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우리/강병송님의 글 모음

선악과 토론...

주방보조 2008. 7. 10. 01:55
  • 번호 105454 | 2007.10.02 IP 61.33.***.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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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님의 글]
저는 여기서 두가지로 봅니다. 여자는 이미 사탄의 유혹에 넘어갔습니다. 이를 인하여 하나님과 문제가 발생하는데,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혹은 하나님의 계명을 거부한 것의 범죄가 있고, 더 중요한 것은 선악지식의 나무를 '사람안에 받아들인 것'입니다.

[무단스키의 질문]
선악지식나무를 사람안에 받아들였다는 말이 무슨 뜻이죠?

[000님의 글 ]

우리가 잘 아는대로 한 예를 들면 한 아버지가 아이에게 독약을 든 병을 선반위에놓고 절대로 먹지말라고 했는데, 그는 아버지의 명을 어기고 그것을 먹었습니다. 첫째는 아버지와의 약속을 어긴 것이 죄(아버지와의 문제가 발생됨)이지만 중요한 둘째 이유는 그 안에 독이 주입된 것입니다.

[무딘스키의 질문]
아버지가 자식에게 독약을 손에 닿을 곳에 두어요?
그리고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가 독약이라구요?
독약을 동산 중앙에 놓습니까?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가 테스트도구입니까?
독입니까?
하느님이 독도 줘요?

[000님의 글]

동산 중앙에 있는 생명나무는 생명이신 하나님을 예표하는 것이며, 두번째 나무인 선악과는 사망의 근원을 나타내는 사탄을 예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아담을 만들어 생명나무 앞에 두어 생명을 받아들이기를 원했으나, 그는 선악지식의 나무를 먹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안에 하나님이 들어오기 전에 '사탄이 먼저 들어온 것'이지요.

[무딘스키의 질문]
사람이 하느님과 사탄을 선택하는 위치에 있었다고요?
도데체 하느님과 사람과의 관계는 어떤 관계입니까?
부자관계 맞아요?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가 어떻게 사탄이 됩니까?
하느님이 사탄을 동산중앙에 데려돠 놔요?

[000님의 글]

사탄은 아담의 몸(지체 롬7:23)속에 들어왔으며, 이를 인하여 사람은 선하게 창조되었으나 사탄에 의해 사람의 몸은 육(肉)이 되었으며, 부패된 몸, '죄의몸''사망의 몸'이 되었습니다. 죄가 몸 안에 있기 때문이지요. 결국 죄를 지어 죄인이 아니라, 죄인이므로 죄를 짓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무딘스키의 질문]
사탄이 사람의 몸을 이러구저러구하였기 때문에 사람이 범죄할 수 밖에 엇었다구요?
그러면 사람은 범죄자가 아니라 사탄의 범죄로 인한 피해자이고
그러한 상황은 사전관리를 못한 하느님께 책임이 있다는 뜻이되며
결국 하느님은 병주고 약주는 분 내지는 사후 약방문하는 분이란 말입니까?

[000님의 글]
하나님이 사람의 육신을 입으셨을 때 그가 입은 사람은 사탄에 의해 타락된 사람의 모양을 입으셨지요. '죄의 육신의 모양'(롬8:3)으로 죄는 없으나 그러한 뱀의 모양으로 오신 것입니다. (더 전진은 구속으로 넘어갈 때 계속하지요.)

[무딘스키의 질문]
드디어 문제가 터지기 시작합니다.
하느님이 변질되었다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하는군요.
성모마리아의 태에 예수님이 잉태되었을 때에 신성이 있엇는가?
그 신성과 인성은 도킹되어 있는 상태인가? 아니면 하느님께서 육신을 취하신것인가? 라는 질문을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000님은 시방 예수님의 인성을 걸고 넘어지려 하는 것 아닙니까?
"사륵스"라는 그리이스어를 이용해서 에수님의 인성에 죄가 있다라는 주장을 하려는것 아닙니까?


[000님의 글]
(이사야 53장에기록된 '죄'가) 반역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고, 허물 또는 범죄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생명안에서 하나님처럼 되는 것을 원하십니다.
그러나 선악을 아는데 있어서 하나님처럼 되는 것을 원치 않으셨지요.
선악은 다만 옳고 그름이든, 선하고 악함이나, 모두 다 사탄의 범주임을 보는것은 큰 은혜입니다. 우주가운데는 두 나무, 곧 두 노선만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께 속한 '생명의 영역'이며, 또 하나는 사탄에게 속한 '선악지식의영역'입니다. 사람이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는 자유의지이지요..

[무딘스키의 질문]
큰 일날 소리를 하십니다. 어떻게 사람이 사탄이냐 하느님이냐를 선택할 위치에 있단말입니까? 무흠상태에서 자식이 부모를 닮아가듯이 하느님을 닮아가느냐 아니냐의 문제 이지 어떻게 사탄이냐 하느님이냐를 선택할 위치에 있단 말입니까?

당연히 무흠상태에서 하느님을 닮고 하느님께서 주신 것들을 누려야함에도 그것을 거부하고 하느님앞에 대립되는 독립자로 자처하는 것이 죄요 그 죄가 반역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000님의 글]
어쨌든 님이 하고 싶은 말을 계속 하시기 바랍니다.

[무딘스키의 답변]
하느님이 누구이고 사람이 누구이며 둘사이의 관계가 무엇인지부터 검토해야겠네요.

[000님의 글]
덧붙이는 말은, 사람의 타락은 4차례(4중타락) 있습니다.(창3장,4장,6장,11장)지금은 그중 첫번째 타락만을 말하고 있습니다. 죄의 개념을 찾기 위해서이지요. 그러므로 죄의결과에 있어서 아주 부분적입니다. 혹시나하여 조금 광의의 개념을쓰면 아래와 같습니다.


[무딘스키의 답변]
한 번 말씀을 들어보기로 하죠.
저의 염려가 사실로 나타나는지 아닌지를.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대속을 피해가는 것이라면 문제가 큽니다.

이단들의 대부분은 대속을 피해가기 위해서는 예수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중 하나를 꼭 걸고 넘어집니다.

그리고 죄는 인간 짐짓 스스로 하느님이 되는 것이라는 말이 제 개인의 글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아래의 책에 있는 글을 올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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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그리스 고린도에서 출생하여 아테네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시고 아비도스교구에서 정교회 주교로 활동하였던 에라시모스 주교의 글을 올려드리겠습니다.
다음은 그 분의 책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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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교회의 기본 가르침은 죄의 실존이고, 십자가상의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한죄의 용서이다.

죄는 하느님과 하느님의 뜻에 대한 불복종이다. 삶의 모든 것은 하느님의 뜻에 따라 섭리된다. 모든 죄는 하느님의 뜻에 거슬려서 하는 행위이다. 인류가 처음으로 죄를 지은 것은 뱀의 선동을 받은 낙원에서 였다. 아담과 하와는 하느님의 뜻을 따르지 않았다. 인간은 하느님에게서 독립하고 싶었다. 자기 스스로가 하느님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죄는 인간을 죽음의 노예로 만든다. 죽음에서 자유로와지기 위해서는 죄가 지워지고 용서 받아야 하는데 이는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다. 우리는 하느님에게 죄를 지었기 때문이다.그러므로 때가 되었을 때 하느님은 인간을 죄와 죽음의 노예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하여 당신 아들을 보내셨다. 유일하게 죄없는 인간 그리스도는 온인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

그 분은 우리 모두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기도하셨다. "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여주십시오. 저들은 자기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성부는 우리가 죄의 파괴적인 힘을 깨닫고, 참회하고 우리 주님이 대신 희생하셨다는 것을 믿을 때우리를 용서해 주신다.

그리스도의 활동은 하느님의 활동이고 영원한 특성과 정당성을 가지고 있다.그 리스도의 십자가에서의 희생과 부활은 역사상 단한번 완전하게 일어났다. 그것은 반복될 수 없는 유일한 사건이고 완성된 사건이다.

인간이 영적 투쟁을 하는 데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하느님께 대한 신앙, 하느님뜻에 맞는 삶이다. 인류의 참된 삶을 위하여 첫번째로 계명을 주신 것이다. 계명은 하느님이 주신 것이고 그 계명들은 우리 동료 인간들과 평화롭고 조화롭게 공존하는데 그리고 하느님과 관계를 맺는데 있어 가장 훌륭한 안내이다. 그리스도는 율법을 페지하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당신의 가르침과 삶으로 완성하기 위해오셨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인하여 의인화된 우리에게 하느님은 거룩해질 것을 요구한다. 거룩함은 계명을 지키는 것 이상이다. 구원과 거룩함은 그리스도안에서 이루어지는 하느님 사랑의 작업이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완전하게 사랑하시고, 우리 사랑 또한 완전해지기를 원하신다.

이는 최후의 만찬 때 우리에게 요청하신 것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해왔다. 그러니 너희는 언제나 내 사랑안에 머물러 있어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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