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일조에 대한 올바른 이해 [47]
- 무딘스키
우선 정교회나 동방교회들 지역에는 십일조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불교나 타종교 역시 십일조와 같은 개념이 없습니다.
극동 3국의 종교적행위에서 금전 문제는 해당 사찰이나 종교단체에 희사하는 개념입니다. 이러한 종교단체에서 향유하는 동산 부동산은 생각외로 상당히 많습니다. 엄청납니다.
동구 유럽쪽에서는 사후 사회나 종교단체 또는 국가에 환원부분이 많습니다. 부모의 상속을 통하여 타고난 자와 타고나지 않은 자의 차별을 만드는 것을 죄악시 하는 정서 때문입니다.
그런데 서유럽(로마가톨릭과 개신교)에서는 십일조를 주장합니다.
사실 십일조는 1/10중의 한토막에 포커스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함무라비 법전에도 10분의 1 세금이 명문화되어 있다고 합니다.(저는 원문으로는 보지 못하고 이런 것이 있었다는 식의 영문 글을 읽은 적은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말하는 십일조는 아브라함과 멜기세댁의 만남에서 등장합니다. 이 때는 이스라엘이라는 국가가 등장하기 이전이고, 멜기세댁 역시 유대인이 아닙니다.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아브라함에게 살렘(평화, 예루 살렘은 평화의 도시라는 뜻)왕 멜기세댁이 누룩이 들은 빵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와서 아브라함에게 축복을 줍니다.
(최후의 만찬 말미에 예수님이 행한 유카리스트에서도 누룩이 들은 빵과 포도주를 가지고 감사의 성찬례를 합니다. 이는 예수가 유대인이 아닌 멜기세댁의 반차를 잇는 대 제사장이란 뜻입니다.)
아브라함은 전리품의 십분의 일을 살렘왕에게 바칩니다.
이 십분의 일은 열토막가운데 한토막에 포커스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첫 것이라는 데에 포커스가 맞추어져 있습니다. 첫인류로서 바쳐지고, 빵과 포도주로 바쳐지는 그 사건이 해골산에서 일어납니다.
자신의 몸(누룩이 든 빵)과 피(포도주, 생명)를 첫사람인 예수가 멜기세댁의 반차를 잇는 대제사장으로서 드리는 것이 해골산 십자가의 사건입니다.
따라서 구약에서 누누히 강조하는 지켜야하는 성격의 십일조는 십자가상에서 완성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이후 십일조에 대한 이야기가 성경에 나오던가요?
지금도 내려오는 야고보의 예배서, 인도의 사도 도마 예배서, 이집트의 마르코 복음서의 마르코 예배서, 디다케, 심지어 성바실리우스나 성요한 크리소스톰의 예배서에도 십일조라는 것이 발견되지 않습니다.
상속을 중요시 여기고 사후 재산의 사화환원이 적은 지역에서 십일조의 의미를 살려서 헌금을 하는 것은 있을 수 있으나 구약시대의 탈리오적인 성격의 십일조를 지금에도 강요하는 것은 십자가 사건과 십일조를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극동 3국의 종교적행위에서 금전 문제는 해당 사찰이나 종교단체에 희사하는 개념입니다. 이러한 종교단체에서 향유하는 동산 부동산은 생각외로 상당히 많습니다. 엄청납니다.
동구 유럽쪽에서는 사후 사회나 종교단체 또는 국가에 환원부분이 많습니다. 부모의 상속을 통하여 타고난 자와 타고나지 않은 자의 차별을 만드는 것을 죄악시 하는 정서 때문입니다.
그런데 서유럽(로마가톨릭과 개신교)에서는 십일조를 주장합니다.
사실 십일조는 1/10중의 한토막에 포커스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함무라비 법전에도 10분의 1 세금이 명문화되어 있다고 합니다.(저는 원문으로는 보지 못하고 이런 것이 있었다는 식의 영문 글을 읽은 적은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말하는 십일조는 아브라함과 멜기세댁의 만남에서 등장합니다. 이 때는 이스라엘이라는 국가가 등장하기 이전이고, 멜기세댁 역시 유대인이 아닙니다.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아브라함에게 살렘(평화, 예루 살렘은 평화의 도시라는 뜻)왕 멜기세댁이 누룩이 들은 빵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와서 아브라함에게 축복을 줍니다.
(최후의 만찬 말미에 예수님이 행한 유카리스트에서도 누룩이 들은 빵과 포도주를 가지고 감사의 성찬례를 합니다. 이는 예수가 유대인이 아닌 멜기세댁의 반차를 잇는 대 제사장이란 뜻입니다.)
아브라함은 전리품의 십분의 일을 살렘왕에게 바칩니다.
이 십분의 일은 열토막가운데 한토막에 포커스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첫 것이라는 데에 포커스가 맞추어져 있습니다. 첫인류로서 바쳐지고, 빵과 포도주로 바쳐지는 그 사건이 해골산에서 일어납니다.
자신의 몸(누룩이 든 빵)과 피(포도주, 생명)를 첫사람인 예수가 멜기세댁의 반차를 잇는 대제사장으로서 드리는 것이 해골산 십자가의 사건입니다.
따라서 구약에서 누누히 강조하는 지켜야하는 성격의 십일조는 십자가상에서 완성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이후 십일조에 대한 이야기가 성경에 나오던가요?
지금도 내려오는 야고보의 예배서, 인도의 사도 도마 예배서, 이집트의 마르코 복음서의 마르코 예배서, 디다케, 심지어 성바실리우스나 성요한 크리소스톰의 예배서에도 십일조라는 것이 발견되지 않습니다.
상속을 중요시 여기고 사후 재산의 사화환원이 적은 지역에서 십일조의 의미를 살려서 헌금을 하는 것은 있을 수 있으나 구약시대의 탈리오적인 성격의 십일조를 지금에도 강요하는 것은 십자가 사건과 십일조를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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