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혜선의 불발탄 된 ‘한국전쟁예언’ 파장은 지금도 진행중 ②
태국 오지 매홍쏜에 한국 피난민들이 몰려들었다. 44명이 방정열 선교사가 운영하는 매홍쏜신학교에서 함께 생활 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노아의 방주를 탄 사람들’이라고 했다. 피난처를 제공한 방정열 선교사, 그녀는 누구인가? 태국 치앙마이와 매홍쏜에서 SBS와 공동취재한 <교회와신앙>은 2월 5일의 ‘[르포] 태국 매홍쏜의 한국 피난민들’이라는 기사에 이어 <그것이 알고 싶다>가 2월 7일 방송에서 화면에 담아 내지 못한 이야기들을 집중정리 한다. < 편집자주 >
홍혜선 전도사의 ‘2014년 12월 14일 오전 4시 30분에 한국전쟁이 일어난다.’는 예언을 믿고 방정열 선교사가 운영하는 태국 매홍쏜신학교에 피난 온 사람들은 44명이었다. 방정열 선교사에 의하면 취재 당시에는 그중 25명이 매홍쏜신학교를 떠난 상태였고, 19명(어린이 포함)만 신학교에 남아 있었다. 이 사람들은 어떻게 한국에서 태국의 오지인 매홍쏜까지 피난을 오게 되었을까.
방 선교사는 필자에게 이 부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전쟁설로 인해 평택에 있는 불신가족들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태국에서) 한국으로 돌아갔을 때, 공항에 내리자마자 홍혜선 선교사님의 대전 집회에 갔었다. 집회 중에 홍 선교사님이 ‘여기 외국에서 오신 분 계시냐’고 묻기에 손을 번쩍 들었었다. 그래서 집회 끝나고 신학교 주소를 남겼었다. 그러자 이것이 연결이 되어 피난민들이 이곳에 하나둘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대전에서 매홍쏜신학교로 피난 온 J 집사의 설명은 방 선교사의 말보다 좀 더 구체적이다.
“홍혜선 선교사가 대전에서 집회를 열었는데 그 집회에 방정열 선교사가 참여하게 됐다.”면서 그때 홍혜선이 방 선교사에게 “방 선교사님 이리 나오세요. 방 선교사님 혹시 태국갈 수 있습니까?”라고 질문했으며, 이 질문에 방 선교사가 “저희 300명 수용 가능합니다.”라고 대답하자 홍혜선이 다시 “그럼 생활비는 어떻게 됩니까?”라는 질문을 했고, 방 선교사가 “저희 한 달에 10만원이면 됩니다.”라고 답변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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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에서 내려다 본 태국의 오지 매홍쏜 지역 Ⓒ<교회와신앙> |
이런 증언으로 미루어보면 홍혜선과 방정열, 이 두 여인이 이번 전쟁설과 관련하여 한국교회와 사회를 혼란에 빠트리고 졸지에 이산가족을 만드는데 주된 역할을 한 핵심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홍혜선이 한국전쟁설을 유포하여 수많은 전쟁피난민들을 외국으로 피난가게 만들었다면, 방정열 선교사는 피난민들이 태국 매홍쏜으로 올 수 있도록 피난장소 등을 제공했다는 점이다.
방정열 선교사는 필자가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취재팀과 함께 매홍쏜신학교 안에 들어갔을 때 “<교회와신앙> 나가세요.” 하며 취재를 거부했었다. 필자가 J 집사와 한참 얘기를 주고받고 있을 때 다가온 방 선교사는 필자를 보자마자 “나는 <교회와신앙> 안 믿어요.”라며 언성을 높였다. 필자가 “<교회와신앙>을 왜 믿어요.”하며 차분하게 응대하자 방 선교사는 “<교회와신앙>이요. 저를 이단으로 찍었어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방 선교사가 “P 집사가 여기서 나가는 것에 대해 누구도 막지 않아요. 그리고 저를 어렵게 만든 기관이 <교회와신앙>이예요.”라고 말하기에 필자는 “왜요?”라고 질문했다. 그러자 방 선교사는 “인터넷만 열면 이단삼단 다 나오고요.” 하기에 필자가 다시 “이단으로 규정된 적이 있어요?”라고 묻자 방 선교사가 “없어요. 없는데 이단처럼 인식하도록 글을 썼어요.”라고 말했다.
필자가 방 선교사에게 의자를 내주며 “여기 앉으세요.”라고 권하자 방 선교사가 감정을 가라앉히며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대화가 시작되었다. 말하자면 정식 인터뷰가 성사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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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와 인터뷰 중인 방정열 선교사(오른쪽) Ⓒ<교회와신앙> |
- 한국에서 온 피난민들이 얼마나 되나.
방정열 : 아이들까지 포함해서 44명이 왔었다. 그중에서 25명이 돌아가고 현재 19명이 남아있다. 여기(신학교)는 잠시 피신을 위한 장소이지 살림을 하진 않는다. 주된 센터는 교회이다.
- 태국엔 언제 왔었고, 사역은 몇 년째인가.
방정열 : 만 27세에 왔었다. 올해로 만 52세다. 사역한지가 25년 됐다.
- 어떻게 해서 홍혜선의 전쟁설을 받아들이게 됐나.
방정열 : 25년간의 사역 중에 20년 동안 열심히 사역하다가 2008년도에 김용두 목사(인천 주님의교회, 이단으로 규정됨)를 만나 변화가 일어났다. 그간에 영적인 갈증이 심해 답을 얻어야겠다 생각하여 학위공부도 했었다. 그러나 그것도 아니어서 사역을 올스톱하고 감옥처럼 7~8개월 동안 갇혀 있었다. 그러다가 김용두 목사를 만난 후 초청하여 집회도 하고 해서 내가 확 변했다. 내 자신이 확 풀어지고 자유로워지고.
이젠 이메일 보려고 컴퓨터를 건드리는 것도 시간이 아까워서 못하겠다. 그전에는 ‘저, 결혼 안했어요.’ 그랬는데 이젠 그런 농담도 무섭다. 주님과 교제하는 게 너무 좋아서 주님과 나 사이에 뭔가가 들어오는 걸 허용할 수가 없었다. 그러자 후원은 자동적으로 딸까닥했다. 하지만 ‘이젠 그렇게 안 살겠습니다(즉 김용두 목사 만나기 이전처럼 그렇게 사역을 안 하겠다는 의미).’ 마음으로 다짐했다.
제가 조금도 가만 못 있는 사람인데 그때부터 두문불출. 주님과 기도하고 교제하고 그 시간이 너무너무 행복했다. 그러나 너무너무 고통스러웠다. 먹을 게 없으니까. 그런데 그때부터 주님이 조금씩 해결해주시고. 그러면 ‘와 신난다 주님이 해결해 주시려나보다.’ 해서. 그러다가 홍혜선 씨 전쟁설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제가 분별했고(분별을 하여 전쟁설을 받아들였다는 의미), 우리 가족들에게 복음을 전하지 못해서 복음을 전하려고 평택에 갔다. (가족들이) 전쟁설은 긴가민가하더라. 그러나 복음을 받아들이더라.
(우리 가족들이) 예수님을 안 믿었는데 복음전하니까 받아들여 다 영접했다. 전쟁에 대해선 내가 아는 전쟁은 이것이다 나머진 알아서 해라고 말했다. 그런데 제가 마음 깊이 살펴보니까 오는 걸 원치 않더라. 그래서 기도했다. 주님 저를 선교사로 부르신 대가로 우리 가족을 지켜주십시오. 나머진 주님께 맡겼다. 그런데 가족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한국에 갔을 때 (인천)공항에 내리자마자 홍혜선 씨 대전집회에 먼저 갔었다. 가자마자 눈물이 쏟아지고 한국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 주님의 마음이 느껴지더라.
강의 내용은 이렇게 살면 지옥간다. 예를 들어서 자위행위하는 것 회개하라. 회개하지 않으면 지옥간다. <까불지마 사탄아>(홍혜선 저)라는 제목의 책을 읽고 나서 페이스북에 후기를 썼다. ‘<까불지마 사탄>은 최고였습니다. 넓고 깊고 높고 이것은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그것을 썼다. 그러자 홍혜선이 짧게 댓글로 ‘주님이 하셨습니다.’
예배를 참석하고 나니까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여기, 태국에서 오신 선교사님 있어요?’ 너무 좋아가지고 ‘예, 전데요.’ 기도해 주려나 했다. ‘혹시 태국으로 피난가면 받아줄 수 있겠습니까.’ ‘주님이 하라면 다하겠습니다.’
거기에 주소와 메일을 남겨놓고 왔다. 여기 온 사람들은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다. 서로 연결되어서 여기에 온 거다. (그리고 가는 것에 대해) 저는 반대 안했다. 간다고 하면 가라고. 여기 와선 다들 기도만 했다.
- 한국에서 전쟁이 일어났다고 정말로 믿는가.
방정열 : 하나님께서 나에게 12월에 전쟁이 일어난다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홍혜선 선교사님과 무관하다. 왜냐하면 개인적으로 하나님에게 받은 말씀이기 때문이다.
- 그런데 12월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
방정열 : 그래서 지난 1월 초에 사과의 글을 올렸다.
- 어떤 내용으로 사과했는가.
방정열 : 사과한 글의 내용은 이렇다.
“저는 12월 전쟁을 계속 전해왔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2015년 첫날입니다. 결과적으로 저의 알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 누구와도 연관 지을 수 없는 하나님 앞에서 제 스스로 결정하고 알린 것입니다. 제게는 인터넷의 소문들이나 누가 누구와 가까이 있었다는 사람들이 말하는 소문은 처음부터 관심의 대상도 믿음의 대상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주께서 기뻐하시고 쓰시는 사람인지가 중요했고 수없이 성령의 확증을 주님 앞에 얻고 취한 것입니다. 그것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다만 열심히 알린 12월은 지났습니다.
제 글에 영향을 받으신 분들. 혹은 마음 상하신 분들께 사과의 글 올립니다. 그렇다고 제가 전하던 전쟁에 관한 경고가 끝났다거나 우리가 기도해서 어떤 영향을 끼쳤다거나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전한 것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든지의 가능성을 말씀드린 것이 아니라 제 마음은 12월에 한정한 것이었습니다. 그 이후의 일은 주께서 특별히 말씀하시지 않으시는 한은 전하는 일은 제 의무가 아니라 생각하며 다만 최선을 다하여 국가를 위해서 계속 기도할 것입니다.
이번 일로 전 제 일생 처음으로 현지 동역자들과 학교수업을 2주간 전폐하고 나의 조국을 위해 기도했고, 이후로도 계속 그 한가지만을 위해 기도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해 개인적으로 감사하고 그동안 한 번도 가족들에게 전하지 못했던 복음을 전할 수 있었음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저로 인해 마음 상하신 분들 혹은 어떤 영향을 받으셨던 분들께 사과의 글 올립니다. 어떤 비난도 꾸중도 하셔도 감사하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 이것은 어디까지나 제가 하나님 앞에서 결정한 것이기 때문에 특정한 이를 지적하는 것은 삼가 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저는 언제나 주님께 여쭈며 성령님의 확증 얻은 것을 전한 것입니다. 저 개인에 관한 책망은 얼마든지 감사합니다.”
이 사과문을 1월 1일에 올렸다. 제가 한국전쟁을 증거한 것은 12월이다. 언제든지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그런 것이 아니라 제가 마음속에 담아두고 한 것은 12월이 한정인데 지금 2015년 1월 1일인데 일어나지 않고 저한테 영향을 받으신 분들, 저한테 화나신 분들 죄송하고. 그러나 이건 누구에게도 연관 지을 수 없는 나 개인이 한 일이다. 인터넷에 떠도는 어떤 나쁜 얘기들, 누가 누구에게 가까이 있었다는 사람들의 증언같은 것들은 저한테는 처음부터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고, 믿음의 대상도 아니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지금 이 사람이 하나님 앞에 쓰임 받는 사람인가, 그것만을 확증 받았고, 지금도 그것에 대해선 변함이 없다. 그러니까 이 일에 있어서 저를 나무라시고, 저 개인이 하나님 앞에서 한 일이니까 저 개인을 나무라시는 것은 감사한테 특정인을 연관시키지 말아 달라. 그렇다고 해서 제가 전했던 전쟁 메시지가 종료되었거나 끝났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이제부턴 하나님께서 저에게 계속해서 전하라는 특별한 사인이 없는 한에는 (전쟁메시지를) 전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렇게 올렸다.
- 임마누엘선교회(회장 채규현 목사)와 20일에 후원관계를 끊기로 했다는 얘길 들었다.
방정열 : 그분들이 어떤 조건을 거셨냐면 1월말까지 저분들(피난민들) 다 보내라. 그걸 제가 못 다룰 건 아니다. 저 굉장히 어려웠을 때, <교회와신앙> 때문에 이단으로 찍힐 위기에 놓였을 때, 그분들이 저의 울타리가 되어 주셨던 분들이다. 그것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제가 지켜야 하지 않는가. 양심을 떠나서 한번 노력해보려고 했다. 한국에서 나온 분들에게 1월말까지 보내기로 받아들이고. (임마누엘선교회로부터) 통보받은 날짜가 1월 8일이었을 꺼다. 전쟁메시지를 취소하고, 회개하고, 신학지도를 다시 받으라는 그거다. 제가 그것을 받고 저하고 (관계가) 먼 사람들이 그렇게 했다면 픽하고 웃어버렸을 거다.
처음에 하나님 앞에서 확증을 요구할 때부터 계속 순간순간들을 하나님 앞에 체크를 해봤다. 주님, 제가 미혹에 빠졌다면 그 순간들이 어떤 순간들인지 알려주시고, 제가 틀렸다면 놓겠습니다. 미혹 당했다면 모든 것을 내려놓겠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제가 미혹을 당했다면 제가 지금까지 하나님과 교제하고 한 것이 하나님이 아닌 어떤 귀신하고 교통했다는 말밖에 안되는데... (울먹임) 하나님, 다른 것은 괜찮지만 주님께서 나의 모든 것을 가져가도 좋고. 그것이 첫 번째로 물질적인 테스트였다 7년 동안이나. 거의 일주일동안 1바도 없었을 때도 많았으니까. 하지만 그때그때를 통해서 공급하셨다 7년 동안. ‘아 주님은 신뢰하는 자들을 절대로 굶기지 않으시는구나.’를 경험했다. 그래서 물질에 대한 관심에서 자유하게 되어 결단을 했다. 이것을 전했을 때 어떤 여파가 있을 것인가. 다 내려놓자. 그리고 주님이 제게 감동하시길 어려운 시기가 도래할 것이다. 오직 나만 바라봐라. 그래서 결단했다. 결단 안했으면 내려놓을 수 있겠는가. 제가 다른 사람에 비해 워낙 열정적이다. 제가 기도를 안 하는 날엔 하나도 안한다. 못한다. 그때그때 확신을 받고, 제 영의 상태의 반응을 보고 기도했다. 선교회에서 주어진 기간 안에 제가 응답을 해야 하잖은가. 제 마음속엔 다음 주가 말일이니까 말일 때 하면 되지 그렇게 하고 있는데 20일 12시에 깨어서 기도하고 있는데 지금 보내야 한다는 마음이 생겼다. 그래서 주님, 제가 어떤 문장을 어떻게 쓰야할지 주님이 주시고 확증을 주시라고 기도했다. 글을 써놓고 한 시간 동안 주님 앞에 기도했다. 그리고 (선교회와의 단절을 알리는) 문자를 보냈다.
앞으로도 이런 일이 있으면 하지 말아야 하지 않느냐. 그래서 나는 하나님 앞에서 처음부터 재검토했으며, 주님이 지금과 똑같은 상황에서 (전쟁메시지를)선포하라고 하면 난 올인할 것이다. 이것이 나의 진심이다. 지금 그렇게 한다는 것 (지시대로 따르는 것)은 앞으로도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냐. 그건 자신이 없다. 그래서 보낸 거다.
- 그렇게 후원한 분들과 관계를 끊으면서까지...
방정열 : 제가 너무 어려웠을 때 울타리가 되어 주셨던 분들한테는. 정말 그분들 욕 많이 먹으시고 수모를 많이 당하셨다. 그렇게 하면서까지 저를 돌봐주셨는데 뭔가 제가 최선을 다해서 응답해 드려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감정적으로 응답할 순 없잖은가. 지금까지 살면서 저는 20년 동안 착각 속에 많이 살았다. 일 많이 하면 선교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주님께서 저를 터치하실 때 그게 가짜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장 먼저 저 자신을 보게 하시더라.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른다. 변명할 여지없이 ‘주님 몰랐습니다. 몰랐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인간적으로 아무리 잘해준다 할지라도 그것을 넘어서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안살기로 작정했으니까. 그렇게 하면서 많은 분들과 단절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오랫동안 가장 훈련시키신 것이 물질이다. 가장 힘들었었다. 그래서 돈 달라는 기도만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것이 없어지더라. 자유해지더라. 그때부터 어떤 손길을 통해서 공급하시더라. 그래서 주님 이거해야 합니다 누굴 통해서 축복해 주세요 기도하면 생각지도 않은 손길을 통해 응답하시는 거다. 이런 사건들을 많이 만나면서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많이 커졌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번 한국 전쟁에 대해서도 확증에 확증, 검토에 검토, 엄청했다. 저 함부로 하는 사람 아니다. 순간순간 페이스북에 올렸던 글을, 주님 앞에 썼던 것을 다 검토한 거다. 다 확증이 되고. 주님이 제게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이 찾고 있는 한 사람은 말씀이, 명령이 떨어지면 계산 없이 선포하는 것이다 결과에 상관없이. 그 결과는 주님이 하는 것이다.
- 그렇게 확증에 확증을 받았다고 했지만 실제론 일어나지 않았잖은가.
방정열 : 제가 많이 충격을 받았다. “네가 그동안 했던 것이 무엇이냐 기도의 결과를 묻지 않으면서.” 주님이 제게 이렇게까지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1월 1일에 올린 사과문이 ‘하나님 뜻이 아니었다.’ 그러시더라. 그래서 그 문제를 가지고 주님 앞에 급히 검토해보니까 진짜 그렇더라. 제 자신이 하나님 앞에 검토해보니까 조금이나마 의인이 되고 싶었던 마음이 제 속에 숨어 있더라. 그런 얘기 쓰면서 하루는 주님 앞에 생각을 해봤다. 만일에 이런 일이 아니더라도 하나님께서 나에게 뭔가를 전하라고 했을 때 이분들이 요구하는 그런 요구에 내가 부응할 수 있을까. 결론은 ‘하나님 앞에서 없다.’였다.
- 이 상황 때문에 가정들이 깨어지고, 부부가 갈라지고 이게 뭐냐. 한국사회에 파장이 야기되고, 한국교회에 혼란이 오고.
방정열 : 어제 사실 (이분들을) 옮기려고 했었다. 기도하는데 그렇게 하는 게 하나님 뜻이 아니라고. 여기서 나가봤자 자유하지 못하다 여기 있어라. 그게 하나님 뜻이라는 거다. 분명히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시는 말씀은 ‘사랑하는 자야, 마음을 굳게 가져라.’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뜻이 있는 거다. 여기 오신 분들은 자유하다.
그런데 전쟁예언이 선포되면서 제가 너무 이해가 안됐던 것은 딱 한가지다.
어렸을 때 김일성이 쳐들어온다 할 때 한국교회가 제일 먼저 한 것은 기도였다. 그런데 요즘은 그게 아니다. 홍혜선의 메시지가 나를 믿으라. 자기가 교주가 되겠다는 게 아니지 않은가. 기도하라 회개하라 처음에 그랬다. 그런데 사람들이 ‘어디로 피해야 하느냐?’였다. 그러자 (홍혜선이) 어디로 피하는 얘길 왜 해? 기도하라는 거다. 한국교회의 타락상, WCC 문제 등.
교회 다닌지 얼마 안 되는 형제가 예수 믿는 게 이런 건가. 예수님을 믿는 게 아니고 교제를 위해서. 예수님이 아닌 다른 뭔가를 만나기 위해서. 그런 것을 보면서 홍혜선의 예언이 선포되고 해서 믿어졌다고 하더라.
어쨌든 대다수는 아니지만 소수가 전쟁설로 인해서 대한민국에 전쟁이 일어났다, 일어날 것이다 해서 왔다. 게중에는 안식으로 오신 분들도 있고, 일 년 쉬러 오신 분들도 있다. 그런데 14일 지나니까 나가더라. 아이들이 걱정되어 나간 분도 있다. 어떤 분은 매홍쏜에 집을 얻어 달라고 했는데 여긴 한국인이 없다. 남아 있는 분들에게도 분명히 말한 것은 개인적으로 응답을 받으라. 각자에게 나가는 날짜를 말씀하실 거다. 여기 오신 분들은 주님 앞에 확증 받고 왔다. 저의 카리스마 때문이라는 말도 있는데 아니다. 난 붙잡지 않는다.
- 그동안 전쟁설이니 뭐니 하면서 파장이 일어났는데 방 선교사의 주된 사역은 뭔가.
방정열 : 작년부터 신학교 프로그램을 받았다. 조직신학을 10년 동안 가르치고 교회론을 가르쳤다. 그런데 교회라는 게 하나님 음성도 듣지 못하는 것이 무슨 교회야. 내 안에 성령님이 계신다면 하나님 말씀도 못 들으면서 무슨 교회야. 주님께서 제게 내적음성으로 하시는 말씀이 바깥으로 나가라, 자연과 대화를 시작하라. 한 번도 안 해봤다. 이젠 자연의 어떤 것과도 대화해라. 사람들이 들을 땐 미쳤나. 무슨 자연과 대화하래. 그러면서 한쪽으론 뭐가 있으니까 하라는 거겠지. 그때 발밑의 잡초가 보였다. 잡초의 생명이 너무나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러면서 주님이 나의 생명이 이처럼 귀하다는 것을 알게 하셨다. 그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고. 순간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 방 선교사를 후원하던 후원단체가 다 끊어진 것 같은데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방정열 : 수년 전 <교회와신앙>에서 보도한 후 사역비가 한 푼도 안 왔다. 그렇게 와도 모자란데 돈이 딱 떨어졌다. 저는 그때 성령님을 만나버렸는데 너무너무 힘들었지만 그렇게 살기로 결단했다.
한번은 제 생일날에 차를 운행해야 했는데 기름이 조금 남았다. 꼭 나가야할 일이 생겼다. 다음날 교회 가는데 써야 해서 토욜에 차를 쓰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나가야해서 차를 운전해 가는데 기름바늘이 막 올라가더라. 그래서 운전하다말고 사역자에게 전화를 해서 ‘기름바늘이 막 올라 간다 올라간다.’고 했다. 혹여나 뭔가 잘못되지 않았나 해서 자동차 기술자에게 좀 봐 달라 했더니 안 잘못됐다고 하더라. 이런 일들이 여러 차례 일어났다.
내가 지금 잘못돼 있다는 얘기들이 많다. 그러나 저는 옛날로 돌아갈 수 없다. 그분들이 제가 하고 있는 사역을 인정해 준다면...
이 훈련을 하나님께서 7년동안 시키셨다. 너무나 어려워서 처음엔 오병이어 기적이 일어났던 것처럼 지금 일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렇게 기도할 수 없었다. 안 믿어져서였다. 그러나 이젠 기도한다. 하나님께서 기적을 경험하게 해주셔서다. 하나님을 신뢰한다.
- 이번 전쟁설로 방 선교사가 달라진 삶이 있다면 뭔가.
방정열 : 한국 사람으로 한국을 사랑하지만 한 번도 국가를 위해 기도해본 적이 없다.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해 9월부터 지금까지 다른 기도가 안 된다. 처음엔 국가를 위해 너무 기도가 안 되어서 주님 제가 어떻게 해야 국가를 위해 기도할 수 있습니까. 그랬더니 고향이 생각나면서 전쟁이 나면 고향을 더 이상 찾을 수 없겠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하나님 제 고향으로 돌아가게 해 주세요. 내 동심이 있는 고향, 어쩌면 갈 수 없는데... 하나님 돌아갈 수 있도록 지켜주세요. 기도가 되기 시작했다. 지금은 대한민국을 위한 기도 외에는 다른 기도를 못한다.
- 열매를 보면 나무를 안다고 어쨌든 하나님 음성을 듣고 전쟁이 난다하여 피난 온 이들 때문에 가정이 깨어지고 사회적으로 혼란을 야기했다. 그래서 방송사에서도 이렇게 취재를 하러 오지 않았나. 이 방송이 나가면 불신자들이 한국교회를 향해 뭐라고 하겠는가. 불신남편들과 결혼한 부인들이 혹 어려움을 겪지 않겠는가. 어떻게 생각하는가.
필자의 이 질문에 방 선교사가 대답을 하려는데 식사준비가 다됐다는 소리가 들려 그만 인터뷰를 중단하게 됐다. 그리고 함께 식사를 했다. 식사를 마치고 일행이 돌아가야 해서 건물 밖으로 나와 신학교 정문을 향해 한 발자국 씩 발걸음을 옮겼다.
한국에서 딸인 P 집사를 찾아 한국으로 함께 데리고 가기 위해 매홍쏜신학교까지 온 L 권사는 P 집사와 만나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3월에 돌아가겠다며 약속을 지키겠다는 말을 하여 결국 L 권사 혼자 한국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정문을 향해 걸어가던 필자에게 인터뷰를 했었던 J 집사가 이런 말을 했다.
“제가 기도하면서 받은 말씀은 (방)선교사님이 엄청난 오해와 핍박을 받으셨다는 거였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방문을 통해서 오해받은 것들을 풀어주신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이 방문은 오히려 좋은 거라는 거예요. 방문하신 분들에게 복음이 전해질거라면서. 이는 선교사님이 하나님께 흔치 않게 특별히 받으신거라고 하셨어요. 어제 P 집사에게 어머님(L권사)이 오시기 전에 둘이서 기도해야 한다 어머님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말했었어요. 그런데 오늘 오신 거예요. 어제는 우리도 오해를 좀 했어요. 너무 갑작스러웠기 때문이에요. 누가 피디이신지 몰랐어요. 그래서 문전박대가 되었어요. 막상 만나보니 너무 좋으신 분들이고 여기까지 와 주셨다는 것이 너무 감사해요. 남편에게 5월까지 쉬었다 가면 안되냐고 했어요. 처음부터 5월까지 있을 생각이었지요. 왜냐하면 홍혜선이 5월에 전쟁이 끝난다고 했기 때문이에요. 지금도 전쟁이 진행중이예요.”
필자가 J 집사에게 말했다.
“일반 사람들이 들으면 웃을 겁니다. 그게 너무 안타까워요.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선 인정합니다. 그러나 전쟁이 일어났다는 말은 틀린 말이에요. 군에 있는 사람도, 언론에 있는 사람도 어이가 없어서 웃고 있는데 기도하는 사람들은 지금 전쟁이 일어났다고 하니 얼마나 비웃겠어요. 하나님께 더 기도하기 위해서 여기 있고 싶다. 그러면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피난을 왔다는 것은 다른 거예요.”
J가 필자에게 답했다.
“그 두 가지가 같이 있어요. 지금은 여기 와서 보니까. 처음엔 (전쟁설로) 두려움 때문에 온 것이 많았어요. 나는 죽기 싫은데. 그래서 욕을 다 먹었어요. 여기 와서 주님이 회개부터 시켰어요. 남편도 버리고 부모자식도 버리고 했다고. 그런데 여기는 진실이 드러나는 곳이라고 (방)선교사님이 말씀하시니까 그런 것이 아무 것도 아니었어요. 회개하는 게 끝이 없었어요. 베데스다 연못에 왔는데 발목만 담글게 아니라 머리까지 다 담겨야지 하는 마음이 생겼어요. 이곳에 온 것에 대해 불신했다고 지적하시면 인정해요 두려웠으니까요. 그런데 (방)선교사님이 카톡에 남기신 글이 있어요. ‘아무도 말하지 않을 때가 올 것이다. 그런데 그때가 가장 위험하다. 사람들이 떠들고 피난가고 할 때는 차라리 조금이라도 이동이라도 있는데 아무도 얘기안하고 정말 우리는 평안하다 하며 북한과 손잡고 할 땐 무엇이든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이에요. 이르게 판단하진 마십시오. 조금 더 기다려보시고.”
이것으로 매홍쏜신학교에서의 취재를 마무리 지었다. 그리고 우리 일행은 매홍쏜 숙소로 돌아와 취재한 내용들을 나누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주시평 피디는 다음과 같이 정리해 말했다.
“피난 온 분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우린 한국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본다. 보이지 않는 전쟁이 진행 중이다. 곳곳에서 사건 사고가 일어나고 있다. 이것이 무엇이냐. 보이지 않는 전쟁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방 선교사도 누차 보이지 않는 전쟁이 진행 중이라고 대답했다. 전쟁 때문에 피난 간 사람이 있고, 여전히 보이지 않는 전쟁이 한국에서 진행 중이라고 믿고 있다. 한국에 돌아가라는 얘기는 우리더러 죽으러 가라는 얘기다. 그래서 방 선교사 말고 여러분을 대표할 수 있는 다른 사람 인터뷰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하여 한 남자분과 인터뷰했다. 남자분이 뭐라고 했느냐 하면 생체 이식칩이라는 게 있다고 했다. 베리칩 때문에 위험하다. 베리칩 절대 이식하지 말라. 어제 병원에서 만났던 L 집사도 2017년도에 미국은 모두 다 베리칩을 삽입하기로 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결정했다고 말했다. 최대한 이해하려고 했는데 오늘 다 들어보고 나서 이분들이 보통 분들이 아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밤 11시부터 기도했으며, 새벽 세 시에 대책회의 했다고 하더라. 피신할까 했는데 이걸 막아준 사람이 아까 인터뷰한 남자분이다. 이 사람이 환상을 봤다며 도망가지 말라고 했다는 거다. 그래서 오늘 우리와 인터뷰를 하게 된거다. 그런데 이 분이 어떤 분이냐 하면 원래 교인이 아니라 작년 8월부터 교회를 다녔다고 한다. 그러다가 10월에 홍혜선의 유투브를 보고 전쟁이 맞다면서 매홍쏜 신학교로 피난을 와서 기도했는데 환상을 계속 봤다는 거다. 이 분의 환상으로 인해 오늘 우리가 취재를 할 수 있게 된 거다.”
이때 W 선교사가 부연설명을 했다.
“2017년과 베리칩 사건은 휴거하고 연결된다.”
그러자 주 피디는 “L 집사도 휴거 얘길 했다. 그래서 물어봤다. ‘L 집사님 혼자 생각하는 것 아니세요?’ 했더니 ‘아니다 모두 다 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베리칩 얘기 오랫동안 했다. 계시록 얘길 하면서 프리메이슨 아느냐. 휴거 얘기. WCC 얘기도 하고.”
주 피디는 방 선교사에게 “오늘 승리하셨네요.”라고 말하자 방 선교사가 “하나님 앞에 가봐야 승리라는 게...”라고 대답했다면서, 이번 취재로 “아마도 방 선교사 입지가 더욱 굳혀지고 작년 8월부터 교회를 다녔다는 그 남자의 환상은 더 신빙성 있게 받아들여질 거다.”라고 전망했다.
W 선교사는 베리칩과 휴거종말론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진단했다.
“오늘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그들의 전쟁설에 대한 믿음은 너무 확고했다. 말로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구나. 본말은 감춰 있는데 과정 속에서 자기가 고통 받고, 후원 끊어지고, 인내하고 하나님하고 교제가 깊어지면서 영적인 갈증이 해결되었다는 것이다. 과정은 원래의 원인적인 문제를 희석시키고 있다. 판단에서 이것에 휩싸이면 안 된다. 원인이 뭐냐. 그게 뭐냐. 이게 과정 때문에 흐려지면 안 된다. 이념문제, 가정문제, 사회적인 문제, 종교적인 문제가 복합적으로 엮어져 있다. 특히 오늘 대화에서 종말론까지 있다. 이건 한국심판론이다. 집회가 갈수록 점점 부풀려지면 종말론까지 휴거론 재림론까지 갈 수 있다. 그 안에서 사상적인 돌파구가 한국전쟁론은 한계에 부닥칠거다. 그러면 짜깁기식으로 해서 계시하고 기도하면서 단단해져 갈 것이다. 그리고 2017년이라는 게 이상한 묘한 뉘앙스가 있다. 종말론에서 베리칩이 나오면 재림론에서 휴거설이 있다. 이것까지 섭렵해서 더 큰 종말론 문제인 시한부 종말론으로 가면 극한 집단이 된다.
이곳에서도 유명한 강사들이 와서 여러 번 얘기했다. 베리칩에 대해서. 그때마다 제가 질문했다. 짐승의 실체는 뭐냐. 밝혀라. 못하더라. 좁쌀만한 베리칩이 나와서 건강을 체크하고. 그건 기독교 안에서 첨예해서 누구도 종말론의 전문가가 아니면 평가를 못한다.
미국의 K 박사가 B라는 회사의 베리칩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시행하고 있다가 오른손과 이마가 전기자극이 가장 세어 건전지가 없어도 평생 간다는 사실을 알게 됐으며 이게 666하고 똑같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시행되는 날 기독교 안에서 휴거된다고. 베리칩이 시행되는 날 휴거된다고. 이걸 시행하기 위해서 오바마 대통령이 의료보험을 시도했다고.
L 집사가 이 정도 알고 있다면 한국전쟁론에서 종말론으로 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파이널 시그널(마지막 신호)이라는 데이비드 차라는 사람이 쓴 책이 있다. 강사가 와서 이 책에 대해 얘기했다. 이것이 앞으로 어떻게 나타날지 한국교회의 참으로 심각한 문제다.”
한참 얘기들을 주고받는데 갑자기 주 피디가 방송사에서 중요한 문자가 하나 날아왔다며 문자내용을 읽기 시작했다. 그 내용과 함께 상황을 정리해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취재진들이 매홍쏜신학교에 찾아가 방 선교사와 만나 방 선교사와 대화 형태의 인터뷰를 했었는데, 처음엔 적대적 감정으로 대했으나 나중엔 친밀한 분위기가 형성되었고 식사까지 같이하는 상황이 되었었다. 충분하진 못했지만 필자와도 어느 정도 속마음까지 드러내는 대화를 했었다. 뿐만 아니라 P 집사도 신학교에 계속 남을 수 있게 되어서 그런지 얼굴에 화색이 돌았으며 피난 온 다른 사람들 역시 매우 안정감을 갖는 모습들이었다. 그런데 이런 분위기들이 방 선교사와 피난 온 분들이 느끼기엔 취재진들이 자기들을 지지하는 것으로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그래서 주 피디가 방 선교사에게 “오늘 승리하셨네요.”라는 말을 건넨 것처럼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승리를 주셨다며 아마도 박수를 치며 좋아라 한 게 아닌가 싶다.
이렇게 추정하는 이유가 있다. 대전에서 매홍쏜신학교로 피난을 온 남자 한 사람이 우리가 신학교를 떠난 후 대전에 있는 자기 부인에게 카톡으로 문자메시지를 보냈는데 그 내용이 지금 필자가 언급한 내용과 비슷하다.
즉 방송사에서 와서 취재를 했지만 자기들을 이해했다는 내용의 메시지 말이다. 다시 말하면 자신들의 판단이 결코 잘못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는 아전인수격 해석이 아닐 수 없다. 이 메시지를 받은 그 부인이 너무나 화가 나서 SBS 방송국으로 전화를 해서 크게 항의를 했고, 방송국에서 주 피디에게 어떻게 된 것이냐는 질문을 보내온 것이었다.
왜 그 부인이 이토록 화가 났느냐 하면 매홍쏜의 그 남자는 두 아이를 둔 가장이었는데, 가장이 직장과 가정을 내팽개치고 자기 혼자 살겠다고 피난을 왔으니 가족들이 어떻게 되었겠는가. 더욱이 이 남자에겐 두 아이가 있는데 두 아이 모두 지체장애아라는 사실이었다. 그러니 그 부인이 가정경제를 책임지랴, 두 아이까지 돌보랴, 너무너무 힘들어 남편이 가정으로 돌아오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는데 이게 웬 날벼락 같은 소식이냐는 것이었다.
우리 일행들은 이 사실을 접하고 너무나 어이가 없어 순간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잠시 말을 잊었다. 그러면서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분노를 견딜 수 없어 한마디씩 내뱉기 시작했다. 취재팀의 한 일원인 카메라맨이 이런 말을 했다.
“아니 중학교 졸업 수준만 되도 알 수 있겠네.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도 분별력이 없으시나?”
불신자들인 방송 취재팀들의 눈에 비친 한국교회의 실상, 필자는 너무나 부끄러워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매홍쏜신학교의 방정열 선교사. 그녀는 지금 하나님의 직통계시에 매료되어 지난 20년간의 목숨 건 사역들을 다 내려놓고 오직 직통계시가 하나님의 뜻인 양 생을 걸고 있다. 이를 거슬린다고 여겨지는 그 누구의 말이나 지시도 듣길 싫어하며 거부하고 있다. 그러면서 한국에서 전쟁설을 믿고 피난 온 사람들을 감싸고 있다. 저들이 매홍쏜신학교 안에 지내고 있는 동안 저들의 가족들은 한국에서 시시각각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 채 말이다. 그러면서도 입으로는 여전히 하나님의 뜻이니 선교니 하며 거침없이 외치고 있다. 가족들과 생이별시키는 게 진정 하나님 뜻인가. 자식들이 엄마와 아빠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데 이를 외면한 채 자기 혼자 기도한다면서 지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가. 지체장애아인 두 아이와 가정경제까지 부인에게 떠맡겨놓고 자기 혼자 살겠다고 피난 온 그게 하나님 뜻인가. 오히려 책망을 해서라도 집으로 돌려보내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도대체 이런 상황을 방조하고 유기하고 있는 방정열 선교사라는 이 여인은 누구인가.
필자는 매홍쏜 신학교의 취재를 마치고 치앙마이로 돌아와 방정열 선교사에 대해 좀 더 깊이 알기 위해 방 선교사를 지난 20년 동안 헌신적으로 후원하다가 김용두 목사 건으로 후원을 끊었던 달리다굼선교회의 신병철 목사(71, 미금제일교회 원로, 조기은퇴하고 현재 태국 치앙마이에서 선교활동을 함)와 인터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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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앙마이에서 선교활동 중인 신병철 목사가 인터뷰에 응했다. Ⓒ<교회와신앙> |
-방정열 선교사에 대해 잘 아는 사이라고 들었다.
신병철 : 그렇다. 방정열 선교사는 경기도 평택시에서 6남매 중 막내로 출생, 오산시 효명여고를 졸업하고 81년 중앙대학교 경제학과에 합격은 했지만 가정형편이 어려워 진학을 포기하고 남양주시 도농동 소재 동원빌딩 2층의 주산 부기학원에 강사로 취업했다. 당시 그녀는 부기 3단 주산 5단의 아주 잘 나가던 실력파 강사라 원장이 어렵게 교섭해 스카웃 된 상태였다. 한편 나는 같은 빌딩 지하 40평 에 미금제일교회를 개척 단 한 명의 교인도 없이 내 아내와 초등학교 1학년 3학년 5학년 젖먹이와 함께 개척교회 특유의 고전을 하고 있었다. 그때 몇 명의 청년과 학원장과 몇 명의 원생엄마 등에게 전도! 그녀가 함께 출석해 봉사하기 시작하면서 관계가 시작됐다. 그렇게 해서 청년회 장년부 유 초등부 등이 한창 부흥될 무렵 두 번의 대 홍수로 왕숙천이 범람하는 대 참변 설상가상 고난의 연속이었지만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주님의 기적적 역사하심으로 개척 8년 만에 어렵게 60여 평 구가옥을 마련, 건물을 재개조해 예배당으로 사용하면서 교회는 한결 안정적으로 발전케 됐다. 그런데 이런 모든 시련과 고난의 현장을 그녀가 항상 함께했고 어려울 때마다 내게 큰 위로와 격려를 다했다.
그러던 어느 날 조용히 날 찾아와 뜬금없이 ‘신학을 하고 싶다.’고 정중하게 방법을 지도해 달라고 했다. 여러모로 사명감을 체크해 본 결과 뭐 하나 부족함이 없어 신학교에 보내기로 했다.
당시엔 서철원 박사 김세원 박사 손석태 박사 정규남 박사 등의 쟁쟁한 교수진을 갖춘 개신원, 지금의 개신대학에 추천, 입학을 시켰고 재학 중 학업 성적도 매우 좋은 편이었으며, 특유의 사교성과 막내기질이 있어 교우관계 등이 탁월했다.
따라서 미금제일교회 교육전도사로 임명, 유년 주일학교와 중, 고등부를 맡겨 봉사케 했는데 일을 진취적으로 참 잘했다. 웬만한 교역자 두 세배 정도 일을 해냈던 것이다. 그래서 유초등부와 중고등부가 비약적으로 발전했으며 유초등부 아이들에게 십일조 생활을 하도록 만들기도 했다.
- 방정열 선교사에 대한 후원관계는 어떠했었는가.
신병철 : 달리다굼선교회에서 후원했을 때는 매월 1천2백만원~1천5백만원 씩 선교경상비(교회건축비 등은 제외)로만 송금했었다. 그러나 김용두 목사 건으로 후원이 끊어지게 됐다. 그 이후 방 선교사를 후원하기 위해 조직된 선교회가 임마누엘선교회다.
- 방정열 선교사와 인터뷰를 하면서 태국에서 사역한 기간이 25년이며, 그중에서 20년 동안은 목숨걸고 사역을 했었지만 영적인 고갈상태가 와 김용두 목사를 만나 신비주의에 빠지면서 자신의 영적고갈은 충족되었지만 그러나 모든 후원이 끊어지고 그동안 해왔던 모든 사역도 내려놓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번에 12월 전쟁설 계시 유포와 한국에서 온 피난민들을 수용, 함께 생활하고 있음을 저희가 취재를 통해 확인했다. 이런 사실들에 대해 방 선교사를 친 자식처럼 가장 아끼신 분으로 아는데 목사님께서는 어떻게 이해하시는지 말씀해 달라.
신병철 : 한마디로 참담하다고 밖에 표현이 안 된다.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한데 무수한 생명을 잃게 됐으니 그 참담함을 어찌 필설로 표현할 수가 있겠는가?
생각해보라. 한국의 수많은 교회와 성도들의 정성어린 선교헌금이 20여 년 간 약 30여억 원에 달하는데 그렇게 헌신적으로 후원하여 일궈낸 소중한 모든 게 허사가 됐으니 이 얼마나 억장이 무너지는 일인가?
그동안 선교비를 보내주신 교회들은 한 두 교회를 제외하면 월 3만 5만 10만원의 선교비를 힘겹게 헌금하는 교회였다. 형편이 어려운 성도들의 피어린 정성과 땀의 결실을 보내 일궈낸 결실이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 지경이 됐으니 더욱 참담한 심경이다.
이렇게 된 최고의 귀책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총체적 관리를 맡은 내게 있음을 시인하지 않을 수가 없어 그 책임 또한 통감한다. 그러나 귀책소재를 좀 더 엄밀하게 따진다면 그녀의 변질된 신학이 잘못이 없고 있다면 바로 세워 사용하겠다면서 방 선교사를 지금까지 옹호하고 부추기며 끊임없이 홍보하고 후원해온 임마누엘선교회(회장 채규현 목사)에게도 없지 않음을 지적하고 싶다. 따라서 방 선교사는 물론이요 임마누엘선교회 역시 동일한 귀책을 당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일로 인해 방 선교사와 임마누엘 선교회는 하나님 앞에서 철저히 회개함은 물론이거니와 매홍쏜에서 일체의 손을 떼어야 할 것이고, 방 선교사를 책임지고 철수시켜서 새로운 주님의 종들로 하여금 건강하고 정당한 주님나라가 참된 성경중심의 새판짜기로 세워질 수 있도록 신속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라고 본다.
- 방정열 선교사가 영향을 받은 김용두의 신비주의와 이번 전쟁설로 인해 야기된 문제들은 무엇이라고 보시는가.
신병철 : 첫째, 후원교회들의 선교열정이 쇠퇴했다. 후원하던 교회의 80%이상이 선교후원을 중단했으며, 거의 멘붕상태에 빠지게 했다.
둘째, 극단적 신비주의만이 옳고 다른 것은 다 틀렸다는 식의 이분법적 신앙관으로 인해 지난 20년간 목숨걸고 했던 모든 사역을 잘못된 것으로 치부하는 엄청난 문제를 야기했다. 그로인해 방 선교사를 목숨걸고 후원했던 모든 후원교회와 성도들마저 마치 범죄자인양 가슴앓이를 하게 만들었다.
셋째, 하나님의 직통계시만이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여 행동함으로 교회 안에 혼란을 야기 시켰다. 아직 교회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이 본 환상을 하나님의 계시라며 받아들여 휘둘리고 있는 모습에 참으로 기가 막힌다. 이게 기독교의 본질이라 할 수 있겠는가.
넷째, 한국전쟁예언불발로 극단의 불안 공포심 조성과 혹세무민 그리고 전쟁대비 피난처로의 국민 대피에 의한 현대판 이산가족 및 가족 가정 해체상태 증폭이다.
다섯째, 대한민국 국격손실 및 해당지역 선교사 위상추락이다. 현재 선교지 교회들의 80%이상 사실상 교회해체 상태에 있다. 즉 하나님은 방 선교사와 같은 방법으로 일하시지 않는다며 잘못을 지적하고 떠난 것이다. 방선교사의 최근 모습에 대해 매홍쏜 선교지 교역자들과 성도들의 한결같은 말은 ‘우리가 예수 믿기 이전의 우상 및 미신을 섬기던 모습과 예수라는 이름만 다를 뿐 다를 게 뭐냐.’며 그럴 바엔 원래 믿던 신으로 돌아가자면서 속속 교회를 이탈하는 상태이다.
- 방정열 선교사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신병철 : 방 선교사는 6남매의 막내로 태어나 부모님과 오빠 언니들에게 귀여움을 독차지하며 살았다고 한다. 어릴 적에 마을의 골목대장을 도맡아 또래의 남자아이들도 꼼짝없이 그녀에게 쩔쩔매게 통솔하면서 자랐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그녀는 특별한 리더십과 지도력이 탁월한 듯하다. 학원강사 시절의 선생님으로서도 교회교육전도사로서 주일학교 학생들을 양육할 때도 탁월한 리더십과 양육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었다. 물론 그런 실력은 선교지에서 더욱 찬란하게 발휘가 되었다. 방 선교사의 이런 면들은 주님의 도구로 쓰임받기 위한 천혜의 달란트라고 생각한다. 특히 방 선교사의 카랑카랑한 특유의 천성적 음성과 정확한 발음에서 뿜어져 나오는 언행도 방 선교사의 사역에 아주 좋은 장점으로 활용되었다고 본다.
또한 외강내유라 할까? 방 선교사는 겉으론 강해 보여도 실상은 매우 여려서 인정도, 눈물도 참 많은 전형적 한국여인이라 생각된다.
워낙 험한 산골의 선교지에서 정신없이 살아서 그렇지 음식솜씨 또한 좋은 편이며 남여 한복을 손수 제작해낼 만큼 바느질 솜씨 또한 수준급일 정도로 좋은 점이 참 많은 여자 중 여자다.
선교사역을 위해 높고 험한 산길을 누비고 다니면서 사역하는 모습을 보고 한국의 선교지 방문객들이 방선교사는 참 여장부라며 치켜세우는 걸 매우 싫어했다. 참하고 아담한 천상 여자이고 싶다는 것이다.
휘하의 교역자들이 행여 어쩌다 잘못을 저지름에 있어 불의 불법 탈법을 하면 가차 없이 책벌하고 단호한 대처를 하지만 최선을 다하다가 실수나 실패를 하면 방선교사 자신이 책임을 지고 오히려 위로하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따라서 만일 그녀가 선교사가 아니라 평범한 여인으로 한 가정의 주부였다면 참 훌륭한 아내 엄마 며느리 동서로 손색이 없었으리라 생각되기도 하다. 그래서 지금의 모습을 바라보면 인간적으로 참 안타깝기가 그지없다. 물론 그녀가 그런 비성경적 신비주의에만 빠지지 않았다면 한국선교 역사의 한 페이지를 크게 차지하고도 남을 만큼의 귀하고 큰일을 해 놓은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더욱 마음이 아프고 안타깝기가 그지없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제발 다시 제 길로 돌아와 바로 설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심정으로 매일 기도하고 있다. 주여 도우소서! 그녀를 붙잡아 다시 한 번 바로 쓰시옵소서...!
- 한국교회가 이번 사태에 대해 어떻게 해결해야 한다고 보시는가.
신병철 : 대단히 외람되지만 한국교회는 이미 자정능력을 상실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한국교회가 이런 문제를 해결하리라는 기대감은 솔직히 들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또 다른 사회공기구의 하나인 언론과 그리고 국민을 보호하고 국론을 통일시켜 국가를 보위해야 할 국가공권력이 개입하지 않으면 안될 지경에 이르렀다고 생각된다. 이런 발언은 돌맹이를 맞을 말이라는 것 안다. 그만큼 이번 사태는 매우 심각한 교회 문제요 동시에 사회문제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한편, 방정열 선교사가 극단적 신비주의에 빠졌다는 이유로 후원을 중단한 달리다굼선교회 대신 이 사실을 알고서도 계속 수년 동안 후원해온 임마누엘선교회(회장 채규현 목사)는 방 선교사의 전쟁설과 관련하여 지난 1월 8일 목양교회에서 긴급 임원회의를 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6명의 임원이 참석한 이날 회의에서 결정된 사항은 다음과 같다.
“이 시간 이후로 임마누엘선교회와 방선교사와의 관계를 조건부로 당분간 단절한다. 조건은 전쟁 예언으로 매홍쏜 선교지에 가 있는 사람들을 속히 돌려보내고 전쟁 예언에 대하여 회개하고 돌아오면 다시 후원하기로 하되 신학적인 지도를 잘 받는 조건으로 한다. 유예기간을 1월말로 한다.”
필자는 방선교사의 전쟁설 뿐 아니라 신학적인 부분 및 사역들과 관련하여 임마누엘선교회의 입장을 듣기 위해 회장인 채규현 목사(광주중앙교회)에게 전화인터뷰를 시도했다. 하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광주중앙교회로 연락을 하여 교회 사무원에게 필자의 핸드폰 번호까지 남겼으나 채 목사는 끝내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임마누엘 선교회의 임원 중 한 분인 J 목사와 전화인터뷰를 하게 됐다.
J 목사는 필자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지난 1월 7일에 전쟁설 관련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8일에 긴급 임원회의를 열고 내린 결의사항을 방 선교사에게 통보했다. 하지만 방 선교사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우리와 단절하겠다는 메시지를 전해와 현재 임마누엘선교회는 해체수순을 밟고 있다고 보면 된다.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어서다.”
계속해서 J 목사는 “(개신대) 신학교 교수님들이 그분(방선교사)을 잘 지도하면 되니까 후원해라 해서 탄생한 게 임마누엘선교회다. 우리는 방 선교사님이 이미 김용두 목사와 관계를 단절했기 때문에 회복해서 다시 선교하면 좋겠다 하여 후원을 한 것이다. 2006년 5월인가 달리다굼선교회가 방 선교사를 소환했을 때 방 선교사가 분명히 ‘더 이상 김용두와 함께 하지 않겠습니다.’라는 입장을 발표했었다. 우린 그 말을 믿었다. 달리다굼이 1월말에 후원을 끊고 2006년 8월초에 임마누엘선교회가 구성되었다. 우리는 순수하게 전도하는데 열심이고, 기도하는데 열심인줄 알았지 전쟁설로 피난하고 이런 사실을 알고선. 1월 1일에 카톡으로 문자를 보냈더라. 사과문을... 그런 사람인줄 몰랐다. 알고 나선 즉시 임원회를 소집해서 내보내라고 했다. ‘당신이 그 사람들을 데리고 나와라.’ 했다. 치앙마이에 있다가 후에 매홍쏜에 갔다고 남편이 우리에게 말했다. 그랬더니 방 선교사가 ‘내보냈습니다. 다 나가기로 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우린 방선교사의 말을 그대로 믿는 사람이다. 그런데 20일 밤에 (방 선교사가) 문자를 보냈더라. 관계를 계속하면 어려움을 끼칠까봐 끊겠다는 내용의 문자였다. 1월 8일에 결정한 것은 신학적으로 지도하고 함께 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는데 그게 안 되는데 (선교회가) 존속할 이유가 없다. 중간 중간 잘못되었을 때 전화도 하고 편지도 하고 소환도 했었다. 개혁적 신학에 바르게 세우려고 했지 지금과 같이 되었을 것으로는 몰랐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이 책임지라고 하면 책임지는 것이다.”
필자가 이번 취재를 통해 방정열 선교사에 대해 알게 된 것은 방 선교사가 김용두 사상에 빠졌을 때 달리다굼선교회가 방 선교사에 대한 후원중단 결정을 내린 것은 태국선교회와 방 선교사를 위해 매우 중요한 그러나 결코 쉽지 않은 결단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만 임마누엘선교회가 인정을 앞세운 나머지 끼어들어 지금과 같은 이런 결과가 일어나도록 그동안 지속적으로 방 선교사를 후원함으로 일정부분의 역할을 했다는 비판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해 신병철 목사가 지적한 대로 임마누엘선교회는 그 책임을 통감해야만 할 것이다. 임마누엘선교회 소속 교회와 목회자들은 모두 잘못을 깨닫고 한국교회 앞에 사과를 해야 할 것이며, 회개할 일이 있으면 철저하게 회개하고 그리고 나서 새롭게 태국선교회를 살리는데 오히려 이전보다 더 총력을 해야될 것이라고 주문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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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재팀을 배웅하고 매홍쏜신학교로 돌아가는 방정열 선교사. Ⓒ<교회와신앙> |
취재를 마치면서 필자가 온 몸으로 느낀 사실이 하나 있다. 한국교회 안에 만연한 직통계시문제의 심각성이 그것이다. 소위 하나님의 음성, 예언, 환상 등으로 인해 끼치는 폐해가 너무나 심각하다는 사실이다.
이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필자는 홍혜선의 사례를 통해 다시 한번 짚어볼 것이며, 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연속시리즈로 한국교회 안에 암세포처럼 퍼져있는 직통계시의 폐단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룰 계획이다.
취재진이 한국으로 돌아온 후 P 집사가 남편인 K 집사에게 이런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난 나의 회복을 위해 이곳에 있기도 하지만, 전쟁이 있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어요. 내일.. 큰 폭발과 함께 ‘생화학’ 무기가 살포될 수 있다는 여러 사람의 얘기가 있네요. 만약 ‘큰 폭발’이 일어나면 3일 정도는 집밖으로 나가지 말고, 집 안에서 생활하셔야할 듯. 내일만.. D는 보내지 마시고, J도 최대한 빨리 데려오셔서 집 안에 머물러 주시면 감사.. 회개합시다, 용서합시다. 언제가 마지막일지 모르니.. 굿나잇.”
그리고 SBS 방송이 나간 후 매홍쏜신학교 안에 있는 P 집사가 남동생에게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보냈다.
“하나님이 세우신 종은 전도사님이든, 목사님이든 선교사님이든.. 일반 성도 비판하는 거랑은 다르게 ‘심판’하시는 거 알지? 우리는 주님께 점도 흠도 없길 기도한다.~~”
그런데 이 문자를 보낸 P 집사가 태국으로 피난 갈 때 들고 간 돈은 모두 3,200만원. 이 돈은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P 집사의 남동생에게서 1,400만원, P 집사 개인이 카드론으로 1,800만원을 각각 빌린 돈이다. 빌려준 돈 때문에 P 집사의 결혼한 남동생은 매우 힘들어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P 집사 남편 역시 카드론을 막기 위해 지금 이 시간에도 육체노동을 하고 있다. 이처럼 P 집사 때문에 형제와 가족 등 여러 사람들이 정신적, 육체적 고통가운데 시달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P 집사는 혼자 매홍쏜신학교에서 유유자적이다. 방 선교사랑 전도하러 간다드니 하는 문자나 사진들이 오고 있다는 것이다.
기사를 마무리하고 있는데 P 집사의 결혼하지 않은 남동생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누나가 갖고 있는 돈을 혹여나 방정열 선교사에게 헌금으로 주지나 않을지 모르겠어요. 방 선교사가 후원이 다 끊어졌잖아요. 누나가 방 선교사에게 완전히 매료된 상태여서 그럴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봐요. 그런데 그 돈 정말 돌려받아야 해요. 결혼한 형이 누나가 피난 가는 줄 모르고 빌려달라고 해서 빌려준 그 돈 때문에 지금 너무 힘들어하고 있거든요. 가족들이 매일 피눈물을 흘려요. 누나가 이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어떻게 이렇게까지 되었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가요.”
“누나가 이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어떻게 이렇게까지 되었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가요.”라는 P 집사 남동생의 그 말이 필자의 가슴을 파고든다. 그러면서 방 선교사를 오랫동안 후원했던 달리다굼선교회의 한 목회자의 문자메시지의 내용이 머리에 떠올랐다.
“참으로 기가 막힙니다. 세상에 이런 무지몽매하고 어리석은 짓이 있을 수 있다는 말입니까. 방정열이가 이렇게 망가질 수 있단 말입니까. 철저하게 미혹의 영에 사로잡혀 거짓되고 헛된 것을 믿고 따르다니요. 그로 인해 많은 무지한 사람들과 한국교회가 엄청난 피해를 보고 또 다시 하나님의 이름이 이방인들에게 모욕을 당하게 되어 죄송하고 안타깝군요.”
아마 이 기사가 게재되면 방 선교사가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교회와신앙>이 또 이단 삼단 만들었다.”
<교회와신앙>이나 필자를 욕해도 좋다. 그러나 욕을 먹더라도 방정열 선교사에게 이 말은 꼭 해야겠다.
“매홍쏜에 있는 모든 피난민들을 하루라도 빨리 집으로 돌려보내시오. 안가겠다면 억지로라도 돌려보내시오. 기도한다면서 기다리는 가족들의 피눈물이 보이지 않는가요? 안타까워하며 발을 동동굴리는 저 가족들의 애타는 가슴이 느껴지지 않는가요. 여전히 지금도 한국에서 보이지 않는 전쟁이 진행 중이라느니, 5월에 전쟁이 끝난다고 했다느니 하는 말은 하지 마시오. 그건 분명 거짓말이기 때문입니다. 진정 성령의 사람이라면 결코 거짓말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홍혜선과 방정열 선교사는 지금도 카톡 등으로 서로 정보를 주고받으며 친분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는 단지 인간적인 정으로만 맺어진 관계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즉 이는 이번 전쟁설만이 아니라 이들로 인해 앞으로 한국교회 안에 또 어떤 사건들이 일어날지 모를 일이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전쟁설을 퍼트린 홍혜선 전도사 그녀는 누구인가? < 계속 >
교회와신앙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