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2:12)
하나님께서
창조주보다 죄를 사모하는 인간에게
두가지 제어장치를 주셨습니다.
하나는 모든 인간의 마음 속에 양심이라 불리는 제어장치이고
다른 하나는 택함을 받았던 민족 이스라엘에 주신 율법이라는 제어장치입니다.
양심을 잘 지키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이 세상이 인간의 욕망으로 인한 모든 악을 최소화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잘 분석한 것이
공자 맹자 석가 등의 가르침 가운데 잘 나타나 있습니다.
교육과 훈련을 통해 이 양심을 극대화 하여 욕망과 죄악에 대항하게 하는 것이 그 스승들의 노력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양심의 역할은 인간의 욕망과 죄가 점차 커가는 이 세상적이고 마귀적인 현실 앞에 너무나 쉽게 허물어져 버립니다. 그래서 '양심의 가책'이라는 병이 온 인류의 질병이 되어 있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법이라는 것은 이 양심이 자발적이지 못한 것을 강제하는 사회적 제도입니다. 양심의 데드라인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법을 잘 지키면 그래도 더 이 세상이 죄로 폭발해 버리는 것을 제어할 수 있습니다.
아마 인류는 겨우 이 법이라는 양심의 데드라인을 오가며 흥망성쇠를 이어가는 정도일 것입니다.
율법은 특별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그의 자손 중 이스라엘민족에게
계약의 조건으로 제시한 '택함을 받은 민족'만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지키면 삽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은 엄청나게 고통스럽고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마음만 있다면 누구나 쉽게 지킬 수 있는 것입니다. 선악과를 먹지 않는 일이 마음만 맑게 개어있었다면 하나도 어렵지 않은 일이었듯 말입니다.
그러니
이스라엘은 이 율법을 지키지 못합니다.
이스라엘이라고 별다른 인간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없는데 어떻게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데 어찌 율법이 생명의 역할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오직 "죄를 깨닫게 하는 역할"로 쪼그라져 버리고 말 수밖에 없었습니다.
인류는 구원이 필요한 어쩔 수 없는 죄인들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두 가지 제어장치, 양심과 율법은 이미 인간의 마음이 죄로 인하여 뒤틀어져 있기 때문에
양심의 가책과 죄를 깨닫게 하는 일만 남기고 그 역할을 다 했습니다.
이것이 슬픈 인간의 실상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알면서도 부정하고 하나님이 주신 방어막도 스스로 헐어버려
죄의 노예로 살아 가는 것 말입니다. 누구나 다 망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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