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종교 2016년 5월호 - 포커스 (현대종교의 허락을 받아 pdf 파일 첨부하였습니다.)
정동수 목사가 주장하는 KJV 보존론의 실체
유튜브 동영상 갈무리 사랑침례교회 정동수 목사
정동수 목사 사랑침례교회, 그리스도예수안에, 킹제임스흠정역는“1611년 영어 킹제임스성경이 일점일획도 오류가 없는 최종적인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한다. 정 목사는 개역성경으로 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입장을 표명하면서 ‘이단’ 말씀보존학회대표 이송오와는 선을 그었다.
하지만 정동수 목사가 주장하는 내용들은 기존의 ‘킹제임스성경 유일론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개 역성경 등을 사탄이 변개했다는 (D.A. 카슨의 표현 을 빌려)“무자비한 욕설”은 물론 공인 본문Textus Receptus, TR에 대한 지나친 권위 부여, 시편 12편을 근거로 제시하는 킹제임스성경 보존론 등 새로운 것이 없다.1)
1) 공인 본문은 엘지비어 형제가 1633년에 펴낸 성경의 서문에 사용한“독자들은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본문을 가지게 되었다.
본문에는 틀린 것이 하나도 없다”는 표현에서 유래했다.
사본학적 왜곡
정동수 목사는 킹제임스성경을 완전한 성경으로 만들기 위해“현존하는 사본의 99%가 공인 본문을 지지한다”고 주장한다. TR이 소위‘다수 본문Majority Text’혹은‘비잔틴 본문 Byzantine Text’에 의해 지지를 받고 있으니 권위가 있다는 뜻이다.
2)
정동수 목사가 본지에 보내온 자료 중에는“킹제임스성경의 대본, 번역용 본문이 된 사본에 대해서도 킹제임스 가 채택한 다수 본문이 훨씬 우수하며 바른 것입니다. 일반 신학자들도 이런 것을 인정합 니다”라며“다수 사본을 뿌리로 한 킹제임스성경 쪽이 소수 사본을 뿌리로 한 기타 현대 역본들에 비해 훨씬 우수하며, 당연히 우리가 보아야 할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안타깝지만 개역성경은 소수 사본 계열의 성경입니다”라는 내용이 있다. 다시 말하면, 많 은 사본이 킹제임스성경을 지지하고 있기 때문에 킹제임스성경이 권위가 있다는 것이다.
정 목사와 사랑침례교회 측의 주장은 사본학적 이해가 없으면 맞는 말처럼 들린다. 하지 만 여기에는 몇 가지 숨은 함정이 있다.
첫째, 비잔틴 본문이 다수라고 해서 권위를 갖는 것이 아니다. 이는 대부분 성서학자의 공통된 견해다. 16세기 이후 비잔틴 사본보다 훨씬 이전의 사본들이 발견되었다. 원문비평 (혹은 본문비평)에는 몇 가지 원칙이 있는데, 그중 한 가지가 오래된 사본일수록 가치가 있 다고 보는 것이다.
3)
인쇄술이 발달하기 이전에는 손으로 본문을 필사했다.
주후 9세기 이 전의 사본들은 대문자를 띄어쓰기 없이 기록했기 때문에 고도로 훈련된 서기관들조차 필 사 과정에서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주후 9세기에 이르러서야 소문자를 띄어서 쓰기 시작했다. 따라서 필사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류는 필연적이었다. 후대의 사본일수록 원문 과 멀어지는 것은 상식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경우 사본에 대한 권위는‘개수’보다‘년도’ 에 따라 부여된다. 현시대는 킹제임스성경이 저본으로 삼은 TR보다 훨씬 오래되고 권위 있는 사본들을 소유하고 있다. R.C. 스프로울과 리 마틴 맥도날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2) 현존하는 약 5500개의 신약 사본 중 80%는 지중해의 동부에서 온 것으로 비잔틴 본문(사본) 혹은 다수 본문 (사본)으로 불린다.
3) 원문비평이란 사본끼리 단어나 문장이 불일치할 경우 원문에 가까운 구절을 찾아내는 작업을 말한다.
R.C. 스프로울,『성경을 아는 지식』p.180
16세기 이후에 발견된 중요한 신약성경 사본들로 인해 원본의 본문들에 대한 우리 의 지식은 크게 풍성해졌다.
리 마틴 맥도날드,『성경의 형성』pp.251~252
현재 우리는『킹 제임스 성경』및 모든 초기 영어 번역본들이 출판되었을 때 알려 졌던 것 보다 수백 년을 성경 원문에 더 근접한 성경 사본들을 가지고 있다. 즉『킹 제임스 성경』과 초기 번역본들 모두는 후대 그리고 보다 최근의 성경 사본들 에 기초하고 있다. 비록『킹 제임스 성경』이 그 시대와 향후 수세기 동안 최고의 영어 번역본이었을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기원에 있어 후대에 속하고 또한 본문에 있어 많은 실수들과 변조들을 담고 있는 열등한 사본들에 기초를 두 고 있다. 오늘날 성경학자들은 이전에 가능했던 것보다 더 이르고 더 정확한 헬라 어 성경들을 제작하고 있다. 그리고 모든 번역자들이 그것들을 사용한다.
둘째, 현존하는 사본의 99%가 TR을 지지한다는 것은 사본학적으로 인정할 수 없는 주장이다. 수천 개 이상의 비잔틴 사본 간에도 필사자들의 실수로 인해 내용이 일치하는 것이 하나도 없는 것으로 알려진다. 박창환 박사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박창환,“텍스투스 레셉투스의 정체(正體)”,「성경원문연구」제1호(대한성서공회, 1997), 21~22.
소위 다수 본문(Majority Text)이라고 해서 절대 다수의 신약 사본이‘텍스투스 레 셉투스’를 지지한다고 하지만 그 다수를 점하고 있는 비잔틴 계통의 사본들도 서 로 어느 하나도 꼭 같지를 않은 것이 사실이어서, 어느 하나는 원본의 모습을 그 대로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 모두가 다 원본에서 이탈했고, 그 변개의 도수가 다를 뿐이다. 그러므로 어느 것이 가장 변개가 심한가, 그리고 변개 된 것이 무엇인가를 찾아내어,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원본에 가까운 본문을 만들 어 내는 것이 주요한 일이다. … 일부 맹신자들이 하나님은 전능하시니까 당신의 말씀을 무흠하게 보존하셨을 것이고, 비잔틴 텍스트(Byzantine Text, Majority Text)가 바로 그것이라고 억지를 쓴다. 아무런 근거나 증거도 없는 거짓말을 가지 고 많은 순진한 사람들을 오도하고 있는 셈이다. TR에 대한 지나친 권위부여는 자칫 맹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
본지는 지난 호에서‘킹제임스성경만이 유일한 성경일까?’라는 제하의 기사를 통해 TR은 몇 개의 사본만을 통해 편집된, 명백히 열등한 본문임을 지적했다. 이 같은 편집의 역기능은 어느 사본에서도 발 견되지 않는 본문들이 킹제임스성경에 삽입되는 결과로 나타났다. D.A. 카슨, 브루스 M. 메쯔거, R.C. 스프로울의 말을 들어보자.
D.A. 카슨,『킹 제임스 버전 성경의 오류』p.97
KJV 안에 있는 십여 개 남짓 되는 독법들은 그 어떤 헬라어 사본들 안에서도 그 근거를 찾을 수 없다. 계시록의 마지막 몇 구절에서 적어도 반은 창작의 소산이다.
브루스 M. 메쯔거,『사본학』p.125
또 사도행전 9:6절에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회개할 때 물은 질문“그리고 그는 떨면서 놀라서 말했다. 주님, 저에게 무엇을 하려 하시나이까?”(And he trembling and astonished said, Lord, what wilt thou have me to do?)는 솔 직히 말해서 에라스무스가 라틴역에서 가져와 삽입한 것이다. 다른 헬라어 사본에 는 없는 이 부가물은 1611년에 만들어진 흠정역에서 부활되었다.
R.C. 스프로울,『성경을 아는 지식』p.180~181
『흠정역』에는 요한일서 5장 7절이 다음과 같이 제시되어 있다.“이는 하늘에 증거 하시는 셋이 계시기 때문이니 곧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이시라. 또한 이 셋은 하나 이시니라(영어직역, For there are three that bear record in heaven, the Father, the Word, and the Holy Ghost: and these three are one).”… 하지 만 나는 사도 요한이 그 구절을 기록하지 않았으며, 따라서 요한일서의 원본에 등장할 자격이 없다고 확신하다. 왜 그런가?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최상의 헬라어 사본들이 압도적으로 그 구절을 반대로 증언하기 때문이다. 이 구절은 초기 헬라 어 사본들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만일 필사자의 주석이 성경 본문에 우연히 삽입 된 경우를 지적하려 한다면『흠정역』의 이 본문이 거기에 해당된다. 4세기의 사본 들에 등장하는 이 구절을 에라스무스가 16세기에 신약성경의 헬라어 본문을 재구 성하면서 삽입한 것이다.
여기서또한 가지 발생하는 문제는, 엄밀히 따지면 TR은 비잔틴 사본과 많은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D.A. 카슨과 박창환 박사는 아래와 같이 말한다.
D.A. 카슨,『킹 제임스 버전 성경의 오류』pp.93~94
비잔틴 본문 형태를 TR과 질적으로 정확하게 대등한 것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 이 점은 대단히 중요한데도 별로 주목하지 않는다. 비잔틴 본문을 증명하는 수천 개의 증거들이 있는 데 비해서 TR은 비교적 후대의 몇몇 사본들에 기초하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물론 TR이 비잔틴 본문 전통의 사본들에 기초하고 있으며 그 일 부를 형성하고 있는 더욱 광범위한 전통과 상당히 근접해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것 자체의 전통의 광범위한 증거로 간주되지 않는 것이 사실이 다. 한 본문 전통 안에서 가장 근접한 사본들이라도 각 장마다 평균 6개에서 10개 정도의 변이들이 존재한다.
박창환,“텍스투스 레셉투스의 정체(正體)”,「성경원문연구」제1호(대한성서공회, 1997), 29.
비잔틴본문(Byzantine Tex, Majority Text) 지지파의 거장으로 Dean Burgon, Z.
C. Hodges 그리고 Farstad 등을 들 수 있는데, 그들도 다수본문(Majority Text)과 텍스투스 레셉투스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특히 Burgon은 다수본문(Majority Text)의 신판(新版)을 내려는 희망을 가졌던 사람인데, 그의 조 사에 의하면 마태복음에서만도 텍스투스 레셉투스가 다수본문(Majority Text)과
150개의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 비례로 나간다면 신약성경 전체에서는 그 둘의 차이가 엄청나지 않겠는가 말이다.
이렇듯, 성서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종합하면“현존하는 사본의 99%가 공인본문을 지지한다”는 정동수 목사의 주장은 사본학적으로 상당히 왜곡된 것이다.
정동수 목사의 보존론은 신뢰할 수 있나?
정동수 목사는 시편 12편 6, 7절을 근거로“하나님의 말씀들words이 킹제임스성경을 통 해 완벽하게 보존되었음을 믿는다”는 소위‘킹제임스성경 보존론’을 주장한다. 킹제임스 흠정역(그리스도예수안에)은 시편 12편 6∼7절을 다음과 같이 번역했다.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니 흙 도가니에서 정제하여 일곱 번 순수하게 만 든 은 같도다.
오 주여, 주께서 그것들을 지키시며 주께서 그것들을 이 세대로부 터 영원히 보존하시리이다.
정 목사는 이 구절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이게 성경보존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에요. 이걸 믿으셔야되요. 하나님께서 영원히 보존해 주신다. 저와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입 에서 나온 모든 단어들, 하나님의 숨이 들어가서 살아있는 모든 단어들을 일점일획까지 하나님이 보존해 주신다는 겁니다.”
정동수 목사는 자신의 보존론을 지지하기 위해 캠벨 몰간(1863~1945)을 언급한다. 정 목사는 캠벨 몰간이 자신의 저서 시편노트에“시편 12편 기자는 6, 7절에서 하나님의 그 순수한 말씀들에 탄성을 지르며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지키시고 영원토록 보존해 주실 것을 선포한다. 7절의 대명사 them은 6절의 말씀들 즉 주님의 입에서 나온 단어들” 이라고 기록하고 있다며 자신의 보존론에 힘을 싣는다.
하지만 캠벨 몰간은 다른 저서를통해 킹제임스성경의 여러 가지 오역을 지적했다. 또한 1923년에 쓴 편지에서“만일 당신이 나에게 신약성경 중에 가장 우수한 번역본이 무엇인지 물어본다면 나는 주저 없이 그것 은 미국 개정역”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4)
정 목사는 캠벨 몰간의 주장 중 자신에게 유리한 부분만 취사선택 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정동수 목사의 보존론은 아이러니하게도 킹제임스성경 번역자들에 의해서 반박이 된다. 번역자들은 영어문법상 7절의 them이 무엇을 받아야할지 혼돈을 일으킬 가능성을 예측해 1611년판 킹제임스성경 난외주에 them이 사람을 가리킨다고 설명해 두었다.5)
5)1611년판 킹제임스성경 번역자들은 7절의 them이 사람을 가리킨다고 난외주로 표시했다.
정동수 목사는 시편 12편에 대해 문법적으로 틀린 해석을 하고 있다. 신현우 교수 (총신대 신약학) 는“히브리어의 남성, 여성형을 구분하지 못하고, 영어 킹제임스의 them을 앞 절의 말 씀을 가리킨다고 오역을 한 것”이라며“‘그들’은 더 앞 절의‘가난한 자들’을 가리킨다고 보아야 성, 수가 일치한다. 한글 킹제임스성경이 히브리어를 참조하지 않고 영어를 오역한 것이 드러나는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최중화 교수부산장신대 구약학는“킹제임스 흠정역의 시편 12편 7절(후반절)의‘보존하시리이다’는 원어도,
영어도, 한국어도 제대로 따르지 못한 번역”이라며“직역해보면‘지금부 터 영원까지 우리를 지켜주십시오’
정도가 올바른 번역”이라고 전했다. 최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킹제임스 흠정역의‘그것들을 … 영원히 보존하시리이다’에서 보존하다는 동사는 히브리어로‘나짜르’이다. 이 동사는 시편에서 종종‘지키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하나님이‘나짜르’하실 때는 지키실 때이다. 하나님이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에서 백성을‘보호하시며’(신32:10),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 인자하심을‘베푸시어’(출 34:7/‘나짜르’가 베푼다고 번역됨), 하나님이 구원의 날에 이스라엘 백성을‘도와 주기도’하시고(사49:8), 하나님이 악한자로부터 지켜주기도 하신다(시12:8, 25:21, 31:24, 32:7, 40:12, 61:8, 64:2, 140:2~5),
지혜문학에서‘근신이 그 백성을’지킨 다고 할 때도‘나짜르’가 쓰인다(잠2:11).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하나님이‘나짜 르’하실 때는 주로 그의 백성이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반면에 사람이‘나짜르’ 할 때도 성경에 나온다. 특히 시편에 자주 나오는데 이때는 주로 사람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때(시78:7, 119:115) 혹은 사람이 율법과 언약을 지킬 때(시105:45, 119:34; 신33:9), 사람이‘하나님의 증거를 지키고’(시119:2),‘교훈’을 지키고(시119:22) 등이다.
정리하면‘나짜르’는 하나님이 쓰면 주로 이스라엘 백성을‘보호 하다’,‘지키다’정도가 되겠고 반면에‘나짜르’가 언약이나, 율법, 하나님의 교훈 과 같이 쓰일때는 주로 사람이 하나님의 언약, 율법, 계명을 지킬 때이다. 이 정도 면 흠정역의 번역이 왜 틀렸는지 분명해진다. 흠정역은 하나님이 말씀을‘나짜르’ 한다고 번역했다. 성경의 용례는 하나님은 사람을‘나짜르’하시지 말씀을‘나짜 르’하시지 않는다. 번역도 엉터리이다.
‘보존하시리이다’는 영어 킹제임스성경의 preserve를 번역한 것이다. 영어로 preserve는‘지키다’,‘보호하다’는 뜻이 있 어서 히브리어의‘나짜르’를 번역하기에 적당한 동사이다. 하지만 흠정역의 문제 는 영어의 preserve를 한국말의‘보존하다’로 번역했다는 것에 있다. 다시 말하 면, 히브리어의‘지키다,’‘보호하다’는 preserve로 번역할 수 있지만, 이를 한국 말의‘보존하다’로 바꾸면 전혀 다른 의미가 되는 것이다. 성경의‘나짜르’는 이 런 뜻이 아니다.
이상에서 살펴보듯 시편 12편을 제시한‘킹제임스성경 보존론’은 문법적으로도 번역상으로도 지지를 받지 못한다.
(없음)이 없음
“(없음)이 없는 성경이 있습니다.”정동수 목사가 킹제임스흠정역(그리스도예수안에)을 홍보하며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주장이다. 정 목사는 개역개정성경 등은 번역 과정에서 본 문을 고의로 누락 혹은 삭제했기 때문에 (없음)이 없는 킹제임스성경 흠정역이 유일하게 온전한 성경이라 말한다. 과연 그럴까?
(없음)은 고의로 누락하거나 삭제한 것이 아니다. 1881년 영국에서 킹제임스성경에 대한 개정이 있었다. 이때 300년 가까이 사용해온 킹제임스성경과의 차이점을 공란으로 표시했 는데, 개역성경은 그 공란을 (없음)으로 표시했다.
현재 한국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개역개정성경에는 13개 구절이 (없음)으로 표시된다.
마17:21, 마18:11, 마23:14, 막9:44, 막9:46, 막11:26, 막15:28, 눅17:36, 눅23:17, 행8:37, 행15:34, 행28:29, 롬16:24
마17:21, 마18:11, 마23:14, 막9:44, 막9:46, 막11:26, 막15:28, 눅17:36, 눅23:17, 행8:37, 행15:34, 행28:29, 롬16:24
개역개정성경의 경우 (없음)에 난외주를 달았다. 위의 13개의 (없음) 중 8개의 (없음)은 복음서에 존재하는데, 누가복음 17장 36절을 제외하곤 병행 본문으로 다른 복음서를 통해 충분히 보충되어 있다. 누가복음 17장 36절의 경우에는 킹제임스성경의 기초가 되었다는 공인본문TR에도 없을 뿐만 아니라, 비잔틴 사본계열 다수본문의 편집본에서조차 찾아볼 수 없다.
권동우 대표킹제임스성경 연구소는“행8:37, 행15:34절은 킹제임스성경에만 존재하는 구절로 현존하는 어떠한 사본의 근거도 없다. 이 두개의 구절이 킹제임스성경에 존재하는 것은 사본학적으로 킹제임스성경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없음)이 없는 성경은 특별하지도 않으며 독자가 신학적, 교리적으로 알아야 할 정보를 추가로 제공해 주지 않는다.
한편, 원래 성경에는 장, 절이 없었다. 엄밀한 의미에서 장과 절의 구분은 15세기와 16세기 사이에 이뤄졌다. 구약은 1227년 영국 캔터베리 대주교 스티븐 랭턴이 라틴어 불가타 역을 이용해 장을 나눴다. 이후 나탄, 로베르 에티엔 등이 절을 구분했다. 독자의 편의를 위해 본문에 숫자가 매겨진 것은 1551년 스테파누스의 네 번째 성경이 처음이었다. 오늘 날 성경은 1560년 판 제네바 성경의 장, 절 구분을 따르고 있다.
킹제임스성경 영어 번역본이 원문의 의미를 모두 담고 있는 유일한 번 역본이라는 정동수 목사의주장에 대해,
하경택 교수장로회신학대학교 구약학는,“킹제임스성경 의 우상화”라 비판한다. 하 교수는“정동수 목사의 주장에서 가장 큰 문제는 하나님의 말 씀이 완전하게 보존되어야 한다는 강박적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어느 특정 번역본을 우상 화하는 것”이라며“어떤 번역이든지 원문의 의미를 모두 담을 수 있는 완벽한 번역은 없다 는 것이 기본 상식이다. 번역문은 원문이 가지고 있는 의미 가운데 가장 적합하다고 여기 는 것을 원문인 원천언어에서 번역어인 수용언어로 옮긴 것이다. 거기에다 킹제임스 영어 성경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것은 다시 한 번 원문의 의미에서 그만큼 간격이 벌어진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킹제임스성경과 한국어 번역성경에 원문의 뜻이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다는 것은 킹제임스성경에 대한 우상화 다름 아니다”고 지적한다. 계속해서 하 교수는 “올바른 신앙생활의 문제는 어느 특정 번역성경을 가지고 있느냐 보다는 어떤 성경관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적용하고 있느냐의 문제가 더욱 크다”며“하나님의 말씀 은 어느 한 번역성경으로 다 담을 수 없는 깊고 넓은 의미를 담고 있다. 그래서 그 의미를 다 살려내기 위해서는 다양한 번역과 해석이 불가피하다. 이러한 다양한 번역본과 다양한 해석을 통해 오히려 하나님의 역사는 더욱 풍성하게 나타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정동수 목사는“어떤 하나의 특정한 본문 형태를 두고 그것이 오류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D.A. 카슨의 충고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사본학적 기초지식이 없는 성도들을 미혹해 킹제임스성경 만이 완전한 성경이라고 주장하는 소위‘킹제임스성 경 우상화’를 멈추어야 할 것이다.
킹제임스성경연구소 사랑침례교회 킹제임스흠정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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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보조2016.04.26 13:15
>>비록『킹 제임스 성경』이 그 시대와 향후 수세기 동안 최고의 영어 번역본이었을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기원에 있어 후대에 속하고 또한 본문에 있어 많은 실수들과 변조들을 담고 있는 열등한 사본들에 기초를 두 고 있다. 오늘날 성경학자들은 이전에 가능했던 것보다 더 이르고 더 정확한 헬라 어 성경들을 제작하고 있다. 그리고 모든 번역자들이 그것들을 사용한다.
답글
...
킹제임스주의자들은 ... 마치 천동설을 주장하는 자들과 방불한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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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적으로 볼때 정동수 목사는 전혀 목회할 생각도 하지 않고 미국에서 우연히 킹제임스 성경을 보니 지금의 개역성경과 너무나 다르더라...교훈적인 몇가지만 다르면 별문제가 없는데 교리적인 구절, 즉 구원에 해당하는 구절까지도 다른 번역에 놀라 파고들었더니 개역성경 보다는 킹제임스판이 더 원문에 가까워 세상에 알리다보니 목사까지 된 사람이고 위의 몇몇교수들은 교수가 되기 전에 먼저 처음부터 바르게 번역된 성경이 무엇인가 킹제임스성경 혹은 타 번역과 비교하면서 아하..개역성경이 훨신 바르게 번역되었구나...를 전제로 신학의 길에 접어 들었는가?를 묻고 싶군요 그렇지 않다면 지금의 위에서 주장하는 내용은 별 큰 문제가 아닌데 만약에 마 1:21에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가 아니고 킹제임스처럼 마 1:21 맏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이 번역이 맞다면 이것은 커다란 교리적인 문제가 되는 것인데.....결론은 맏아들이 맞다는 결과가 여러 다른 구절(히1:6 롬8:29 창 6:4)을 통해 입증이 되는데...이러므로 위의 교수들의 주장은 솔직하게 말하자면 밥그릇 지킬려고 하는 소리같고 정동수 교수(목사)는 밥그릇이 동기가 된 사람이 아니라 개역성경과 킹제임스 성경을 비교분석하다보니 지금의 목사가 된 사람으로 보이니....정동수 목사가 더 믿음직 스럽게 보입니다. 더더욱 정동수 목사는 일일이 수천구절을 비교하여 도표로 제시하는 수고를 했고 위의 몇교수들은 겨우 몇줄 써 올려 (그것도 사실이 아닌 내용으로) 주장을 하니 참으로 자기 밥그릇을 지키고 싶은 생각으로 써올린 글로 보입니다. 끝으로 시편12:7에서 영원까지 보존해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이 문맥으로 볼때 과연 그 윗구절(5절)의 가련한 자들과 궁핍한 자들일까요? 아니면 영원까지 보존해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이 흙도가니에 일곱번 단련한 은 같은 순결한 말씀일까요? 무엇을 영원토록 보존해야 할 가치와 이유가 있는 것일까요? 가련한 자들과 궁핍한 자들일까요? 제발 밥그릇 지키려고 안달하지 마시고 정동수 목사처럼 수천구절을 제시하면서 비교된 도표로 설명해 주신다면 개역성경을 신뢰하겠습니다. 광주에서 개역성경을 가지고 교회다니 면서 킹제임스 성경을 항상 참고로 보는 어느 평신도(류남석) 올림
답글-
주방보조2016.05.19 13:24
^^...번역본이라는 것은 어느 것이나 완벽할 수 없습니다. 사본이라 불리는 것들도 완벽한 것은 없어 보입니다. 원본은 없습니다. 이런 전제하에...
가장 원본에 가까운 사본이 어느 것이냐 하는 문제는 이미 어느정도 결과가 나와 있습니다. 번역본이 비교적 온전하려면 가장 원본에 가까운 사본을 텍스트로 택해야만 가능합니다. 킹제임스라는 영어번역본은 그 텍스트로 사용한 사본들이 일단 원본에 더 가까운 사본들이 발견되기 전에 사본들을 참고로 한 것입니다.
그리고 번역본을 무흠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일단 잘못된 것에다가
원본에 덜 가까운 사본을 텍스트로 한 번역본을 완벽하다고 하는 것은
오로지 그 목사님의 무지함에 기인한 것일 따름입니다.
사본들의 오류...들에 대하여는 수천구절 정도가 아니라 수십만구절이 비교되어 연구되어 왔습니다. 그런 연구를 무시하고 킹제임스만이 옳다고 우기는 것은 ... 지식이 아니라 사이비신앙과 같은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번역본은 그 어느것이든 완전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이중번역...즉 번역본을 번역한 것이 완전하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그러므로...우리 평신도들이 성경을 공부할 때는 여러가지 번역본을 동등한 가치를 두고 참고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히브리어나 헬라어를 깊이 공부하여 통달할 것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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