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우리/교회에 대하여

오늘의 교회, 무엇이 문제인가?(류 종재목사)

주방보조 2015. 4. 9. 12:42

오늘의 교회, 무엇이 문제인가?

                                                            

성경을 주의깊게 읽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발견하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현존하는 오늘의 교회들과 성경에 나타난 교회들은 너무 많이 다르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서 오늘의 교회는 성경적인 교회와는 거리가 멀다라는 말입니다. 오늘의 교회 무엇이 문제일까요? 그러면 오늘의 교회가 성경의 가르침과 거리가 먼 교회라면 무엇이 오늘의 교회를 그렇게 만들었을까요?

 

첫째로 복음에 대한 오해 때문입니다. 제가 전에 섬겼던 교회에 어떤 박사님은 제게 점잖게 충고해주셨습니다. ‘구원이라든지 천국이라든지 지옥이라는 그런 시시한 얘기는 설교에서 아예 언급하지 마십시오. 여기 다 최고의 지성인들이 모이는 곳인데 그런 시시한 얘기하지 말고 도덕적으로 착하게 살고 선한 일 많이 하고 고상하게 살라고만 설교하면 교회에 나올 사람 많이 있습니다.’ 이 분은 인간이 얼마나 죄인인지에 대해서 깊은 인식이 없는 분이었습니다. 인간의 죄가 얼마나 심각했으면 대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초라한 인간의 몸으로 성육신하셔서 처절하게 십자가에서 죽으셨겠습니까?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셔서 십자가를 지셨다는 것은 장난이 아닙니다. 곰곰이 생각해보십시오. 사람들이 그저 교회라는 조직에 들어와서 적당히 선한 일하면서 살게 하려고 대우주의 하나님이 천한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그처럼 처참하게 고난을 당하셨을까요? 대우주의 하나님이 인간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서 천한 몸으로 오셔서 십자가를 지셨다면 이것은 우리 인생의 모든 것을 걸고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중대한 문제입니다. 복음을 바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교회를 그저 착하고 의롭게 살라는 도덕적인 교훈을 가르치는 곳으로,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그저 위로와 격려와 축복의 말씀을 전해주는 곳으로, 양로원이나 고아원이나 아프리카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봉사하는 자선단체 정도로 착각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오늘의 교회에는 복음의 부재가 심각한 문제입니다. 복음이 없으므로 그리스도의 생명이 없는 죽은 교회가 되고 하나님과 아무 상관이 없는 교회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둘째는 가치관과 세계관이 변화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교회에는 바른 복음이 선포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의 삶이 변하지 않습니다. 교회를 아무리 오래 다녔어도, 목사와 장로와 집사가 되었어도 복음을 바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예수님을 구주와 왕으로 모실 수가 없고 그래서 세상적인 가치관과 세계관이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저 착하게 살라는 사람의 교훈으로 얄팍한 도덕이나 휴머니즘을 가르치니까 가치관이 변하지 않습니다. 성경말씀은 분명히 이 세상과 그 안에 있는 것들을 헛된 것이라고 정의하고 과감히 버리라고 가르치고 있으며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악의 뿌리가 된다고 경고하고 있으며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는 것은 다 이방인[불신자]들이 구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여기서 ‘나라’라는 말은 ‘왕의 통치’를 의미합니다. 즉 성도들은 마땅히 예수님을 왕으로 모신 사람으로서 주님의 통치에 복종하는 삶을 사는 것이 우리 성도들이 구해야 할 최우선의 삶의 과제입니다. 우리의 말과 생각과 행동과 비즈니스와 가정생활 등 우리의 생활 모든 부분에서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그 분의 통치를 따라 살기 위해서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힘쓰고 애써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교회는 성도라고 하면서도 믿지 않는 사람들과 똑같은 가치관과 세계관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즉, 세상에서 어떻게 해서든지 더 많이 가져야 하고, 더 많이 즐겨야 하고, 일류 대학을 가야하고, 더 높이 출세해야 하는 성공주의와 출세주의와 쾌락주의에 빠져 대중문화를 거부감없이 즐기며 살아가는 것이 오늘의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의 삶의 태도입니다.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고급백화점 쇼핑몰에나 몰려다니고, 영화배우 연예인 하면 사족을 못쓰고 좇아다니고, 화려하고 사치스런 삶, 교만하고 거드름 피우는 말투와 행동, 야한 옷차림, 음란하고 퇴폐적인 삶과 더럽고 상스럽고 악한 말들을 서슴지 않고, 이혼과 별거와 혼전동거생활과 포르노 등 믿지 않는 사람들과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성경에서 금하는 낙태와 동성연애도 그대로 받아 들입니다. 성공주의와 기복주의와 쾌락주의가 교회 안에 만연해 있습니다. 오늘의 교회는 옛날에 뒷 뜰에 냉수 떠다놓고 복달라고 빌었던 무속종교에다 예수의 이름으로 상표만 바꾸어 포장한 꼴이 되었습니다. 참으로 오늘의 교회는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와 너무나 다릅니다. 성경에서 보여주는 교회는 성도들이 하나님이 보시는 대로 세상을 보는 세계관을 가지고 살았기에 세상의 번쩍이는 것들을 과감히 버릴 수 있었고, 세상 사람들이 가치있고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을 초개와 같이 버릴 수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도 그의 높은 학식과 산헤드린 공회의 높은 지위와 가문의 모든 자랑을 오물처럼 여기고 과감히 버렸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세째는 방대해진 조직 때문입니다. 교회라는 말의 원어[에클레시아]의 뜻은 ‘밖으로 불러낸 사람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와 왕으로 영접하고 주님의 통치에 따라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바로 교회입니다. 그러니까 교회라는 말은 원래 건물이 아니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아무개 집에 모이는 교회에 편지하노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즉 성도들이 가정집에서 모였습니다. 그러므로 초대교회는 기껏해야 20-30명 정도 모이는 크기였습니다. 가정집에서 수백 수천명이 모일 수가 없습니다. 초대교회는 가정에서 모이는 소수의 무리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가족’이라는 개념을 생활 속에서 실현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숫자가 적었기 때문에 몸된 교회의 지체가 될 수 있었고 한 사람 한 사람이 정말 가족처럼 서로 사랑하고 나누고 희생하고 섬길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교회는 죽은 행정조직으로 백명, 천명, 수만명을 묶어 놓은 모임이기 때문에 생명으로 연결된 가족이라는 개념을 실현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교회에는 진정한 성도의 교제가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그냥 일주일에 한번 교회당이라는 큰 건물에 모여서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하고 준비한 멋진 프로그램과 종교의식을 따라 화려한 오케스트라와 전문 음악인들의 실력을 발휘하는 공연[죄를 용서받은 사람들이 감격해서 드리는 경배가 아닌 공연]을 찬양이랍시고 드리고 설교는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하는 말로 고객을 위한 서비스[하나님을 즐겁게 하기 위한 예배가 아니고 고객을 즐겁게하는 백화점 서비스]로 전락하였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교회에 가야 한 주간 동안 세상에서 지친 심신을 위로받기 때문에 그런 프로그램을 시행하는 교회로 몰려듭니다. 그것도 불신자를 전도해서 모인 것도 아니고 이웃의 작은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더 큰 교회의 더 화려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서비스를 받기 위해서 모인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이웃교회의 사람들을 많이 끌어 모으면 그것을 부흥이라고 떠들어대는 것이 오늘의 교회현실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와 너무나 다릅니다. 오늘의 교회는 그리스도인이 아닌 종교인들로 전락한 것입니다. 서로를 가족처럼 여기고 서로 사랑하고 나누고 섬기고 희생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얼굴조차도 이름조차도 기억하기 힘든 상황입니다. 이런 교회에서는 아무리 소그룹으로 모여봐도 그리스도의 생명을 나눈 하나님의 가족이 아니기 때문에 가족처럼 깊은 것을 나눌 수도 없고 희생하고 섬길 수도 없는 것입니다. 죽은 행정조직으로 묶어진 사람들이기에 영원히 남남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교회들이 추구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구조나 제도를 뜯어 고치는 개혁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오직 성경으로 돌아가는 본질회복이어야 합니다. 성경에 나타난 초대교회의 모습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같은 평신도들이 자기 집을 개방하여 가정교회로 모여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초대교회는 이렇게 적은 숫자의 사람들이 가정에서 모인 교회였습니다. 사도들은 이런 가정교회를 인도할 수 있는 지도자들을 계속 양육하여 많은 가정교회들을 세우면서 도시 구석 구석으로 파고 들어갔습니다. 초대교회에서는 바른 복음이 분명하게 전파되었기에 주님을 구주와 왕으로 영접할 수 있었고 가정에서 몇 가정이 모여 드리는 공적인 예배가 끝나면 일상 생활의 삶으로 하나님을 예배하였습니다. 예배와 삶이 구별되지 않았습니다. 예배가 삶이고 삶이 예배였습니다. 그들의 가치관과 세계관이 바뀌지 않았으면 삶과 예배가 일치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세상풍조와 타락한 대중문화를 거부하였고 경건한 삶을 고수하였습니다. 성경에서 볼 수 있는 초대교회는 죽은 행정조직으로 많은 사람들을 한 목회자 밑에 묶어놓은 대형교회가 아니고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연결된 작은 가족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거기에는 조건없는 진정한 사랑과 희생과 섬김과 봉사가 실현가능했습니다. 성경으로 돌아가는 교회가 되려면 이런 초대교회를 현대교회의 모델로 삼아야 합니다. 초대교회처럼 성경에서 말씀하는 구원의 복음을 원형 그대로 순수하게 전해야 합니다. 그 어느 시대보다 죄악이 관영한 이 시대에 각교회의 설교자는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죄와 회개에 대하여 강하게 말씀을 전해야합니다. 사람들이 받아들이든 거부하든 상관없이 세상적인 가치관과 세계관을 버리고 성경적인 가치관과 세계관을 가지라고 가르쳐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매일의 삶 자체가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경건한 예배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버리지 못하고 세상에서 출세하고 세상쾌락을 즐기고 성공하기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교회에서 견디지 못하고 탈락할 것입니다. 또한 죽은 조직으로 사람들을 묶는 대형교회가 되는 것을 거부하고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연결된 하나님의 가족을 이루는 작은 가정공동체인 초대교회의 모델을 추구해야 합니다. 가족처럼 나누고 진심으로 사랑하고 희생하고 섬길 각오가 없으면 교회에서 견디지 못하고 떠나게 될 것입니다. 가정교회에 모이는 사람의 숫자가 열두명이 넘으면 둘로 나누어 분가함으로써 불신자 전도에 최선을 다하게 해야 합니다. 교회는 마땅히 불신자 전도를 최우선으로 해야 합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성경적인 교회가 되려면 하나의 큰 지역교회가 되는 것을 포기하고 가정교회 사역을 통하여 도시의 구석 구석에 수많은 작은 가정교회들을 세워나가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각 교회가 스스로 물어야 할 심각한 질문은 우리 교회가 현재 얼마나 많은 성도를 지니고 있느냐?가 아니고 우리 교회가 지금 얼마나 많은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구원받게 하고 있느냐? 입니다.

 

갈릴리 장로교회는 매주일 오후 1시 30분에 아래 기록된 장소에서 주일 예배로 모입니다. 가정교회훈련에 관심있으신 분은 연락을 주십시오. 이 타락한 현대사회에서 인생의 삶의 문제로 번민하면서 진리를 찾고 계시는 분들이나 이 종교 저 종교, 이 교회, 저 교회를 다녀 보아도 아직 진리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계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언제든지 전화로 연락주시면 달려가서 돕겠습니다. 혹은 타지역에서 오신 분들 중에서 성경으로 돌아가는 가정교회가 참으로 성경적인 교회이며 이 시대에 유일한 대안이라고 믿고 가정교회 사역에 동역하실 분들은 언제든지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갈릴리 장로교회    류 종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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