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우리/교회에 대하여

입신이 성경적인가?(이인규권사)

주방보조 2009. 10. 31. 00:53

입신이 성경적인가?

 

사람이 죽지 않고 천국과 지옥에 다녀올 수가 있을까?

한마디로 공상소설에서나 가능한 이야기들이 지금 기독교에서 대유행을 하고 있어 너도 나도 천국과 지옥에 다녀왔다고 간증을 하기에 이르렀고, 서점에는 이러한 책들이 넘쳐나고 있다.

이러한 상태를 소위 입신(入神)이라고 하여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는 신비로운 현상으로 주장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 그러나 입신(入神)이라는 용어는 기독교의 용어가 아니라 무속적인 용어로서 매우 문제가 많은 용어이다. 물론 성경에서는 이러한 용어가 없다. 무속신앙적인 용어에서는 죽은 사람의 영혼이 사람의 몸에 들어오는 것, 혹은 무아지경에 이르는 상태등을 입신 혹은 접신이라고 말한다. 또한 빈야드운동을 도입하는 사람들은 예배 중에 쓰러지는 현상을 입신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성경은 빈야드운동이 말하는 입신에 대해서 전혀 언급하지 않으며, 무속신앙적인 입신과 접신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금하고 있다.

 

레 20:27 남자나 여자가 접신하거나 박수무당이 되거든 반드시 죽일지니 곧 돌로 그를 치라 그들의 피가 자기들에게로 돌아가리라

 

신 18:11 진언자나 신접자나 박수나 초혼자를 너희 가운데에 용납하지 말라

 

성령충만은 반복적일 수 있지만, 성령의 내주는 반복적인 일이 아니다. 다시 말하여 어떤 집회 때마다 성령내주를 체험한다는 자체가 잘못된 일이며, 그것을 입신이라고 부른다는 자체가 비성경적인 것이다.

최근에 일부 목사들에 의하여 기독교가 무속화, 무당화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입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 성경적인 근거로 바울도 낙원을 다녀왔다는 것을 예로 들고 있는데, 그 성경본문을 살펴보자.

 

고후 12:2-6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 사년 전에 그가 세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치 아니하리라. 내가 만일 자랑하고자 하여도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아니할 것은 내가 참말을 함이라. 그러나 누가 나를 보는 바와 내게 듣는 바에 지나치게 생각할까 두려워하여 그만 두노라.

 

바울은 낙원에 다녀온 것을 자신의 체험이 아니라 제 삼자의 입장으로 말하고 있다. 물론 그 이유에 대해서는 6절에서 설명하고 있는데, 다른 사람이 지나치게 생각할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갑자기 이 본문을 살펴보고 싶은 생각이 든 이유는 워낙 요즈음 천국과 지옥에 갔다 왔다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러한 사람들의 간증을 듣거나 그 책을 읽어보면 바울과 많은 차이점이 보인다. 게다가 대부분이 비성경적인 간증을 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첫째, 바울은 다른 사람들이 지나치게 생각할 것이 염려하여 제삼자의 입장으로 글을 기록하는 반면에, 요즈음 천국과 지옥에 다녀왔다는 사람은 오히려 자랑스럽게 자기 자신의 체험을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장 문제점은 천국과 지옥을 다녀왔다는 간증을 하는 사람들의 거의 대부분이 비성경적이며 자의적인 주장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 특수한 경우를 보편화하려고 한다. 예를 들어 에녹은 죽지 않고 하늘로 옮기워졌다(창6:24, 히11:5). 이러한 특수한 경우가 다른 사람에게도 보편적으로 일어났는가? 엘리야의 경우(왕하2:11)와 같이 불수레와 불말을 타고 하늘로 승천한 경우가 다른 사람에게도 보편적으로 일어났는가?

 

셋째, 바울은 자신의 낙원을 간 것이 몸 안인지 몸 밖인지를 모르겠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천국간증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영혼이 몸에서 이탈되어 영혼만이 갔다고 말한다. 사도바울은 자신이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고 하는데, 그들은 왜 몸 밖에서 유체이탈되었다고 단정하는가?

그렇다면 왜 바울은 몸 안인지 몸 밖인지 몰랐다고 말할까?

성경학자들은 이러한 바울의 체험을 그가 실제로 죽었다가 살아난 경우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고후11장23-25절에서 그는 거의 죽을 뻔했던 많은 체험들을 말하며, 행14:19에서 바울은 돌에 맞아서 죽은 줄로 알고 성 밖으로 내친 적도 있다.

그런데 요즈음 입신을 주장하는 사람 특히 J교회 K목사나 K교회의 B목사, 혹은 천국간증에 대한 책을 쓴 T라는 여인과 같이 수십번을 습관처럼 아주 쉽게 갔다 왔다는 사람도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신사도운동을 하는 미국의 목사들이 그러한 주장을 자주하고 있다.

 

넷째, 바울은 그러한 체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지 말도록 경고를 받았다고 말한다. 표준새번역, 현대인의 성경, 특히 KJV영어성경과 NIV영어성경이 모두 그러한 번역을 하고 있다. 바울은 왜 이야기를 하지 말도록 들었다고 하는데, 그들은 모두 성경의 내용과 달리 자유롭게 말을 하고 있을까?

 

[표준새번역] 이 사람은 낙원에 이끌려 올라가서, 말로 표현할 수도 없고 사람이 말해서도 안 되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현대인의성경] 나는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도저히 표현할 수도 없고 또 누구에게도 알려서는 안 되는 말을 들었습니다.

[KJV] How that he was caught up into paradise, and heard unspeakable words, which it is not lawful for a man to utter.

[NIV]was caught up to paradise. He heard inexpressible things, things that man is not permitted to tell.

 

다섯째, 물론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났다는 경우가 지금도 간혹 있다. 기독교뿐 아니라 타종교, 혹은 무신론자도 그러한 체험을 하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그러한 현상에 대해서 의학적인 견해는 죽은 지 얼마되지 않은 사람의 경우에 대해서, 가사상태라고 말하기도 하며, 다시 살아날 수 있는 만일의 가능성을 위하여 죽은 사람을 곧 매장하거나 화장을 하지 않고, 삼일장을 하는 이유라고 말한다.

심장이 멈춘 사람의 경우, 의학적으로는 죽음의 상태이지만, 인공호흡이나 심장에 전기적인 충격을 줌으로서 소생시키는 방법도 있다.

 

분명한 것은 죽은 지 오랜 시간이 경과한 후에 사람이 다시 살아난 경우는 한번도 없다. 어쨌든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들은 꿈을 꾸었다는 경험담을 말하기도 하는데, 그 체험이 모두 다르며, 특히 자신이 평소 갖고 있는 종교적인 관점에서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경우도 있으므로 객관적인 기준이 없다.

그러나 성경은 오히려 죽은 사람은 다시 돌아올 수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구름이 사라져 없어짐 같이 음부로 내려가는 자는 다시 올라오지 못할 것이오니 그는 다시 자기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겠고 자기 처소도 다시 그를 알지 못하리이다”(욥7:9-10)

 

“그 집은 사망으로, 그 길은 음부로 기울어졌나니 누구든지 그에게로 가는 자는 돌아오지 못하며 또 생명길을 얻지 못하느니라”(잠2:17-19)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

 

여섯째, 영혼이 몸 밖으로 빠져나갔다는 것은 곧 죽음을 말한다.

약2:26에서 “영혼없는 몸은 죽은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또 육신은 땅으로 돌아가지만, 신(spirit)은 육신과 분리되어 하나님에게로 돌아가게 된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전12:7)

 

- 나의 이 가죽, 이것이 썩은 후에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욥19:26)

 

또한 스데반은 죽임을 당하기 직전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행7:59)라고 부르짖었으며, 예수님 자신도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23:46)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모두 죽음의 상태가 영(spirit)이 사후에 육체로부터 분리되어지는 것을 뜻한다.

야이로 회당장의 딸이 죽었을 때에 예수님이 "일어나라"고 하자 "그 영(sprit)이 돌아와 아이가 곧 일어 나거늘...."(눅8:55)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아나니아와 그 아내가 사도들의 발 앞에 팔았던 밭의 값을 속이었을 때에도 "혼(soul)이 떠나갔다"(행5:5. 5:10)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또한 부자의 죽음에 대해서 “네 영혼을 도로 찾는다”는 표현을 하고 있다(눅12:20)

 

다시 말하여 영혼이 몸을 빠져 나갔다고 하면 그 몸은 죽은 시체가 되며, 성경은 단 한번도 사람이 죽지 않고 영혼과 몸이 분리된 경우를 언급하지 않는다.

바울의 경우도 그가 몸 안에 있는지 몸 밖에 있는지 알 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바울도 몸 밖으로 떠나는 것을 죽음이라고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

 

-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후5:8-10)

                  

-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가릴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그러나 내가 육신에 거하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빌1:22-24)

 

요즈음 천국과 지옥에 대한 간증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특히 신사도운동과 관련된 목사들이 그러한 주장을 많이 하는데, 천국은 확실히 있다는 책을 쓴 토마스 주남이 대표적으로 그러한 주장을 하고 있다. 특히 한때 시한부종말론을 주장했던 사람들이 다시 천국과 지옥 간증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들의 공통점은 자기들 임의대로 천국을 황당하게 묘사한다든지, 시한부종말론을  주장하는 자들도 있고, 전혀 비성경적인 주장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체험이 어떤 목적을 가진 거짓말일 가능성도 충분히 있고, 만일 그러한 체험이 가사상태에서 느끼는 꿈과 같은 환상이라면 우리는 개인의 꿈 이야기를 천국체험으로 받아들이는 셈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믿는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어떤 개인의 비성경적이며 주관적인 간증을 통하여 천국과 지옥을 믿을 이유가 없다. 더욱이 무속적이고 미신적인 속설에 미혹되지 말자.

 

딤전 4:7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에 대해서, 헬라어의 원어성경은 이방적(godless)이고 늙은 부인들이 좋아하는 이야기(old wive's tale)라고 기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