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우리/강병송님의 글 모음

과월절을...

주방보조 2008. 7. 8. 14:09
  • 번호 85014 | 2007.09.06 IP 58.228.***.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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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인들에게 있어서 과월절은 니산달 15일입니다. 니산달 14일이 끝나면서 이어지는 저녁부터 니산달 15일이 시작됩니다. 니산달 15일이 되어야만 과월절이 시작됩니다. 니산달 14일은 과월절 예비일로서 집안에 있는 누룩을 치우는 날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시던 해는 과월절과 안식일이 겹친(동일한) 해였습니다. 즉 과월절이자 안식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운명하신 시간은 니산달 14일오후 3시경입니다. 즉 과월절 예비일 오후 3시경이었습니다. 이 오후 3시 이전에 예수님의 십자가에 못박히심이 있었고, 그 이전에 예수님의 체포가 있었으며, 그 이전에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가 있었으며, 그 이전에 최후의 만찬이 있었습니다.

그 최후의 만찬이 행해진 날은 유다인들이 무교병을 먹는 과월절이 아니었으며 과월절을 준비하는 날에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신 오후 3시경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과월절을 지키기 위해 과월절 양을 잡는 시간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과월절 어린양으로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이후에 유대인들의 과월절 식사가 진행되었습니다. 즉 최후의 만찬이 있고 난 후, 유대인들이 양을 잡는 시간에 예수님의 죽으심이 있었고, 예수님의 죽으심이 있고 난 후에야 유대인들의 과월절 식사가 진행되었습니다.

최후의 만찬은 유대인의 과월절을 지키는 자리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과월절 어린양임과 동시에 멜기세댁의 반차를 잇는 대제사장으로서 새언약을 세우시고,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서로 사랑하라"라는 새계명을 주시고, 대제사장으로서 중보의 기도(요한복음 17장)를 드리는 자리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은 '자발적으로' 십자가의 길로 나섰으며, 겟세마네의 기도 이후에 붙잡혀서 심문을 받고 성전 밖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그 시간은 유대인들이 과월절 양을 잡는 시간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성소에 피를 뿌리는 때즈음에 성소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갈라졌습니다. 죄의 댓가인 죽음을 예수님의 죽음으로써 물리치시고 하느님과 사람사이의 화해를 이루시는 순간이었습니다. 하느님과 사람사이의 안식을 예수님이 이루어 주시는 순간이었습니다. "하느님과 사람사이의 평화, 사람과 사람사이의 평화"가 선포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사람이 하느님의 계명을 완수하지 못하여 하느님과 단절된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하여 예수님이 계명 위반의 댓가를 대신 담당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상기의 사역을 이루시는 동안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과월절 식사를 하면서 안식일이자 과월절을 지켰던 것입니다. 유다인들이 예수님의 사역을 예표하는 과월절과 안식일을 지키고 있는 동안 예수님은 그 실체를 실현하고 완수하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유대인들의 과월절 만찬'과 '예수님이 행하신 최후의 만찬' 그리고 예수님이 최후의 만찬 말미에 제정하신 '감사의 성사'는 각각 개념이 구별되어야 합니다. 에브리스티아라고도 하고 유카리스트라고도 불리우는 '감사의 성사'는 예수님으로부터 현재까지 끊어지지 않고 내려오는 그리스도교 신앙과 예배의 본질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과월절 만찬'과 '최후의 만찬' 그리고 '감사의 성사'에 대한 개념을 혼동하고 있습니다.

'감사의 성사' 없이는 그리스도교가 존재 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감사의 성사'의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감사의 성사를 제정하시고, 그것을 실시하도록 명했던 것에 있습니다(마태, 26:26-29, 마르코 14:22-25, 루카 22:17-20, 요한 6:54-59, 코린토전서 2:23-25

최후의 만찬시에, "아쥐모스(누룩 없는 빵)"라는 단어가 있음에도 이를 사용하지 않고 "알토스"라는 "누룩이 들은 빵"을 사용하였으며, 최후의 만찬시 과월절 어린양의 고기를 먹는 것에 대한 언급이 없을 뿐만 아니라, 최후의 만찬시에 가룟 유다가 자리를 비우고 나갔던 것에 사도들은 놀라움을 나타내지 않았던 점 등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유대인들의 과월절 예식과는 다른 것입니다.

예수님이 최후의 만찬에서 '감사의 성사'를 제정할 때는 유대인들은 과월절 만찬예식을 행하기 이전이었으며, 예수님께서 과월절 만찬을 거행하고 계신 상황이 아니라 과월절 만찬이 아니었기 때문에 가룟 유다가 중간에 나가도 좋았을 상황이었음을 나타내며, 사도 바울로는 주님께서 만찬 시작이나 중간이 아닌 만찬의 말미에 잔을 손에 들었다고 명확하게 말하고 있습니다(고린토 전서11:25)

성 마르코는, 이 만찬에 관한 중요한 특징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그들이 음식을 먹고 있을 때에 예수께서 빵을 들어 축복하시고 제자들에게 나눠 주시며 "받아 먹어라. 이것은 내 몸이다"하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잔을 들어 감사의 기도를 올리신 다음 제자들에게 건네시자 그들은 잔을 돌려 가며 마셨다. 그 때에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것은 나의 피다. 많은 사람을 위하여 내가 흘리는 계약의 피다. 잘 들어 두어라. 하느님 나라에서 새 포도주를 마실 그 날까지 나는 결코 포도로 빚은 것을 마시지 않겠다.」(마르코 14:,22-25).

이후 사도 시대의 '감사의 성사'는 만찬에 이어지는 감사의 성사의 형태로 남아 있었고, 그 '감사의 성사' 예식은 안식일 다음날에 축사와 빵에 대한 감사 그리고 잔에 대한 감사를 드리고 신자들 모두가 그 빵과 포도주를 나누어 먹는 형식을 사용하게 되었는데, 이는 최후의 만찬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었으며,유대인 과월절 의식의 반복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오순절 성신강림 후 새롭게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은, 항상 사도의 교훈을 지켜, 교제를 갖고, 빵을 떼며, 기원을 실시했습니다(사도행전 2:42). 사도행전(20:7-12)에는 빵을 떼는 것에 대하여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간의 처음의 날(고린도전서 16:2 참조) 제자들이 빵을 떼기 위해서 모였을 때, 사도 바울로와 신자들과의 대화는 밤 늦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그 때 청년 유디코를 다시 살리고 나서,「다시 위층으로 올라가 빵을 떼어 나누어 먹으면서 날이 밝도록 오래 이야기 하다가 떠나갔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만찬과 감사의 성사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 만찬은 주일에 신자 전원이 모여 행해졌지만, 그것은 감사의 의식만이 아니고, 만찬의 뒤에 이어 '감사의 성사'를 거행했던 것입니다.

성사도 바울로는 코린도 사람들이 만찬을 악용 해, 무질서해 지고 있던 것을 코린도 전서 제11장에서 언급하면서, 이 만찬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의 말에 의하면 만찬에 필요한 것은 신자들이 지참했다고 적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순서는, 아마, 다음과 같았을 것입니다. 보통, 만찬은 식사로 시작되어, 마지막에 '감사의 성사'를 했습니다. 사도 바울로는 '감사의 성사'의 잔을 「축복의 잔」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 다음의 장에서 사도 바울로는 그리스도께서 「만찬 뒤에 잔을 취했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복음사 루카도 같이 만찬 말미에 있었던 최초의 특별한 잔에 대해 적고 있습니다. 「그리고 잔을 들어 감사의 기도를 올리신 다음 " 자, 이 잔을 받아 나누어 마셔라. 잘 들어라. 이제부터 하느님의 나라가 올 때까지는 포도로 빚은 것을 나는 결코 마시지 않겠다.」(루카, 22:17-18).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교회는 성삼위 하느님께서 이루어 주신 "죽음으로부터의 해방"에 감사드리며 기쁜 마음으로 그것을 누립니다. 구약에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의 모형으로 제시되었던 과월절이나 안식일이나 그 외의 제사법들을 "지키는"대신에 이미 예수님께서 이루어 주신 실체를 누리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이후 교회에는 "축일"이 있습니다. 이 "축일"은 구약에서 처럼 "지키는"날이 아닙니다. 이미 예수님께서 이루어 주신 것을 기념하고 누리는 잔치날 입니다. 교회가 최초로 선정했던 축일을 부활절이었습니다. 그 부활절 축일 행사는 밤에 과월절을 회상하면서 새벽 미명에 예수님의 부활을 선포하는 의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초대교회 어디에도 과월절을 지킨다는 이야기가 없습니다. 초대교회는 예수님의 부활을 축하하는 잔치를 베풀었던 것입니다.

그 축일도 이스라엘 사람들의 니산달 15일이 아닌 다른 날에 부활절 축일을 누렸습니다. 일년 365일을 복음으로 채우고 싶어 했던 교회는 당시 중근동 및 로마지역에서 태양절로 지내던 율리우스력 1월 6일태양의 날에 진정한 태양이시고 참된 빛이신 예수님이 오신 축일 즉 에피파니(혹은 데오파니)"축일을 지냈습니다. 지금도 서로마의 영향을 별로 받지 않은 정교회 지역이나 동방교회들은 이 에피파니 축일을 중요시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인하거나 신성을 부정하는 사람들과의 싸움을 겪으면서 서유럽을 중심으로 해서 주현절과 성탄절이 분리되어 지내게 되었습니다.

교회의 성장 과정과 정착과정에서 형성되었던 "축일"이라는 개념을 도외시하고, 도리어 "지키기"를 강요하면서 "유월절 지키기"를 요구한다면 그것은 성삼위 하느님께서 이루신 대속의 십자가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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