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우리/세상에 대하여

우리가 살인자입니다.

주방보조 2014. 3. 6.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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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마다 지난 주일 설교는 세모녀의 너무나 슬픈 동반 자살에 대한 이야기들이 빠지지 않은 듯 합니다.
3천억짜리 예배당을 짓고 축제를 벌린 사랑의 교회 오목사도
아들에게 감리교 법을 넘어서는 기발한 편법으로 목사를 대물림 해준 임마?교회 김목사도
이런 사람을 도와야 된다고 입에 침을 튀기셨다 하니
다른 교회 목사님들의 설교야 말을 해서 무엇 하겠습니까?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모자동반자살이 뒤 따랐습니다.
 
옛날 기사들을 살펴보니
모녀동반자살이 작금의 일만은 아니었습니다. 
1938년에는 병고에 시달린 어머니가 젖먹이 딸을 동반하여 강에 투신하였다는 기사로부터 1975년에는 다섯딸과 동반자살을 시도하여 네모녀가 숨졌다는 기사도 있고, 1981년엔 얼마나 모녀동반 자살이 많았는지 동반자살하면 안 된다는 신문기사들이 자살한 기사만큼이나 많을 정도였습니다. 
 
1938년의 모녀동반자살에 대한 동아일보의 기사는 매우 각별합니다.
"병마로 신음튼 어머니가 젓먹는 애녀를 동반하고 천당행"...기자는 그들을 천당으로 보내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었던 시대였으므로 '당시 종교들이 자살은 지옥이라는 등식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들을 천당으로 보내준 것입니다. 예, 그 시절 일제의 수탈이 극대화 되어가던 민족 절망의 시대에 병들어 죽어가던 그녀에게 해 줄 것이 '천당에 보내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1981년의 동반자살은 군부독재와 무관치 않을 것입니다. 합리대신 독선이 지배하고, 백성 대신 독재자무리가 편익을 취하던 시절이었으니, 겨우 먹고 살만해졌다 하나 극빈층 중엔 절망감을 보충해 줄 수 있는 보호장치란 거의 없다 할 수 있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작년 우리나라의 국민소득이 2만4천불이 넘었다고 합니다. 코흘리개 아이들도 손에 손에 스마트 폰이 빛을 내고 있으며, 잠실엔 어떤 재벌의 100층이 넘는 건물이 세워져 가고 있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최고 재벌은 그동안 돈을 하두 잘 벌어 현재 400조원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는 소문도 떠돌고, 박대통령조차 자신의 임기내에 1인당 국민소득 4만불의 시대를 열겠다고 부르짖고 있습니다.
게다가 
올 1년 복지 예산이 46조 8995억...입니다.
 
일제침략의 시기도 아니고
군부독재시절도 아닙니다.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돕는 기관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생활고에 시달린 가엾은 이들은 방안에 번개탄을 피워놓고 동반자살을 합니다. 삶이 지긋지긋한 지옥이기 때문입니다.
 
국가는 복지기관을 만들고 돈을 풉니다. 법을 잘 이용하면 덕을 보고, 법을 잘 모르는 이들에겐 평생 그림의 떡일 뿐인 상차림입니다.  
기업의 고용주는 사람을 되도록이면 정식직원으로 채용하려 하지 않습니다. 임시직이 싸고 처치편리하기 때문입니다.
집주인은 전세든 월세든, 집세를 매번 올릴 수 있는 한도를 훨씬 넘어 올립니다. 그 어떤 법도 제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소비자들은 조금이라도 더 싼 것이 있으면 그리로 몰려갑니다. 그 싼 이유가 얼마나 그것을 생산해 내는 이들에게 비인륜적이고 부도덕한가에 대하여 전혀 고민하지 않습니다.  
가족들은 이미 뿔뿔이 흩어져 4촌만 되어도 남과 별 다를 것이 없는 관계가 되어버렸습니다. '내 식구만 잘 되면 된다'는 이기심이 어느새 우리 민족의 주류가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교회요? 집짓기 대회, 세습하기 대회, 감투쓰기대회에 몰두하는 자들의 입잔치뿐이고 말입니다.
 
저기 언급된
모두가 실제로는 다 살인자들입니다.
예, 우리들 모두가 저 세모녀의 살인자들입니다. 우리가 힘을 모두어 그녀들을 그렇게 되도록만든 것입니다.
 
...
 
집 세주고 사는 집주인이라면 ... 누릴 수 있는 최소한의 이익으로 만족합시다.
아무리 싼 물건이라도, 거기 비인도적인 과정이 개입되어 있다면 단호히 사지 맙시다.
아무리 작은 가게를 하시는 분들이라도, 사람을 고용하면 그가 기계가 아니라 사람임을 잊지 맙시다.
그리고
교회나 성당이나 절에 다니시는 분들   
시주나 연보를 하기 전에
혹 먼 친척이라도 궁지에 빠진이가 없나 살펴보고 그들 먼저 도웁시다.
 
국가나 대기업의 사회적 책무에 대하여는 그들의 몫을 하도록 추궁하더라도
우리 개개인 또한 이런 자살, 곧 사회적 타살이라 불리울 악행에 더 이상 간여하지 맙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