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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사랑...장미혜님 글19

주방보조 2005. 3. 2. 09:59

Love of Life (31): 눈이 부시게....  



요즘은 누워 있는 동안 노래를 많이 듣습니다.
그 동안 사 모았던 CD들을 하나씩 들어보기도 하고
(사 놓고서 셀로판 포장도 뜯지 않은 게 어찌나 많은지.....)
문득문득 생각나는 노래는 '소리바다'에서 내려 받아 듣기도 하지요.

소리바다 덕분에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노래를 들을 수 있습니다.
좋은 음악을 대가도 치르지 않고 듣게되어 고맙기는 합니다만,
음반업계 종사자들께는 미안한 마음도 없지 않습니다.

우리 컴퓨터의 하드디스크 한 개에는 음악 파일이 차곡차곡 쌓여 있습니다.
15기가 바이트 용량의 디스크가 온갖 종류의 음악으로 가득합니다.
바하에서 비틀즈까지, 현인에서 노찾사까지 망라되어 있지요.
그래서 '어떤 음악이 듣고 싶다'는 생각이 떠오르기만 하면
금방 찾아서 들어 볼 수 있습니다.

어제도 오래 전에 듣던 노래가 하나 생각나서 찾아 들었습니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이라는 노래지요.
시인 서정주의 "푸르른 날"이라는 제목의 시에다가
송창식씨가 곡을 붙인 노래입니다.

시를 읽은 것은 아주 오래 전의 일이었지만
그것이 제게 의미를 가졌던 것은 송창식씨의 곡과 함께 였습니다.
특히 폭발하듯이 시작되는 "눈이 부시게--"하는 도입부는
나도 모르게 가슴이 찌잉하게 울려옵니다.

또 이 노래는 우리와 함께 유학 생활을 시작했던
정희씨의 선배 한 분이 좋아하셨던 노래이기도 했습니다.
우리보다 1년 먼저 프린스턴에서 유학 생활을 시작하셨던 그분은
저지난 해 학위를 마치고 귀국하셨지요.
뒤에 남은 정희씨는 '눈이 부시게'를 들을 때마다
그 선배님 이야기를 하곤 했습니다.

이 노래는 연주가 좀 이례적입니다.
오케스트라로 치면 팀파니와 심벌즈를 곁들인 클라이맥스가
곡의 맨 처음에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노래에서만큼은 그게 전혀 어색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라도 해야 폭발하듯 펼쳐지는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이
제대로 표현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일 겝니다.

하지만 터지듯이 다가오는 그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환희와 희열로 계속되기보다는 금방 애잔함으로 이어집니다.
그것은 이어 노래되는 그리움 때문일까요? 혹은,
내가, 혹은 네가 죽고 사는 문제가 걸렸기 때문일까요?

이 노래는 여러 계절을 말하고 있기는 하지만
어느 한 계절도 딱히 집어서 노래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언제 들어도 그때가 바로 그 계절로 느껴집니다.
봄에 들으면 그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화사한 봄날이 됩니다.
가을에 들으면 '초록에 지쳐 단풍드는 날'이 됩니다.

가을날이 눈부신 날이 될 수 있는 것은 좀 역설적입니다.
앞으로 다가올 쇄락의 날들을 생각한다면 말이지요.
그러나, 아마도 그렇기 때문에 오늘의 화사한 햇살이
더욱 눈부시게 느껴질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검붉어진 단풍나뭇잎들이 창밖에 내다보이기 시작하면서
그 노래에도 나오는 그 '그리움'이 물밀 듯 밀려옵니다.
나도 모르게 이런 저런 얼굴들을 떠올려 보고
그리고 그 그리운 이름들을 하나씩 불러보곤 합니다.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에 나오는 것처럼....

그 그리운 사람들을 또 만나볼 수 있을까.....
혹은,
이젠 내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작별을 이야기해야 하는 것일까....

오늘밤에는 눈이 온다고 합니다.
올 들어 벌써 두 번째 눈입니다.
밤사이에 눈이 오고 나면
아침은 또 하나의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날을 선사하겠지요.

그런 날에는 그리운 사람들을 한번 더 생각하고
그들을 위해서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해야겠습니다.

그러다가 목소리가 듣고 싶어지면
전화도 한번씩 하면 더 좋겠지요.

멀리 있는 그리운 사람들을 위해서,
그들을 그리워하는 나를 위해서, 그리고
서로 그리워하는 마음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장미혜.



푸르른 날 -서정주-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저기 저 저기 가을 꽃 자리
초록이 지쳐 단풍드는데

눈이 내리면 어이 하리야.
봄이 또 오면 어이 하리야.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
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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