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일체(처음보는 내용일겁니다) [1]
- 무딘스키
삼위일체는 3신도 아니고 1인3역도 아닙니다.
머리1개에 몸뚱아리 3도 아니고, 머리3에 몸뚱아리 하나도 아닙니다.
세쌍둥이나 일위 삼체를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삼위일체는 동방쪽과 서방쪽에서 강조점의 차이가 있습니다.
3위일체의 개념은 동방에서 먼저 중요시 다루어졌고, 니케아 에큐메니칼 시노드 역시 거의 동방 사람들입니다.
삼위일체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부정의 신학(아포훼틱)을 알아야 합니다.
부정의 신학은 하느님은 우리처럼 악하지 않다. 우리처럼 유한하지 않다. 하느님은 시작이 없다. 하느님은 측량할 수 없다. 하느님은 개체가 아니다. 하느님의 본질을 알 수 없다. 하느님에게는 이름을 붙일 수 없다.
이러한 사고 방식입니다.
그 알 수 없는 하느님 의 품안에 세상이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시작이 없는 하느님의 본질을 시작이 있는 존재가 알지 못하지만 하느님이 자신을 계시한 부분만 안다고 생각합니다.
그 계시를 무대에 배우가 나타난 것으로 묘사를 합니다.
그 배우는 가면(프로소폰)을 쓰고 나타납니다. 왜 가면(프로소폰)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느냐면 그분의 나타난 것은 알되 그 분의 본질에 대해서는 모른다는 뜻입니다.
이 중에서 첫번째 우리가 본 것은 예수입니다. 그는 인류를 대표하는 왕으로서, 자신의 몸을 제물로 드리는 멜기세댁의 반차를 잇는 대제사장으로서, 하느님을 전달하는 선지자로서 성별된 자(흐리스토스)입니다.
그는 창세전에 자신을 보낸 하느님과 함께 있다가 시간과 공간속의 세상에 파송된 분으로서 시작이 없는 분입니다.
그는 시작이 없는 하느님이자 하느님으로부터 파송을 받은 하느님의 아들입니다. 동시에 그는 하느님이자 동시에 여자의 후손으로서 사람인 성별된 바로 그'사람의 아들'입니다.그는 자기를 보낸 하느님을 전달하는 로고스입니다.
이 아들의 위는 방편이 아니고 존재양식이며 영원합니다. 이 그 아들의 하느님이심과 사람이심은 변하지 않고 없어지지 않습니다. 이 가면(가면)을 제2위격이라고 합니다. 즉 하느님이 세상에 나타난 것입니다.
요기까지하면 유대교와 이슬람교는 돌아버립니다.
이 예수를 창조하지 않고 낳으시고 세상에 보낸 하느님은 모든 인류에게 자연을 통하여 자신을 알게하시고, 유대민족 이전에 제사장들을 통하여 유대민족 이후에는 선지자들을 통하여 자신을 계시하며, 유대인에게 계명을 주셨고, 유대인에게 제사제도와 성막을 주었으며, 선지자를 통하여 자신을 드러내며 제2위인 에수의 구원을 준비, 실현하였고, 인류를 신화에 이르게하며, 세상을 회복합니다.
이 아버지인 하느님의 가면(프로소폰)을 제1위격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아버지하느님으로부터 창조되지 않고 발출되어 예수를 통하여 세상에 보내진 하기아스 프뉴마(거룩한 바람, 성령)라는 가면(프로소폰)을 세상은 경험하였습니다. 성령은 창조되지않고 성부하느님으로부터 발출되어 성부하느님과 함께 계셨으며 예수그리스도에 의해서 세상에 파송되어 예수그리스도의 대속을 실현시키고 그것들을 사람들에게 적용하며 성령의 나타남을 주시고 인류의 신화와 세상의 회복을 이루십니다.
이 세 가면(프로소포나)를 라틴어로 롬길 떼 페르소나라고 번역을 하였습니다.
이 프로소폰,페르소나를 위격이라고 하는 데 이 세 위격은 섞이거나 혼동되거나 나뉘어지지 않습니다.
이 세 위격은 한 하느님이라는 뜻이 3위 1체라는 말입니다.
경교에서는 삼일묘신 또는 삼위일신이라고 하죠.
현대 기독교에서는 성부, 성자, 성령이라고 하지만 경교에서는 원존,세존,정풍이라고 합니다.
이 삼위는 모두가 하느님이며, 개체가 아니며, 시작이 없고, 창조주이시며, 하나이십니다.
이게 삼위일체의 대략입니다. 부정의 신학이란 것을 모르면 삼위일체가 왜곡 전달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래서 교부들은 십자가 성호 긋는 것을 가르쳤는데 이는 말로 변질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습니다.
엄지,검지 가운데 손가락을 합하여 삼위일체를 표시하고, 네번째손가락과 세끼손까락을 하나로 모아 손바닥에 붙임으로서 예수가 완전한 하느님이자 완전한 인간으로 이세상에 오셨음을 나타내며,
이마 에다 세손가락의 가운데를 접하도록 점을 찍고 수직으로 아래로 선을 그어 배위에 점을 찍음으로서 하느님과 나 사이에 평화가 이루어졌음을, 오른쪽 어깨에 점을 찍고 수평으로 선을 그으면서 왼쪽 어깨에 점을 찍음으로써 나와 이웃사이에 평화가 이루어 졌음을 표시하였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서유럽 로마에서 성령이 성부와 성자에게서 발출된다는 주장을 하였고 지금도 그렇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그 유명한 필리오케 논쟁입니다.
그 필리오케는 필리오스(아들)로부터라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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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가 하느님이라는 기록들]
"나는 사람에게서 찬양을 받으려 하지 않은다.
너희에게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지만 너희는 나를 받아 들이지 않는다.
그러나 아마 딴 사람이 자기 이름르 내세우고 온다면 너희는 그를 맞아들일 것이다.
요한복음 1장 18절
일찌기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다. 그러나 아버지의 품안에 게신 외아들로서 하느님과 똑같으신 그분이 하느님을 알려주셨다.
요한복음 20장 28절
나의 주시며 나의 하느님이시나이다.
디도서 2장 13절
우리의 위대하신 하느님 구세주 에수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하셨으니"
히브리서 1장8절
그러나 아들에 관해서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당신은 하느님이십니다.
당신의 왕권은 무궁하시며
당신이 잡으신 지팡이는 정의의 지팡이입니다.
당신은 정의를 사랑하시고
불의를 미워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 곧 당신의 하느님께서는 당신에게 즐거움의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으시고 ~
베드로후서 1장1절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나 시몬 베드로는 우리의 하느님이시며 구세주이신 에수그리스도의 정의를 힘입어 귀중한 믿음을 우리와 함께 간직하게 된 여러분에게 이 편지를 씁니다.
요한일서 5장 20절
그러나 하느님의 아들이 오셔서 참하느님을 알 수 있는 힘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참되신 분 곧 그분의 아들 에수그리스도안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분이야말로 참하느님이시며 영원한 생명이십니다.
디모데전서 3장16절
그분은 사람으로 이 세상에 오셨고 성령이 그 분의 본성을 입증하셨으며(즉 육신으로 나타나신 하느님)
골로사이서 1장 15절
그리스도께서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형상이시며 만물에 앞서 태어나신 분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7절, 16장 13절
성령에 대하여 남성명사인 ekeinos로 지칭되고 있음.
성령의 인격성은 너무 많아서 나열할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