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헌법전면개정위원회가 7월 18일 전국 노회장 공청회를 열고 개정안 초안을 내놨다. 하지만 지나치게 목사 중심적으로 개정됐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사진은 지난 4월 19일 헌법 전면 개정 1차 공청회. ⓒ마르투스 이명구 |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예장합동·정준모 총회장)이 목사에게만 유리한 헌법 개정으로 비판을 받고 있다. 헌법전면개정위원회(배광식 위원장)는 7월 18일 총회 회관에서 전국 노회장 공청회를 열고, 헌법 정치와 권징조례 개정안 초안을 발표했다. 권징조례는 각 조에 이름을 붙인 것 외에 크게 바뀐 부분은 없었다. 하지만 정치 부분은 목사 관련 조항을 세세하게 개정한 것을 넘어, 장로와 교인의 권리를 축소하면서까지 지나치게 목사의 편의를 봐준 듯했다.
십일조로 교인 권리 중지, 못 내는 사람은?
개정안에는 십일조 헌납 여부로 교인의 자격을 중지시키는 조항이 신설됐다. 제17조 '교인의 자격 정지'에는 "교인으로서 6개월 이상 예배에 출석하지 않거나 십일조 헌금을 하지 않는 교인은 권리가 자동 중지된다"고 나와 있다. 게다가 제15조 '교인의 의무'에 십일조와 각종 헌금을 추가했다. 기존 헌법은 의무금이라고만 표현했는데, 개정안은 아예 십일조라고 명시한 것이다.
교단 헌법에 십일조를 교인의 의무로 집어넣은 경우는 없다. 한국교회에서 규모가 큰 예장통합이나 기독교대한감리회의 헌법은 예장합동 기존 헌법처럼 헌금·봉헌·의무금을 내야 한다는 정도로 규정하고 있다. 헌법전면개정위 정치 분과장 한기승 목사는 "의무금이 곧 십일조"라고 설명했다. 교회의 유지와 활동을 위해 교인들이 일정 정도의 금액을 내야 한다는 주장은 일리가 있지만, 교단 헌법에서 모든 교인에게 일괄적으로 소득의 1/10을 의무로 책정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십일조 관련 개정안은 빈틈이 많아 현실성이 없어 보인다. 교인의 의무나 자격 정지 조항에는 단서 조항이 없다. 십일조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교회에는 수입이 없거나 특별한 사정으로 십일조를 내지 못하는 교인들도 많은데, 이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다. 십일조 헌금에 반드시 이름을 써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소득이 공개되는 것을 꺼려 무기명으로 십일조를 내는 경우도 빈번하기 때문이다.
반기 드는 교인 싹 자르기…당회가 교회 재산 처분 가능
더 큰 문제는 십일조로 교인의 권리를 중지시키는 조항이 교회 분쟁 상황에서 악용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교회 분쟁 사례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대부분 분쟁이 일어나면 담임목사를 옹호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의 싸움이 된다. 담임목사를 반대하는 측 교인들은 교회에 헌금을 내기 꺼려지는 게 사실이다. 예배를 아예 따로 하는 경우, 반대 측 교인들은 자연스럽게 반대 측에 헌금하게 된다. 실제로 정삼지 목사의 교회 재정 횡령으로 분쟁이 일어난 제자교회는 정 목사 지지 측과 반대 측으로 나뉘었다. 따로 예배를 하고 헌금을 걷는다.
'교인 자격' 문제는 교회 분쟁에서 쟁점이 되어 왔다. 담임목사 지지 측은 반대 측이 예배 출석과 헌금을 하지 않는다면서 법원에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법원이 이를 받아들인 적은 없지만, 이 조항이 통과된다면 담임목사 반대 측 교인들은 교단 헌법을 근거로 교인 자격이 중지될 소지가 있다. 목사의 잘못을 지적하며 교회를 바르게 세우고자 했던 교인들이 교회에서 쫓겨날 수도 있는 것이다.
더구나 최근 몇 년간 예장합동 목사들의 비행으로 교회가 몸살을 앓는 경우가 많았는데, 헌법 개정안은 목사의 자격 정지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원래 있던 "위임 목사가 본 교회를 떠나 1년 이상 결근하게 되면 자동적으로 그 위임이 해제된다"는 문구는 삭제했다.
▲ 정삼지 목사의 교회 재정 횡령으로 분쟁이 일어난 제자교회는, 정 목사 지지 측과 반대 측 교인이 나뉘었다. 따로 예배를 하고 헌금을 걷는다. 사진은 지난 3월 따로 공동의회를 공고한 모습. (사진 제공 <뉴스앤조이>) |
개정안을 좀 더 들춰 보면 교회 개혁을 원하는 교인들의 발목을 잡는 조항이 더 발견된다. 제124조 '공동의회' 5항 '결의'에는 "공동의회에서 교회의 재산(동산·부동산)을 취득·처분할 경우, 투표 수 2/3 이상의 결의를 요한다. 단, 지교회 형편에 따라 당회의 결의로 교회 동산·부동산을 처분할 수도 있다"고 나와 있다. 여차 하면 당회에서 교회 재산을 맘대로 처분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는 장로교의 민주주의 정치 원리를 등진 개정이다. 당회나 담임목사 단독으로 교회 재산을 처분해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 개정안은 이를 합법적으로 보장하는 셈이다. 원래 교회 정관이나 교단 헌법에 교회 재산 처분에 대해 특별한 규정이 없는 경우, 공동의회를 거치지 않은 처분은 무효다(<교회, 가이사의 법정에 서다>, 강문대). 목사의 전횡을 경계하고 민주적인 교회 운영을 원하는 교인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공산이 큰 조항이다.
장로는 거들 뿐?
장로들의 반발도 거세다. 개정안이 장로들의 권리를 축소한 감이 있기 때문이다. 제34조 '장로의 직무'는 원래 "치리 장로는 목사와 협동하여 행정과 권징을 관림한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위원회는 "치리 장로는 목사의 목회를 돕고 행정과 권징을 협력한다"고 고쳤다. 목사와 협동하는 위치에서 목사를 일방적으로 도와야 하는 것처럼 개정한 것이다.
제54조 '당회 회집'도 문제가 됐다. 원래 교회에 목사가 없는 경우 필요에 의해 장로 과반수가 임시당회를 소집할 수 있게 돼 있었는데, 위원회는 장로 과반수 결의로 노회에 임시당회장을 요청해야만 임시당회를 열 수 있도록 개정했다. 반드시 목사가 있어야만 당회를 열 수 있게 한 것이다. 이에 교단 장로들은 '목사 중심적' 헌법 개정이라며 불만을 품고 있다.
공청회에 앞서 전국장로회연합회(권정식 회장)는 목사 중심적 헌법 개정을 결사반대한 바 있다. 연합회는 지난 7월 11일 수련회를 마치면서 "장로회 정치 원리에 맞게 모든 위원회 구성, 자격과 권한에서 목사 편향적인 헌법 개정을 절대 반대하고 균형 있는 교단 헌법이 되기를 강력히 촉구"하는 결의문을 발표했다.
정치 분과장 한기승 목사는 목사 편향적인 개정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원래 헌법에 기록되어 있는 협동의 목적을 구체적으로 기술한 것뿐이라고 했다. 임시당회 소집에 대해서는, 당회장 청빙이나 교회 재판 같은 중대한 건은 임시당회장이 참석한 자리에서만 논의해야 하지만, 그 외 교회 행정 등은 장로 과반수가 결의해 임시당회를 소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동사목사 합법화, 목회 세습 길 터 주나
위원회는 수년간 문제가 됐던 임시목사의 명칭과 시무 기간을 고쳤다. 시무 기간을 기존 1년에서 3년으로 늘렸고 1회 연장할 수 있게 했다. 명칭은 시무목사와 동사목사로 바꿨다. 동사목사란 위임목사와 같은 일을 하는 목사지만 당회장권이 없는 목사다. 문제는 동사목사 제도가 담임(위임)목사를 아들, 혹은 친인척에게 세습하는 방법으로 악용돼 왔다는 점이다.
▲ 한기총 대표회장 홍재철 목사가 당회장으로 시무하는 경서교회는 2010년 홍 목사의 아들 홍성익 목사를 동사 목회 형식으로 데려왔다. 내년 은퇴를 앞두고 아들에게 교회를 물려주기 위해서다. ⓒ마르투스 구권효 |
동사목사는 후임 목사에게 안정적으로 목회 노하우를 전수할 수 있다는 데에서 긍정적이다. 하지만 담임목사가 자신의 아들을 동사목사 자격으로 앉힌 후, 자신이 은퇴할 때 아들에게 자연스럽게 위임 절차를 밟는 경우가 많았다. 가령,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홍재철 목사(경서교회)는 내년 은퇴를 앞두고 2010년 동사 목회 형식으로 아들 홍성익 목사를 데려와 당회장직을 물려주려 하고 있다.
세습에 대한 우려를 인식한 듯, 위원회는 제108조 '목사의 청빙 제한'에서 교회 사임 후 1년 이내에 동일 교회의 위임목사 또는 시무목사가 될 수 없다는 조항을 신설했다. 한기승 목사는 "동사목사는 교회가 어려워 다른 교회와 합병할 때 담임목사가 되지 못한 목사를 염두에 둔 것이다. 3년간 동사목사로 있다가 다른 곳으로 청빙받아 가면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장로교는 목사 청빙 시 공동의회를 거치기 때문에, 세습이라는 용어 자체가 적용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3년에서 6년간 한솥밥 먹은 '아들 목사'를 교인들이 거부하기는 쉽지 않다. 공동의회를 거친다고는 해도 결과적으로는 목회 세습이 되는 것이다. 교회개혁실천연대 김애희 사무국장은 "담임목사의 아들·사위·친인척이 동사목사 자격으로 들어와 자연스럽게 교회 운영에 관여하고 후임으로 청빙된 사례가 많다"며 "제한 조항이 있긴 하지만 1년은 너무 짧다"고 말했다.
목사 자격, 총회 인준 신학교 졸업자 포함…이중국적·이중직 금지
임시목사 문제 외에도 목사에 관련된 부분을 신경 쓴 흔적이 보인다. 목사가 될 자격이 총신대 신대원 졸업자에게만 주어진다는 이전 헌법과 달리, 현재 상황을 적용해 총회 인준 신학교 신대원 졸업자도 명시됐다. 개정안에는, "총신대 신대원(총회신학원) 또는 총회가 인준하는 신대원(칼빈대·광신대·대신대)을 졸업한 자에게 동일하게 준목 고시 자격을 준다"고 되어 있다.
목사의 이중직은 금지했다. 하지만 총신대 신대원 및 총회 인준 신대원과 지방 신학교의 비상근·비보직 석좌교수, 강의 전담 교수, 산학 협력 교수, 겸임교수와 총회 산하 각 기관의 비정규직, 지교회 부설 유치원·어린이집·복지 기관의 장은 예외로 뒀다.
한편, 위원회는 목사의 이중국적도 금지했다. 외국 영주권자는 담임목사가 될 수 있지만, 시민권자는 허용하지 않았다. 한기승 목사는 불소급 원칙을 적용해 이미 담임목사인 시민권자는 목회를 허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 97회 총회에서는 의도와는 다르게 외국 시민권자의 목회를 불허했다. (관련 기사 : 외국 시민권자 당회장직 불허의 속사정) 이후 실제로 미국 시민권자 목사가 노회에서 위임 해제되자 논란이 불거졌고, 총회 실행위원회는 7월 2일 이 문제를 98회 총회에서 논의하기로 한 바 있다.
실제 개정까지는 3~4년 더 걸려
예장합동은 헌법을 전반적으로 고쳐야 할 필요성을 공감해 지난해 9월 97회 총회 결의로 헌법전면개정위를 설치했다. 개정안 초안이 허술하게 나온 면이 있지만, 헌법이 완전 개정될 때까지는 적어도 3년 이상이 걸린다. 헌법 개정을 위해서는, 헌법전면개정위의 개정안을 총회 2/3 이상이 가결해야 하고, 통과된 개정안을 다시 각 노회에서 결의하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80년 만에 처음 헌법 전반을 개정하는 것이니만큼, 위원회는 3~4년에 걸친 장기적인 계획을 수립해 개정을 진행해 나가기로 했다. 일단 몇 차례 수정을 거쳐 오는 9월 98회 총회에 최종 개정안을 상정하고, 한 회기 더 위원회를 존속시켜 달라고 청원할 예정이다.
구권효 / <마르투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