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교회 김옥경 목사 어쩌다 이 지경까지
- 정윤석 기자
- 승인 2021.03.01 09:49
- 극단적 개인 체험서 ‘영광에서 영광으로’ 비판적 읽기 1편
작년 봄, 필자의 카카오톡으로 문자 하나가 왔다. “사랑하는교회(구 큰믿음교회) 협동목사인 김옥경 씨의 간증 책입니다. 우연히 다시 본 결과 한국초기 이단들의 피갈음과 흡사한 내용이 있어서 알려드립니다.” 사랑하는교회를 잘 아는, 제보자의 문자를 받고도 필자는 반신반의했다. 사랑하는교회가 무려 한국교회 8개 교단에서 이단 또는 참여금지 단체(2009년 예장 고신 참여금지, 통합 이단, 합동 참석 금지, 백석 제명처리·출교·집회참석 금지, 합신 이단성, 2011년·2019년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집회 참석 금지, 2012년 예성 이단성, 2014년 기감 예의주시 규정)로 공식 규정된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서울 송파구에 있는 대형교회인데다, 그들의 집회 모습이나 설교가 투명하게 공개되고 있다는 점에서 설마 통일교 같은 극단적 이단 사이비에서 주장하는 ‘피갈음’ 같은 내용이 나오기는 어렵다고 생각했다.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2021년 설 연휴 동안 제보자가 알려준 ‘영광에서 영광으로’(거룩한진주, 2012년 초판, 2019년 4월 3일 수정판 8쇄, 351p)를 구입, 모두 읽었다. 검토한 결과 김옥경 목사의 ‘영광에서 영광으로’는 하루라도 빨리 교계에 공론화하고 알려야 할 정도로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판단됐다. 그 정도가 너무도 심각하고 중대해 이례적으로 사랑하는교회를 비판하면서도 담임인 변승우 목사가 아니라 김옥경 목사에 집중하게 됐다.
김옥경 목사는 누구인가?
김옥경 목사는 사랑하는교회 변승우 담임목사의 비서출신(영광에서 영광으로 13p)으로서 2010년 5월, 변 목사가 총회장으로 있는 예장 부흥교단에서 최초로 목사 안수를 받고 현재 부담임목사로 있다.
사랑하는교회가 ‘큰믿음교회’이던 시절, 김 목사는 2007년 9월부터 중보기도학교를 담당했다. 당시 사랑하는교회에는 쌍두마차가 있었다. 2006년 예언선지자학교를 담당한 변애경 목사와 중보기도학교를 담당하는 김옥경 목사였다. 변애경 목사는 변승우 목사의 동생으로서 예언·선지자 학교를 이끌며 오늘날 사랑하는교회를 성장시키는데 적잖은 공을 세웠다. 김옥경 목사는 또 누구인가. 모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며 평신도 기도 모임(일명 이문동 기도 모임-대한수도원 계열이란 설이 있음)을 이끌던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그녀는 변승우 목사가 1989년 성결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한 직후 15년 가까이 소규모의 교인들을 대상으로 목회하던 시절에 그의 저서인 ‘지옥에 가는 크리스천’이라는 책을 통해 은혜를 받고 2005년부터 서울로 끌어올려 서울 시대를 열도록 한 핵심 인물이다. 당시 150여 명의 신도와 함께 시작한 큰믿음교회는 서울 입성 후 폭발적 성장을 거듭해 2015년 서울 송파, 1만명 시대를 열기까지 김옥경 목사는 변승우 목사와 동고동락을 함께했다(사랑하는교회 홈페이지 교회 역사 참고).
변승우 목사의 동생 변애경 목사와 김옥경 목사 둘 다 2010년 변승우 목사측 예장 부흥교단 창립 이후 첫 번째로 목사 안수를 받은 안수 동기다. 일설에 따르면 변애경 목사와 김옥경 목사가 갈등을 일으키던 중 변승우 목사가 선택한 카드는 동생 변애경 목사가 아니라 비서 출신인 김옥경 목사였다고 한다. 변애경 목사는 결국 2015년 사랑하는교회를 떠나 ‘섬기는교회’라는 곳을 개척, 목회를 시작하게 됐고 그 후 김옥경 목사는 사랑하는교회에서 승승장구 ‘부담임목사’라는 직책까지 오르게 된 것이다.
김옥경 목사의 ‘영광에서 영광으로’는 어떤 책인가?
‘영광에서 영광으로’는 김옥경 목사(사랑하는교회)의 극단적 개인 체험 퍼레이드라 할 수 있다. 물론 김 목사는 체험을 통해 ‘겸손’, ‘거룩’을 지향하고(117), 오직 주님만이 인생의 유일한 영광이요, 빛이요, 아름다움(120)이라며 그것만을 구하는 삶으로 나아가야 한다고도 강조한다. 그러나 이는 김 목사 개인 체험서의 본질적 메시지가 아니다. 이 체험서를 통해 드러나는 진정한 저자의 페르소나는 ‘나, 이런 체험을 한 사람이니 조용히 꿇어라!’이다. 즉 체험 전제주의, 체험 독재를 지향한다는 점이다. 노골적으로 말하지 않을 뿐 자신이 가장 특수하고 가장 탁월하고 가장 차원 높은 체험을 했으니 자신에게 순종하라는 메시지가 수면 밑에 면면히 흐르고 있다. 그래서 이 책에는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극단적인 개인 체험들로 범벅돼 있다.
1. 비정상적·극단적 ‘목가름’ 체험? ··· 신인합일
그녀는 이 저서에서 자신이 주님과 하나가 됐다는 주장을 반복한다. 인격적 연합의 차원이라기보다 진실로, 자신의 자아 자체는 죽어서 없어지고 주님이 자신의 인격과 일치적으로 하나가 됐다는 차원으로 강조한다. 그 대표적 체험이 56~57페이지에 등장한다. 한마디로 ‘목가름’체험과 유사하다.
김 목사가 꿈을 꿨다. 꿈에 김옥경으로 인식되는 사람이 나타났다. 그런데 모양이 이상했다. 몸은 있는데 머리가 없었다. 머리 없는 사람이 사람 구실을 할까 했지만 아무 문제없이 거동했다. 그러다 장면이 바뀌었는데 거대한 스타디움에서 수많은 사람이 참석했고 우레와 같은 박수와 환호를 받으며 대통령이 등장했다. 그 대통령이 스타디움 안에서 누군가를 가리키자 환호와 경외는 다른 이에게 돌려지고 있었다. 거기에 머리가 없는 나로 인식됐던 인물이 앉아 있었다. 그런데 그 머리 없는 ‘내’가 정상적 머리와 얼굴을 가진 ‘남자’로 변환되며 인식됐는데 자세히 보니 그 남자는 바로 주님이셨다. 사람들은 환호하고 즐거워했고 김옥경 자신은 주님 안에서 함께 하나가 돼 있다고 썼다(56~57 참고해 김옥경 목사의 꿈을 필자의 말로 재정리함).
이 꿈을 해석하며 김옥경 목사는 자신을 의미하는 ‘나’와 주님을 거의 합일된 존재로 표현하고 있다.
“이 꿈에서 ‘나는’ 또한 주님을 의미하고 있었습니다. 주님이 그렇게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아버지로 영광을 받으시게 하신 것처럼 이것이 제 안에서도 이루어져야 하기에, ‘나’는 주님으로, 주님은 ‘나’로 이중 표현되고 있었던 것입니다.”(59).
머리가 없는 나로 인식되는 여성의 머리에 남자 머리·얼굴이 달렸는데 그게 주님의 얼굴이었다는 꿈, 이게 사랑하는교회 신도들에게는 용납되는 체험인지, 그리고 내부적으로 아무런 문제제기 하나 없이 허용되고 있는지 궁금하다.
김옥경 목사에게 선배 한명을 소개해 주고 싶다. 김 목사보다 근 100년은 선배다. 일제시대이자 한국교계에 이단·사이비 교리가 꿈틀대며 새주파의 김성도, 친림의 유명화, 심판자라는 남방여왕 등이 이단 사이비의 한 시대를 풍미하던 1930년대, 목가름을 체험했다는 황국주다. 다른 사람은 주로 피갈음이란 걸 주장했다. 부모로부터 죄가 섞인 피를 받았기 때문에 그것을 새피로 갈아야 한다는··· 그래서 성적 부도덕으로 흘렀던 피갈음이 교리적으로 정립되던 시기, 황국주는 더 극단적이고 자극적인 체험 카드를 들고 나왔다. “너 피갈음이야? 나 목가름!!”하는 식이다. 넘버3에서 배우 송강호가, 황소뿔 절단내는 방법을 얘기할 때 했던 말이 “너, 황소? 나 최영의!!”였다. 황국주가 그랬다. 다른 사람이 피갈음이면 자신은 목갈음이라며 체험적 우월감을 드러낸 사이비 교주였다.
황국주는 환상 가운데 자신의 목이 없어지고 그리스도의 목이 달렸다며 자신의 피, 생각, 말, 모든 게 ‘그리스도화’됐다고 주장했던 사람이다. 그는 50~60명의 추종자들을 대상으로 재림주 흉내를 내다가 역사 속에서 사라진다. 문제는 근 100년전, 황국주의 체험과 21세기를 살아가는 김옥경 목사의 체험이 근본적으로 닮아 있다는 점이다.
김옥경 목사는 십자가 고통도 체험했다고 한다. 방배동에서 서초동 성전으로 이전한 직후였다고 하니 2006년 경이다(49). 그때 김 목사는 성령님에게 이끌려 환상을 통해 영의 세계로 들어갔다고 한다. 자신의 팔의 살이 찢어지고 갈라지며 피가 흐르기 시작했고, 다리가 찢어지고 앞 부분이 피로 물들었다. 채찍은 보이지 않았지만 등이 터지기 시작했고 끝없이 피가 흘러 내렸으며 머리에 가시관이 씌워지고 가시가 이마와 머리에 박혔다. 자신의 오른손과 왼손에 못이 박혔고 두 발에도 못이 박혀 고통으로 또다시 의식을 잃었다(49~54쪽을 필자의 말로 정리함). 참고로 이 내용을 근거로 혹시 ‘피갈음’과 유사하다는 제보가 있었지만 필자가 보기에 피갈음이 되려면 자신의 육신의 물과 피를 흘리고 영적인 새 피를 공급받아야 한다는 뉘앙스가 있어야 하는데 김옥경 목사의 체험에서는 후자가 빠져 있다. 따라서 피갈음과 동종의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런데 문제는 피갈음이냐 아니냐에 있지 않다. 김옥경 목사는 이런 체험에 대해 주님께서 “나의 십자가의 고통을 실제적으로 체험하고 있단다”(54)고 설명해줬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김옥경 목사가 체험을 한 후 근거라고 제시한 성경 구절이다. 그녀는 이사야 53장의 말씀을 문자가 아닌 체험적으로 알게 해 주신 사건이라고 해설했다(55).
“저는 이사야 53장의 말씀을 문자가 아니라 체험적으로 알게 되어, 자원하여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써, 제가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으로 사시게 하는 이 진리의 옷을 기꺼이 입었습니다.”
그런데 이사야 53장은 누구나 알다시피 ‘메시아 예언’으로 해석되는 장이다. 이사야 53장 2절부터 10절까지를 읽어보자.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나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 하였으리요 그는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입에 거짓이 없었으나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 그의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씨를 보게 되며 그의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리로다”
여기서 멸시, 버림, 슬픔, 징벌, 고난, 찔림, 상함, 징계, 채찍, 그 모든 질고를 당하는 대상을 이사야는 ‘그’라고 표현한다. 히브리어로 ‘후’(ה֣וּא)는 3인칭 남성 단수이다. 이 예언을 실제적으로 체험하고 성취할 분은 유일하신 그리스도 한분이시다. 메시아가 고난과 고통과 형벌을 당하는 데 그것은 사람들의 허물 때문이라고 한다. 즉 메시아가 다른 사람을 대신해서 고난과 고통을 당한다는 대속적 의미다. 이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온전히 성취됐다. 그런데도 메시아 예언을 김옥경 목사는 자신의 체험과 혼합해 버린다. 대속적 가치를 지닌 예언을 메시아도 아닌, 한 개인의 삶에 실제적으로 체험되고 있다는 의미로 투영하니 김옥경 목사가 했다는 체험은 과연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인지 의심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과연 이런 체험을 통해 김옥경 목사가 노리는 것은 무엇일까? 과연 종교개혁자들이 목숨을 걸고 이뤄낸 ‘오직 하나님께 영광’일까? 아니다. 그녀의 개인 체험의 밑바닥에 흐르는 것은 김옥경 목사 자신의 영광이다. 물론 그녀는 책 곳곳에 자신의 체험이 하나님의 은총으로부터 비롯됐고, 그것을 통해 오직 주님의 마음, 주님의 심장만을 구한다고 말한다(47). 오직 주님만이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고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메시아라고 고백하는 건 사실이다(156). 그러나 설령 그녀가 개인체험을 할 때마다 오직 그리스도의 영광을 얘기한다고 하더라도 이런 식의 체험담은 개인 영웅주의와 개인 우상화로 직결될 위험을 안고 있다. 왜냐하면 결국 체험을 통해 지속적으로 김옥경 목사가 부각되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김옥경 목사의 체험에는 상당수 자신을 특수화하는 것들이 적지 않다.
기도 중 하나님의 보좌로 올라갔는데 그곳의 분위기는 마치 스포츠 경기를 마친 선수들에게 상을 주는 시상식처럼 들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주인공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김옥경 목사 자신이었다는 말도 한다. 아하수에로왕 앞에 나아갔던 에스더처럼 자신을 묘사하기도 한다. 역시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의 체험이다. 자신이 아름다운 드레스와 위엄을 갖춘 면류관, 장신구로 단장한 후 주님께서 자신의 손을 잡고 하나님 앞으로 이끄셨다고 한다. 만왕의 왕이신 주님과 함께 천천히 걷는 그 상황이 마치 신랑·신부의 결혼을 연상케 한다. 김옥경 목사 자신이 주님의 진실한 신부인 것처럼 표현된다(201). 신랑이 절대자이신 주님이시다. 그런데 신부를, 그리스도와 연합한 교회 공동체가 아니라 한 개인으로 묘사하고 그것을 자신이 기도 중에 봤다고 하는 것이다. ‘영광에서 영광으로’가 이런 식이다.
필자는 이런 형태의 체험담을 ‘체험 전제주의’ 또는 ‘체험 독재’라고 정의한다. 자신이 늘 하나님 앞 보좌나 아주 특별하고 특수한 체험을 하는 것처럼 묘사하는 가장 근본적 동기가 무엇인지를 고민해 보자. 결국 이런 체험을 하지 못한 신도들에게 경외의 대상, 자신 스스로 ‘최고 존엄’이 되려는 행위와 다를 바가 없다는 의미다. 필자가 김옥경 목사의 개인 체험은 사람들에게 ‘나, 이런 체험을 했으니 알아서 모셔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고 보는 이유다. 공산주의 독재는 싫어하면서, 체험을 통한 신비와 우상화에 앞장서고, 로마 가톨릭은 극도로 경계하면서 사실상 자신을 교황적 권위가 있는 독보적 존재로 만들려는 시도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그녀의 십자가 체험 또한 처음은 나타난 건 아니다. 선배 한명을 또 소개해 주고 싶다. 이단으로 2009년 예장 합신에서 이단으로 규정된 서인천 주님의 교회 김용두 목사가 ‘내가 네게 불세례를 주노라’는 책을 쓴 적이 있다. 김용두 목사는 이 책 4권 96페이지에 “나는 지옥의 하늘에 있는 십자가에 매달린 지 수 시간이 지날 때까지 나의 육체는 꼼짝하지 못했다”며 십자가에 못 박히는 신비체험을 했다고 말한바 있다.
“그 순간 나의 몸은 십자가의 형태로 쫙 벌어지더니 강단 위에서 쓰러졌는데 내 힘과 의지로 조종되지 않았다. 조금 있으니 곧바로 못 박는 소리가 꽝꽝 들리는 듯하더니 나의 왼쪽 팔목과 오른쪽 팔목이 시큰 거리고 끊어질 정도로 아팠으며 통증이 가시질 않아서 거의 기절 일보 직전까지 갔다. 그리고 양쪽 발등이 포개어지며 또 다시 극심한 아픔이 시작되었는데 나는 고통을 참지 못하여 순식간에 ‘악’하고 비명을 질렀다. 악한 영들은 나와 아내를 지옥의 하늘에 있는 십자가에 매달아 놓았으며 집중적으로 쇠꼬챙이 같은 흉기로 온 몸을 사정없이 찌르며 마음껏 유린하였고, 나의 영혼은 난자를 당하였다. 그럴 때마다 통증이 내 육체에까지 강하게 전달되었다.
아내 역시 고통을 당하고 있었지만 나처럼 심하게 느끼지 않았다. 주님께서는 음성으로만 말씀을 들려주셨는데 ‘김 목사는 목사이고 책을 직접 쓰기 때문에 지옥의 고통을 맛보는 것이다! 잘 견뎌야만 한다!’라고 하셨다.
지옥의 하늘에 있는 십자가에 매달린 지 수 시간이 지날 때까지 나의 육체는 꼼짝하지 못하였으며, 새벽기도가 끝난 후에야 조금씩 몸을 가눌 수 있었는데 움직일 때마다 극심한 통증을 느꼈다. 특히 손목과 발등에는 지름이 1.5CM의 붉은 큰 반점이 있었으며 그 반점은 시간이 지날수록 시퍼런 멍 자국으로 바뀌어 나중에는 까맣게 되었다”(4권 96페이지).
지옥에서 십자가 체험을 했다는 김용두 목사나 메시아 예언을 자신의 십자가 고통 체험으로 투영하는 김옥경 목사나 다를바가 없어 보인다. 그래서 김옥경 목사의 책을 읽으며 필자는 참으로 개탄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이걸로 끝이 아니다라는 점이다. 아무쪼록 이 글을 읽는, 사랑하는교회 교인들이 진실로 고민했으면 좋겠다. 정말 성경만이 진리이고 그것을 그대로 믿고 따르려는 신앙을 갖고 있다면 누구보다 먼저 고민해야 할 사람들이 사랑하는교회 교인임을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필자는 그 교회를 다니지 않는다. 그러나 김옥경 목사는 사랑하는교회 부담임목사다. 이런 고민을 사랑하는교회 신도들이 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이런 신앙 형태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지 않으니 마른 막대기 같은 필자가 계속 나서고 있는 것이다. 다음 편에는 ‘영적 정부와 자연계를 다스릴 권세’가 임했다고 주장하는 김옥경 목사의 주장을 살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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