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우리/교회에 대하여

625와 빌리그래함(민경배)

주방보조 2019. 11. 14. 17:16
271.미국 6.25참전 결정에 빌리 그래함이 있었던가
[[제1476호]  2015년 9월  26일]


 글은 6.25사변 당시 미국이 그렇게 빨리 참전을 결정한 데에는 빌리 그래함 목사의 공헌이 컸다는 글을 쓰기 위해서이다빌리 그래함 목사는 한국에 다녀간 세계적인 부흥사요 한국교회의 부흥은 말할 것도 없이 현대 한국의 기적적인 경제발전을 촉발한 거대 동력의 촉발자로서도 유명한 인사이다그런데 그의 부인 루스  그래함은 중국 넬슨  선교사의 둘째 자녀로서 평양의 감리 선교사 셔우드와 장로교의 베어드가 세웠던 평양의 외국인학교 출신이다 부인은 11 때부터 6년간  학교를 다닌 것으로  있다빌리 그래함 목사와 한국과의 관계는 이처럼 오래 전부터 있어온 셈이다더러는  부인이 함경도에서 활동하던 선교사의 딸이고 함흥에서 태어나 거기 루씨여자고등학교를 다닌 것으로 말하고 있지만 그것은  부인의 이름이 루스여서 그런 오해가 생긴 것으로 보인다트루먼 미국 대통령은 1950 6.25사변이 터지자 6 26 저녁 한국군을 돕기 위해 공군의 파견을 명령하였고, 6 30일에는 한국 전선을 시찰하고  맥아더 원수의 건의를 받아서 지상 전투부대 파병을 결정하고 파병을 명령하였던 것이다미국 역사상 이렇게 신속한 파병 결정을  사례는 한두 번밖에 없었을 것이다미국에서 해외 참전은 의회의 결정을 거쳐야 하는 기나긴 세월을 보내야 하는 중대사건이다그것이 하원의 군사위원회라든가 하는 소분과위원회를 거치고 하원 본회의에 상정되어 토론을 거치고 야당의 강력한 반대를 표결로 이겨야 하고다시 상원의 군사위원회 그리고 다시 본회의 토의 의결을 거치노라면 한두 달이 쉽게  수도 있다그런데 이렇게 하루 이틀에 대통령이 결정하고 파병하였던 것이다.

 기적 같은 일이다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있었던가후에 백선엽 장군이 트루먼을 만나 어떻게 그런 신속한 결심을   있었느냐고 물었더니 정말 < 모르겠어하였다는 것이다하나님의 간섭하심이 아니고 무엇이랴우리 한국은 실제 이런 결정을 통해서 오늘 생존해 있고 자유를 누리고 있다그런데 미국 욕하기인가.

그런데 이런 결정을 하게  배후에 빌리 그래함의 영향이 컸다는 지적이 있다빌리 그래함은 이미 세계적 부흥사로 알려져 있었는데 세계 2차대전의 종결 후에 공산주의 강대국 소련의 전쟁 위협을 소리 높이 외치고 있었다는 것이다현대 기독교의 예언자로서 그는 종전 후의 세계 역사의 이데올로기 양립 구도를 영국의 처칠 만큼이나 예리하게 투시하고 있었다는 증거이다독실한 신앙은 이렇게 역사의 흐름까지도 감지할  있는 것이다따라서 6.25사변이 터지자 빌리 그래함의 메시지가 트루먼 대통령의 정신을 번쩍 들게  것이다더구나 한국을 부인을 통해서 고향처럼 느끼던 그에게 한국의 수호는  기독교와 자유의 수호라고 보였다 거대한 20세기 역사의 격동기에  목사가  있었다.

민경배 목사<백석대학교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