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우리/교회에 대하여

재편-건강한 작은 교회(이진오)

주방보조 2017. 9. 14. 17:30
나는 왜 ‘건강한작은교회’를 지향하는가

2011년, 교회를 개척한다고 하니 후배가 대뜸 묻는다. “교회가 이렇게 많은데 왜 개척을 해요?” 나도 나에게 물었다. “교회가 이렇게 많은데 나는 왜 교회를 개척하려고 하는가?” 

1996년, 27살의 나이로 야간 신학대 선교학과에 입학할 때 나는 선교 불모지인 중동지역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 꿈을 꾸었다. 그러나 2000년, 서른 살의 나이로 졸업할 때는 선교사의 꿈도, 목사가 되어 교회를 섬긴다는 기대도 모두 허망했다. 종교개혁 이후 가장 부패하고 타락한 교회라는 평가를 받는다는 우리 시대 한국 교회의 민낯을 보고 낙심하고 절망했다. 

하나님께서는 내 뜻이나 계획과는 관계없이 나를 한국 교회 변화와 개혁을 위한 활동에 밀어 넣었고, 나는 주어진 상황에 소극적으로 순종하며 적극적으로 반응했다. 그렇게 지난 20여 년 여러 단체와 직함으로 소위 교회 개혁과 사회 참여 활동을 했다.

2008년, 서른여덟 살의 나이로 야간 신학대학원 목회학과에 입학했다. 목사가 되어 교회를 섬기겠다는 뜻을 품고 간 게 아니라, 모든 것이 막히고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부족한 신학 공부라도 하자는 생각이 컸다. 신학대학원 시절 다시 교육전도사가 되어 교회를 섬기면서 교회에 대한 소중함과 변화와 개혁에 대한 기대가 다시 솟아났다. 특히 ‘건강한작은교회’가 대안이며, 한국 교회가 ‘건강한작은교회’들 중심으로 생태계가 재편되고 복원돼야 한다는 꿈을 꾸게 되었다. 이미 많은 교회가 있지만 이런 꿈과 비전을 품고 ‘건강한작은교회’의 가치와 방향을 구현할 교회라면, 나아가 ‘건강한작은교회’ 생태계를 위해 사용될 교회라면 개척할 필요와 명분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나에게 다시 또 물었다. “너라면 네가 목회하는 교회에 신자로 가겠는가?” 교회는 무슨 모임이나 단체가 아니라, 복음을 전하고 복음으로 성숙함으로 하나님의 자녀요 주님의 제자가 되도록 하는 곳인데, 가장 사랑하는 가족과 지인을 너라면 네가 목회하는 곳에 초대하겠는가 스스로 물은 것이다. ‘건강한작은교회’의 가치와 방향을 가지고 있는가? 가치와 방향도 중요하지만 실제 이를 이루어갈 성품과 역량이 있는가? 어떻게 ‘건강한작은교회’를 이룰 것인가? 어떻게 ‘건강한작은교회’ 생태계를 구성하고 복원할 것인가?

2011년, 마흔한 살의 나이에 우리 가정과 한 젊은 부부와 함께 ‘더함공동체교회’를 개척했다. 돌이켜보면 2011년 4월에 목사 안수를 받은 초짜 목사로서 의욕과 열정은 넘쳤다. 목사의 열정에 기대를 가지고, 건강한 작은교회의 가치와 방향에 공감하며 많은 분들이 함께 했다. 2016년 말, 임기를 마치고 담임목사직을 사임하고 교회를 떠날 때까지 참으로 많은 일과 여러 도전들이 있었다. 교회를 설립하고 체계를 갖추고, 공간을 마련하고, 교회를 분립하고, 지역과 한국 교회와 한국 사회의 다양한 네트워크에 참여했다. 

지난 6년은 ‘더함공동체교회’ 모든 분들이 참으로 수고하고 애쓴 날들이었다. 그러나 이 책은 ‘더함공동체교회’를 소개하거나 내가 이런 교회를 일구고 이런 목회를 했다고 설명하거나 자랑하려고 시작한 것이 아니다.

나는 사실 내가 꿈꾸고 열망했던 ‘건강한작은교회’를 일구지도 그런 목회를 하지도 못했다. 의욕과 열정은 넘쳤지만 지식과 경험은 부족했다. 무엇보다 사람을 사랑하고 공감하고 소통하는 데 미숙했다. 기대가 컸던 만큼 여러 신자들에게 큰 실망과 상처를 주었고, 함께했던 동역자들에게 상처도 남겼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는 우리 시대 한국 교회에 ‘더불어 함께하는 건강한 작은교회의 꿈’이 의미 있는 가치와 방향이라 믿는다. 이 책은 ‘건강한작은교회’에 대한 일종의 바람이며 주장이다. 내가 꿈꾸고 도전했던 ‘건강한작은교회’에 대한 여러 아쉬움과 부족함에 대한 고백이다. 지난 아쉬움을 반성하며 다시 그 꿈을 향해 한걸음을 내딛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썼다.

나는 고등학교 1학년 초에 얼떨결에 처음 교회를 가게 되었고, 3학년 초에 예수님을 만나 진짜 믿음을 갖게 되었다. 당시에는 신학교에 진학해 목사가 되는 것을 제일 고귀한 사명이라고 생각했다. 신학대에 지원했다가 떨어진 후 들어간 전문대에서 ‘한국대학생선교회(C.C.C.)’를 만나 전도와 제자 훈련에 모든 시간을 쏟았다. 

군에 입대해서 뜻하지 않게 군종병이 되었다. 전임 군종병이 부대 내에 교회 부지를 확보하고 땅을 파놓고 전역하는 바람에 선택의 여지없이 교회를 지어야 했다. 교회를 지어놓으니 하나님께서 부담을 주셨다. 많은 만류를 뒤로 하고 부사관에 지원해 군생활을 4년 더 했다. 예수님을 만나 C.C.C에서 훈련 받고 군대에서 복음을 전하며 그야말로 행복했고 보람찼다. 

그 시절 교회는 이런저런 굴곡과 아픔도 있었지만 내게는 어머니 같은 품이었고 아버지 같은 기둥이자 울타리였다.

26살, 육군 중사였던 나는 늦깎이로 ‘아세아연합신학대’ 야간 신학생이 되었다. 신학과 성경을 바르게 배울 수 있겠다는 기대도 컸고, 졸업 후 C.C.C에서 파송받아 중동지역 선교사로 나가서 개척 사역을 하리라는 비전도 분명했다. 그런데 신학교에서 복음과 교회에 대한 나의 자부심은 깨졌다. 신학과 성경을 가르치는 신학교 행정은 부패했고, 목사인 교수들은 돈과 권력 앞에 타락했고 무기력했다. 

뜻하지 않게 총학생회장이 되어 학내 부정부패와 싸우다가 나는 신학과 신앙에 대한 절대 신뢰와 절대 순종을 잃었다. 신학교 시절 구성한 ‘기독교대학총학생회연합’ 의장을 하면서, 좋은 뜻에 감동해 인터넷 사역 ‘호산나넷’을 거들며 만났던, 한국 교회의 지도자급 목사들의 민낯과 실상은 너무나 슬플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졸업을 앞두고 청년 사역을 위해 기독대학생신문 <새벽이슬>을 창간하면서 맞닥뜨린 조용기 목사와 아들 조희준씨가 창간한 <스포츠투데이>, ‘담임목사직 세습’ 등은 서른 살 청춘의 피를 끓게 했고, 성경의 가르침을 배반하는 한국 교회에 대한 분노로 표출됐다. 그렇게 서서히 그러나 얼마 되지 않은 짧은 기간에 나는 한국 교회 부패와 타락의 실상을 파악하게 되었다. 

한국 교회를 대표한다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의 돈 선거 등의 한심함, 각 교단 총회를 둘러싼 교권 정치의 막장들, 목회자 성범죄와 재정비리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한 뼘도 자정할 수 없는 한국 교회의 현실과 무능력은 너무나 비참했다. 그 시절 내게 교회는 부끄러움과 분노였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에서 사무처장으로 일하면서, ‘교회개혁실천연대’의 집행위원으로 섬기면서 나는 한국 교회의 부패와 타락을 더 깊게 만나게 되었다. 거의 날마다 수많은 신자들로부터 교회 부패와 타락과 그에 따른 고통과 호소가 이어졌다. 언론과 책을 통해 훌륭한 목사이자 능력 있는 지도자로 존경받는 목회자들의 실제 모습은 너무나 부끄럽고 추악했다. 

이런 모든 추악함의 근원에는 돈과 명예와 권력, 즉 맘몬이 있었다. 이런 것들은 예수님께서 광야 시험 중에 물리쳤던 것들이다. 예수님은 돌을 떡으로 만들지 않음으로, 높은 성에서 뛰어 내리지 않음으로, 사악한 권력을 제안하는 사단에게 절하지 않음으로 시험을 물리쳤고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명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하나님의 자녀들을 섬긴다는 목회자들은 돈과 권력과 명예 앞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 대신 돈과 권력을 섬겼다.

목사들과 장로들은 왜 타락했는가? 아니 목사와 장로들을 포함해 하나님의 자녀 된 신자들은 왜 타락했는가? 왜 그들은 목사의 교리적 타락과 윤리적 부패를 모른 척 하는가? 

나는 지난 20여 년간 소위 교회 개혁 운동의 실무자로 일했다. 그러는 동안 조용기 목사, 전병욱 목사, 윤동현 목사로부터 명예훼손, 무고 등으로 여섯 건의 고소를 당했다. 다행히 모두 기각되었고 무혐의 처리되었다. 이 과정에서 나는 부패한 목사들이 거짓과 고소를 일삼으면서까지 감추고 모른척하는 이면에 교회 성장, 교회 대형화라는 맘몬이 있음을 깨달았다.

목사와 장로가 어떤 교리적 타락을 일삼고 윤리적 부패를 행해도 교회를 성장시키고, 교회를 대형화하면 모든 것이 용납되고 모든 것이 용서되었다. 그들의 교회 성장과 대형화에는 세속적 성공과 성장을 추구하는 탐심과 욕망이 도사리고 있다. 

신자는 목사를 신격화하고 우상화함으로 자신의 탐심과 욕망을 채우는 복을 받으려 하고, 목사는 신자를 속이고 이용해 자신의 탐심과 욕망을 이루는 도구로 삼았다. 이런 가운데 교회는 대형 마트가 되고, 대형 백화점이 되고, 부패한 정치 집단이 되었고, 목사는 율법주의적 교황이나, 소위 영적 무당이나, 성장을 견인하는 최고경영자(CEO)로 전락했다.

교회사에서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아주 낯선 현상은 아니다. 유럽 교회가 국교화 되어 세속화의 길로 걸을 때 목사는 국가가 걷어주는 돈과 그 돈으로부터 오는 권력과 명예에 취해 교회를 타락시켰다. 국가 권위를 등에 업은 교회는 성장했지만 고난과 죽음의 십자가 복음은 사라졌다. 

이런 때 진실한 신자들은 진정한 공동체 교회를 추구했고 그 결과는 국교회에 속하지 않고 자신들의 헌금으로 자신들이 목사의 생활비와 교회 운영을 책임지며 스스로 선교하는 소위 ‘자유교회’로 나타났다. 국가 권위에 기대지 않는 교회, 고난과 죽음의 십자가의 복음을 살고 전하는 교회, 그런 교회는 세속적 성장을 추구하지 않고 진실한 공동체의 성숙을 추구함으로 진정한 십자가의 능력과 부활의 영광을 간직하고 소망했다.

미국에서도 값싼 복음과 값싼 은혜를 남발하며 성장한 교회들이 등장했다. 그들은 대중 매체를 통해 복음을 팔았고, 화려하고 편리한 건축물을 통해 종교적 편의를 제공했다. 제자 훈련이라는 이름으로 교회 내에서만 신실하고 충성된 제자를 다단계 회사처럼 양성하는 교회들이 등장했다. 목사의 카리스마에 의지한 율법주의와 신비주의의 이단성은 무시되었고 교회 성장이라는 탐심과 욕망에 엉켜 무분별하게 수용되었다. 

이런 때 진실한 신자들은 진정한 공동체 교회를 추구했다. 그런 교회들은 ‘이머징처치(emerging church)’, ‘가정교회’ 등으로 불리며 등장했고 번져갔다. 이런 교회에 대한 신학적 평가는 다르지만 분명한 것은 이들은 진실한 공동체를 이루고 진정으로 신앙을 지역과 시대 가운데 실천하며 살고자 했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교회를 꿈꾼다. 도란도란 이야기 꽃 피우던 우리네 마을공동체처럼 서로 돕고 서로 의지하며 더불어 함께하는 그런 교회를 이루고 싶다. 차비가 없어 먼 길을 걸어가야 하는 신자에게 기도 한마디 해주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주머니를 열어 차비를 내어주는 교회, 밥이 없어 배 골아야 하는 신자에게 내 밥 한 그릇 나누어주는 교회, 그런 교회, 그런 신자면 좋겠다.

바른 말씀이 선포되고 가르쳐지며 바른 성례가 행해지고 신자와 교회의 바른 성숙을 위해 바른 징계가 이루어지는 교회, 교회 부패와 타락을 손가락질 하고 설교와 비판의 재료로만 사용하지 않고 “내 죄라, 우리 죄라”고 고백하는 교회, 한국 교회가 성경의 가르침을 회복하고 공평과 정의로 나아가도록 함께 싸우는 교회, 내 교회 우상에서 벗어나 우리 교회를 세우고 연합하고 연대하는 교회, 지역의 필요에 반응하고 지역의 아픔에 공감하며 슬픔에 함께 우는 교회, 시대의 불의에 저항하고, 인권, 평화, 정의, 환경 같은 하나님 나라의 가치와 방향을 위해 함께 어깨동무 하는 교회, 그런 교회를 이루고 싶다. 

나는 진실한 공동체, 일상의 제자도, 공공성, 공교회성을 회복하는 ‘건강한작은교회’를 이루고 싶다. 나는 그런 교회를 꿈꾼다. 

나는, 이런 교회에 다니고 싶다!
-------------------------
*위 내용은 이진오 목사가 쓴 "[재편]-홀로 빛나는 대형교회에서 더불어 아름다운 '건강한작은교회'로"(비아트로, 2017.)에 쓴 글입니다. [재편]을 쓴 이유와 바람을 담은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