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그리스사람들은 위대합니다(미트라 어쩌고 하시는 분들) [5] - 무딘스키
그리스 사람들은 제우스나 그리스 신화의 인물들을 신앙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미트라나 이상한 것들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사도 전승을 믿습니다. 성경과 리뚜르기아라는 예배를 소중히 여깁니다.
미트라 어쩌고 하는 분들 보세요.
여자의 후손 이야기는 유대민족들만 기억하고 있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노아의 홍수이야기도 유대인들만 기억하고 있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다음은 네이버 백과사전에서 복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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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 [David, ?~BC 961]
이스라(이새)의 아들로서, 소년시절 사무엘이 사울왕(王)의 후계자로 지목하였다. 성장하여 사울왕을 섬기고 페리시테(블리셋)의 거인 골리앗을 돌로 때려죽여 용맹을 떨쳤으나, 사울의 질투로 적대시당하였다. 그러나 사울의 아들인 요나단의 우정과 보호를 받아, 사울 사후 BC 1000년 유대의 왕, BC 994년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 그리고 예루살렘으로 신의 언약궤를 옮기고, 제사제도(祭司制度)를 정하였으며,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유대교[猶太敎]를 확립하였다. 그러나 만년에는 자식들 간에 왕위계승의 싸움이 일어나는 등 평온하지 못하였다. 또 하프의 명수였고, 시인으로서도 명성을 떨쳤으며, 구약성서 시편의 상당부분은 다윗이 지은 것이라고 알려졌다. 그의 사적(事績)은 구약성서 《사무엘 상(上)》 l6장 이하와 《열왕기 상》 2장 및 《역대기 상》 11∼29장에 자세히 기록되었다.
[시편 22편]
1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십니까? 살려 달라 울부짖는 소리 들리지도 않사옵니까?
4 우리 선조들은 당신을 믿었고 믿었기에 그들은 구하심을 받았습니다.
5 당신께 부르짖어 죽음을 면하고 당신을 믿고서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6 나는 사람도 아닌 구더기, 세상에서 천더기, 사람들의 조롱거리,
7 사람마다 나를 보고 비쭉거리고 머리를 흔들며 빈정댑니다.
8 "야훼를 믿었으니 구해 주겠지, 마음에 들었으니, 건져 주시겠지" .
9 당신은 나를 모태에서 나게 하시고, 어머니 젖가슴에 안겨 주신 분,
11 멀리하지 마옵소서. 어려움이 닥쳤는데 도와 줄 자 없사옵니다.
12 황소들이 떼지어 에웨 쌌습니다. 바산의 들소들이 에워 쌌습니다.
13 으르렁대며 찢어 발기는 사자들처럼 입을 벌리고 달려듭니다.
16 개들이 떼지어 나를 에워 싸고 악당들이 무리지어 돌아 갑니다. 손과 발이 마구 찔려 죽음의 먼지 속에 던져진 이 몸은
18 겉옷은 저희끼리 나눠 가지고 속옷을 놓고서는 제비를 뽑습니다.
19 야훼여, 모르는 체 마소서. 나의 힘이여, 빨리 도와 주소서.
21 가련한 이 몸을 사자 입에서 살려 주시고, 들소 뿔에 받히지 않게 보호하소서.
22 당신의 이름을 겨레에게 알리고 예배모임 한가운데에서 당신을 찬양하리니,
23 "야훼를 경외하는 사람들아, 찬미하여라. 야곱의 후손들아, 주께 영광 돌려라. 이스라엘의 후손들아, 모두 다 조아려라.
24 내가 괴로와 울부짖을 때 '귀찮다, 성가시다' 외면하지 않으시고 탄원하는 소리 들어 주셨다".
25 큰 회중 가운데서 내가 주를 찬송함도 주께서 주심이니, 주를 경외하는 무리 앞에서 나의 서원 지키리라.
26 가난한 사람 배불리 먹고 야훼를 찾는 사람은 그를 찬송하리니 그들 마음 길이 번영하리라
28 만방을 다스리시는 이 왕권이 야훼께 있으리라.
29 땅 속의 기름진 자들도 그 앞에 엎드리고 먼지 속에 내려 간 자들도 그 앞에 머리를 조아리리라. 이 몸은 주님 덕분에 살고,
30 오고오는 후손들이 그를 섬기며 그 이름을 세세대대로 전하리라.
31 주께서 건져 주신 이 모든 일들은 오고오는 세대에 일러 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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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Isaiah, ?~?]
BC 8세기에 활동한 이스라엘의 예언자이다. 번영의 시기에 태어나 민족의 멸망을 예견하고 경고한 예언자였다. 신약종교의 초석을 놓은 구약종교의 완성자 ·개혁자이다.
이사야는 ‘야훼는 구원이다’를 뜻하는 헤브라이식 이름이다. 그는 남쪽 유다 왕국의 왕족 출신이었다. 따라서 그는 높은 학문과 교양을 지녔고, 왕실과의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그는 유다 왕 우찌야가 죽던 해(이사 6:1)인 BC 739년경 예언하기 시작했으며, BC 701년 아시리아의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향해 진격해올 때까지 활동하였다.
전설에 따르면 그는 므낫세왕에 의해 톱으로 썰려 그 몸이 두 동강났다고 하지만(히브 11:37) 역사적 증거가 없다. 그는 여선지자를 아내로 맞아(8:3) 두 아들을 두었다(7:3, 8:3). 그는 미가(Micah)와 동시대 인물로서(이사 1:1, 미1:1), 둘 다 유다 왕국에서 일했으며, 북이스라엘 왕국을 위해 일했던 아모스나 호세아보다 앞서 활동하였다. 이사야는 번영의 시기에 태어나 민족의 멸망을 예견하고 경고한 예언자였다.
그는 국제정치의 역학구조를 꿰뚫어 보았으며, 역사발전의 방향을 정확히 내다본 영감의 소유자였다. 이사야의 예언은 단편적인 것이 아니라 완전하고 총체적인 것이었다. 그는 하느님의 보좌와 그 위엄을 보았으며, 인간의 마음의 본질을 꿰뚫어 보았다. 그는 이스라엘 종교가 궁극에는 파멸될 것을 내다보았고, 궁극에 이르러 메시야의 새 시대가 도래할 것(이사 9:6~7, 11:1~8)을 예언하였다. 이사야는 하느님과 인간과 세계와 역사와 종말을 두루 통찰한 구약의 바울로 사도이며, 신약종교의 초석을 놓은 구약종교의 완성자 ·개혁자였다.
[이사야서 53장]
그러니 우리에게 들려 주신 이 소식을 누가 곧이들으랴? 야훼께서 팔을 휘둘러 이루신 일을 누가 깨달으랴?
12 나는 그로 하여금 민중을 자기 백성으로 삼고 대중을 전리품처럼 차지하게 하리라. 이는 그가 자기 목숨을 내던져 죽은 때문이다. 반역자의 하나처럼 그 속에 끼어 많은 사람의 죄를 짊어지고 그 반역자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한 때문이다.
다니엘 [Daniel, ?~?]
유대 민족이 처음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갔을 때(BC 597) 소년인 다니엘도 같이 잡혀갔다. 처음에는 궁정에서 시동(侍童)으로 일했으나, 시종일관 조국의 복권을 기원하며 이교(異敎)의 권력과 박해에 대항해 싸웠다. 뒤에 느부갓네살왕의 꿈을 해몽해 준 일로 인하여 명예로운 지위에 올랐으나, 고관들의 질시로 사자 굴에 던져졌는데도 신의 가호를 받아 무사하였다. 흔히 ‘믿음의 용사’ ‘신의 절대적인 가호’의 상징으로 묘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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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에서 사도시대에는 크리스마스 축일이 없었다.
축일이라 함은 기념하며 누리는 잔칫날의 개념이다.
최초의 축일은 부활축일 만 있을 뿐이었다. 그것도 유대인들과 다른날에 빠스하(부활절)을 지냈다.
로마는 율리우스력으로 1월 6일에 태양의 날 축제를 지냈는데,
그 날에 교회는 진정한 태양이고, 진정한 빛인 예수가 세상에 온 것을 기념하는 축일을 만들어서 지냈다.
이 날은 주현절(주님이 나타난 날), 데오파니아(하느님이 나타난 날) 등으로 불렀다. 아시아,아프리카,동유럽쪽에서는 이게 전부였다.
그래서 정교회의 예식서에 보면 성탄과 주현절의 예식이 분리되어 있지 않다.
그러다가 서유럽에서 그레고리우스력이 만들어지면서 성탄절과 주현절을 분리하여 성탄절을 12월 25일에 지내었다.
1900년대에 들어서서 그리스 정교회쪽에서 12월 25일을 받아들여 성탄절과 주현절을 분리하여 지냅니다.
구달력파와 이디오피아 동방교회들은 1월 6일에, 러시아는 1월 7일에 지냅니다.
성탄절은 예수가 탄생한 날이 아니라 예수탄생을 기념하는 축일 입니다.
서유럽의 교회가 12월 25일을 크리스마스로 지내게 된 것은 그레고리우스력 등장 이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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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트라교 [Mithraism]
북유럽신화에 나오는 광명(光明)의 신 미트라를 신앙한 밀의(密儀)종교.
BC 1세기 전반 그리스도교의 유럽 침투 이전에 로마제국(帝國)에 널리 유포되어 있어서 새 종교인 그리스도교와는 유력한 경쟁적 종교였다. 미트라의 기원은 고대 인도 ·이란의 민족시대까지 거슬러올라가는데, 이 미트라 숭배는 BC 3세기경에 페르시아에서 성행하였다. 따라서 페르시아의 발전에 따라 그리스로 건너가게 되었으며, 거기서 자연히 로마로 전파되어 밀의종교로서 특히 군인층에 널리 신앙되었다. 미트라교에 대해서는 고대 페르시아의 아르탁세륵세스 2세(재위 BC 404∼BC 358)의 비문(碑文)에 그 이름이 보인다. 그러나 로마에 나타났던 종교 형태는 이미 그 내용이 크게 변질되어 있었다. 그 이유는 소(小)아시아나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토착종교와 혼성(混成)되었기 때문이다. 로마제국의 폼페이우스(BC 106∼BC 48)황제의 동정(東征) 이후에는 로마제국의 수호신으로까지 격상되었다.
그러나 콘스탄티누스 대제(大帝)가 그리스도교로 개종(改宗)을 하고 그리스도교가 공인된 이후 점차 모습이 사라져 갔다. 신자의 제례는 종종 맑은 샘물이 솟아나오는 바위굴 안에서 행해졌는데, 그 깊숙한 곳 암벽에는 ‘수소를 도살하는 신’의 부조(浮彫)를 볼 수 있다. 미트라 신전에 건조되었던 우상(偶像)은 그리스도교도에 의해 파괴되었지만, 당시의 건조물을 포함한 종교적 유적은 현재 유럽에 많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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