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의 단군신화 읽어봤나요?ㅋㅋㅋ [7] - 무딘스키
고기(古記)
에 이렇게 전한다.
옛날에 환인(桓因) -제석(祭席)을 이름-의 서자(庶子) 환웅이 항상 천하에 뜻을 두고 인간 세상을 몹시 바랐다.
=>환인의 적자를 주장하는 민족이 나오면 우리 민족은 깨갱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뜻을 알고 삼위태백(三危太伯
)을 내려다보니 인간 세계를 널리 이롭게 할 만했다.
=> 널리 인간을 위롭게 할만한 것이 삼위태백? 삼위태백이 우리민족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는 증거는?
이에 천부인(天符印)
세개를 주어, 내려가서 세상을 다스리게 했다.
=> 제위를 뜻하는 도장이 필요했을까? 천자의 도장이란 개념은 천자라는 개념이 완성된 이후의 것인데... 이는 적어도 고대국가 체제를 갖춘이후이다. 단군이 고대국기체제 성립 이후의 작품인가?
한웅은 그 무리 3천 명을 거느리고 태백산(太伯山) 꼭대기-곧 태백산은 지금의 묘향산-의 신단수
아래에 내려와서 이 곳을 신시(神市)
라 불렀다. 이 분을 환웅천왕(桓雄天王)이라 한다.
=> 애시당초 환웅의 도읍지가 묘향산부근이라고? 단군의 만주지배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 아닌가?
그는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
를 거느리고 곡식, 수명, 질병, 형벌, 선악 등을 주관하고, 인간의 삼백예순여 가지 일을 주관하여 인간 세계를 다스려 교화(敎化)시켰다.
=> 사냥, 가축,어로 등에 관한 내용이 없고, 교화라는 말을 쓰는데 문자가 없이는 교화를 할 수 없을 터...환웅 시대에 사용된 문자는 무엇인가?
가림토 어쩌고 하지만 고조선이 B.C. 108년에 망하고 부여가 B.C 50년 전후, 고구려도 B.C.이전에 존재하였다면 시기적으로 매우 가깝다. 이 두나라에서 가람토라는 글자를 사용했다는 기록디 없다.
부여와 고구려와 백제가 조선과는 관계가 없다는 결과를 만들어 내려는가?
이 때, 곰 한 마리와 범 한 마리가 같은 굴에서 살았는데, 늘 신웅(神雄, 桓雄)에게 사람되기를 빌었다. 이 때 신(神이, 桓雄) 신령한 쑥 한 심지와 마늘 스무 개를 주면서 말했다.
" 너희들이 이것을 먹고 백일(百日) 동안 햇빛을 보지 않는다면 곧 사람이 될 것이다."
곰과 범은 이것을 받아서 먹었다. 기(忌)한 지 21일 만에 곰은 여자의 몸이 되었으나, 범은 능히 기하지 못했으므로 사람이 되지 못했다. 웅녀(熊女)는 그와 혼인할 상대가 없었으므로 항상 단수 아래에서 아이 배기를 축원했다. 환웅은 이에 임시로 변하여 그와 결혼해 주었더니, 그는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다. 이름을 단군왕검(檀君王儉)이라 하였다.
단군은 요 임금이 왕위에 오른 지 50년인 경인년-요 임금의 즉위 원년은 무진이니 50년은 정사이지 경인은 아니다. 확실한 여부가 의심스럽다.-에 평양성(平壤城)-지금의 서경-에 도읍을 정하고 비로소 조선(朝鮮)이라 불렀다. 또 도읍을 백악산(白岳山) 아사달(阿斯達)로 옮기니, 그곳을 궁(弓)-혹은 방(方)이라고도 한다.- 홀산 또는 금미달이라 한다. 그는 1천 5백년 동안 여기에서 나라를 다스렸다.
=> 한웅은 묘향산에서 단군은 평양에서 라면 만주북쪽의 부여와 압록강 과 두만강 이북의 부여 숙신 읍루,흑수말갈 등과는 혈통적으로 동일하지 아니하다는 결론이 된다.
주나라 호왕이 왕위에 오른 기묘년 기자(箕子)
를 조선에 봉하여, 단군은 장당경(藏唐京)
으로 옮기었다가 후에 아사달에 돌아와 숨어 산신(山神)이 되었는데, 그 때 나이가 1천 9백 8세였다.
=> 산신이라고? 환웅의 아들이 산신이 되었다고? 산신이란 단어에 뭐 느끼는게 없는가?
천손의 개념과는 다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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