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년 넘게 세습 반대 운동에 동참해 온 오세택 목사는 지난 4월 예장고신 경기노회 정기회에서 세습 방지법을 총회에 헌의하자는 의견을 내놓았다. 원로목사 2명을 비롯해 노회원 2명이 이에 반대했지만, 노회원 95%가 찬성했다. ⓒ뉴스앤조이 임안섭

오세택 목사(두레교회)는 교회개혁실천연대(개혁연대·공동대표 박종운·백종국·방인성)에서 10년 넘게 세습 반대 운동에 동참해 왔고, 지금은 교회세습반대운동연대 공동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오 목사는 부친이 목회를 하던 A 부목사에게 아버지의 담임목사 자리를 물려받으면 성장할 수 없다고 누누이 강조했다. 그런데 올해 초 A 목사가 부친이 목회하는 B교회로 옮기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오 목사는 A 목사를 그냥 보낼 수 없었다. 그를 진정으로 위하는 길은 세습을 하지 않도록 다짐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오 목사는 A 목사가 세습 거부 각서를 쓰고 거기에 그의 부모와 B교회 장로·권사들, 노회 노회장·서기, 두레교회 교역자들에게 서명을 받게 한 후 A 목사를 보내 줬다. 그렇게 해서라도 A 목사가 바른길로 가길 바랐던 것이다.

"아버지가 쌓아 놓은 것을 힘들이지 않고 물려받겠다는 것은 탈취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목회하기로 마음먹었으면 밑바닥부터 새로 시작해 보려고 해야 한다."

   
▲ 오세택 목사는 아버지에게 담임목사직을 물려받는 목회자들을 향해 비열하다고 비판했다. 이들이 다른 목회자들과 동일 선상에서 출발하지 않고, 아버지가 쌓아 놓은 것을 거저 받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뉴스앤조이 임안섭

담임목사직을 자식에게 물려주는 목회자도 문제이지만, 오세택 목사는 세습을 받아들이는 목회자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본다. 오 목사는 아버지가 담임목사직을 물려주려고 하는 것을 냉큼 받는 목회자들을 향해 비열하다고 비판한다. 그 이유는 이들이 목회자 자식이 아닌 다른 목회자들과 동일 선상에서 출발하지 않고, 아버지가 그동안 쌓아 놓은 것을 거저 받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목사직 대물림이 비판받는 이유 중 핵심은 목사가 교회를 자기 것처럼 여기는 것, 즉 교회 사유화 문제다. 이것은 세습 문제가 사회적으로 손가락질을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오세택 목사는 목회 세습을 승계라 칭한다 해도 목사직을 자식에게 물려주는 행위는 교회를 하나님의 것이 아니라 자기 것으로 여기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안정적인 기반을 갖춘 중·대형 교회 목회자들이 자신에게 집중된 부·권력·명예 등을 자식에게 넘겨주고 싶은 욕망이 작용한다는 것이다.

A 목사 사건을 겪으면서 오세택 목사는 교단 내에 세습 방지법 제정이 시급하다고 판단했다. 지금까지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예장고신·조일래 총회장)에서 세습한 것으로 알려진 교회는 두 곳 정도이긴 하다. 하지만 오 목사는 주변에 목사가 되려는 목회자 자식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앞으로 세습을 시도할 교회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그래서 오 목사는 지난 4월 예장고신 경기노회(김윤종 노회장) 정기회에서 세습 방지법을 총회에 헌의하자는 의견을 내놓았다. 원로목사 2명을 비롯해 노회원 2명이 이에 반대했지만, 노회원 95%가 찬성했다.

"반대하는 이들이 많을 줄 알았는데, 뜻밖에 세습 방지법을 지지하는 노회원들이 많았다. 그만큼 세습이 잘못된 것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본다."

오세택 목사는 교계에 목회 세습에 대한 반대 여론이 점점 확산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지난해 기독교대한감리회가 세습 방지법을 제정한 것에 영향을 받아 올해 들어 예장통합·합신과 한국기독교장로회 등 타 교단에서 세습 방지법을 헌의하는 노회가 많이 생겨났다. <한국장로신문>이 지난 7월 초 예장통합 장로 수련회에 참석한 이들 702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한 결과 87.2%가 목회 세습을 반대한다고 응답했다. 오 목사는 이런 여론 확산이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나 개혁연대를 비롯해 양심 있는 목회자들과 교인들이 10년 넘게 세습 반대 운동을 한 열매라고 봤다.

9월에 열리는 예장고신 63회 총회에서 세습 방지법 헌의안이 다뤄질 예정이다. 경기노회뿐 아니라 경인·수도노회도 세습 방지법을 총회 안건으로 상정해 놓은 상태여서, 오 목사는 긍정적으로 내다보고 있다. 총회에 참석하는 목사·장로들 2/3 이상이 세습 방지법 제정 안을 찬성하면, 헌법개정연구위원회(연구위)를 구성해 1년 이상 연구해 법 조항을 만들게 된다. 아니면 총회원들이 연구위가 세습 방지법을 1년간 연구한 후 제정 여부를 결정하자고 결의할 수도 있다.

   
▲ 9월에 열리는 예장고신 총회에서 세습 방지법 헌의안이 다뤄질 예정이다. 경기노회뿐 아니라 경인·수도노회도 세습 방지법을 총회 안건으로 상정해 놓은 상태여서, 오세택 목사는 긍정적으로 내다보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9월 열린 62회 총회. ⓒ뉴스앤조이 임안섭

오 목사는 총회에서 세습 방지법 제정안이 통과되면, 연구위에 △세습 시 징계 사항 △변칙 세습 방지 내용 등을 구체적으로 제안할 계획이다. 변칙 세습에 관한 종류는 △가까운 목사를 거쳤다가 아들에게 물려주는 '징검다리 세습' △서로 교회를 맞바꾸는 '교차 세습' △교회 분립을 해 재산과 교인들을 넘겨주는 '지교회 세습' △아버지와 아들이 각각 목회하는 교회를 합치는 '합병 세습' 등이 있다.

"성공과 출세를 좇는 신앙을 그냥 놔두거나 부추기는 목회가 만연한 것이 큰 문제다. 이런 목회자가 세습을 한다면 더 심각한 문제를 낳는다." 한 대형 교회 목사가 소형차를 타는 교인이 나중에는 에쿠스 같은 대형차를 타는 축복이 있길 바란다고 노골적으로 말한 사례를 들며 오세택 목사가 한 얘기다. 이 교회는 세습 의혹이 있는 곳이다. 오 목사는 세습을 막기 위해 법을 제정하는 것과 함께 예수님의 말씀을 제대로 따르는 운동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