거를 타고 양평 아래쪽으로 남하를 시도할 수 있을지... 아쉬운 여행이었습니다.

 

 

 

 

  • 김순옥2015.10.01 08:36 신고

    좌청룡 우백호...비록 목표 달성을 하시지는 못하셨지만 든든한 두 아드님과 멋진 하이킹이셨네요.
    요즘 세상에 어떤 아들들이 아버지와 그런 시간을 공유하는 기회가 얼마나 될지...
    훌륭한 아버지께 꼭 훌륭한 두 아드님으로 성장할 것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듯해요.
    그리고 앞으로는 무리하시는 일이 없으셨으면 싶네요.
    얼굴로 봐서는 충신이는 점점 아버님의 멋진 모습을 닮아가고 있고,
    교신이는 과도기를 겪고 있어 보이네요. 교신이가 축구를 했던 체력으로
    앞으로 남은 수험생 과정을 건강하게 잘 극복해 내길 기원합니다.

    답글
    • 주방보조2015.10.01 12:31

      공부빼고는
      아들들이 저보다 열배는 나은 장점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 잘 사귀고,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는 (그런 것이 다 노는 것이라 문제지만) 엄청나게 몰두하거든요.
      평소엔 속을 썩히지만
      자전거타는 동안은 기특했습니다. 고맙고...ㅎㅎ

  • 한재웅2015.10.01 18:39 신고

    고생하셨네요.
    우리동네 오시는데 마중나갔을걸 그랬네요^^
    무리하게타지 마시고 쉬엄 쉬엄 타세요.



    답글
    • 주방보조2015.10.01 20:48

      ㅎㅎ...남양주를 지날때마다 한재웅님이 생각납니다.^^

      왼쪽 다리를 가볍게 하고 오른쪽만 힘을 주어 패달을 밟아선지...오른쪽 발목이 부어 있고 아픕니다.
      균형을 잃으면...이렇게 차곡차곡 무너지는 것같습니다.

  • 왕언니2015.10.02 18:09 신고

    아들이 하나뿐이면 어려웠겠지만...둘이나 되니 이런 여행도 가능하네요.
    구리의 코스모스밭...소문만 듣고 가보지 못했는데 여기서 보네요.
    내가 남자였으면... 나도 아들이 둘 이었으면 쩜님처럼 꼭 해보고 싶어요.

    이제 자전거타기도 쉬엄쉬엄 할 나이가 되셨나봐요.^^

    답글
    • 주방보조2015.10.03 00:05

      마눌님이 눈감아준 덕이 가장 컸지요^^

      아들 둘과 함께 처음 정복한 길이 팔당대교까지였는데...그땐 그것도 너무 힘들었는데, 아이들이 크고나니 제가 고장이나서 힘이듭니다. 정말 아이들과 동질의 즐거움을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란 맞추기 어렵다 싶습니다. 인생이 그래서 각자 갈 길을 가는 것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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