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우리/성경에 대하여

성경의 역사(무물펌)

주방보조 2015. 3. 11. 18:41

▶ 성경의 역사.

 

현재 신약의 사본으로 부분적이나 혹은 전체적으로 발견되어진 헬라어 사본은 모두 합하여 무려 5000개가 넘는다고 한다.

그 많은 사본중에서 놀랍게도 모두 동일한 기록이 거의 없으며 조금씩 다르다는 것이다. 물론 그 차이는 매우 미미하지만 모든 사본들은 조금씩의 다른 점들이 있다는 것인데, 그 첫 번째 이유는 모든 성경사본들이 모두 필사본으로 전하여졌기 때문이다.

필사본을 다시 필사하고, 그 필사본을 다시 필사하고.....이것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기록들은 조금씩의 차이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고등비평론자와 불신자들은 성경이 조작되고 변질되었을 가능성에 대해서 말한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해서 성경은 절대로 조작되지 않았으며, 현대과학은 성경사본에 대한 어떤 조작이 있을지라도 그것을 밝혀낼 수가 있다.

지금도 수많은 전문가와 학자들이 이 수많은 성경의 사본을 서로 연구 조사하고 비교하여, 보다 원본에 가까운 성경을 찾으려는 시도가 오랫동안 계속되었으며, 현재까지도 그 작업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작업을 우리는 “본문비평”(Textual Criticism)이라고 부른다.

 

초기의 신약성경사본은 초서체 사본이라고 불리는 소문자로 기록되어 있었으며, 부분적인 단편으로 발견되어졌다.

300년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가죽 위에 깨끗하게 성경사본이 책으로 묶여 만들어졌으며, 이를 언셜체 사본이라고 하며 대문자 사본이라고도 한다.

이러한 수많은 성경사본을 서로 비교하고 연구하며 검토함으로써, 보다 원문에 가깝게 접근하려는 것이 바로 본문비평인 것이다.

더욱 많은 사본을 서로 비교하고 연구함으로서 우리는 좀더 원문에 접근할 수가 있다.

이러한 본문비평의 기준은 개인마다 다 다르지만, 글리슨 아셔의 제안이 가장 일반적이라고 알려져 있다.

 

  1. 더 오래된 문헌이 우선적이다.

  2. 보다 난해한 문헌이 우선적이다.

  3. 보다 짧은 문헌이 우선적이다.

  4. 상위본을 가장 잘 설명해 주는 문헌이 우선적이다.

  5. 가장 광범위한 지역적 뒷받침이 우선적이다.

  6. 저자의 문체와 용어가 일치하는 문헌이 우선적이다.

  7. 교리상으로 편견을 노출시키지 않는 문헌이 우선적이다.

 

즉 본문비평의 외적증거는 세 가지의 기본변형으로 시작된다.

즉 연대별, 지역별, 계보별인데 문제는 원본이 남아있지 않다는 점이다.

예를 들자면, 때로 두가지의 계열의 사본중 어떤 것이 원문에 가깝느냐는 것을 결정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임에 분명할 것이다.

이러한 본문비평을 위하여 발견된 모든 헬라어 사본과 또 다른 말로 번역된 고대번역판(시리아어, 라틴어, 콥트어등)과 초대교회 기자들에 의해 기록된 신약의 인용문등을 참고하기도 하며, 때로는 초대교회에서 사용하던 성구집등을 참조하기도 한다.

 

어쨋든 보다 원문에 가까운 성경을 찾으려는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어지고 있다.

 

▶ 신약의 사본

 

1600년대 초, 제임스1세는 레이놀즈라는 학자의 주장을 전적으로 수용하여 성경을 번역하도록 하는데, 그 왕의 이름을 따서 그 번역본을 킹제임스역이라고 부른다.

소위 알렉산드리아 계열의 사본이라고 불리는 성경이 출간되기 이전은, 킹제임스성경(KJV. 흠정역)은 가장 권위가 있었으며, 특히 그 언어적인 표현은 매우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킹제임스는 1611년에 인쇄된 것과 일치하지 않는다.

17세기의 영어는 너무 고어로서 현대에 거의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개정을 거듭하였다.

 

그런데 킹제임스성경은 최근의 알렉산드리아 계열의 사본들의 잇달은 발견으로 인하여, 본문비평상의 문제가 대두되어 성경이 다시 번역되어질 필요성이 있게 된다.

그전까지는 킹제임스 역은 “텍스투스 리셉투스”(공인본문)이라고 불려졌으며, 사실 그러한 용어는 킹제임스성경 광고문 서두에 선전의 문구로서 실렸던 용어임에도 불구하고, 권위와 존경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수정하거나 비판하려는 것은 신성모독과 같은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 킹제임스 성경은 코이네(Koine=Common)라고 불리는 계열의 사본을 번역한 것인데, 그러나 킹제임스를 번역한 헬라어 사본은 소수의 사본이며, 대부분 후기의 것이었고, 공식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은 소수의 증거물에 의한 것이었다.

 

마침내, 1885년에는 영어개역(English Revised Version)과 1901년에 미국표준역(American Standard Version)이 출간되었으며, 신약성경의 번역자들은 가장 최근에 발견된 헬라어 사본들로 본문비평을 하여 출간하였다. 그러나 단점으로는 영어 어순보다는 히브리어나 헬라어 원어의 어순을 그대로 번역하였기 때문에, 다소 거칠고 매끄럽지 않은 언어적 표현이라는 평을 받았다.

그래서 후에 새개정표준역(New Revised Standard Version)이라고 하는 영어성경이 출간되었으며, 그 영어의 표현은 현대적이며 훌륭한 번역을 하였다고 평을 받지만, 그러나 구약본문에서 번역상 신뢰도가 떨어진다는 평을 받게 된다.

그래서 마침내 다시 출간된 번역본이 국제역(New International Version = NIV)이다.

NIV 영어성경은 많은 훌륭한 복음주의 학자들에 의해서 만들어 졌다. 이것이 본문에 가장 충실하다는 평을 받게 되며, 오늘날 우리가 널리 받아들이는 영어성경 번역본이 되며, 한글 개역성경과 같은 종류의 번역본이 되어진 것이다.

 

▶ 알렉산드리아 계열의 사본

 

그렇다면 왜 권위있는 킹제임스 성경외에 다른 성경번역이 필요하게 되었을까?

하나의 신약성경사본이 발견되었는데, 이것이 금세기 성경사의 가장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15세기(1475년) 바티칸 학자들은 바티칸도서관에서 오래된 도서들을 정리하고 분류하다가 한 사본을 발견하였다.

이 사본이 양피지에 기록된 대자체(대문자체) 중에 가장 오래된 사본으로 판명되는데, 이 연대는 AD 325-350년경으로 밝혀진다.

이 사본을 바티칸사본이라고 부르는데, 이 사본은 대부분의 구약과(70인역) 헬라어로 된 신약과 일부 외경까지 포함하고 있었다.

이 사본은 창세기1:1-46:28, 열왕기하2:5-7, 10-13, 시편106:27-138:6, 히브리서9:14-계시록 끝까지가 부분적으로 유실되어져 있었지만, 거의 보존되어 있었다.

또한 마가복음16:9-20과 요한복음7:58-8:11은 삭제되어 있었는데, 그 외에는 거의 완벽한 보존을 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학계에 비상한 관심을 불러 일으키게 된다.

이 사본이 그 당시에 발견된 가장 오래된 대문자 사본으로, 일명 B사본이라고 불리워지며, 전 세계의 성경학자들의 관심을 집중시킨다.

 

또 그후 1844년에 성경사본의 역사 중에서 가장 극적이고 흥미로운 일이 벌어진다.

독일의 백작, 티센도르프가 1844년에 시내산에 있는 성캐더린 수도원에 묵고 있을 때에, 그 방에서 성경 양피지 43매와 불을 붙이는데 사용되는 불쏘시개 중에서 70인역의 일부분인 역대상, 예레미야, 느헤미야, 에스더등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을 어디에서 구하였는가”라고 묻는 티센토르프에게 성캐더린 수도원의 수도사는 말하기를, “이미 두 양동이 정도를 태워 버렸노라”고 말하였다.

티센도르프는 이 사본을 정리하고 보관하여 독일로 가져와 번역하여 “프레데리코 아우구스타누스 사본”이라고 이름 불리는 저서를 출간하게 된다.

그 후 1859년, 그는 세 번째 수도원을 방문하여 거의 완전히 보관된 300년대에 필사본 되어진 성경사본을 발견하게 된다.

물론 티센도르프로부터 그 양피지가 중요한 것임을 알게된 수도사들은 더 이상 그에게 양피지를 내놓지 않았는데, 티센도르프가 자신이 발간한 번역사본의 책을 어느 한 수도사에게 선물하자, 그 수도사도 자신이 갖고 있는 한 권의 성경을 티센도르프에게 보여주게 된다.

티센도르프는 그날 밤을 새워 그 성경 필사본을 읽는데, 훗날 그는 “잠을 자는 것은 신성을 모독하는 것 같았다”라고 고백할 정도였다고 한다.

다음날 티센도르프는 그 사본을 돈을 주고 사려고 했으나, 그 수도원은 완강히 그것을 거부하였고 티센도르프는 수도원에서 차용증의 각서를 써주고 그것을 잠시 빌려오게 된다.

(훗날 수도원측은 테센도르프가 성경을 잠시 빌려간다고 서명날인한 문서를 제시하며, 차용한 것이므로 돌려 주어야만 한다고 하며 주장하였다고 한다.)

이 사본이 시나이사본이라고 불리우는데, 마가복음16:9-20, 요한복음7:58-8:11을 제외한 신약성경 전체와 바나바 서신서와 헤르마스 목자서를 제외한 전구약 외경서와 구약(70인역)의 절반 이상이 기록되어 있었던 것이다.

티센도르프는 이것을 갖고 와서 러시아 황제에게 선물하였고, 그 대가로 성캐더린 수도원은 러시아황제로부터 훈장과 약간의 돈을 받았을 뿐이었다.

훗날 러시아는 혁명후 재정이 궁핍하여지자 돈이 필요하였고 성경에는 관심이 없었으므로, 영국정부는 1933년 크리스마스 전날에 러시아로부터 십만루블(US$500,000)에 그 사본을 사들여 현재 대영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다.

그 돈은 대영박물관에서 반을 충당하였고 반은 영국의 개인과 교회, 혹은 미국사람들의 기부금으로 충당되었다고 한다.

 

이 시나이 사본은 앞서 말한 바티칸 사본과 매우 유사한 내용을 갖고 있으며, 그 뒤에 발견된 알렉산드리아 사본(대영박물관 보관)과 에브라임 사본(파리국립박물관 보관)등과 함께 알렉산드리아 계열의 사본이라고 불리워지는데, 현재 우리가 보고있는 개역성경의 모체가 되어진다.

이 알렉산드리아 계열의 헬라어 성경사본은 어느 면으로 치우치지 않았다고 하여 “중립본문”이라고도 불리워지며, 우리가 지금 보는 개역성경과 NIV영어성경의 근본이 되며, 그 신약성경의 본문비평은 티센도르프, 웨스트코트, 호르트등이 이루어 놓은 작업으로 분명한 기초를 받을 수 있었으며, 그 외에도 많은 자료들을 총괄하여 검토한 결과, 알렉산드리아계열의 본문이 가장 원문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게된다.

 

최근에는 이집트 땅속에서 파피루스 더미가 발견되었는데, 체스터 비티 파피루스라고 불리는 더미에서 신약의 많은 부분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 연대는 놀랍게도 AD 200년대로 보며, AD 125년경으로 추정되는 라일란드 파피루스는 비록 작지만 신약본문에 대한 아주 가치있는 증거자료가 된다.

이것도 알렉산드리아 계열의 본문과 일치하며, 보드머 파피루스라고 불리는 요한복음 본문들도 알렉산드리아 계열의 본문을 중립본문으로 굳혀 주고 있다.

 

이러한 고대사본들의 발견은 킹제임스성경 외에 또다른 성경의 발간을 필요로 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최근에 발견된 사본들로부터 원문에 더욱 접근하려는 본문비평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만일 최근에 발견된 알렉산드리아 계열의 사본보다 다 연대가 오래 되고, 더 보존상태가 좋으며, 더 많은 성경사본들이 발견된다면, 당연히 또 다른 성경의 발간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성경원본이 있다고 할지라도, 지금의 번역 성경과 거의 오류나 틀림이 많지는 않을 것이라고 학자들은 말한다.

1881년 본문비평작업에 직접 참여한 웨스트코트와 호르트는 이렇게 말하였다.

 

     “비교적 사소한 것들을 제쳐 둔다면 우리가 생각하기에 여전히 의심을

      받고 있는 표현들은 전체 신약성경의 0.1%도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세계 최고의 신약성경사본을 티센도로프에게 빌려주었다가 그만 빼앗긴 성캐더린수도원은 얼마나 억울하였을까? 그것을 돈으로 환산할 수는 없겠지만, 과연 그 가치는 어느 정도일까?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여 6억원이란 돈으로 대영박물관은 그 사본을 러시아정부로부터 사들였는데, 그 당시의 화폐가치로 본다면, 아마 10배 이상의 환차가 있다고 보아야만 할 것이다. 그렇다면 60억원...!!

 

그런데 그 후 1975년 9월, 수도원 측은 보수공사를 하기 위하여 한쪽 벽을 허물고 공사를 하던 중에, 벽과 벽 사이의 작은 틈에서 거의 완전하게 보존된 성경을 무려 수십 상자를 발견하게 되는 사건이 생겼던 것이다.

수도원 측은 이것을 외부세계에 극비로써 엄격히 통제하였으나, 1977년 독일의 한 신문이 이 사건을 알게되어 기사화한 후로부터 외부로 알려졌으며, 그로부터 수도원측은 이를 철저히 경계하며 삼엄하게 보관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학교의 교수나 학자들에게만 사전에 특별한 예약이 있어야만 오직 30분이라는 시간을 제한하여 단지 구경만 할 수가 있을 뿐이며, 현재는 보존을 위하여 마이크로 필름으로 제작하여 공개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 수도원은 551년에 세워진 동방정교측의 수도원이며 현재 3000점의 고대성경사본과 5000권 이상의 희귀한 성경사본을 보관하고 있는 곳으로 유명하며, 세계에서 바티칸에 이어 두 번째로 귀한 성경사본과 성화, 유물등을 많이 보관하고 있는 곳이다.

 

▶ 킹제임스성경

 

킹제임스 성경은 1611년 영국 제임스 국왕에 의하여 성경번역을 하였으므로 “킹제임스”라고 불리운다. 우리는 킹제임스에 대해서 논하기 전에 먼저 TR 본문이라는 것에 대해서 알아야만 한다.

킹제임스는 TR 본문을 영어로 번역한 성경이기 때문이다.

TR의 기원은 중세의 인문주의자요, 신학자인 에라스무스(Desiderius Erasmus ; 1469- 1536)에서 시작된다.

그 당시까지 시중 판매용으로 제작된 헬라어 성경은 전무하였다. 그래서 프로벤(Johann Froben)이라는 인쇄업자의 종용으로 에라스무스는 거액의 돈을 받기로 하고 헬라어 성경 편집 작업을 하기로 하고였으며, 영국의 케임브리지 대학과 스위스 바젤에서 헬라어 사본을 수집하였지만, 실망스럽게도 12세기경의 것으로 발견된 사본 5권밖에는 입수하지 못했다.

그 뿐만 아니라 그가 입수한 사본 가운데 요한 계시록을 포함하고 있는 사본은 단 한 권뿐이었고, 그것도 마지막 6절을 포함하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에라스무스는 부득이 라틴어 불게이트 (Vulgate) 성경에서 번역을 하여 그 부분을 다시 라틴어에서 헬라어로 번역하여 보충함으로서, 헬라어 성경을 시중에 발간하게 된 것이다.

(필자주 - 말씀보존학회의 주장이 무엇인가? 킹제임스 성경만이 보존된 하나님의 성경이라고 말하는 것은, 에라스무스가 TR 번역에 참고한 6권의 12세기 경의 헬라어 사본만이 참 성경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 얼마나 우스운 생각인가?)

 

에라스무스의 헬라어성경이 1515년 10월2일에 시작된 인쇄가 1516년 3월1일에 완성되었다.

1,000 페이지 가량 되는 방대한 작업을 너무 급히 인쇄했기 때문에 초판은 오자가 엄청나게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헬라어 성경 출판은 대성공이었다고 한다.

마틴루터가 독일어로 성경을 번역한 것은 그의 2판이었다.

에라스무스의 헬라어 성경은 그 후에도 스테파누스 (Stephanus), 베자 (Beza), 엘제비르 (Elzevir) 등을 통해 여러 차례 개정되었다.

특히 엘제비르 형제는 그들이 개정한 2 판(1633)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이제, 우리는 보편적으로 수용되고 있는 본문(Textus Receptus)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서 TR(Textus Receptus: 표준원문)이라는 말이 생기게 되었고, 그래서 KJV(킹제임스)의 신약 부분이 TR에서 번역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즉 킹제임스성경이 마치 누구나 인정하는 공인된 표준원문(TR)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즉 TR이라는 단어는 킹제임스가 아니라, 에라스무스의 헬라어성경을 엘제비르 형제라고 하는 사람이 개정하여 발간한 책의 광고서문이었던 것이다.

 

에라스무스 이후, 테오도르 베자(Theodore Beza)도 1565년부터 1604년까지 무려 아홉판 이상의 헬라어 신약을 수정 출판했고, 1611년에 나온 제 10판은 사후의 편집이다.

이 베자가 편집한 희랍어 신약 성서는 '표준원문'을 대중화하고 정형화하는 역할을 하였다.

1611년의「영어 흠정역 성서(The Authorized or King Kames Version)의 신약 번역의 대본이 되었던 것도 바로 베자가 1588~1589, 1598년에 편집한 「희랍어 신약성서」였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킹제임스 성경은 그 역사가 오래 되고 권위가 있는 사본에서 번역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12세기의 것으로 알려진 몇 개의 사본에서 번역을 한 것이기 때문이다.

즉 1611년에 번역된 킹제임스 성경은 그 당시 전혀 새로운 성경이 아니라 이전의 번역판을 개정한 것뿐이었고, 제임스 왕이 그 권위를 인정했다하여 흠정역(Authorized Version)이라고 불린다.

이 성경이 아름다운 번역으로 오랫동안 사용되어 온 것은 사실이지만, 그 제한적인 사본으로 인하여 성경 번역의 정확성과 성경의 원뜻을 정확하게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반면에 우리가 보는 개역성경과 NIV 영어성경은 시내사본과 바티칸사본등을 사본과 가장 최근에 발견된 많은 사본들을 참고하고 비교하여 번역한 것으로, 최소 AD 300년경의 연대를 갖고 있으며, 거의 완벽한 원문이 그대로 보존된 사본에서 번역된 것으로 가치가 있다.

물론 몇권의 사본에서 번역된 것이 아니라, 상당히 많은 사본에서 서로 비교, 연구되어자며, 당대의 성경학자와 언어학자등 전문가들이 대거 참여하게 된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신약학자 죠지 래드(George Ladd)의 말을 들어보자.

죠지 래드는 성경 헬라어와 교부 헬라어로써 박사학위를 받은 학자로서, 신뢰할 수 있는 신약성경학자이다.

 

- 이른바 흠정역(欽定譯) 'Autorized Version' 이라는 것도 사실상 그 자체는 그 이전의 번역판들을 개정한 것으로 1611년 제임스 왕이 권위를 인정한 것으로 Erasmus의 그리스어 텍스트를 기초로 한 것이다. 에라스무스가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은 겨우 6개의 후기의 빈약한 그리스어 사본 뿐이었으므로 많이 애용되어 온 흠정역에 있는 재료는 3세기 이상이나 영어를 사용하는 세계의 성경으로는 매우 불명확한 것이다. 사실상 Erasmus도 그 가치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장 좋은 그의 사본도 전부 사용하지 않았다…. 만일 Erasmus가 그것(시내산 사본)을 볼 수 있었다면, 지금의 흠정역 성경은 의심할 여지없이 좀더 정확한 텍스트가 되었을 것이다.ꡓ(George E. Ladd, The New Testamentand Criticism)

  

횃불 트리니티신학대학원의 장두만 교수의 글을 인용해 본다.

- KJV은 1611년에 번역된 성경이다. 언어는 역사성이 있기 때문에 시간이 경과하면 그 의미가 변화된다. 약 400년이 경과하면서 단어의 의미가 바뀐 경우도 많이 있고, 1611년 이후에 성서 고고학은 물론 다른 학문도 급격히 발달되어 성경의 배경이나 단어의 의미가 분명히 밝혀진 경우도 많이 있다. 사본의 수도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엄청나게 많이 있다. TR의 원형인 에라스무스의 헬라어 성경이 겨우 5권의 사본을 사용해서 편집된 것임에 비해 지금 우리는 약 5,400여 권의 헬라어 사본을 가지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모든 것들을 무시해 버리고 킹 제임스 유일론을 주장하는 것은 시대착오적 망상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전반적으로 볼 때 KJV은 좋은 번역이고 믿을 만한 번역이다. 그러나 그것도 역시 번역판이기 때문에 오류가 상당히 많다. 우리가 성경의 영감을 말할 때 그것은 원본에만 국한시키지 결코 사본이나 번역판에까지 확대해서 적용시키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모든 사본과 번역판은 다소간의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장두만, 목회와 신학, 98년 7월호)

 

좀더 구체적인 사항에 대해서는 “사본학”이라는 책을 참고하여 보자.

 

- 에라스무스는 전부 헬라어로 된 성경사본을 찾지 못했으므로 신약의 여러부분에 대해 몇몇 사본을 사용했다. 대개의 본문을 위하여 그는 바젤의 수도인 수도원에 있는 질이 좀 떨어지는 두 사본에 의존하였는데, 이들은 복음서 중 하나와 사도행전과 서신들 중의 하나로서 둘다 12세기의 것이었다.  에라스무스는 이것들을 두세개의 다른 책들과 비교하였고 헬리어 사본의 선과 선 사이나 여백에 인쇄자를 위하여 경우에 따라 교정을 하였다. 계시록을 위해서는 12세기의 단 한권의 사본 밖에 없었는데, 그는 그것을 그의 친구 로이힐린에게서 빌렸다. 불행히도 이 사본은 그 책의 마지막 6개 구절들이 있는 마지막 장이 빠지고 없었다. 이러한 구절들을 위해서 요한계시록의 헬라어 본문이나 그리스어 주석으로 사본이 보충된 책에는 곳곳에 있는 몇몇 다른 구절들이 거의 분간 할 수 없도록 혼합되어 있는 것같이, 에라스무스는 라틴역에 의존하여 이 본문을 헬라어로 번역했다. 그러한 절차에서 기대된 것과 같이 여기저기에 에라스무스 자신이 만든 헬라어 본문은 어떤 알려진 헬라어 본문에서도 한번도 볼 수 없는 이문(異文)들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소위 말하는 헬라어 신학의 텍스투스 리셉투스(Textus Receptus)라는 인쇄물에서 오늘날에도 계속하여 영속되고 있다.

(사본학 124페이지, 브루스 M. 메쯔거 저, 기독교문서 선교회)

 

- 신약의 다른 부분에서도 에라스무스는 때때로 그의 헬라어 본문에 라틴어에서 취한 재료를 소개했다. 또 사도행전9:6에서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회개할 때 물은 질문, “그리고 그는 떨면서 놀라 말했다. 주님, 저에게 무엇을 하려 하시나이까?” 는 (우리 말 성경에는 이 부분이 없다) 솔직히 말해서 에라스무스 가 라틴역에서 가져와 삽입한 것이다. 다른 헬라어 사본에는 없는 이 부가물은 (행22:10의 병행설화에는 보이나) 1611년에 만들어진 흠정역에서 부활되었다.(사본학 125 페이지, 브루스 M. 메쯔거 저, 기독교문서선교회)

 

▶ 구약성경의 사본

 

신약성경에 비하여 연대가 오래된 구약성경의 사본은 사실 거의 없는 실정이다.

그런데 이들은 성경을 필사본할 때에 거의 실수나 오류가 없도록 극도의 주의를 기울이며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기에, 필사본에 의한 오류가 매우 적다는 것이다.

신약과 달리, 이 구약성경사본을 필경하는 전문필경사가 있었다는 것도 오류가 적다는 이유를 입증하여 준다.

성경필경사는 성경을 필사하고 있는 도중에 왕이 들어와도 그것을 중단하지 않았다고 한다.

유대인들에게 구약성경자체가 곧 거룩한 유일신 여호와의 말씀이기 때문에 신중에 신중을 거듭하였으며 낡아지고 파괴되어진 성경은 그 자체가 모독적이었으므로, 그들은 그 성경을 완전하게 폐기처분시켜 나갔기에, 사본의 발견이 용이하지 않았던 것이다.

가장 권위가 있는 구약의 맛소라사본이 AD 10세기 이전의 것이 단지 몇 편에 지나지 않으면서도 권위를 갖고 있는 이유가 바로 그것에 있다.

즉 매우 오래된 연대를 뛰어넘어 비교를 하여도 거의 오류가 없이 동일하다는 것이다.

또한 이 맛소라 사본의 완전성을 지지하여주는 다른 이유는, 주전 3세기와 2세기 사이에 제작된 70인역과 비교할 수 있기 때문이다.

 

70인역은 기원전 250년경 이집트의 왕인 프톨레미 2세의 명령에 따라 히브리어로 기록된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것이며, 또 번역성경은 AD 200년경에는 고대 라틴어로 번역되었고, 400년경에는 불가타역이라고 하는 라틴어로 번역이 되어 전하여 졌다.

70인역은 히브리어를 헬라어로 번역한 구약성경이며, 예수님과 사도들이 직접 사용한 성경이라는 점이며(기원전 250년경부터 번역되어 그당시 유대인들에게 널리 사용되었으므로), 또 실제로 예수님과 사도들이 신약성경에서 인용한 많은 구약의 헬라어 구절은 이 70인역의 본문과 동일하게 일치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예수님과 제자들도 70인역의 성경을 직접 인용하였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히브리 구약성경사본은 10세기 이전의 것이 거의 발견되어있지 않고 있다. 그렇기에 앞서 말한 바티칸사본이나 시나이사본의 가치는 AD 4세기의 연대를 가지므로서, 신약뿐 아니라 구약에서도 아주 중요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구약성경사에서도 한 획을 긋는 금세기 최고의 극적인 사건이 벌어진다.

 

1947년 3월, 모하메드 아디브란 아랍의 양치기 소년이 여리고 남쪽 사해서편의 쿰란동굴에서 잃어버린 염소를 찾다가 가죽두루마리를 담은 항아리를 발견하게 된다.

그 양치기는 잃어버린 염소를 찾다가 여태껏 발견되지 않았던 뚤려있는 구멍을 발견하게되고, 혹시 그 구멍에 염소가 빠지지 않았는가 생각이 들어 돌을 던져보게 되는데 항아리가 깨지는 소리를 듣고 호기심이 들어서 그 동굴 입구를 찾게되고, 그곳에서 고대 히브리어가 기록된 몇 개의 가죽두루마기를 찾게 된다. 

그 양치기소년은 몇푼의 돈을 받고 그 가죽 두루마리를 한 아랍의 골동품 상인에게 팔았고, 1947년 11월23일, 아랍상인은 그것을 귀한 가치의 성경사본임을 알게되었고, 그것을 팔기 위하여 성경학자를 찾던 중, 히브리대학의 수케닉이라는 교수에게 전화를 걸어 그를 만나려고 접촉한다.

그 당시는 이스라엘과 아랍은 중동분쟁중이었기에 매우 위험하였고, 수케닉은 이스라엘군의 사령관이었던 아들에게 이 문제를 상의한다.

그 아들이었던 야딘은 “아들로서는 가지않기를 원하며, 사령관으로서도 가지 않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의 고고학자로서는 가십시요.”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다.

결국 수케닉교수는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그 아랍상인을 만나게 되며, 그 두루마기를 구입하게 되며, 그 두루마리를 구입한 후에, 수케닉교수는 훗날 누군가에게 4개의 두루마기가 더 있다는 전화를 받게 되지만, 그 후로는 소식이 끊겨진다. 

그 후에 그 4개의 더 발견된 두루마리가 시리아정교회의 사무엘 대주교에게 전하여지고, 그에 의하여 수백만달라를 홋가하며 미국으로 건너가게 되지만 너무 비싼 가격으로 소문만 무성하고 팔리지 않게 된다.

수케닉교수는 1953년 죽고, 마침 수케닉교수의 아들, 야딘이 사령관을 그만 두고 아버지의 뒤를 받아 고고학자가 되어 1954년 미국에 건너가게 되었다가, 아버지의 염원이며 꿈이었던 그 4개의 두루마리에 대한 소식을 듣고 그것을 25만달러에 흥정하여 구입을 눈 앞에 두게 된다.

그러나 그러한 거액의 돈이 없었던 그는 이스라엘 정부에 급히 전보를 치게되며, 이스라엘 수상으로부터 “이스라엘 정부에서 지불을 보증할 것”이라는 전보문을 받음으로, 마침내 그것을 구입하게 된다.

그 후 1967년 야딘은 8번째의 사해사본을 구입하는데 성공하며, 이 사본들은 사해사본 박물관의 “책의 전당”에 소중히 보관되어 있다.

수케닉과 그의 아들 야딘의 성경에 대한 성경말씀의 집착은 감히 본받을만 하다.

 

그로부터 학자들은 1956년까지 11개의 동굴을 정밀하게 탐사하여 수천개의 필사본 단편을 포함하여 대략 600부의 성경필사본을 발견하게 되며, 구약성경사에 한 획을 긋는 엄청난 발견이 시작되어진 것이다.

 

그 동굴은 유대인의 한 종파인 엣세네파의 도서실로 판명되어지는데, 그들은 서기전 1세기부터 공동체를 이루어 생활하던 소위 종말론자들이었다.

이들은 결국 AD68년 로마에게 멸망당하는데, 이들은 로마가 쳐들어오자 대대로 보관하던 구약성경과 문헌들을 질그릇항아리에 넣어 동굴 속에 감추어 놓은 것이었다.

 

현재 히브리어 구약성경 사본은 서기 10세기의 것이 가장 오래된 것인데, 이 사해사본은 구약의 역사를 약1천년을 앞당긴 희대의 발견이 된 것이다.

이 사해사본에는 BC 4세기경의 것으로 보이는 사무엘서 단편도 발견되어진다.

탄소동위원소에 의한 연대조사는 사해두루마리가 BC168년에서 AD233년 사이임을 밝혀주고 있으며, 기록양식과 철자법, 고문서학적인 조사는 사본의 일부가 BC 100년 이전의 것임을 밝혀주고 있다.

이 사해문서가 발견된 직후, 많은 기독교와 유대교의 학자들은 현재의 성경이 “혹시 조작되고 변질될 수도 있는 가능성” 때문에 상당히 두려운 마음을 갖었다고 한다.

 

사해문서의 조사에 참여한 아셔라는 학자는 “제1동굴에서 찾은 이사야서는 지금의 성경과 95%가 동일하며 그 5%의 다른 점도 대부분 약 일천 년간에 걸쳐 변화되어진 철자법의 차이로 야기된 것”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밀러 부로우스는 그의 저서 “사해두루마리(The Dead Sea Scrolls)”에서 “거의 일천년이나 되는 기간에서 변경된 것이라고는 거의 미미할 정도”라고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조작이나 편집이 없이 이렇게 보존되었던 것이다.

 

▶ 정경화

 

정경이라는 말은 Cannon이라고 하며, 표준, 잣대라는 의미를 갖는다.

초대교회에서 교회는 성경의 정경화라는 작업이 필요함에 동의하게 되었다.

그 이유는 마르시온이라는 영지주의자가 누가복음과 바울의 서신문 일부등 몇권의 성경만을 임의로 포함시키고, 자신의 저서(댓구)를 성경으로 첨부시켜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 계기가 되었으며, 수많은 외경과 위경, 이단들의 책과 저자를 알 수 없는 변질되고 조작된 책들이 초대교회에 난무하게 되었던 것이다.

신약성경의 대부분은 예수님 후, 사도들에 의하여 1세기 후반에 기록된 것이다.

책의 대부분은 서신문의 형식이었으며, 특별한 지역교회로 보내진 것이었다. 예를 들면, 빌레몬서나 요한이서, 요한삼서는 개인에게 보내진 서신이며, 동부아시아에는 베드로전서, 서부아시아(터어키지역)으로는 요한계시록이 보내졌으며, 로마에는 로마서가 보내졌으며, 고린도전후서나 갈라디아서와 같이 어느 특정한 교회앞으로 보내진 서신문이 대부분이다.

즉 각 지역에 보내진 신약성경의 사본을 모두 모아 하나로 묶는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며, 그것들이 성경으로 집결되는데에 상당한 시간이 걸렸음을 시사한다.

또한 누가복음 1장이 밝혔듯이 문서를 기록한 사람들이 매우 많았다는 사실이다.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 되고 일꾼 된 자들의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눅1:1-2)

 

즉 각 지역에 보내진 서신문들이 하나로 묶여지고, 많은 사람들이 문서를 기록하기 시작했고 그 문서들 중에 몇 개의 문서가 초대교회에서 읽혀지는 책으로 채택되기 위하여서는 다소 시간이 걸렸을 것이라는 추측은 지극히 당연하다.

영지주의자들과 신비주의자들, 금욕주의자들과 거짓 이단들은 자신들의 교리를 합리화시키기 위하여 위조되고 변질된 사도들의 증거가 필요하였을 것이다.

그렇기에 바울은 자신의 이름이나 사도의 이름으로 기록된 서신이라 할지라도 거짓서신이 아니라는 증거나 표적을 번드시 알려야만 했다.

 

“혹 영으로나 혹 말로나 혹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쉬 동심하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아니할 그것이라”(살후2:2)     

 

“나 바울은 친필로 문안하노니 이는 편지마다 표적이기로 이렇게 쓰노라”(살후3:17)

 

주후 1세기가 지나고 사도들이 죽자, 신약성경의 표준이 없어지게 된다.

공중집회의 예배문서의 기준이 없어진 것이며, 위조문서와 사도들의 기록이라고 하는 문서들이 마구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였다.

특히 이단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기준으로 성경을 채택하였던 것이다.

 

바울은 고전14:37d0서 “만일 누구든지 자기를 선지자나 혹 신령한 자로 생각하거든 내가 너희에게 편지한 것이 주의 명령인 줄 알라”라고 말하였다.

또 성경에서 바울은 자신의 서신을 교회의 회중에서 읽으라고 말하였다.

 

“내가 주를 힙입어 너희를 명하노니 모든 형제들에게 이 편지를 읽어 들리라”(살전5:27)

   

“이 편지를 너희에게서 읽은 후에 라오디게아인의 교회에서도 읽게 하고....”(골4:16)

 

즉 이미 바울은 자신의 서신이 공중예배에 읽히고 있음을 이미 알고 있었고, 위조된 적이 있었던 것도 이미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와 비슷한 이야기는 베드로도 말하고 있으며 베드로도 바울의 서신을 인정하고 있었고, 몇몇 사람들이 바울의 서신 중에 어려운 것을 억지로 푸는 것을 경고하고 있었던 것이며, 베드로 역시 바울의 서신문이 널리 읽혀지고 있음을 알고 있었으며, 바울의 서신을 “다른 성경과 같다”고 표현하고 있다.

 

“우리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벧후3:15-16)

 

다른 성경과 같이....에서 “성경”이란 단어는 헬라어 “그랍헤”로서 그 당시의 성경, 즉 구약성경을 말한다. 베드로는 바울의 서신문을 구약의 성경과 같은 권위로 간주하였던 것이다.

그 성경적인 근거를 보면, 이 “그랍헤”라는 단어는 신약성경에서 사용되어질 때에 거의 대부분 구약성경을 의미하는데, 특히 딤후3:16에 사용되어진 것을 보면 다음과 같다.

 

“모든 성경(그랍헤)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3:16)

 

즉 초대교회에서 정경이라고 불리는 신약성경의 채택에 대한 작업은 반드시 필요하였다. 신앙의 기준과 표준이 절실히 필요했던 것이다.

특히 하나님께서는 “너 보는 것을 책에 써서.....일곱교회에게 보내라”라고 계1:11에서 사도요한을 통하여 말씀하시고 계셨다.

 

2세기에서 4세기말로 연대를 측정하는 신약성경의 목록집이 시리아에서 발견되어 회람되었다.

그 목록에는 베드로후서, 요한이서, 요한삼서, 유다서, 계시록을 제외한 신약전부가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또한 초대교회에서 사용되던 구라틴어 번역본은 히브리서, 야고보서, 베드로전후서를 제외한 신약전부를 포함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무라토리 단편(Muratorian Canon)이라고 하는 성경의 목록이(AD 170년경의 기록) 발견되었는데, 이 목록에 의하면 히브리서, 야고보서, 베드로전후서를 제외한 구라틴어 번역본의 목록과 일치한다. 그리고 그 목록은 어떤 위서(거짓문서)들에 대해서 경고하고 있었다.

또 주후140년경에 애굽에서 발견된 “진리의 복음”이라는 책이 발견되었는데, 이 책은 노스틱파의 발렌티누스가 쓴 것으로서, 야고보서, 베드로후서, 요한이서, 요한삼서 그리고 유다서를 제외한 신약이 모두 포함되어있었으며 히브리서와 계시록도 포함되어있었다.

또한 AD 206년경의 바로코치오 사본은 “60권서”라고 일컬어졌다.

이 성경을 면밀히 살피면 현재 66권의 정경중에 64권이 포함되어 있었고, 구약에서는 에스더서가 제외되었고, 신약에서는 요한계시록이 제외되었던 것이다.

또한 유대인의 역사가인 유세비우스는 340년경에 지은 그의 저서 “교회사”에서 야고보서, 유다서, 베드로후서, 요한이서, 요한삼서를 제외한 다른 모든 책을 정경의 목록에 올렸다.

 

정통신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아타나시우스는 373년 신약27권을 정경으로 등재하였고, 제롬과 어거스틴도 똑같은 책들을 확인하였다.

그 후 히포회의(393년)와 카르타고회의(397년), 또한 343-381년에 열린 라오디게아의 종교회의에서도 요한계시록을 제외한 신약성경을 승인을 얻고 있었고, 5세기 이후로는 27권의 신약성경이 모두 인정을 받고 있었다.

즉 초대교회에서는 수세기에 걸쳐 신약27권에 대한 정경화를 이미 채택되어 유지, 발전되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신약이 집결되어 한 권으로 채택되어지는 데에 다소 시간이 걸렸을 것이며, 그 과정에서 정경의 목록이 개인과 교회와 지역마다 다소 달랐을 뿐이었다.

 

  • 들풀2015.03.11 18:54 신고

    좋은자료 감사합니다..

    저는 역사에 대해 너무 몰랐고
    관심도 별로 없어서 그런지 이스라엘역사 강의를 들으면서
    무척 좋았습니다..
    보조님은 많이 익숙한 내용이리라 짐작되는데
    그 강의 혹 들어 보셨나요...
    어떠시던가요..
    궁금합니다

    우리 딸은 홀딱 반해서
    일요일 교회가서 청년들 몇명이랑 다시 듣겠다고 해요...

    답글
    • 주방보조2015.03.12 00:24

      저 글은 말씀보존학회 즉 한국킹제임스 성경을 만들어 파는 사람들이 마치 자기들의 번역만이 옳다고 억지를 부리는 식의 책선전 때문에 혼돈을 느끼실 수 있는 경우를 대비하여 누구든지 참고하시라고 퍼 놓은 것입니다.^^ 불확실성의 시대이다 보니 ... 엉터리들이라도 확고부동하게 우겨대면 마음이 쏠리는 현상이 우리 사회 전반에 널리 퍼져 있습니다. 정말 조심해야할 일입니다.

      강목사님의 강의는
      회원가입을 해야 강의록을 시청할 수 있게 되어 있어 ...다른 읽을 수 있는 글들만 몇가지 읽어보았습니다. 교단적 권위주의에 대하여 반대하시고 매우 독립적인 분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회원가입을 좀 까다롭게 고민하는 스타일이라...좀 고민해 보고 가입하게 되어 강의를 듣게 되면...소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 들풀2015.03.12 07:02 신고

    회원가입 아니면
    유튜브로 들으실수 있네요
    유튜브에선
    제목별로 정리가 안되어 있어서
    불편하긴 하네요
    꼭 소감 말씀해 주세요 숙제!

    답글
    • 주방보조2015.03.12 21:44

      유튜브가 제 컴에서 잘 작동할지 모르겠네요^^

      숙제는 제가 평생 제일 싫어하는 것인데요...ㅎㅎㅎㅎ

  • 한재웅2015.03.12 16:48 신고

    성서비평학을 잘 요약해 놓았네요.

    답글
    • 주방보조2015.03.12 21:50

      네, 사이비 성경장사인 한글킹제임스부류에 대하여...문제점이 무엇인지 잘 지적해 놓은 글입니다.

  • 소방수2017.03.09 12:01 신고

    정말 감사합니다.
    님의 수고와 인내를 주님께서 아십니다.
    계속 승리하실 줄 믿습니다.~~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