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우리/강병송님의 글 모음

나의 과거...

주방보조 2008. 7. 10. 16:06
  • 번호 112539 | 2007.10.10 IP 221.158.***.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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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생은 모태신앙이 아닙니다.

부모님이 너무 힘들게 사셨기 때문에 산다는 것 자체에 미련도 없고,
젊은 날 부터 한계를 간파하고 세상사는 것에 대하여 대충 꿈을 접었었습니다.

고등학교가 미션스쿨이라 거기에서 기독교를 처음 접하게 되었고,
이동원 목사님의 설교에 녹아버렸습니다.

그렇지만 종교에 대한 관심을 가질뿐 더 이상의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모든 종교가 동일하다는 통일교회가 옆에 있어서 고등학교때
통일교에 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통일교의 원리강론을 7차례 읽으면서 성경을 대조해보았습니다.
가장 극명하게 차이가 나는 것을 저는 뚜렷이 보았습니다.

통일교에서는 가장 수치스러운 것이 실패의 표상인 십자가라고 이야기하는데,
사도 바울은 우리의 자랑 십자가를 이야기하였고, 그것은 하느님의 승리라고 이야기하였습니다.

저는 대학교에 들어가면서 장로교를 찾아가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주일날은 빠지지 않고 교회에 다녔습니다.

그러나 관념이냐 실재냐의 문제를 고민하던중,
장로교단내의 신오순절 운동 영향을 받아 방언과 방언통역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이론구성을 위해 노력을 했었는데...

저와 주변의 지식이 미잔하여 신학대학원을 입학하였습니다.
공부를 하겠다고...

그런데 저는 신학대학원을 중단하였습니다.
내용이 대부분 1517년 이후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서유럽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을 인식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는 일반대학원을 진학한 후 정교회에서부터 순복음까지
가장 오래된 것에서부터 가장 최근의 것까지 닥치는대로 검토해 나갔습니다.
발품도 팔고, 사람도 만나고, 서적도 구입해서 읽고...

그러는 과정에서 10여년의 세월이 지났습니다.
어느정도 틀이 잡히더군요.

1. 1517년 이전의 교회와 연결되지 않으면 그것은 교회의 단절을 조장하는 것이다.


2. 1517년 이전은 로마가톨릭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현재에 까지도 내려오는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가 많다.(고린도교회 데살로니까 교회 등은 아직도 존재한다)


3. 초대교회의 예배는 단순하고 거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형화되어 있었고(야고보의 예배서, 사도도마의 예배서, 마가복음의 마가 예배서), 로마가톨릭이 주장하는 것 처럼 '대리권'의 개념에 근거한 것이 아니었다.


4. 예배의 핵심은 유카리스트였으며, 유카리스트와 '말씀'이라는 것이 대립적인 관계가 아니었다.


5. 성직은 벼슬이 아니었으며, 감독,사제,봉사자라는 삼중직이 교회 구성의 기본이었다.


6. 예배의 형태는 성삼위 하느님이 일방적으로 이루어 주신 예수님의 대속사역을 재현하는 형태였고, 시간개념을 초월한 영원한 현재인 오늘이라는 개념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7. 교회가 전하는 것은 성삼위 하느님께서 일방적으로 이루어 주신 죄로부터의 해방이라는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이고, 그 기쁜 소식을 누리라고 교회가 세상을 향하여 초대하며, 그 초대에 참여한 자들이 그 기쁜 소식을 영원한 현재라는 관점에서 오늘 누리는 것이 핵심이었다. 새로운 재판 규범을 전하는 것이 아니었다.


8. 세상을 향하여 가난한 자에게는 성삼위 하느님의 보호를, 가진 자에게는 절제와 겸손을 전하였으며, 결코 이 둘을 바꾸어서 전달하지 아니하였다.


9. 당시 유일의 거대 제국인 로마제국을 굴복 시킬 수 있을 만큼 세상 지식에서나 성경상의 지식 그리고 인적 네트워크가 탄탄했다. 물론 이 네트워크가 가능했던 것은 순교자, 고백자, 은수자(후에 수도원체제로 전환됨, 서유럽의 수도원과는 다름)등이 잇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10. 사람들에게 실재와 그 실재의 체험을 중심으로 신앙생활이 이루어지도록 하였지 그 실재에 대한 관념과 지식을 쌓는데 치중하지 아니하였다. (특히 개신교가 오해하는 부분임)

이것이 교회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서유럽에서 비틀어지기 시작한 것이고 서유럽에서 비틀어진 것을 바로잡는다는 명분하에 종교개혁이란 것 이 터졌는데 거시적으로 보면 이 종교개혁도 서유럽의 한계를 넘지 못한다는 것이 저의 소견입니다. 즉 종교개혁은 자본주의, 개인주의, 관념주의의 수준을 넘지 못한다는 것이 지금까지 지켜봐온 결과입니다.

그리고 저는 임대아파트 분양소장 업무를 하면서 수천명의 사람들을 직접 만나고 그들의 삶을 함께 할 기회가 많았습니다. 우리의 자랑 십자가가 일반 서민들의 삶속에 얼마나 희망을 주고 삶을 일으켜 세우느냐를 집중하여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본 관점으로는 비관적이었습니다.
불교 처럼 내세지향적 보험들기식 신앙생활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현재는 원래 그런 것...
현재는 포기하고 내세나 기대하라...

결국 이것은 가족이 짐과 부담으로 느끼는 방향으로 진행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분명 우리사회의 위기이며, 교회가 이러한 사람들에게 우리의 자랑 십자가를 제대로 심어주지 못함을 생생히 느끼고 있었습니다.

교회들은 모두 개교회주의이다보니 금전적인 압박에 시달리고,
구교는 교회의 본 모습에서 너무 잡다한 것들이 많이 붙어 있고....
실질적으로 삶속에서 에수님과 함께하는 삶을 찾아 보기가 힘든 것이 현실이었습니다.

우리의 자랑 십자가는 어디가고...
대안제시도 없이 1517년 이후 종교개혁시대의 한게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않습니까?
이렇게 간다면 다음세대에 대한 선교가 제대로 이루어질까?

저는 하느님을 위해 큰 일을 하기 보다는 사소한 일에 충실하고자 성공회에서 열심히 신앙생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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