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방보조 2014. 7. 8. 15:30

놈이 주일 오후 3시반에 나가서 8시반에 꼭 여학생들과 어울린 포스를 풍기며 즐겁게 들어오더니
어제는 학교는 3시에 파했는데 7시반에야 기어 들어와서 잔소리 듣기 전에 미리 말 막음용 무용담을 풀어 놓으려 하였습니다.
제가 좀 까칠한 상태라
녀석의 입에서 '오늘 반대항 축구시합 주심을 보았다'라고 하는 순간, 더 들어 볼 것도 없이 화를 냈습니다.
그 다리를 하고 축구 주심을 보았다고? 네가 제 정신이냐? 연골수술 받은 것 탈이나서 재수술까지 꼭 하고 싶은 것이냐?
그냥 걸어다녔어요
아버지가 축구를 모르느냐? 주심을 보면서 어떻게 걸어다니니  운운
그 자리에서 곁에 있던 아내에게 당장 담임선생님께 부탁의 말씀 하나 문자로 보내라 하였습니다.
친절한 마눌님이 문자를 작성하더니 교신이를 불러 보여주더군요, 이렇게 하면 되겠니? 하고...

"선생님 안녕하세요?
교신이 엄마입니다. 교신이를 항상 잘 돌보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교신이의 무릎상태가 11월까지는 절대로 뛰어서는 안 되고 8월 중순(수술후 3개월)까지는 목발을 짚고 다니라는 지시를 의사샘에게 받았습니다.
연골이라는 것이 원래 잘 안 붙는 조직이어서 조심하라는 주의를 여러번 받았습니다.
오늘 교신이가 축구심판을 보고 왔다고 하고 내일 아침에도 시합때문에 일찍 가야한다고 합니다.
아직은 3개월도 되지 않아 극히 조심해야 할 때인데 너무 걱정이 됩니다. 자세한 사정을 아셔야 주의를 주실 수 있을 것같아 부탁드립니다.
번거롭게 해 드려 죄송합니다."

저의 등 뒤에서 일어난 일이라 잘 알지 못했으나
전하는 말로 상당히 짜증을 내면서 자기 방으로 가버리더니 문을 잠궈버렸다고...저녁도 안 먹고...

다음날
쥬스 한모금 외엔 아침조차 안 먹고 교신이는 학교에 일찍 갔습니다.
그리고 9시가 막 넘어서려 하는 시간에 교신이 담임으로부터 마눌님에게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교신이가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담임선생님께서 아침 일찍 학교에 가 보니 교신이가 역시 축구시합 주심으로 뛰고 있더랍니다. 게임을 멈추고 교신이를 불러 주심을 못하게 하고, 주위의 친구들에게 '교신이는 이렇게 뛰어 다녀서는 안 되는 상태'임을 알려주었는데
교신이가 울컥 하더니 그 자리를 떠났는데 나중에 보니 교실에도 없고 학교 내엔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 심하게 나무란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후문으로 나가는 것을 보신 선생님이 한 분 계셔서 ... 밖으로 나간 것이 틀림없다고...

이런 고연놈...속이 부글부글 끓어 넘쳤습니다.
화가 날 때는 움직이는 것이 가만 있는 것보다 훨씬 몸에 좋습니다.
집안에서 갑갑하게 화만 내고 있을 것이 아니라 직접 교신이를 찾아 길을 떠나기로 하였습니다.
혹시나 해서 제일 먼저 딸들의 새집을 들렸고
롯데시네마의 쉼터를 돌아봤고
반디앤루니스의 책 읽고 있는 이들을 살펴보았고
이마트 푸드코트의 식탁들을 둘러 보았습니다.
그리고
건대입구역 근처의 제우스피씨방을 시작으로 아바타 피씨방까지 10곳 가까운 피씨방을 훑었습니다.
요즘은 한시간에 500원하더군요.
3pop피씨방이라는 곳은 지하 1층의 300석은 족히 넘어보이는 곳인데 학기말 시험이 끝난 학교 아이들인지 바글바글
충신이가 알바하던 아바타 피씨방은 망했는지 문이 닫혀 있었고, 건대 사거리에서 조금 벗어나 후미진 곳들엔 금연도 안 지켜지고 있었습니다.

보슬비를 맞으며 교신이 찾아 두시간...의 긴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학교 선생님께서 교신이가 11시 반에 학교로 돌아왔다고 연락을 주셨다, 마눌님이 알려주었습니다.

왜?
말이 바뀌어 화가 났다.
무슨?
수술후 3개월이면 된다 했는데 6개월이라고
누가?
(아버지와) 의사가 (선생님까지)
어떻게
자기는 괜찮은데 축구를 못하게 하려고 (아버지가 의사에게 시킨 것 같다. 선생님에게 시킨 것같이)
그리고?
자기는 고등학교 가기 전 마지막 불꽃을 사르며 축구로 날리고 싶은데 다들 발목을 잡으려 든다.
그래서?
고등학교 가면 축구 안 한다. 자기 다리는 괜찮다. 뛰고 싶다.

...

사춘기의 저의 아들자식 둘은 아버지가 무슨 자기들 못 잡아먹어서 안달난 괴물쯤으로 여겨지는가 봅니다.^^
자신들의 욕망을 통제할 실질적 힘을 가진 유일한 존재니까 그렇게 느끼는 것일까요?
무릎연골은 재발하기 쉬운 곳이라 잘못되면 상당히 고생을 하는 것임을 이번에 저도 처음 알았고,
교신이 아버지라는 사람은 그렇게 누구랑 짜고 싸바싸바할 위인이 절대 못된다는 것을 진정 모르는 듯 합니다.

선생님이 자초지종을 이야기 하시면서 마눌님께 묻더랍니다.
아버지가 엄하신가 보죠?
세상에...저처럼 마시멜로같은 아버지가 어디 있다고... 

...

 그래도
선생님이 어디를 갔었느냐 물었더니
가슴이 갑갑하여 한강 가에 나갔다 왔다 하더랍니다.

놈이 아들이라고, 아버지 하는 짓을 따라 하고 자빠졌습니다. ㅎㅎㅎ

 

 

 

 

 

  • 한재웅2014.07.08 19:19 신고

    저때는 옥상에서 떨어져도 안다칠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과도한 남성홀몬 때문이겠지요.
    차분히 설명하면서 인간의 육체가 얼마나 약한가를 이해시키세요.
    하여간 아들내미를 키우는것은 정말 재미 없어요!

    답글
    • 주방보조2014.07.10 07:45

      말이 안 통해도 이만저만이 아니라서요. 혼자 잘났어요...ㅎㅎ
      마눌님도 요즘 좀 때렸어야 했나봐요 할 정도랍니다.
      현재는 중독상태인것 같습니다. 머리로는 알지만 가슴이 받아들여주지 않는 ...여자아이들의 환호가 없으면 미칠 것같은...뭐 그런 상태인듯 합니다. 게다가 맏아들때 다 보고 커서...면역도 되어 있어서 더 힘듭니다.

  • 김순옥2014.07.19 09:16 신고

    충신이랑 교신이 보면 남성적인 스케일이 좀 크다는 생각을 해요.
    아마 아버님의 영향은 아닐까요?ㅎㅎ
    과도기에서 오는 혼란일 수도 있을거얘요.
    물론 내면에는 마시멜로같은 부드러움이 있으시지만 아버님의 엄격함도 한 몫 하지 않을까요?
    공부만 해서 부모님을 기쁘게 하고 사회적으로 빛날 수도 있겠지만
    공부만 해서도 사회의 낙오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자라면서 많은 경험을 하면서 자기 세계를 만들어 가는 게 인생을 살아가는데
    크고 작은 힘이 되는 게 아닐까 싶긴 해요.
    저도 두 아들 키우면서 억압하고, 속터저서 울기도 하고, 협박도 하고...그랬지만요.

    교신이의 강점은 현재 공부보다도 많잖아요.
    초등,중학 전교회장에 축구까지...저는 부럽기만 합니다만.
    부모님께서 시각을 조금만 넓히신다면 자랑 많이 하실거예요.

    답글
    • 주방보조2014.07.23 10:44

      노는 것이 교신이 인생 최대의 목적인데
      요즘 놀면 노는대로 그대로 놔두기로...부부단합공을 발진했습니다.
      하기 싫은 것은 절대로 안 하고
      하고 싶은 것은 반드시 한다...누구의 말도 안 듣고, 강요하면 반발하고...무능한 부모의 궁여지책이고 신의 한수일 뿐입니다.

      잔머리의 끝이...망하는 것임을 빨리 깨닫게 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ㅎㅎ...저 정말 엄격하지 않습니다. 믿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