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화과나무를 지키는 자는 그 과실을 먹고 자기 주인을 시종하는 자는 영화를 얻느니라"(27:18)
무화과는 다비성식물이므로 잘 발효된 퇴비를 많이 넣어주어야 잘 자라고 열매도 잘 맺습니다.
웬만하면 별탈없이 크지만 그래도 벌레먹는 것, 땅 마르는 것 시시때때로 살펴 주어야 하고, 이파리도 너무 그늘지지 않게 해 주고 잔가지들도 쳐 주고 순고르기도 해주어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보통 4월에 순을 내어 잘 자라면 7월경에 첫수확을 합니다.
당연히 그 수확의 혜택을 맨 먼저 보는 사람은 그 무화과나무를 지키는 자입니다.
주인은 아무리 호인이어도 시종하는 자는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이란 존재가 워낙 복잡다단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 주인을 시종하는 자는 주인의 인정을 받기까지 잠을 마음껏 자지못하고 마음껏 쉬지 못하고 그 무엇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 없이 주인의 손과 발을 대신하여야 합니다. 인정을 받고 나면 종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 됩니다.
성실함이란 가장 먼저 요구되는 조건이 오래 참고 견디는 것입니다.
모든 성실한 노력이 다 보상받는 것이 아닌 한가지 이유는 "때가 되기까지" 기다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무화과가 새 순을 내고 거기서 가지가 나오고 열매가 맺히는 것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6월까지 정말 성실하게 일했다고 해도 7월까지 기다리지 않으면 열매를 차지하지 못합니다.
주인의 마음을 얻는 것도 '시간'이 필요합니다. 불현듯 어느날 닥쳐오는 주인의 평가를 기다리지 못하면 주인에게 인정받는 자가 되는 일은 없습니다.
성실은 '때가 되면' 반드시 보상받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정한 약속이며 자연 속에서도 여러가지 모양으로 우리에게 보여 확인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성실의 두번째 조건은 섬김의 대상을 헤아려 살펴보는 것입니다.
무화과가 크고 단 열매를 내놓기까지 '내'가 아닌 '무화과'를 정말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주인을 잘 시종하려면 '내'가 아닌 '주인'을 세심하게 살펴 보아야 합니다.
나의 목적 달성을 위한 대상으로서 무화과와 주인을 생각하면 헤아려 살피는 일은 요원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잘 헤아려 살피는 일엔 '사랑'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으로 섬기는데, 거기 어찌 기쁨이 없겠습니까? 그 기쁨을 어떤 보상과 바꿀 수 있겠습니까? 그런 참된 섬김은 이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보상을 이미 받고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성실은
이미 보상을 받은 것이며 또한 나중에 보상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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