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3장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13:8)
로마서 13장은 상당히 의미있는 말씀들 셋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는
권세에 복종하라는 말씀인데
이것은 많은 오해와 갈등 그리고 교회사적 오류를 낳았던 내용입니다.
모든 권세는 하나님이 주신 것이니 그 권세에 복종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의무다라는 것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그리스도인들을 아주 바보 멍충이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무조건 복종'이라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을 이 말씀을 근거로 들이대던 시절이 없지 않았으며
악한 권력에 대하여도 한마디 말도 못하고 그 권력에 순응하는 것이 마치 하나님의 뜻인 것처럼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오히려 교회가 악의 축이 되어버리는 모순을 낳았던 역사가 있었으며, 지금도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여전히 그런 종노릇에서 못 벗어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절대적으로 그 전제가 하나님의 선하신 의도에 있지 인간의 악함에 있지 않음을 알아야 합니다. 누군가에게 권세를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선한 의지로부터 그가 그 권세로 선을 베풀기를 기대함이 출발점입니다. 그러나 만약 그 권세를 받은 인간이 악한 의지로 그 권세를 남용하여 사람들을 괴롭히고 잘못되게 만든다면 거기엔 하나님의 선한의도로서의 권세부여가 의미를 상실하는 것이므로 더 이상 그 악한 권세에 복종할 의무는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선한 의도에 따라 복종하는 것이지 인간의 악한 의지에 복종하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사랑의 빚외에는 빚지지 말라는 가르침인데
저 개인적으로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나음을 알면서도 항상 받기만 하면서 스스로 위안을 삼는 구절이기도 합니다.
받은만큼 돌려주면 사랑의 빚을 훼손시키는 것이 될까봐 조심스러울 수 있어야 합니다.
받기만 하여 사랑의 빚을 지는 것이 곧 주는 이로 하여금 율법의 완성을 이루게 하는 것이므로 그렇습니다.
서로 사랑함이 주고받는 상업적 거래가 되지 않으려면 이 사랑의 빚을 잘 이해해야만 합니다. 서로 사랑하는 것은 서로 같은 양만큼의 사랑을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서로에게 사랑의 빚진 자가 되는 것입니다.
세째는
빛의 갑옷,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으라는 말씀인데
바로 이 말씀이 아우구스티누스(어거스틴)을 회개케한 그 말씀입니다.
>> 주후 386년 8월 어느 날 아우구스티누스가 밀라노의 어떤 정원에 앉아서 고뇌하고 있었습니다. 이제까지 함께 살아 온 여자들 그리고 세속적 쾌락을 추구했던 옛 습관을 버리지 못하는 자기와의 치열한 내면적 투쟁을 벌이며 묵상하고 있을 때 였습니다. 그때 그의 귀에 소년인지 소녀인지가 구별은 안 갔지만 “tolle lege”(집어서 읽어라!)는 어린아이들의 노랫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옆에 놓여있는 책을 집어서 읽었습니다. 그것은 바울이 쓴 로마서였습니다. 그는 로마서 13:13-14절의 ‘육신의 정욕을 만족시키려 하지 말고 주 예수로 옷 입으라’는 바울 사도의 글을 읽었습니다. 이 말씀은 빛의 칼처럼 그의 폐부를 찔렀습니다. 바울 이후 가장 위대한 신학자 아우구스티누스의 새로운 삶이 시작된 것입니다.<<(인터넷 참조 편집)
구원받은 자의 삶이 얼마나 그 이전과 구별되어야 하는지를 잘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적당히 타협하고 사는 회색지대가 아니라 어두움을 벗고 빛을 입는 것입니다. 마귀의 지배를 떨쳐 버리고 그리스도 예수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