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4] - 무딘스키
종교를 이야기할 때 돈에만 포커스를 맞추어서 종교단체를 욕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는 돈을 위하여 종교를 만들고 활용하는 사람들과 동전 앞뒷면관계입니다.
그들은 오로지 비아냥 만 있을 뿐이지, 돈만 보일 뿐이지, 분열시키는 디아볼리스적 관점에서 돈을 활용하는 것 뿐이지 진실에 대한 갈구는 없습니다.
그리스와 히브리 사상의 공통점은 "아르케"와 "베레쉬트"입니다.
성경 창세기 1장 1절 맨처음이 베레쉬트입니다.
그리스어로 BC4세기에 번역된 칠십인경에 이 베레쉬트는 "엔 아르히"입니다.
영지주의자들도 제1원인(? 성부?)는 "엔 아르히"에 이미 존재하였다고 가르칩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고, 형용할 수 없으며, 인간이 그 본질에 접근할 수 없으며, 언제나 연원한 현재인 그 제1원인(?성부?)가 로고스를 만들고 그 로고스에서 아이온들이 나오고 그 아이온들에 의해서 세상이 창조되었다고 영지주의자들은 가르칩니다.
"베레쉬트"나 "엔 아르히"는 모두 최초의"시작"을 말합니다.
"시작"이 있는가? 사람의 경우 "태어남으로써" 실재하는가?
이에 해당하는 질문이 먼저 이루어졌습니다. 그 다음에 종교의 문제가 논의됩니다.
그러나 힌두교라는 곳에서는 이런 시작이라는 것에 대한 관점을 회피하여 "실재하는 것"에 포커스를 맞추고 그 실재하는 것 모두에게 초월성 내지는 신성을 부여하려 하였습니다.
기원전에 헬레니즘문화가 인도에 전파되면서 이 영지주의와 힌두교가 만나게됩니다. 그리고 인도에서 헬레니즘 문화를 받아들입니다. 그 결과 불상과 석탑이 등장합니다. 또한 석가모니가 절대화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질문하게 되는 것이 석가모니의 해탈과 일반인의 해탈은 동일한가 아닌가?의 질문이 생기게 되고, 영지주의자인 마니교가 이 대승불교의 흐름에 들어 오면서 마니교의 깨달음과 원단 영지주의의 깨달음과 힌두교와 절충을 해버린 깨달음은 동일하냐? 아니냐의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다르다면 다른 "기준"은 무엇인가?라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리고 그 기준이라는 것은 자존하는가? 존재하지 아니한 적이 있는가? 시작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봉착하게 됩니다.
일찌기 영지주의와 힌두교의 절충이 불가능하다고 생각 했던 부파불교 사람들은 모든 것은 실재한다고하여 절대적인 존재로서의 석가모니가 아닌 동일한 사람으로서 깨달음을 가르쳐 준 분으로 이해를 하고 그들의 정체성을 확립하였습니다.
그러나 중국에서 수나라 황실이 북쪽이고, 당나라 역시 북쪽출신으로서 이들은 불교를 받아들였는데 그 불교들은 종래 부파불교와도 다른 영지주의와 힌두교의 혼합상태인 불교를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당나라 때 불교는 여러개의 교파를 만들어 내고 맙니다. 물로 마니교도 마니불로서 중국의 불교안에 묻혀져 내려왔지요.
그리고는 샤머니즘적인 각 종족들의 문화와 만나게되고 이들을 흡수 병합하면서 최근까지 내려왔습니다. 특히 왕실의 옹호를 받으면서 말입니다. 중국에서 불교의 흥왕은 측천무후의 공이 큽니다.
서세동점의 시기에 기독교 세력이 제국주의를 등에 업고 중국과 동아시아 지역을 침탈하자 이곳에서는 세가지의 반응이 나타납니다.
1. 종교라는 것을 부정하는 무신론 사조를 받아들이는 부류...
2. 자국 전래의 고유한것을 고등종교라고 하면서 조직을 체계화하고 이론을 다듬어서 내세우는 경우...
3. 아니면 서양과 동양을 짬뽕해버리는 경우...그런데 대부분의 사이비들은 이 짬뽕에서 나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서양에서 들어온 기독교가 과거 제국주의 국가들의 사상적 앞잡이 노릇이나하고, 개인주의, 자본주의, 관념주의의 전도사 노릇이나 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서로 그것을 공격하면서 즐기고 있는 상황입니다.
주요 단골 소재는 돈과 성 그리고 교회권력에 대해서 말입니다.
그러나 사실 이는 종교 역사를 살펴보면 종교라고 불리우는 곳에는 상존하여 오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종교들의 연원에 대해 귀를 막아버린 사림이 아니라면,
사람은 태어남으로써 존재하게 되었다는 것과 세상의 모든 것은 시작이 있음으로 인해 존재하게 되었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인정하고 종교문제를 검토해야할 것입니다.
시작이 있는 존재가 시작이 있는 존재를 숭배한다는 것은 원숭이가 같은 원숭이를 섬기는 것과 같은 골때리는 광경일겁니다.
시작이 없는 존재를 시작이 있는 존재가 만나는 것이 종교라고 이해를 한다면 시작이 없는 존재에 먼져 포커스를 맞추어야하는 것 아닙니까?
시작이 없다. 태어남이 없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거짓말인 줄 뻔히 아니까 그런 거짓말에 속아나는 사람은 거의 없을 테니까...
태어난 존재로서, 시작이 있는 존재로서, 시작이 없는 존재에 포커스르 맞추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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