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의 신약 교회는 크게 두 종류의 형태로 성장하여 왔다. 국가 교회(State Church)는 왕권 또는 공권력의 협력이나 지원 아래 발전한 교회를 말한다. 중세 가톨릭 교회나 영국의 성공회가 그 대표적인 경우다.
'국가 교회'와 '자유 교회'
반면에 자유 교회(Free Church)는 국가와 정권의 관리나 간섭을 배제하고 독립적인 운영을 고수하고 있는 교회다. 전통적으로 15세기 아나벱티스트, 미국의 회중 교회, 그리고 근세기 대부분의 개신교 교단들이 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침례교가 이런 전통을 중시한다. 이들은 신앙의 자유를 위해서라면 국가의 명령도 반대할 수 있는 신념을 지녔다.
성경의 역사를 보면 구약 유대교는 전형적인 국가 교회였고 신약 초대교회는 철저한 자유 교회였다. 오히려 초대교회는 로마 황제와 국가로부터 근 200년 동안이나 엄청난 박해를 받았다.
그러던 초기 기독교가 변질되기 시작한 계기는 바로 AD 313년 콘스탄틴 황제의 기독교 공인이었다. 이때부터 교회는 국가의 보호를 넘어 과도한 특혜와 지원과 관리를 받게 되었다. 동시에 교부들의 기독교가 자유 교회로부터 국가 교회 형태로 급속히 변절했다. 물론 얻은 것도 많았지만, 실상은 잃은 것이 훨씬 더 많았다. 본격적인 교회의 부패와 타락이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먹을 것이 많은 곳에 구더기가 생기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래서 국가 교회의 결정적인 단점은 공권력과 협력하여 그것을 이용하거나, 아니면 반대로 그 권력에 의해 이용 당하기 쉽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 교회의 조직이 대체로 성직자 집단을 중심으로 하여 수직적 계급 구조라는 점 역시 그 정체성과 취약성을 잘 설명해 준다.
하지만 이러한 중세 암흑 시대에도 빛나던 별은 있었다. 로마교에 의해 소위 이단으로 몰려 박해를 받았던 일부 소수 교단들이다. 그 중에서도 12세기 왈도파(Waldensians)는 프랑스어 성경을 번역하고 복음적인 삶을 살기 위해 생명을 걸었던 진정한 자유 교회의 개혁 성도들이었다.
비제도권 교회였던 왈도파는 국가나 교황의 명령보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른 사람들이었다. 그 과정에서 수 없이 많은 성도들이 순교했다. 그래도 결국 이들이 나중에 위클리프, 후스, 루터, 쯔빙글리, 콘라드 그레벨, 또는 칼뱅으로 이어지는 종교 개혁의 정신적 토양이 되었다.
15세기 종교 개혁의 한계
그럼에도 루터와 쯔빙글리와 칼뱅 등 주류 종교개혁자들은 자유 교회를 세우지 못 했다. 독일의 루터 교회와 스위스의 개혁 교회는 유감스럽게도 국가 교회였다. 특히 칼뱅의 제네바 교회는 시의회와 협력하여 중세적 신정통치를 고수하며 교인들 식탁의 반찬수까지 감시했다.
이는 당시 로마 가톨릭 교회와의 긴박한 전투적 상황을 고려할 때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측면은 분명히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들은 여전히 영주나 시의회의 공권력 지원과 견제를 받으며 교회를 통제하고 운영했다. 심지어 칼뱅은 아나벱티스의 자유 교회를 강하게 공격하기도 했다.
나는 이게 15세기 종교 개혁의 시대적 한계였으며 개신교 조직과 직분이 '성도 중심'이 아니라 '목사 중심' 제도로 변질되게 한 매우 중요한 한 요인이라고 본다.
다행히 나중에 유럽과 미국의 대부분 개혁 교회들은 국가의 통제를 벗어나 스스로 자유 교회를 이루는데 성공했다. 다만 영국 성공회와 독일 교회 등은 아직도 국가 교회 형태로 남아있다.
이제 본론을 말하고자 한다. 전술한 대로 현대 개신교는 대부분 자유 교회다. 그런데 상당수 교회들은 지금도 세속적 권력이나 기득권에 연합하여 이권을 취하려 했던 과거의 습성을 이기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별히 한국 개신교의 권력 야합 역사는 부끄러운 점이 많다. 일제강점기에는 신사참배를 정당화하며 전쟁 무기까지 헌납하고 적극적인 친일 행각을 펼쳤다. 해방 후에는 미군정과 이승만 독재 정권을 지지하며 친일파와 합세했다. 군사 독재 시대에는 친군부 세력의 애완견 노릇을 자행했다. 친독재 목사들이 동원된 국가조찬기도회는 독재자를 위한 꽃장식이 되기도 했다.
과연 한국 개신교 역사 120년 동안 주류 교회들이 '기득권'의 편이 아닌 경우가 몇 번이나 있었을까. 요즘 소위 기독교 연합 단체라는 곳의 행태를 보면 그 답이 쉽게 나온다. 적지 않은 제도권 교회들이 외형적으론 자유 교회지만 실제 그 정체성은 국가 교회의 고약한 타성을 온전히 버리지 못 하고 있다.
초대교회도 비제도권 교회였다
나는 진정한 자유 교회란 불의한 기득권이나 이권에 굴복하지 않고 예수의 진리만을 따르는 교회라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는 준엄한 시대적 요구를 받고 있다. 진리는 제도권 교회에만 있는 게 아니다. 오히려 교회사를 보면 비제도권의 상대적 소수가 진리의 편에 선 적이 참으로 많았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늘 소수였고 유대 바리새인의 교회에 맞선 예수의 12제자가 소수였다. 왈도파가 소수였고, 아나벱티스트가 소수였고, 형제단이 소수였고, 롤라드파가 소수였고, 사보나롤라가 소수였고, 루터가 소수였고, 칼뱅이 소수였고, 웨슬리가 소수였고, 그리고 강남 사랑의교회 갱신위 성도들이 소수다.
이들의 연장선에서 나는 불의한 기득권에 타협하지 않는 참된 자유 교회들이 앞으로 많이 세워지기를 기대한다. 과거에는 국가나 시의회나 주정부가 교회를 간섭하는 권력이었다면 지금은 목사 중심의 성직주의가 교회를 삼키는 권력이 되었다.
500년 전 칼뱅이 창안한 시대착오적 '담임목사' 제도가 교회를 흔드는 제사장적 권력이 되고 종교적 기득권으로 변질하고 있다. 필설로 이루 다 열거할 수 없는 온갖 사특한 사회악과 교회악이 소위 이 성직자라는 종교 집단으로부터 나오고 있다.
그러므로 굳이 제도권 교단이 아니어도 좋다. 소수가 모여도 좋다. 건물이 없어도 좋다. 목사가 없어도 좋다. 그리고 목사가 있으면 더 좋다. 초대교회는 모두 가정 교회였다. 그러니 처음엔 두세 가정이 모여도 좋고, 사무실에서 모여도 좋고, 카페에서 모여도 좋고, 또는 마을 회관에서 모여도 좋다.
요즘 왜 제도권 교회를 탈출하는 가나안 성도들이 급증하고 있을까. 사도들의 '자유 교회' 정신을 잃고 중세의 '국가 교회'가 추구하던 성직자 중심 종교로 타락한 동네 교회들 때문은 아닐까. 우린 그 근본 원인을 읽어야 한다. 그래서 그리스도 진리의 복음 외에는 인간이 조작한 그 어떤 교리나 교권에 속박을 받지 않는 참된 자유 교회와 자유 성도가 이 땅에 세워져야 한다.
아울러 한국 개신교는 예수와 그 제자들도 당시 제도권 교회의 극심한 박해를 받던 비제도권 성도였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다시는 사람이 만든 종교의 종 노릇 하지 말자.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8:32)."
신성남 / 집사, <어쩔까나 한국교회>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