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이 성서의 무오류의 근거라고 주장하시는 그 구절들을
굳건히 믿는 이유가 무엇이지요?
만약 그 구절들이 의심의 여지없이 증명된 명제라고 할지라도
그 구절들에서 말하는 성서는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성서의 아주 일부분이며
많은 부분이 서로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은 왜 일부러 외면하십니까?
더군다나 그 구절들에서 말하는 성서는
기독교인들이 흔히들 진리가 아니라고 말하는
외경이나 위경역시 지칭할 수 있습니다.
(그럴 가능성이 엄청나게 크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정경과 외경, 위경을 구분한 것이 그 구절이 씌여진다음이니까요)
정경과 외경, 위경에 대한 구분역시 전혀 오류가 없었다고요?
그런 믿음에 대한 근거는 무엇이지요?
불행하게도 그 믿음에 대한 근거는 성서에 없군요. -.-
학문적인 논쟁의 대상이 되는 서술과
겉으로 분명히 드러나는 오류는 다릅니다.
'은 삼십'이 예레미아에 기술되어 있다고 착각한 마태복음의 경우도
님이 도그마의 짙은 색안경을 벗고 본다면
의심할 바 없는 오류입니다.
이것에 대해서 오류냐 아니냐를 따진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이죠.
이를테면, 또다른 성서인 '원필서신'이라는게 있다고 가정하고
그 본문에서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짐승의 수를 인용하며 그 수는 153이라고
했다고 칩시다.
만약 기독교가 '원필서신'을 이미 오래전부터 정경으로 인정하였다면
온갖 헤괴한 이론을 동원해 가면서
그 인용에는 오류가 없다, 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비밀에 의해
쓰여졌다라고 변호하기에 급급할 겁니다.
만약 기독교가 '원필서신'을 외경이나 위경의 범주에 집어 넣었다면
그들은 '봐라, 이런 모순때문에 원필서신은 정경이 될수 없다'고
주장할 것입니다.
분명히 드러나는 오류를 무오류로 만들려다보면
억지 신학과 억지 믿음만을 양산해낼 뿐입니다.
그러한 억지 믿음의 대표적인 예가
'창조과학'과 '성서 무오류설'이 되겠지요.
다시한번 원필님께 질문합니다.
성서를 무오류라고 보시는 이유가 무엇인지요?
성서의 구절이 그 근거라고 하신다면
그 구절이 무오류인 근거는 무엇이지요?
물론, 님은 '영적인 눈' 이런 말씀을 하실게 뻔합니다만
그러려면 님의 영적인 눈만이 정확하다는 증명역시 하셔야 하겠지요.
성서 무오류를 그토록 고집하는 근본원인은
'영적인 눈'이런 것과는 상관없는
오랜 기독교의 전통에 대한 맹목적 고수와
남들도 진리로 믿으므로 따라 믿는 군중심리와
진리로 믿지 않으면 받을 수도 있는 지옥형벌에 대한 두려움...
뭐, 이런 것들이 분명하다고 저는 확신합니다만.
전자인간 신동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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