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우리/강병송님의 글 모음

오순절운동과 관상기도...

주방보조 2008. 7. 10. 15:04
  • 번호 108241 | 2007.10.05 IP 210.9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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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순절운동이 일어난 이후 우리나라에서는 선교초기부터 오순절 내지는 신오순절 운동이 강하게 일어났다. 미국 아주사거리에서 시작한 오순절운동은 전개신교뿐만 아니라 로마가톨릭에까지 전파되면서 교파를 떠난 제3의 부류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오순절운동에 대하여 에큐메니칼에 반대하는 정교회의 관점은 무엇일까? 오순절운동에 대하여 에큐메니칼을 반대하는 정교회측에서는 에큐메니칼의 한 갈래일 뿐이라고 혹평을 한다. 그리고 그들이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이 헤지키즘이다.

그런데 한 번 번 돌이켜서 생각을 해보면 오순절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모임과 헤지키즘을 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동시에 한자리에 모아 놓았을 경우 이 두 모임이 동일한 예수님을 믿는 모임인가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접근방법이나 나타나는 행동양태가 너무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정교회의 리뚜르기아와 순복음교회의 열광적인 예배가 다르듯이 기도의 형태도 헤지키즘과 오순절 계열의 기도는 판이하게 다른 모슴을 보여준다.

기독교의 부흥이후 우리나라에서 주된 논의의 주제중의 하나가 은사운동에 관한 찬반의 주장들이었다고 본다면 이제부터는 관상기도에 대한 찬반의 논쟁이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논쟁의 과정에서 또 '이단'이라는 단어가 난무하고, 그 과정에서도 이단 사이비들이 얼마든지 침투할 가능성이 있다.

오순절운동에서 은사 특히 방언,방언통역,예언의 은사의 경우 진위의 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되었던 경험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 '마귀방언'이라는 단어가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성령에 의한 예언인지 아니면 악령에 의한 예언인지 등 진위에 대한 논의가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헤지키즘의 경우 마음속 깊이 미세한 하느님의 음성을 듣고 그 체험에 근거하여 성삼위하느님께 동화되어 가는 것을 기본으로 삼는다. 그런데 과연 무엇이 하느님의 음성인가라는 부분에 대하여는 체험한 자 밖에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정교회지역에서는 하느님을 닮은 신화(Theosis)의 표지로서 부패되지 않는 육체로서 향기가 나는등 여러가지 현상등을 간직한 사람들에 대하여 수세기 후에 교회에서 성인임이었음을 인정하는 전통이 있다. 물론 이러한 취지는 오순절 성령의 역사가 중단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진행된다는 것과 교회는 성인을 임명하는 것이 아니라 성인의 표지를 확인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로마가톨릭과는 다른 주장을 하지만 '무엇이 하느님의 음성인가', '어디까지가 하느님의 음성인가'라는 문제는 상당히 중요한 이슈로 부각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문제는, 오순절운동이 되었건, 관상기도류의 기도가 되었간에, 진실로 성령을 체험하였는가 하는 것이다. 물론 예수를 구주로 믿는 모든 사람은 성령을 체험한 것이지만 기도에 관한 부분에서 이야기하는 내용은 그 성령과 탄탄하고 깊숙한 친교관계에 있느냐 하는 것이다.

어린 아이가 코끼리라는 실체를 보았을 경우 그 어린아이는 성장해가면서 그 코끼리를 어린이 언어수준의 발달에 비례하여 자유자재로 묘사해낼 수 있다. 그러나 어른이 코끼리의 실체를 보지 못하고 코끼리를 묘사한 글을 읽고 외워댔을 경우 코끼리를 다른 각도에서 설명하면 이해를 하지 못하기 쉽상이다. 물론 정작 코끼리가 나타났을 때에 코끼리를 부정하는 사건도 발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서유럽이 신앙적인 측면에서 암흑기에 접어들었을 시기에 정교회와 동방교회 진영에서 찬란한 빛을 발하던 분이 계셨는데 그 분은 신신학자(New theologian) 시메온이다. 그 분은 '에수의 기도'에 대한 강조도 하지 않았고, 방언을 강요한 분도 아니었다. 그러나 성삼위 하느님과의 직접적인 교제와 수많은 체험을 간직한 분이었다. 그 분이 강조한 것은 하느님과 사람과의 관계가 '사실'이냐 아니면'관념'이냐 하는 것을 분명히 하라는 것이었다.

최근 관상기도 운동을 보면서 부정의 신학에 바탕을 둔 새로운 분야를 체험하는 것은 좋으나 정작 우리가 가진 기도에 대한 순수한 경험은 도외시한 채 또 다른 이단 논쟁을 양산해 내지 않을 까 하는 우려가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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