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규학 씨가 교묘히 조작한 ‘빛과소금교회’의 전 부목사 김정현의 글에 답한다 (2)
- 부당해고 문제를 중심으로
최삼경 목사 / <교회와신앙> 상임이사
서론: 김정현 목사에 대하여, 내게 혹 반성의 여지는 있을망정 원망 들을 만한 잘못은 하지 않았으며, 김 목사 쪽도 시간적으로 이제는 나를 원망하기보다 자신을 반성할 때가 이미 지났다고 본다.
1. 김정현 목사가 <빛과소금교회>를 떠난 지 3년이 지난 후부터 시작하여 4회에 걸쳐 나를 비판하는 글이 나왔고, 나를 모함하는 이단자들과 이단옹호자들에게 비판 거리를 주었으며, 나아가 나를 모함한 사람들의 법정증언까지 하였지만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김정현 목사는 7-8년 전인 2007-2008년에, 본인이 시무하는 ‘빛과소금교회’에서 2년간 부목사로 근무한 후, 일련의 과정을 거쳐 같은 지역에다 교회를 개척하였다. 그런데 김 목사는 우리 교회를 떠난 후 3년이 지났을 때부터(2011년) 나에 대한 비판을 시작했는데, 총 4회 중에 3회가 다 황규학 씨가 발행인으로 있는 상습적 이단옹호 언론인 <법과교회>에 게재 되었다.
그러나 나는 지난 4년 동안 아무런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나를 비판한 언론들의 모든 기사들을 모으면 적어도 약 600-700여회가 넘겠지만 역시 대꾸하지 않았다. 내가 김정현 목사에게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은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첫째, 무엇보다 대꾸할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부분도 있었고, 대꾸하면 김정현 목사와 같은 수준의 사람이 되고, 그래도 그에 비하면 나는 강자란 생각이 들어 답하지 않았다. 김정현 목사가 우리 교회를 사임하고, 요상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뜻을 찾아 바로 교회 옆에서 개척 교회를 시작하였다. 그런데 김 목사가 개척한 교회는 부흥되지 못하고, 나에 대한 김 목사의 첫 번째 글이 나온 지(2011년) 채 2년도 견디지 못하고 결국 교회 문을 닫고 말았다. 그런 그에게 맞대응을 한다는 것은 너무나 잔인하게 느껴지기도 하였다. 한 때 나와 함께 부목사로 사역했던 사람과 직접 싸운다는 것이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결국 다른 사람에게도 그랬던 것처럼 무조건 하나님께 맡기고 지금에 이르렀다.
둘째는 우리 교인들이, 특히 당회원 장로님들이, 내가 그를 부당 해고하지 않았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김정현 목사의 말을 믿는 자가 없다. 그렇지 않았다면 내부적으로 문제가 생겼을 가능성이 크다. 인간적 정으로는 교인들과 더 가까운 것은 담임목사가 아니라 부목사다. 그가 밝힌 것처럼, 나는 당시 국내외 집회가 많았고, 또 글을 많이 썼으며, 쉬지 않고 고소를 당하여 목회에 전념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 교인들 중에 외부 일로 바쁜 나보다 김정현 목사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야 정상이었을 것이다.
비록 오판과 거짓에 의하여 나온 말이 분명하지만, 김 목사가 주장한 바에 의하면 나는 이단 연구하듯 목회를 하고 교인들을 치리하였고(31년 동안 단 한 번도 치리한 일이 없지만), 교인이 수백 명으로 줄었고, 대신 김정현 목사는 바르고 의롭고 충성스런 목사였으니 그는 나보다 더 높은 지지를 교인들로부터 받았어야 했을 것이다. 나는 김정현 목사가 바로 우리 교회 코 밑에 개척을 한 실질적인 이유가, 비록 그것이 그의 오판이었지만, 바로 이 반대급부를 노리고 한 실수는 아닌가 의심스럽다.
그러나 김정현 목사는 결국 교회 문을 닫고 말았다. 왜 하나님의 계시(?)로 개척하였고, 그의 할아버지 목사님께서 ‘한 번 교회를 시작했으면 무슨 이유로도 문을 닫지 말아야 한다.’는 깊은 유지까지 가진 자로 다른 사람이 교회 문을 닫으면 비난까지 하는 자로서, 하나님과 할아버지의 뜻을 저버리고 교회 문을 닫았는지 황규학 씨가 김 목사에게 물어 주기 바란다.
셋째는 김정현 목사도 목회를 하면 담임목사의 고충을 알 것이라고 생각했다. 얼마나 목회가 고난의 길인지는 담임목사가 되어 무한한 책임을 지고 밤을 꼬박꼬박 지새우고, 간이 썩어 죽음 앞에 서 보지 않고는 잘 모른다. 나는 현재까지 이 교회에서 31년째 목회를 하고 있지만 단련될 만큼 단련되었을 20년이 넘었을 때에도 어떤 형태의 오해 내지 위기가 오는 것을 경험하였다. 김정현 목사의 말처럼 내가 못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목회하는 지난 31년 동안 죽음 앞에 세 번이나 섰고, 마음으로는 죽을 준비도 했었다. 환청도 들렸고, 오래 동안 불면증으로 약을 먹지 않고는 잘 수 없기도 했다.
신학생 때나 부목사 때는 목회자의 고난을 말로는 아는 것 같아도 사실은 잘 모른다. 담임목사의 약점은 작은 약점이라도 크게 확대되지만, 그보다 목사는 옳아도 옳은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 무가치한 비판에 시달려 보아야 목사가 된다.
나를 겪은 부교역자들이 교육전도사들을 제하고 30여명이 된다. 그들 중에 때로 나에게 혹독한 훈련을 받아 힘들었던 분들도 있지만 그러나 담임목사가 되어 목회를 하면서 깨닫고 ‘부목사 때는 몰랐습니다.’라고 고백하기도 했다. 김정현 목사도 목회를 하다보면 깨닫고 나에게 용서를 빌 것으로 믿었다. 이 점은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자존심이 많이 상했지만 참고 참았다.
내가 이제 4-5년 만에 나와 함께 일했던 부목사에 대하여 비판의 글을 쓰는 것이 그래서 기쁘지 않다. 그러나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고, 또 황규학 씨의 거짓을 보면서 어쩔 수 없이 반증하는 것을 당사자인 김 목사도 그리고 독자도 이해해 주기 바란다.
2. 김정현 목사의 과거를 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김 목사의 글은 황규학 씨를 비롯한 이단옹호자들과 이단들에게 최소한의 승리요, 기쁨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김정현 목사가 이렇게 하는 것은 도저히 할 수 없는 신의를 저버린 짓을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까지도 그 글들에 최소한의 진실이 있지 않을까 의심하기도 했다. 한 마디로 말한다. 그는 최소한의 진실로 최대한 거짓말을 했고, 그것이 오해와 착각을 낳게 하였다.
첫째, 김정현 목사를 창동염광교회의 고인이 되신 최기석 원로목사께서 추천해 주어, 우리 교회로 청빙했다.
최 목사님은 성자 목사로 인정을 받으셨던 분이시다. 당시 창동염광교회에서 김정현 목사가 신비주의적 강사를 초청하여 집회를 한 것이 문제가 되어 교회를 떠나야 할 상황이었다. 최 목사님은 자초지종을 설명하면서 추천해 주셨다. 나도 최 목사님의 말처럼 김정현 목사가 그런 것이 아니라, 초청된 강사가 그랬으니까 김 목사는 그 강사 같이 신비주의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또 그랬다고 하여도 새로운 기회를 주는 것은 좋다고 생각하였다. 최기석 목사님의 추천을 100% 믿고 다른 응모자들은 보지도 않고 무조건 김 목사를 모셨다. 그런데 후에 경험해 보니 김 목사님 자신이 불건전한 신비주의자였다.
후에 내가 최기석 목사님께 김정현 목사가 우리 교회에서 했던 일들을 말씀 드리자,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내 생애에 다시는 교역자를 다른 교회에 소개하지 않겠습니다.’라고 하시면서 아파하고 사과하고 또 후회하셨다. 나는 최 목사님에게 ‘아닙니다. 그게 무슨 목사님의 책임입니까? 목사님도 김정현 목사를 모르실 수 있고, 또 인간관계란 상대적 요소가 있으니까요’라고 말씀드렸다. 김 목사는 추천하신 최 목사님에 대한 신의나 예의로도 이렇게 할 수 없다.
둘째, 김정현 목사는 불건전한 신비주의적 믿음을 벗어나지 못한 자가 분명하다. 우선 앞의 김정현 목사의 글에서, 우리 교회에서 가정 제단을 쌓아 문제가 되었던 집사들을 옹호하는 김 목사의 모습에서도 잘 나타난다. 저들은 나 몰래 1년 정도 가정 제단을 쌓았는데, 김 목사는 물론 부교역자들도 어느 누구도 나에게 보고하지 않았다. 내가 알았을 때에는 무려 50-100여명까지 모이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뿔뿔이 흩어졌다. 그 중에 저들이 잘못된 것을 알고 빠져나와 나에게 잘못을 비는 자도 있었다.
그런데 당시 그들이 한 예언을 들어보면 그들이 얼마나 영적으로 문제가 많은 사람이었는가를 쉽게 짐작하고 판단할 수 있다. 가정 제단을 쌓던 집사는, 다른 직통계시자들이 그러하듯, 아무에게나 길흉의 예언을 하였다. 그 중에는 심지어 권사나 장로들도 대상이었다.
어떤 착한 권사님은 그 제단을 이끄는 신학생에게 등록금을 대어주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 신학생이(지금은 어디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고 들었다) 아들 때문에 늘 속상해 하시는 한 장로 부인 권사에게 이런 예언을 하였다. ‘묘지를 잘못 써서 그러니 묘지를 옮기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용납될 수 있는 기독교 영성인가’라고 묻는다면 ‘절대로 아니라’가 답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에 대한 김정현 목사의 자세이다. 한 마디로 저들의 그 영적 활동을 긍정적으로 지원하였던 자가 바로 김정현 목사이다. 그것이 바로 창동염광교회에서 벌어진 예언 집회와도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앞의 글에서 김 목사는 지금까지도 저들의 신앙에 문제가 있다는 자세가 아니라 오히려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직접 보자.
“그러나 그 대상자들 중에 최 목사의 눈에 난 한 사람으로 인해 그 모임은 불건전한 모임으로 간주되어 책망과 함께 해체하라는 권고가 내려졌고, 만약 해체하지 않으면 전원 출교하겠다고 까지 했습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그저 자신들만의 아픔을 가지고 함께 모여 기도했을 뿐인데 무슨 몹쓸 짓을 한 사람처럼 취급을 받으니 당연히 말을 들을 리가 없었습니다. 저를 비롯해 모든 부목사들이 판단하기에도 교회의 허락을 받지 않은 것이 굳이 잘못이라면 잘못일 수는 있겠으나 모두들 나름대로의 아픔을 가지고 그저 마음을 같이 하여 기도했을 뿐인데 책망부터 하고 게다가 출교를 운운하는 것은 조금 지나친 대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빛과 소금교회 전부목사, 예장통합 총회, 최삼경 비호하지 말아야 - 이단정죄나 부당해고나 같은 방식, 거짓증인 내세워 부당해고’, <법과교회>, 2015년 5월 20일)
위의 김 목사의 말 중에 이들에게 문제가 있다고 말한 부분이 있는가? 없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그저 자신들만의 아픔을 가지고 함께 모여 기도했을 뿐인데 무슨 몹쓸 짓을 한 사람처럼 취급을 받으니 당연히 말을 들을 리가 없었습니다. … 모두들 나름대로의 아픔을 가지고 그저 마음을 같이 하여 기도했을 뿐인데 책망부터 하고 게다가 출교를 운운하는 것은 조금 지나친 대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라고 하는 점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이들의 영성과 김정현 목사의 영성이 유사하다는 말이다. 그러나 나는 그들을 치리하지 않았다. 그런데 김정현 목사의 글에 의하면 마치 내가 이들을 출교라도 한 것처럼 되어 있다.
부산의 신 모 목사가 ‘파이프 오르간을 20억 주고 샀다’(사실은 전에 사용하던 파이프를 주고 2억 3천 정도 밖에 안 주었는데) ‘출교와 치리를 일삼는다.’ ‘우리 가족이 교회의 요직을 다 맡아서 한다.’ ‘빚이 150억이다’는 등의 주제 넘는, 그리고 근거도 없는 공개적 비판을 한 일이 있다. 내가 신 목사에게 ‘사과를 하라’고 하여도 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법적 대응을 했는데, 민․형사 간에 신 목사가 모두 패하여 형사도 민사도 모두 다 벌금을 물고 손해배상을 했다. 이 때 신 목사 측 증인이 바로 김정현 목사였다. 판사는 김정현 목사의 증언을 인용하여 신 목사에게 벌금형을 내렸는데 그 판결문을 보고 김정현 목사가 증언을 섰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것만 보아도 김 목사가 실제로 어떤 분인지 잘 알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이 같은 내용은 우리 지역에 뿌려진 불온 문서와 내용이 일치하며, 이 점은 김 목사가 말한 것과 일치하는 부분이 많다. H 모 목사가 신 모 목사는 ‘왜 그런 잘못된 정보를 받아 그렇게 잘못된 글을 써서 벌금까지 물었느냐’고 하자, 바로 정보제공자가 김 목사라고 하는 것을 들었다고 했다.
김정현 목사에게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불건전한 신비주의적 요소 한 가지만 더 소개하겠다. 가정 제단을 쌓던 자들이 역시 다른 한 장로님 부인 권사에게도 길흉을 예언하는 사악한 짓을 했다. 그러자 그 권사님이 황당하여 김정현 목사에게 그것을 보고하고 의중을 묻자, 김 목사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당나귀가 말해도 들어야죠.’라는 식으로 답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김정현 목사의 영성이다. 앞에서 퇴계원에 개척을 하라는 하나님의 뜻을 찾을 때 기도원에서 들었다는 하나님의 음성도 직통계시적 의미를 닮았다. 그대로 인용해 보자.
“어느 날 이른 새벽에 기도하던 중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 14장 6~15절 말씀을 보게 하셨습니다. 갈렙의 “이 산지를 주소서”라는 아주 유명한 성경구절이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여쭈었습니다. ‘제게 있어 이 산지는 어디입니까?” 바로 그때 “네가 거했던 바로 그곳이다’ 하는 말씀과 함께 퇴계원을 떠올리게 하셨습니다. 저는 순간 고개를 저었습니다. 있을 수도 없고 그렇게 할 수도 없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셋째, 김정현 목사는 교육전도사 시절에 다른 교회에서도 담임목사를 쫓아내려다가 오히려 자신이 쫓겨났다. 내가 필동에 있는 평양노회 D 교회, P 목사가 목회하는 교회에서 부흥성회를 이끈 일이 있다. 그 후 하루는 P 목사가 전화를 해서, 자기 교회의 한 교육전도사가 장로들과 함께 합세하여 자기를 쫒아내려 하여 참으로 힘들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담임목사가 잘못을 했다고 하여도 신의 상 할 수 없는 짓이죠. 그렇다면 그 교회를 떠나야 맞죠.’라고 한 일 있다. 결국 그 일로 인하여 그 전도사는 목사 안수를 받지 못하자, 온갖 해코지를 다 하다가 교회에서 나갔다는 것이었다. 후에 알고 보니 그 분이 바로 김정현 목사였다. 나는 최기석 목사의 추천을 믿고 모셨기 때문에 몰랐다. 결국 교육전도사 시절에도 담임목사를 쫓아내는데 앞장섰던 그 본성이 우리 교회에서 재발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3. 김정현 목사는 이제 자기 책임 속에서 ‘내가 무엇이 부족한가’를 생각하고 자기를 돌아보며 살아야 할 때가 되었다.
나는 김정현 사건에서 반성할 점은 있다고 보지만, 이렇게 비난받을 잘못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혹 내가 김정현 목사에게 잘못을 했다고 하여도, 김 목사가 그렇게 허위사실에 의한 그것도 악의에 찬 글을 써서 이단자들과 이단옹호자들을 이롭게 한 그 죄는 어떤 죄보다 더 크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제 김정현 목사는 자신의 길을 가야 할 정도로 시간이 흘렀다. 인간은 자기 책임적 존재다. 7-8년이라는 세월은 이미 자기를 이루고도 남아야 할 시간이다. 그리고 성경을 보라. 동생을 팔아먹은 나쁜 형들이지만, 요셉은 그들을 탓하지 않았다. 그것이 요셉이 이방 땅에 종으로 팔려가서도 국무총리까지 된 이유가 아닐까 생각된다. 다윗은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시 37:7)고 하였다. 다윗은 악한 꾀를 이루는 자, 사울 때문에 불평하지 않았다. 그래서 다윗이 되었다고 본다. 내가 사울이라면 김 목사는 다윗이 되기 바라고, 내가 요셉의 형들이라면 김 목사는 요셉이 되기 바란다.
본론: 나는 김정현 목사를 부당해고 하지 않았고, 대구 모 교회를 맡지 못하도록 한 일이 없다.
김정현 목사가 내게 대하여 문제를 제기한 글들은 거의 다 틀린 정보, 틀린 판단에 의한 쓰레기 글들이다. 하나씩 다 변증하고 싶지만 몇 가지만 취급하고 기다리겠다. 한 분에게 ‘나를 찾아와 잘못을 빌겠다’고 들었는데 아직까지 오지 않았다. 우선 몇 가지만 취급하고 그의 반응을 보고 나머지는 후에 대처하겠다.
김정현 목사는 정확해야 할 수치 부분도 틀리는데, 다른 가치 있는 판단은 얼마나 엉터리일지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우선 명확해야 할 사실관계에서 맞지 않는 부분을 들자면, 그가 말한 교회 부채 액수도, 교인의 숫자도, 별내지구 교회에 대한 정보도, 파이프 오르간의 값도 다 틀리다. 또한 가정 제단을 쌓던 집사들에 대한 판단도, 나에 대한 ‘삼신론이 뭐가 문제야’라고 했다는 말도 다 틀렸다.
난 김정현 목사가 정신적으로 이상이 없다고 믿고 싶고 믿는다. 그러나 혹 만에 하나를 위하여 정신분열증이 없는지 검사해 보기 바란다. 김 목사가 우리 교회에 있을 때,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들이 있었다. 교인들과 약속을 하고 지키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한 가지 사실은 고맙게도 김 목사 스스로 자신의 글에서 밝혀주어 나도 인용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하루는 권사님과 심방을 약속하였다고 한다. 이 권사님은 심방을 기다리다가 김 목사가 오지 않아 전화를 했는데 전화도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럴 수 없지만 그럴 수 있다고 보자. 웬만한 목사라면 저녁에라도 기억을 하고 전화를 해서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사과를 해야 한다. 그런데 김 목사는 약속도 잊었고, 전화를 받지 않음도 모르고 있었다. 주일이 되어 권사님이 ‘왜 심방약속을 하시고 오시지도 않았고, 전화도 받지 않았느냐’고 하자, ‘전화가 오지 않았다’고 하며. 자신의 전화기에서 그것을 스스로 확인하면서 보니 권사님 전화가 찍혀 있는 것을 확인하고 ‘어! 왔네! 어! 왔어!’라고 하며 민망해 하였다.
이제부터 핵심 문제를 변호하겠다.
1. 김정현 목사의 해임은 그가 ‘개척을 한다’고 한 구두 사표에 의하여 당회원 만장일치로 결의하여 이루어졌다.
내가 2008년 말에 김 목사와 다른 교역자들까지 한 분씩 면담을 했다. ‘2009년에 어떻게 할 것인가’물었다. 그 때 김정현 목사는 분명히 ‘개척을 하겠다’고 하였다. 그래서 ‘그렇게 알겠다’고 하였다. 다행히 이 부분에 대하여도 상당히 솔직하게 고백해주어서 고맙다. 우선 그의 글을 그대로 인용해 보자.
“김 목사, 내년에는 어떻게 할 건가?” “네. 저는 내년에는 목사님을 섬길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럼 갈 교회라도 있나?” “아니요. 이제 제가 나이가 있는데 어디를 가겠습니까?” “그럼, 어떻게 할 건데?” “개척이나 해야죠.” “어디서 개척할 건데?” “신도시 지역에서나 해야죠.” “그래, 김 목사, 그 4명의 문제 있는 집사들과 개척한다는 소문이 있던데, 사실이구만?” “목사님, 그런 식으로 말씀하지 마세요. 절대로 이 교회 사람들하고는 같이 안 합니다. 목사님,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그런 일은 절대 없습니다.” “아~ 알았네 알았어. 나가보게.”
여기에 “네. 저는 내년에는 목사님을 섬길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개척이나 해야죠. 신도시 지역에서나 해야죠.”라고 했다고 본인이 했다. 사실 위의 글을 쌍따옴표로 쓴 것도 이상하다. 그렇게 기억력이 좋은 것인지, 아니면 녹음을 했다는 말인지 모르겠다. 분명히 기억하는 것은 개척을 하겠다고 했고, 나는 그렇게 알겠다고 하였다.
그 후 당회가 열렸다. 나는 이 사실을 장로님들에게 말하였다. 그런데 놀라운 반응이 나왔다. ‘김 목사님이 개척을 하려고 하는 것을 아는 교인들은 다 압니다. 목사님만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교인들에게 여러 군데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개척 준비를 하도록 사임하게 하되, 사례는 그대로 드리고, 사택에서도 있게 하는 것이 김 목사에도 교회에도 유익할 것으로 보입니다.’라는 것이었다. 당시 한 분도 예외 없이 장로님들이 보인 반응이었고, 그래서 개척할 시간을 주기위해 사임하게 했다.
황 씨는 김 목사에게 물어주기 바란다. 왜 교회가 김 목사로 사택에서 살게 한 점은 말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연말까지 사례금을 주었던 점 역시 말하지 않았는가? 내가 사례금을 깎아서 주었는가? 만일 비록 나를 비판하기 위하여 썼던 글이지만, 김 목사님이 위의 진실을 밝히면서 글을 썼다면 나는 김정현 목사의 논리적 균형을 인정하였을 것이다. 논리적 균형이 없는 사람은 윤리적 균형도 없다. 말의 진실을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실천적 진실이 있겠는가?
김 목사가 세상 법정의 고소까지 운운한 점을 보면 세상을 기준으로 하여 부당해고라는 주장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부당해고란 본인이 사표 의지가 전혀 없는데 강제로 해임을 했을 때를 가리키는 경우요, 또한 해임을 한 후에 월급(교회는 사례금)을 주지 않았을 때를 말하는 것으로 안다. 사택에서 살게 하고 사례금까지 주었는데도 부당해고라는 말이 가능한지 모르겠다.
2. 김정현 목사가 나에게 개척을 도와달라고 찾아왔을 때의 진실은 이렇다.
나는 그렇게 괴상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는 두 가지 마음을 가지고 온지는 몰랐다. 그런데 주일 낮 2부 예배와 3부 예배 사이에 사전 예고나 허락도 없이 내 방(목양실)으로 양복을 입고 온 것이 아니라 잠바 차림으로 찾아왔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빌었다고 하는데, 이것도 거짓이다. 그 때는 내 아내와 나 밖에 없었으니, 진실을 가리기도 쉽지는 않다. 그러나 내가 거짓말을 하는 경우를 제하고, 만일 무릎을 꿇고 빌었는데 내 기억하지 못한다면 내가 정신분열증이 있는지 검사를 받아야 할 것이라고 본다.
당시 개척을 하려고 하는데 도와 달라고 온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내가 기억하고 있는 말은 이것이다. ‘목사님은 그런 문제를 이런 시간에, 이런 옷차림으로, 그리고 이런 방법으로 합니까?’라고 했다. 그러자 그는 떠나갔다.
그런데 내게 무릎을 꿇고 빌었다는 그의 말을 분석해 보자. 그는 절대로 무릎을 꿇지도 빌지도 않았다. 그렇게 김 목사가 기억하고 있다면 역시 그분의 기억력에 또 다른 문제가 있다고 보여 진다. 그러나 그의 말을 그대로 믿고 분석하면 더 재미가 있다. 그는 잘못도 없이 무릎까지 꿇고 빌었다는 말이 된다. 그리고 내가 돈을 주지 않자, 무릎을 꿇고 빌어야 할 잘못을 행한 사람이 이제는 잘못이 하나도 없는 자가 되었다는 말이다. 돈으로 그의 개척을 돕지 않은 내가 이제 무릎을 꿇고 빌어야 할 사람이 되고 말았다. 만일 그 때 김 목사가 무릎까지 꿇고 잘못을 빌어야 할 잘못은 무엇인지 알고 싶다. 이를 황규학 씨가 물어서 공적으로 답을 주면 참으로 고맙겠다.
사실은 김 목사에게는 돈이 목적이었고, 돈이 선이었고, 돈이 하나님의 뜻이었다. 그날 내가 김 목사를 도와주었으면 다른 곳에서 개척 했을 것이고, 나에게 이런 사악한 해코지는 하지 않을 것도 분명하다. 그렇다면 김정현 목사에게는 하나님의 뜻도 돈이고, 돈이 선이며, 돈을 주면 잘못한 죄도 없어지고, 돈을 위해서는 잘못하지 않아도 무릎을 꿇고 빈다는 말이 되었다. 내가 돈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이제 정작 무릎은 꿇어야 할 사람은 김정현이 아니라 최삼경이 되고 말았다. 돈을 주면 내가 선한 사람이고, 돈을 주지 않아서 악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
3. 왜 김 목사는 이런 사실들은 말하지 않는가? 나는 내가 타던 차(쏘나타)를 김 목사에게 주고 대신 나는 작은 차를 타고 다녔고, 우리 교인들이 첫 번째 성지순례를 갈 때, 내가 인솔하지 않고 부목사인 김정현 목사를 대접삼아 인솔자로 보내드렸다.
전에 밝힌 것처럼 나는 유리 상자에 들어 있는 사람이다. 그러다 보니 내 입으로 도저히 말할 수 없고, 하지 않아야 할 말까지 하게 됨이 하나님 앞에도, 우리 교인들에도, 독자들에게도 죄송하기 짝이 없다. 어쩔 수 없이 말하게 됨을 이해해 주기 바라고 또 바라며 글을 쓴다.
하나님께도 죄송한 마음으로, 우리 교인들에게도 죄송한 마음으로 말한다. 나는 처음에 이 교회에 부임하여 2년간 사례금을 다 헌금했다. 당시 사례금이 47만원일 때, 쓰지 않는 사례금에서 십일조 5만원 따로 드리고, 건축헌금으로 작정한 1천만 원이 다 될 때까지 사례금을 다 헌금했는데, 매월 43만원씩 드려 2년이 걸렸다. 그 후에 IMF가 찾아왔다. 교회 재정이 급격히 어려워졌다. 나는 총회 연금과 개인적금을 해약하여 헌금으로 드렸다. 한 마디로 내게 있는 모든 것을 다 드리려고 했고, 어쩔 수 없는 것만 빼고 다 드렸다. 미국에 유학 가 있는 딸 장학금을 단 한 푼도 받을 수 없었는데, 이 때 딸이 한 달 먹고 사는 생활비가 200불도 감당하기가 너무 힘들어서 딸 유학을 포기하는 것을 고려해야 할 정도였다. 그러다가 딸이 UCLA 3학년 편입이 될 때야, 교회가 어느 정도 회복되고 성장하여 처음으로 장학금을 받았다.
그리고 내가 타던 자동차를 세 번이나 팔아서 헌금으로 드렸다. 김 목사가 함께 일할 때는 병원을 인수 하고 죽을 정도로 힘들 때였다. 그래서 큰 자동차를 김 목사에게 주었다. 비록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김 목사로서는 고마워해야 할 일이 아닌지 묻고 싶다. 당시 부목사님이 소나타를 타던 때는 분명히 아니었다.
그리고 우리 교회 역사 이래 처음으로 교인들이 성지순례를 가게 되었다. 나는 그래도 한 번 갔다 왔기에 격려 차원에서 김 목사를 인솔자로 보내줬다. ‘그까짓 것’이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다. 나는 그 후에도 내가 가지 않고 부목사님들을 보냈다. 올해는 장로님들이 많이 가셔서 어쩔 수 없이 내가 처음으로 동행하여 갔다. 그런 것을 가지고 대단한 것을 한 것처럼 말하기에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러나 김정현 목사님에게 바른 생각이 있고, 일말의 양심이 있다면 고마워해야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생각된다.
하기야 내가 자기의 개척을 경제적으로 돕지 않았다고 복수심을 불태우는 김 목사님이시니, 어찌 좋은 것을 좋다고 할 수 있겠는가 생각된다. 그렇지만 우리 예수님은 그렇게 미워하고 저주하던 사두개인과 바리새인들에 대하여도 ‘그들의 옳은 말은 들으라’고 하셨던 균형 논리를 가지신 분이셨다는 점을 기억해주기 바란다.
나는 지난 30년간 힘들었다. 안으로도 힘들었고, 밖으로도 힘들었다. 밖으로 <교회와신앙>을 운영하느라 힘들었고, 안으로 교회에 한 번도 경제적 여유가 없었다. 그런 상황에도, 우리 교회 부목사에게 5천만 원씩 두 교회를 도왔고, 개척을 하면서 힘들어 하는 분들에게는 1천만 원씩 여러 교회에 주었고, 외국에 있는 분에게는 자녀 등록금까지 주었다. 나는 콩 한 조각이라도 내가 나누어주어야 할 사람에게 주려고 한다. 내가 도움을 받고 있어도 내가 도와야 할 사람은 도우려고 한다.
김 목사가 도움을 구할 때의 그 분의 자세도 문제였지만, 도울 수 있는 여유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것은 김 목사의 글에서도 알 수 있다. 김 목사는 우리 교회 빚이 150억이고, 교인은 500명으로 줄었다고 거짓 폭로를 하였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교인이 줄어든 것에 대한 부교역자로서, 더욱이 선임으로서의 책임도 있을 터인데, 그렇게 어려워진 교회에 도움까지 구하고 도와주지 않는다고 나를 나쁜 목사 만든 그것이 더 나쁜 일이 아닌가? 만일 교인 500명으로 150억 빚을 가졌다면 남을 돕기는커녕 나도 벌써 부도가 나서 망하고 말았을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인간은 권리를 위하여 자기를 크게 하고, 의무를 위해서는 자기를 작게 하는 위선이 있다. 김 목사는 빚으로 넘어갈 교회 목사를 찾아와 도와 달라고 하고 도와주지 않는다고 코앞에다 개척을 하고, 이제 돕지 않았다고 비난하고 은혜를 원수로 갚는 그것은 거짓이요, 미련이요, 사악함이 아닌지 묻고 싶다.
4. 김정현 목사는 내가 이단 연구를 한다는 것 때문에, 목회도 이단 연구하듯 한다고 비난하였다. 그렇다면 이단 연구하듯 한 목회는 이렇게 계속해서 조금씩이라도 부흥이 되어 안정을 찾았는데, 의롭고 사랑 많은 김정현 목사는 왜 교회 문을 닫게 되었는지 반성하기 바란다.
나는 자타가 인정하는 이단연구가다. 이단 연구의 어려움은 한 두 마디로는 설명할 수 없다. 고소와 소송을 100여 번 당했다. 목사가 서울과 부산 등을 오가며 수도 없이 법정에서 시달려야 했다. 늘 부족한 것이 변호사 비용이다. 거기에다 이단들이 수 십 차례 교회 앞에 몰려와 집단시위를 하였다. 그 사이를 헤집고 예배당에 들어와서 예배하는 교인들을 생각해 보라. 나는 우리 교인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그러면서도 목회에 밀리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 했다.
이를 반대로 말해 보자. 나는 자타가 인정하는 목회자다. 목회의 어려움도 한 두 마디로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면서도 이단 연구까지 했다. 이것이 저것을 방해하고 저것이 이것을 방해하는 부분이 컸다.
그런 나를 이것으로 저것을, 저것으로 이것을 비난할 수 있음을 안다. 그러나 그것은 정통 교회, 정통 교회 교인들이 가질 자세가 아니라, 이단 연구가를 싫어하는 이단들과 이단옹호자들의 자세이다. 바른 사람이라면, 이단 연구까지 하면서 목회까지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울 것인지 생각하여 격려하고 도와주어야 한다. 그런데 이단들은 우리 교회를 무너뜨리려고 온갖 짓을 다 했고 지금도 하고 있다. 그 대열에 앞잡이로 서 있는 자가 상습적 이단옹호자 황규학 씨요, 그리고 김정현 목사도 그 대열에 서 있다는 것을 깊이 기억하기 바란다.
나는 자부한다. 목회자적 심정으로 이단연구도 했다고. 그리고 목회를 통하여 한국교회를 사랑하며 이단 연구도 했다고. 논리적, 윤리적, 신학적, 법률적 실수를 하지 않았다. 모두 하나님의 은혜다. 그래도 우리 교회에 와서 2년씩 봉사하게 된 것에 대하여 나만 김 목사에게 고마워해야 하는가? 김 목사는 나를 위해 수고만 하고 가신 분인가? 아니다. 우리 서로 감사해야 하지만, 오히려 김 목사가 나에게 더 감사해야 할 사람이 아닌가 묻고 싶다.
이런 말이 된다. 김 목사는 이단연구도 하지 않으면서 왜 목회를 하지 못하였는가 하는 점이다. ‘오히려 김 목사가 나처럼 이단 연구를 하고, 이단 연구하듯 목회를 하지 않아서 목회를 못하였나?’ 그런 생각이 든다. 목회는 최소 최대한 어머니의 마음을 가지지 않고는 힘들다. 목회자가 옳든 그르든, 목회자가 성질이 급하든 아니든, 목회자가 단점이 크든 적든 어머니의 마음을 가지지 않고는 목회를 하기 힘들다.
5. 나는 김 목사를 대구 모 교회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한 일이 없다.
김정현 목사가 폭로한 또 다른 한 가지는 내가 방해를 하여 그가 대구의 모 교회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이것도 김 목사 자기 수준의 인격에서 나온 오판이다. 아니면 모함이다. 즉 앞에서 밝힌 교회 부채 액수의 오판, 교인의 숫자에 대한 오판, 별내지구 교회에 대한 거짓 정보 등과 한 치도 틀리지 않는 오판이요, 거짓이다.
나는 김 목사가 가려고 했던 그 교회 이름도 모른다. 단지 기억이 나지 않는 대구의 한 목사님이 나에게 전화를 하여, 김 목사가 모 교회에 이력서를 냈다는 것과 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주었다. 그래서 그가 왔을 때 그것을 말하여 그로 하여 한국교회가 좁으니 막보듯이 하지 말라는 의미로 말한 것으로 기억한다. 그가 3-4년 전 일을 쌍따옴표까지 써서 표현한 내용은 이렇다. “대구 어느 교회에 이력서 냈더만... 그게 될 줄을 알았어. 이곳에서 개척할 모양인 것 같은데 얼마든지 해보라구. 내가 잘 되나 한번 두고 볼 테니까. 당장 나가게...”
위의 말 그대로 내가 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그랬다고 하여도 그 말로 내가 방해를 했다고 단정하는 그 수준이 김정현 목사다. 김 목사의 기억력은 믿을 수 없다. 교인하고 심방 약속을 하고도 잊고, 후에도 그것을 기억해내지 못할 정도로 무책임한 분이기 때문이다.
김 목사의 습관적인 오판을 증명할 사건이 하나 더 있다. 우리 교회에 한 여자 전도사님이 계셨는데, 나에게 전화로 물었다. ‘목사님께서 김정현 목사님으로 노회에 가입하지 못하게 하였나요?’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들어보니 김정현 목사가 전화를 하여 그렇게 말하더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김 목사님이 들어가려고 하는 노회가 무슨 노회입니까? 나는 김 목사가 들어간 노회 이름도 모릅니다. 그런데 어떻게 방해까지 하죠?’라고 했다. 이 사건도 김 목사의 기억력과 해석과 판단의 수준이 무엇인지 알게 하는 또 다른 사건이라고 본다. 지금이라도 내가 김 목사의 노회 가입을 방해한 근거나 증인을 제시하고, 대구 교회 누구에게 어떻게 내가 방해하였는지 밝힌다면 나의 이단연구와 목사직을 다 걸겠다. 그렇게 내가 이단연구를 하지 못하기를 바라는 황규학 씨와 김정현 목사는 이렇게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기 바란다.
나는 과거에 잘 매이지 않는다. 여기에서 이 사람 때문에 십을 잃었으면 ‘저곳에 가서 천이나 만을 벌겠다’고 생각하여 잃은 십에 치심하지 않고, 저곳으로 가서 열심히 살려고 한다. 나는 김정현 목사에 대한 변증을 하면서 느끼는 점 하나가 있다. ‘인간은 참 무서운 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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