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전도단의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
이인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는 책은 기독교 서점에 가면 그야말로 널려 있다.
그런데 그러한 책 중에서 예수전도단의 많은 책들이 영향력이 크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필자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는 사람들을 지도하고 권면을 할 때에 그 사람들은 "예수전도단에서도 그렇게 가르친다"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예수전도단에서 발간한 이러한 책 중에는 문희곤목사의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은사가 아닙니다>, 조이 도우슨의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삶>, 로렌 커닝햄의 <하나님 정말 당신이십니까?>, 브래드 저삭의 <내 양은 내 음성을 듣는다>, 토니 존스의 <하나님을 읽는 연습>, 서승동의 <묵상, 하나님을 알아가는 시작입니다>... 등을 포함하여 많은 책들이 있다.
필자가 직접 만난 예수전도단의 책임자 중에 한분에게 필자는 "목사님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실 수 있습니까?"라고 직접 물었더니 "그런 뜻이 아닙니다"라고 답변을 하였다.
그 분은 필자에게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을 수 있다는 뜻이 아니며 성령의 감동을 뜻한다"고 해명을 하였다. 그러나 예수 전도단에서 발간한 책의 저자들은 성령의 감동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같이 실제 음성을 직접 들을 수 있다고 쓰고 있다.
그렇다면 먼저 문희곤 목사의 책과 함께 다른 책들을 살펴 보자.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일은 하나님과 내가 맺는 실제적인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음성은 추상적이고 관념적이지 않다. 지극히 실제적이고 실용적인 문제다. 그러니까 우리가 살아가면서 여러 문제에 부딪힐 때마다 하나님의 실제적인 인도를 즉각 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며 하나님을 알아가는 체험의 과정이다."(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은사가 아닙니다. 문희곤, 예수전도단, 31쪽)
물론 문희곤목사는 그 책에서 성경이 믿음의 최종 증거와 선택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되지, 왜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지 의문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문제에 부딪힐 때마다 실제로 하나님의 인도를 즉각적으로 받을 수 있다는 주장이 곧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는 뜻이 아니라면 무엇을 말하는가? 바꾸어 말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면 성경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된다.
문희곤목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렇다면 대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 신학이 아니라 신앙으로 받아 들여야만 이 표현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은사가 아닙니다. 문희곤, 예수전도단, 29쪽)
다시 말하자면, 문희곤목사는 신학적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는 신학보다 신앙적인 체험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정통신학에서는 목사의 설교, 혹은 믿음의 선배들이 쓴 책이나 글, 혹은 성경묵상을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고 말하며, 그것이 곧 성령의 감동이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문희곤 목사는 주님께 직접 음성을 들을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주님은 오늘도 살아계셔서 친히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우리는 그분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 다른 누구를 통해서가 아니라 주님께 직접 들을 수 있다."(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은사가 아닙니다. 문희곤, 예수전도단, 47쪽)
브래드 저삭의 <내 양은 내 음성을 듣는다>는 책 325쪽에는 소위 삼각형의 관계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즉 A가 하나님께 질문을 하면 B가 하나님의 답변을 받아 A에게 전하여 준다는 것이다. 과연 이러한 주장이 성령의 감동을 뜻한다고 볼 수 있을까? (만약 이 그림과 내용이 이단들의 책에 씌여있었다면 필자는 사이비적인 내용이라고 비판하였을 것이다)
예수전도단의 총재인 존 도우슨의 어머니인 조이 도우슨이 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삶>이라는 책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하루는 사무실에 있다가 그 펜이 없어진 것을 발견하고는 온 데를 다 뒤졌다. 하나님께도 그것을 찾을 수 있게 해달라고 도움을 청했고, 다 찾아 봤지만 헛수고였다. 마침내 난 하나님께 이렇게 말했다. '전지하신 하나님! 당신은 그 펜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알고 계시죠? 그리고 당신은 그 펜을 찾는 일이 제게 얼마나 중요한 지도 알고 계시죠? 제게 그 펜이 어디에 있는지 말씀해 주세요' 그리고 난 가만히 서서 귀를 기울였다. 즉시 한 문장이 내 마음에 떠올랐다. '사무실 화장실 안에 있단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삶, 조이 도우슨, 13~14쪽)
이것은 누가 보아도 실제로 잃어버린 펜의 위치에 대해서 직접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던 것이며, 삶에서 그다지 중요하지도 않은 펜을 찾는 일에까지 하나님이 직접 음성으로 들려주었다는 신비주의적인 내용임에 분명하다. 이러한 것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는 것이라면 조이 도우슨은 예수전도단의 해명과는 다른 문제있는 신비주의자가 되어야만 마땅하다.
더욱이 조이 도우슨의 아들 존 도우슨은 신사도운동의 피터 와그너, 신디 제이콥스, 루이스 부쉬, 조지 오티스 등과 함께 지역귀신의 영적도해를 주장한 사람이기도 하다. 조이 도우슨이 들었던 하나님의 음성이 과연 하나님이었는지, 그리고 성경적인지를 다음 경우를 통하여 살펴보자.
"그리고는 하나님께 내가 단순히 '존이 줄리와 교제를 계속해도 좋을까요?' 라고 물었던 것을 나누었다. 하나님은 내 마음 속에 '열왕기하 14장을 펴라'고 하셨다. 거기에 뭐가 있는지 난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러나 9절을 읽으면서 난 내 눈을 믿을 수 없었다. '네 딸을 내 아들에게 주어 아내를 삼게 하라' 그 후 몇 달 동안 남편과 나는 잘못 들은 것이면 바로 잡아 주시도록 계속해서 그분의 뜻을 구했지만 그 대답은 동일했다. '올바른 길이다'” (조이 도우슨,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삶, 35쪽)
한마디로 기가 막힌 엉터리 해석이다.
성령께서 말씀을 통하여 성령의 감동을 느끼게 해주신 것도 아니고, 성경본문의 "몇장 몇절을 펴라"고 직접 말씀했다는 것이다. 더욱이 열왕기하 14장 9절은 본문의 내용과 전혀 다른 뜻이다. 본문은 딸을 주라는 뜻이 아니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것을 읽고 조이도우슨의 하나님의 음성듣기는 거짓말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유다 왕 아마샤에게 보내어 이르되 레바논 가시나무가 레바논 백향목에게 보내어 이르기를 네 딸을 내 아들에게 주어 아내를 삼게 하라 하였더니 레바논 들짐승이 지나가다가 그 가시나무를 짓밟았느니라” (왕하 14:9)
성경 본문에서 “네 딸을 내 아들에게 주어 아내를 삼게하라”는 것은 축복이나 허락의 말이 아니라 저주와 조롱의 욕설이기 때문이다. 비천한 가시나무는 유다를, 고급목재인 백향목은 이스라엘을 상징하는데 가시나무가 갑자기 교만해져서 백향목에게 딸을 달라고 하는 요구를 하는데, 결과적으로 백향목을 무시하는 요구이며, 들짐승으로 비유되는 레바논이 유다를 짓밟게 됨으로서 멸망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이러한 요아스의 비유적인 조롱이 유다 아마샤의 화를 나게 하였고 거절을 하게되자 이스라엘왕 요아스가 유다를 치게 되어 아마샤를 포로로 붙잡게 된다.
과연 하나님이 결혼에 대해서 이 말씀을 주셨다면, 그 결혼은 하면 안되는 것이 성경적이 된다.
또 이런 내용도 있다. 과연 레위기 14:47이 그런 뜻인가?
" '사랑하는 하나님, 제 열쇠가 어디 있어요?' 그리고는 법석대거나 걱정하는 대신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하나님께서 그녀의 영 가운데 말씀하셨다. '네 성경책에서 레위기 14장 47절을 펴라' 거기에는 이와 같이 쓰여 있었다. '그 집에서 자는 자는 그 옷을 빨 것이요 그 집에서 먹는 자도 그 옷을 빨 것이니라'. 당신은 아마도 '아니 그게 뭐야. 그게 열쇠 찾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어' 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상관이 있다. 그것도 아주 대단히. 열쇠를 찾는 소동이 있기 전에 그녀는 빨래를 해서 개킨 뒤 식탁 위에 올려 놓았었다. 그러다가 식사하려고 그 위에 있던 것들을 침대 위에 갖다 놓았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살아 있고 역사하는 말씀이 말하는 대로 침대에 가서 그 개켜 놓은 옷들을 다 들춰보았다. 바로 거기 열쇠가 있었다.“(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삶 73쪽-74)
조이 도우슨은 열쇠를 잃어버렸는데 역시 하나님이 알려준 것은 말씀구절이 아니라 레위기의 몇장몇절을 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성경구절을 통하여 열쇠를 빨려고 내놓은 옷에서 열쇠를 찾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레위기 14장 본문은 문둥병에 대한 규례로서 부정한 문둥병 환자가 있는 집에서 교제한 후에 그 처리방법을 언급한 정결의식에 대한 구약성경구절이며, 잃어버린 열쇠와 전혀 상관이 없다. 오히려 성경적으로 해석할 때에 그 빨래감과 열쇠는 부정한 것이 되어야 한다.
이와 같이 성경의 문맥을 무시하고, 그 부분적인 구절만 인용하는 것은 이단들의 성경해석의 전용적인 수법이 아니었는가?
또 아이합 마이크 비클의 친구라고 말하는 예수전도단의 설립자 로렌 커닝햄의 책에도 이런 내용이 있다. 그가 어렸을 때에 어머니에게 5달러를 받고 심부름을 갔을 때에 돈을 잃어 버리게 된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돈을 잃어 버렸다고 하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갑자기 어머니는 내 어깨를 꽉 쥐면서 '로렌, 그 돈은 수풀 아래에 있다고 방금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머니가 조금 낮은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어머니는 즉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셨고 나도 그 뒤를 따라서 뛰었다. 날은 점점 어두워졌다. 나는 아까 왔던 길을 찬찬히 밟아 가면서 수풀과 울타리를 뒤졌다. 어머니가 상록수들이 있는 길에서 바닥을 내려다보며 멈춰 섰을 때는 너무 어두워서 거의 볼 수가 없었다. '저 나무 밑을 살펴보자'. 어머니는 나무들이 있는 곳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흥분해서 소리쳤다. 우리는 나무 밑으로 가 샅샅이 뒤졌다. 그런데 그루터기 나무 아래쪽에 구겨진 5달러짜리 지폐가 있었다.(로렌 커닝햄, 하나님 정말 당신입니까? 24쪽)
하나님은 로렌 커닝햄의 어머니에게 그 돈이 수풀 아래에 있다고 하셨는데, 결국 돈은 수풀에서 찾지 못하고 그루터기 나무 밑에서 찾게 되는 것을 어떻게 말할 것인가? 하나님이 잘못 가르쳐 주셨는데도 그것이 하나님의 음성인가? 이와 같이 개인적이며 사소한 문제까지 하나님이 직접 음성으로 알려준다는 것은 명백한 신비주의 사상이다.
또 브래드 저삭의 <내 양은 내 음성을 듣는다>라는 책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주님, 오늘 하실 말씀은 무엇입니까?” 그때 맞은 편 탁자에 한 젊은 여자가 등을 돌리고 앉아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주님, 저 여자에 대해서 무엇을 말씀하려 하십니까?” 그때 주님의 응답을 느낄 수 있었다. “저 여자는 만성적인 질병을 가지고 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듣는다, 브래드 저삭, 89쪽)
과연 이것이 말씀을 통한 성령의 감동이며 조명인가? 이것은 하나님이 직접 음성으로 알려준 신비주의적인 내용이다. 통상적으로 이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배경에는 자기 자신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을 과시하는 것이 그 목적이라고 보여지며, 주로 이단들의 교주나 문제가 많은 목사들이 주로 사용하는 수법이기 때문이다.
교회에서 예수전도단에서 해외에 단기선교를 다녀온 교인이 있었다.
필자는 그 교인에게 물었다.
- 요즈음도 다음 선교지를 어디로 갈 것인지에 대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자"는 시간을 가집니까?
- 예, 우리도 그런 시간을 갖었습니다. 동서남북으로 정하여 음성을 느낀 사람의 대답을 다수결로 결정하여 남쪽으로 갔습니다.
과연 이것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훈련인가? 그리고 실제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는 뜻이 아니라는 예수전도단의 변명은 무엇인가?
우리의 신앙적인 기준은 성경으로 충분하며 성경은 우리를 능히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지혜가 있다. 왜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으라는 비성경적인 주장을 강요하는가?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딤후3:15)
성경은 능히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지혜가 있는 책이다.
즉 기록된 성경말씀대로 따르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다. 그 성경의 저자들이 곧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혹간은 성경에는 몇몇 사람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는가?라고 반박을 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택하심으로 음성을 들었던 소수 사람들(선지자, 사사, 제사장등)의 기록이며, 성경이 우리 신앙의 기준이 되며, 성경이 특별계시가 된다는 자체가 곧 우리가 직접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을 증거한다. 우리가 직접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면 우리에게는 더이상 성경이 필요하지 않다는 결론이 된다.
모세도 하나님의 얼굴을 보지 못하였지만 하나님의 등을 보았다고 말하며, 가시나무 떨기 불꽃으로 나타난 천사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성경은 그가 받은 음성이 기록되어 있으며,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볼 수가 있는 것이다. 성경은 아브라함에게 전하신 하나님의 말씀, 사무엘에게 전하신 하나님의 말씀, 이사야에게 전하신 하나님의 멧세지가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날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다.
필자가 만나서 오랫동안 대화를 한 예수전도단의 책임자 중에 한 사람은 지역귀신에 의한 영적도해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였다. 그러나 미국에 본부가 있고 그러한 책의 저자들이 미국 본부에 있기 때문에 한국 예수전도단에서 수정하기 어렵다는 고백을 하였다.
그렇다면 문제는 간단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음성대로 따른다는 예수전도단의 지도층이 지역귀신에 의한 영적도해와 같은 잘못된 교리를 가르쳤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예수전도단에서 신앙훈련을 받았던 청년들이 현재 수많은 신사도운동 교회와 단체로 빠진 것이 과연 누구의 책임인가?
과연 그들이 들었던 음성이 하나님의 음성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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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예수전도단의 하나님 음성 듣기 비판 (무엇이든지 물어보세요) |작성자 dsmed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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