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는 울렁거린다 하여
기어코 전철로 무학여고에 갔습니다.
우리 동네 최강자인 대원외고 아이들이 진을 치고 함성을 지르며 자기 학교 선수들^^을 응원하고 있었습니다.
대원여고 아이들도 플랭카드를 들고 어울려 응원 하였구요.
영하로 기온이 뚝 떨어진 날씨는, 바람까지 세게 불어 얼마나 추웠는지 한동안 잊혀졌던 입시한파라는 단어를 상기 시켜주었습니다.
별로 감흥이 없다는 제법 담대한 원경이를 들여보내고
집으로 돌아와
이 겁많은 아비는 앉거나 눕거나 걸어다니거나 오로지 실수 없기만을 빌고 빌었습니다.
아이의 아침을 차려주고 점심으로 전복죽을 쑤어 주기 위하여 이틀이나 휴가를 낸 아내의 스마트 폰으로부터
시시각각 수능에 대한 정보들이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저는 아무 것도 모른 채 그저 안절부절하는 것이 체질에 맞고
아내는 무엇이든 더 알아서 의문을 푸는 것이 체질에 맞는가 봅니다.
그거 알아서 무엇합니까: 알아야 속이 시원해지는 것을 어쩌라구요...가 대립하였습니다.
위 두 언니들과 오빠 때에도, 아니 오빠는 수능과 관계없이 수시로 붙어서 이런식의 걱정을 크게 하지는 않았네요...초조하지 않은 것이 아니었지만 원경이는 재수까지 하고 치는 시험이라서인지 더 긴장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그 좋아하는 티비와 인터넷도 일절 끊고 전전긍긍하며 기도했습니다. 심은대로 거두게 하소서...
아내와 함께 4시20분쯤 집을 나서서
지금쯤 원경이는 제2외국어로 선택한 베트남어를 찍고 있을꺼야 ... 농담을 하며 택시를 타고 무학여고로 마중나갔습니다.
너무 일찍 도착하여 5시 20분까지 40분이나 기다려야 했습니다. 우리는 근처 지하 책방에 들어가 한참동안 추위를 피하였습니다.
정신이 붕 떠서 뭐가뭔지 모르겠는데, 국어는 어려웠고...수학은 쉬웠고...영어는 너무 쉬웠고...가장 자신있던 사탐은 모르는 것말고도 두 개나 실수를 하였다고 보고하였습니다. 베트남어는 찍을 때마다 답을 피해 가는 느낌이었다고^^
아내는 꼬치꼬치 궁금한 것을 더 물어보시려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지만, 이미 끝난 것 더 이상 아이를 괴롭히지 말자고 설득하였습니다.
외식하는 것을 너무나 좋아하는 원경이의 소망대로 건대롯데시네마 3층에 새로 생긴 식당가에 가서 까르보나라떡볶이?를 사주었습니다.
밤 10시경, 원경이는 가채점 결과를 알려주었습니다.
국어 수학은 등급컷에 걸려있고 사탐 하나는 가장 자신 있던 것인데 작년보다 두 등급이나 떨어졌습니다.
그래도 전체적으로 작년보다는 조금 더 상승했다는 것에 만족하는듯 보였습니다.
그리고 오랜만에 모두 함께 티비 앞에서 재잘재잘대며 아쉽지만 편안한 미소를 주고 받았습니다.
...
오늘은 모 대학의 논술이 있었습니다.
내일은 또 다른 대학의 논술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원경이는
논술하면...한비자가 최고라고 생각한다는 아비의 말을 듣고 ... 한비자를 읽다가 잠이 들었을 것입니다.
올해는 욕심을 부리지 않고 어느 곳에 합격하든지 감사할 것...누구보다도 저 자신에게 다짐에 다짐을 주었습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중얼거리며...
그리고
성실하게 공부한 것으로, 무사히 시험을 치른 것으로...충분히 감사가 넘치기를 스스로에게 권유하고 있는 중입니다.
...
염려하고 응원하고 기도해 주신 블로그 친구분들께 정말...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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