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 오전 9시에 아내와 교신이가 먼저 집을 나섰습니다.
그리고 진실 나실 충신 원경을 제가 데리고 1시간쯤 후에 그 뒤를 따랐습니다.
2월27일 오전11시
아내는 참으로 긴 고난의 역정을 마치고^^ 석사가운을 입고 다른 젊은 후배들과 함께 졸업식장 강당에 상기된 얼굴로 앉아 있었습니다.
대학원 공부를 하라고 제가 아내를 권한 것이 나실이가 태어나던 해였으니까 1991년입니다. 그해 열심히 공부했으나 갑자기 폐렴에 걸려 시험을 치를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교신이가 태어나던 해 1999년에 시험을 보았고 2000년부터 대학원생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작년, 논문을 쓰고 이번에 석사가 되었습니다.
힘든 직장생활, 다섯 아이를 낳고, 못난 남편을 섬기며 처음 시도한 지 16년만의 정말 늦은, 그리고 그래서 받아봐야 별로 쓸 데도 마땅치 않게 되어버린 석사 학위이지만... 아내의 그 고난을 아는 우리 일곱 식구에겐 특별하고도 자랑스러운 것이 아닐 수가 없었습니다.
박사 두 명에게 학위수여를 하고 곧이어 석사학위가 주어지는데 아내가 맨 처음 호명되었습니다. 흐음...네 엄마가 수석졸업인가?^^하고 옆에 앉은 아이들에게 우스개 소리를 던지니 놈들의 눈이 조금 더 커지며 진지하게 받아들이려고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순진한 마눌은 그 말을 전해 듣고 난처한 웃음을 지으며 ‘학번 순’이어서 그렇다고 설명을 하였습니다. 그냥 그래 내가 수석졸업이야~해도 뭐 그리 틀린 말이 아닐 터인데 말입니다. 수석이 꼭 성적순으로만 있답니까? 학위 수여 순으로도 맨 먼저 받으면 수석이지.^^ 게다가 고생한 순으로 따지면 몇 대학 합해서 수석일 확률도 적잖이 높다 싶습니다만...하하
...
장모님과 두 처형과 우리식구 모두10명이 한식집에 들어가서 졸업식 뒤풀이?를 하였습니다.
제가 갈비탕을 시키려고 주문을 받고 있는데 진실이가 갑자기 왕갈비를 사달라고 칭얼거렸습니다. 철없는 것... 민망하게 녀석을 노려보고 점잖게 말했습니다. 점심은 가볍게 먹는거얌마...!!
이렇게 아내의 졸업식과 조촐한 잔치는 끝이 났습니다.
...
1991년...연년생으로 두 아이를 낳고
고집쟁이 남편 덕에 단칸방 집에서 몸조리를 하면서 많이 약해진 데다
그 고집스럽고 우악스런 남편의 공부타령에 순종하여 출산 휴가가 끝나고부터 주경야독...
결국 시험치기 1달여 전에 폐렴에 걸려 열흘 넘게 병원 신세를 져야 했습니다. 퇴원한 아내의 얼굴은 자못 밝았는데 이유인즉슨 더 이상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설마 폐렴에 걸린 자신을 공부 때문에 스트레스를 주겠느냐...는 생각. 저와 결국 크게 싸우고야 제가 그 생각을 알았지요. 그냥 명랑하게 즐거운 그녀에게 원서를 내야 하는 데 왜 원서를 내지 않느냐? 고 물었고 그 말을 들은 아내의 크게 떠진 눈에서 파란 빛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폐렴에 걸린 사람에게 시험을 치라고요?
그 이후로는 ... 공부하라고 강요하지 못하고...쨉만 날려대었지요. 아내의 기분이 밝고 화창할 때 가끔 ‘공부하면 좋지 않을까?’ 하고 툭툭... 물론 아내의 반응은 ‘폐렴아내몰아세우던못된남편’...이었고 세월은 아이들 숫자가 늘어남과 함께 흘러갔습니다.
1999년...온갖 낙태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다섯째 교신이를 낳고
역시 집에서 몸조리를 끝내고 다시 직장에 복귀하여 눈에 보이게 핍박이 시작되어 허덕이던 어느날
아내는 먼저 직장 바로 옆의 야간 대학원 이야기를 꺼냈고
‘먼저 이야기한 것은 ...아차 실수’...하며 저항하는 아내를 온갖 그동안 쌓아온 내공으로 어르고 달래서 가든 안가든 원서를 내놓고 붙든 말든 시험을 보자 하였습니다.
직장에서 다섯째를 낳은 이후 거의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는 외로운 상태였으므로, 언제나 지지자인 남편의 간곡한 소원을 아마 끝까지 거절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연히 시험에 합격하고 대학원에 입학하기도 전에 곧 이어 직장의 ‘다섯아이둔엄마직원’에 대한 대 공세가 시작되었습니다.
승진대상 제외, 보직 박탈, 근무지 변경, 파견근무명령...등등
그리고 저의 몰락^^...오글거리는 아이들...
아내의 석사학위는 그 고난을 뚫고 이뤄낸 것입니다.
...
아내는 참 기가 막히게 머리가 좋은 사람입니다.
20대 후반이었음에도 로마서 8장을 서너 번 읽고 다 암송할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래서 결혼 전부터 머리 나쁜 저 대신 아내에게 공부를 시키고 싶었습니다.
머리 좋은 사람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아내는 특별히 공부에 대한 관심과 의지가 없었습니다. 그런 식으로 세상이 공평한 것인지도 모르지요.
만약 아내의 머리에 더 나은 의지가 결합되었다면 ... 지금쯤 박사가 되어 있고도 남지 않았을까요? 하하~
흠...제가 팔푼이라고요? 예...압니다. 저는 팔푼이 중 괴수입니다.^^
-
축하드립니다.
답글
참 대단하신 두 분께 그리고 독수리남매들에게 무한한 축하를 드리고
상대적 빈곤?이랄까 갑자기 그런 생각들이 한꺼번에 몰려오는 느낌이 듭니다.
아마도 큰 외조의 힘이 아니었을까 충분히 생각되는 일이기도 하구요.
석사가 아니라 그 어느 유명한 박사보다도 더 값진 학위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머리가 좋으시다는 말씀...인정합니다.
그기다가 젊고 예쁘시기까지 하시니 금상첨화...라는 말로도 부족할 것 같습니다.
친정오빠가 50의 중반 나이에 방송대 중어중문과를 졸업했답니다.
그동안 스터디그룹을 만들어 열심히 공부하고 중국 연수까지 다녀오고
매일밤 중국인으로부터 회화지도를 받으며 시험볼 때는 하루에
8시까지 매달리며 공부했던 결과였었답니다.
아마 학부의 중문과 학생들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열심히 했고
실력 또한 떨어지지 않을 거구요.
부모의 학구열이 아이들에게 영향을 준다는 것을 조카들을 통해서 본답니다.
아마 독수리남매들에게 엄마의 학구열과 아버지의 외조가 큰 교훈이 될 것입니다.
거듭 축하드립니다. -
알 수 없는 사용자2007.03.07 10:11 신고
진실맘께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답글
정말 애 많이 쓰셨습니다.
요즘 로마서8장을 외우고 있습니ㅏㄷ.
한주에 5~6 절 정도를 외우는대도 잘 안되더군요.
집에서 줄줄 외웠다고 생각하고 교회에 가서
순서에 따라 외우다보면 머리가 하얘집니다.
진실맘... 정말 대단합니다.(예전 진실이 이모의 글을 읽고
눈치는 챘지만 말이죠) -
축하드립니다.
답글
저도 늦깍이 공부를 하는 마당이라
얼마나 애쓰셨을지 눈에 선합니다.
쩜님의 수고에도 심심한 박수를 올리며
접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제 마음 추스려 갑니다.
평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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