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방보조 2016. 8. 18. 16:07

진실이가 태어나기 한달 전에 메국으로 떠났던 조카가

이번에 돌아왔습니다. 26년 7개월만입니다.

함께 짬뽕도 먹고, 예배도 드리고, 엇그제는 매형 계신 납골당에도 다녀왔습니다.

 

조카가 운전하고 저는 원경이와 함께 정말 오랜만의 승용차여행을 즐겼습니다.

우리집 엑센트를 폐차처리한 후 버스나 기차만 타고 다니다가, 그것조차도 올해는 전무하였는데

경산까지 편하게 다녀왔습니다. 7시에 출발하여 저녁 8시에 도착...

 

623호?

아마 납골당 작은 납골함을 넣은 방번호였던것 같습니다.

맨 안쪽 아래 그늘진 곳에 있다가 새로 좋은 곳으로 옮겼다는데, 눈높이에 가까운 세개층이 명당이라고 호들갑을 떠는 여직원의 말이 참 가소로웠습니다.

파란만장한 70여년 인생을 살았는데

이제 죽어 달랑 한줌 재로 남았다고...눈높이의 그 작은 가로세로 40센티정도 되는 공간에 명당운운하는 말을 붙여대다니 말입니다.

여하튼

새로 명당으로 옮겼다는 방을 거의 1시간 가까이 나와 원경이 조카부부 그리고 여직원 다섯이서 찾고 또 찾다가 못찾아서 이리 저리 연락하는 중, 결국 공원 사장쯤 되는 이가 와서야 방이 바뀌고 명패가 새로 만든 방에 맞지 않아서 새로 명패를 만들 때까지 안치만 해 두었다며, 그 623호?의 방문을 열어주었습니다.  

아들이 26년7개월만에 아버지를 만나려 왔는데...큰 낭패를 면하였다는 안도감이 허술한 관리를 나무라고 싶은 마음을 눌렀습니다.

그 안에는 원통형 비취빛 유골함이 있고, 젊을 때 활짝 웃고 있는 작고 퇴색한 낡은 사진 한장, 그리고 막내딸 가족 사진이 전부였습니다.

조카는 메국에서 일하고 있는 대학 신분증을 그곳에 넣었습니다.

짧게 기도하고...나와 원경이는 밖으로 나왔고, 부부 둘이 잠시 그 앞에 있더니, 조카며느리가 혼자 우리에게로 왔습니다.

아버지에게 하고픈 말이 많았겠지요. 조카는 한참 혼자 있더니... 아무렇지도 않은듯 웃으며 나타났습니다.

 

 

가고 오며

옆자리에 앉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지...메국에서 두 여동생을 어떻게 보호하려 애쓰고, 나중에 온 엄마를 어떻게 도우려 몸부림쳤는지

그것을 위하여 얼마나 많은 시간과 기회를 잃어버렸는지...

그리고 지금도 풀어지지 않는 문제로 얼마나 버거운지...

저야...그저 교과서적인 대답만 해 줄 뿐이었습니다.

 

...

 

어릴적에 삼촌은 무서웠어요.

 

세월이 어마어마하게 흐른,  같이 늙어가는 이 시점에서...이 말은 나를 상당히 당황케 한 한마디였습니다.

 

이 인자하고 자애로은 삼촌을 무서워 했다니...그럴리가 없다...며 놀라는 나에게, 그래도 좋았어요...라고 후렴을 덧 붙이기는 하였지만...말입니다.

 

아 그냥 무섭기만 하게 아니구요, 무섭지만 좋은? 그러니까 좋으면서 무서운? 그래요 삼촌 말대로 존경했다고 하지요. 핫핫핫...

 

 

  

  

 

 

 

 

 

 

 

  • 한재웅2016.08.18 18:07 신고

    조카들에게 엄하셨나보죠.
    그러니 어려워했겠지요.

    답글
    • 주방보조2016.08.18 21:49

      팔베개 해 주고 옛날 이야기들려주고, 함께 캔디캔디 만화 사서 읽고 킥킥거리고, 전 그런 것만 기억나는데...조카는 제게 매맞고 혼난 것이 더 기억에 남는듯 합니다. 좀 더 따뜻할 것을...후회막심입니다.ㅜㅜ

  • 들풀2016.08.18 21:34 신고

    무서우면서 좋은사람
    진국이지요.
    나이값을 하는 사람들 드문데 말입니다

    답글
    • 주방보조2016.08.18 21:57

      조카가 기억하는 삼촌은 무엇이든지 하면 된다고 밀어붙이던 ...그런 어른이었답니다.
      제게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입니다.
      26년만에 만난 조카는...일종의 타임캡슐 같습니다.^^

    • malmiama2016.08.19 07:21 신고

      강한 삼촌이었군요.

    • 주방보조2016.08.19 12:22

      미련한 삼촌이었단 생각이 들었습니다.ㅜㅜ

  • 김순옥2016.08.19 08:44 신고

    어려서는 말씀이 없으신 삼촌이 어렵고 무서웠을 수도 있었겠지요.
    참 오랜만에 방문을 했네요. 거의 미국 사람이나 마찬가지 아닐까 싶어요.

    미국과 다른 작은 납골당에 갇힌 아버님과의 만남이 어땠을지...짠하네요.

    답글
    • 주방보조2016.08.19 12:29

      매형이 참 전형적인 갱상도사나이여선지 아들과는 그리 다정하지 못했었습니다. 속정이 많았는데, 아들이 너무 어려서 떠나 그런 것을 눈치 챌만큼 되지 못했구요.
      전 둘 다 가엾어서...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 김순옥2016.08.24 08:36 신고

      온 가족이 다 모이셨네요. 교신이가 많이 말랐어요. 역할이 막강해서 그런가요?
      조카분이 충신이나 교신이보다 외삼촌을 더 닮았네요 ㅎㅎ

    • 주방보조2016.08.24 12:15

      축제가 끝났음에도 교신이는 끝도 없는 학교일때문에... 나중에 만나 한강에서 사진을 찍었지요.

      남자아이들은 특히^^ 유전적으로 모계가 더 우성인 것 같습니다.^^

      아, 그리고 저 식사는 조카가 원경이 알오티시 합격을 축하해서 낸...것입니다.^^

    • 김순옥2016.08.25 09:06 신고

      원경이가 ROTC에 합격을 했군요.
      원경이의 앞으로가 기대가 됩니다.
      원경이에게 화이팅을 보낼게요.

    • 주방보조2016.08.25 11:12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