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방보조 2014. 8. 12. 17:46

8월이 막 시작 될 무렵 교신이가 제게 한가지 제안을 해 왔습니다.

 

아버지

8월 한달 설겆이는 제가 하도록 해 주십시오.

친구들과 놀러가기로 했는데 돈을 마련해야 해서요.

싫다

네?

돈은 그냥 주마, 설겆이는 내가 할꺼다.

왜요?

넌 행복해야 하니까...

 

행복한 교신이는 방학 내내 12시 다 되어 일어나고, 집에서 스타 한판 하고, 밖에 나가 친구들이랑 게임방 10시까지 하고 오고

공부는 원경이가 '교신이가 수학책을 펴 놓았어요' 라고 하여 우리를 한번 놀라게 한 것 외에는 전혀 하지 않고

외할머니에겐 자기가 공부 못한다고 선생님들이 학생회장대접을 안해준다는 불평이나 하고, 속으론 아마 부모님이

공부하란 소리 안 하시는 것 후회하실 겁니다...라고 하며 버티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친구들과 1박2일 양평에 있는 팬션에 다녀온다며 제게 6만원을 받아갔습니다. 차비1만원, 노는 비용 5만원

 

어제 아침부터 오늘 아침까지 네번을 말했습니다.

가는 팬션 이름하고 전화번호하고 그 동네 사는 친구라는 아이 부모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처음엔

짜증난 표정으로 그런 것이 왜 필요한데요 라고 인상을 썼고

교신이의 행복을 깨지 않으려고 이 아버지는 꾹 참고 차근차근 이야기를 해주어야 했습니다.

'세월호사건이든 윤일병사건이든...사건 사고가 많은 나라다. 미성년자인 너를 보내면서 부모는 당연히 그런 것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행복한 교신이는 다 듣고도 영 불만스러운 듯 보였습니다. 귀찮고, 의심받는 것같아 기분나쁘다는 표정인 것이죠. 그래도 알았다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저는 몇가지 당부를 추가했습니다. 지나친 장난은 하지 말것, 여자들 끼워넣지 말 것, 술이나 담배 절대 가까이 말 것...그럴리가 없다며 ㅎㅎ 웃더군요.

마지막으로

아버지가 함께 갈까? 물었더니...그 찢어진 눈이 번쩍 커지면서 네에?하며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이라고 ...쩝

 

아침에 은행에 같이 가서 돈을 쥐어주면서 또 당부했습니다.

모임을 주선하는 친구 만나면 주소와 전화번호 반드시 알려달라고, 그리고 도착하면 꼭 연락하고...

알았다고 했습니다.

 

행복한 교신이는

여행가방을 메고 친구들이 모여 기다린다는 피씨방으로 달려 갔습니다. 게임 한시간 하고 출발한다며...

 

그리고

아무런 소식이 없습니다.

주소도, 전화번호도, 도착했다는 연락도...

 

엄마는 아픈 몸을 이끌고 새벽에 일 나가시면서 꿈자리가 사나우니 교신이 안 보내면 안되는가 걱정이 산더미였고

아빠는 그토록 이야기를 했건만 결국 도무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고, 어떻게 연락을 해 볼 수도 없어 애가 타는데

 

막내 아들

행복한 교신이는 행복하게 잘 놀고 있을 것입니다.

모든 하지도 않는 공부에 대한 근심을  잊고

자신의 상처받은 무릎연골도 잊고  

아버지의 주소와 전화번호 알려달라는 것도 다 잊고...

 

...

 

그냥

무시히 돌아오기만을 기도해야겠습니다.

그리고

행복한 교신이가, 행복할 교신이도 되게 해주세요 라고 덧붙여 기도해야겠습니다.

 

 

 

 

 

  • 주방보조2014.08.12 20:01

    7시...에 전화가 왔습니다.
    너무 재미있어요 이제 고기먹을 거에요. 전화번호는...010-xxx-xxxx

    답글
  • 김순옥2014.08.13 13:01 신고

    아이들도 밀당을 할 필요가 있는거네요 ㅎㅎ
    때로는 우리 부모님들도 밀당을 해야 하는데 성격 급한 저는 그렇지를 못합니다.

    친구들이 좋고, 노는 게 좋고...그럴 사춘기의 절정이 아닐까요?
    부모님의 가르침을 거스를 일을 하지 않을거예요.
    행복한 교신이를 믿으세요.

    답글
    • 주방보조2014.08.13 19:59

      교신이는 형의 하던 일을 미리미리 하고 싶은 것 같습니다. 충신이가 피씨방을 마음대로 넘나든 고11학기 말부터였는데, 교신이는 중1부터 그랬고, 이렇게 친구들과 팬션빌려 노는 것은 충신이가 대학1학년부터였는데 교신이는 중3부터 시작이니...대략 3,4년 빨리 진도가 나가는 것 같습니다. 충신이가 공부는 죽어라 안 했으니...교신이도 그러는 거 겠지요. 밀당이라기보다, 부모로서 무능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 막내에게...해 줄것이 전혀 없어지는 듯함 말이지요.
      예수믿는 사람들이 하는 좋은 표현으로..주님께 맡겼다...입니다.^^
      아직 적극적인 악에 물들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그러나 이미 충분히 수동적으로는 악합니다. 공부를 안 하니까요...^^

  • 들풀2014.08.13 13:52 신고

    교신이는 늘 제게 웃음을 선사하네요
    행복한 소식 감사!

    답글
    • 주방보조2014.08.13 20:01

      ㅎㅎㅎㅎ...제가 이 놈때문에 머리털도 살도 점점 더 빠지니...저도 거울보며 웃을 때가 많아지고 있답니다.^^

  • 한재웅2014.08.13 20:19 신고

    요즘은 팬션으로 놀러가는군요?
    제가 고등학생때는 텐트 갖고 바다로 갔었는데~

    답글
    • 주방보조2014.08.13 21:22

      일찍 그러셨네요.^^
      저는 대학2학년 때에야 비로소 설악산에 배낭매고 3박4일 간 것이 처음이었는데요.
      당시엔 바닷가에선 못 놀았습니다. 재미는 바다가 제일이라고 듣긴 들었는데^^ 수영을 못하여 물에 대한 공포가 있기도 하고...

  • 김충신2014.08.15 16:27 신고

    중고딩때 펜션가는 애들은 뭐 다...술마시고 놀고 하는데...

    답글
  • 왕언니2014.08.21 16:34 신고

    아 요즘은 중3에 저희들끼리 펜션에 놀러 가는군요. 놀랍습니다. 저 같으면 아마 안보냈을것 같아요.
    아들이라 안그런가? 믿음직해서? 허긴 텐트야영보다 나은가?
    정말 격세지감이 드는군요.
    하도 조마조마한 세상이라...빨리 애들 결혼 시키고 늙어버리고 싶다? ^^
    고생이 많으십니다.

    답글
    • 주방보조2014.08.31 16:15

      그 팬션이 친구 부모님이 하시는 곳이라 하여 허락을 하였더랬습니다.,
      근데...돌아온 후부터
      너무 개과천선모드라서...은근히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물어보면 대답은 잘 합니다만...속을 알 수 없으니...힘 듭니다.
      충신이도 그러더군요. 아니 아버지 저는 대학에 가서야 친구들과 팬션 갔는데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