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기의 청소년이 자기 자아의 혹은
존재의 부족함을 깨닫고 신앙에 존나
몰입했다가
그게 과하여 오히려 자기 자아가 부실해
지는 과정을 겪게 됩니다. 신앙은 구속이
되고 그는 신앙의 노예가 돕니다.
우여곡절 끝에 간신히 자아의 완성을 하게
되지요. 혹자는 탕자의 방황이라고 하지만
혹자는 껍질을 깼다는 고상한 표현을 합니다.
성장문학과 영화가 다루는 단골 주제지요.
이런 과정을 겪는 소위 신앙의 소년들은 많습
니다. 정도의 차이지만요. 상담 케이스 공부
하다보면 심한 경우 정신분열에 걸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자기 분열된 자아 속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성령의 소리로 착각합니다.
예외가 아닌지라 제게 있어서 신앙은 하나의
껍질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젠 그 껍질을 재
료로 살 집을 마련해야 합니다. 겨우 껍질을
부셨을 뿐입니다. 집을 짓는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기범님 같은 양반이 때로 부럽습니다. 왜냐
그를 가로막고 있는 껍질은 그리 단단해 보이
지 않습니다. 껍질을 부순 후에도 저보다는
비교적 자유로울 겁니다. 또 부순 후에도 집에
대한 강박관념도 그리 강하지 않습니다.
저의 숙명입니다, 강한 껍질 속에 있었던 고로.
아마 저는 그보다는 튼튼한 집을 짓고 살겠지요.
혹자는 그 튼튼한 집 속을 타인을 위해서 제공
할 운명이랍니다. 글쎄요..후후 그건 누구도 모
르지요.
아마 뵈뵈님이나 원필님 진석님은 죽어도 이 과정을 모
를 겁니다. 허나 님들의 자식을 낳아서 청년기가 되면
조금이나마 이해하실겁니다. 특히 님들이 신앙교육을
철저히 시킬 수록 말입니다.
나중에 님들의 방침에 반항을 하거들랑 맞대응 하지
마시기를. 다만 그들이 나중에 살집을 만들거들랑
그네들이 깨버린 껍질이 그네들이 지어야할 집의 재
료로 많이 들어가기를 기대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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