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생가를 가다...
합격발표, 또는 불합격발표...가 3일 남은 원경이를
하루 여행에 초대했습니다.
팔당역에서 정약용생가까지 걷기...
정약용생가는 원경이가 정약용에 대한 책들을 섭렵하면서 오래 전에 한번 가보고 싶다고 하였던 곳입니다.
합격발표가 나면 다행이지만, 불합격발표가 나면 혹 다시 1년을 더 입시공부에 매달려야 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하루라도 편하게 가벼운 여행을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기 때문에 제안한 것인데...
원경이도 기꺼이 동의해 주었습니다.
10시 정각에 집에서 출발하여 건대입구-상봉-팔당...에 도착하였습니다.
전철에서 저는 졸고 원경이는 1/3 남은 모비딕을 탐독하였습니다.
11시 조금 넘어 팔당역에서 내린 우리는 약 4-5km정도 되는 길을 걸었습니다.
아쉽게도 연무가 뿌옇게 끼었지만, 그 길은 처음 가보는 원경이를 충분히 즐겁게 할만 하였습니다.
아래 강에는 햇빛이 아름답게 물결을 따라 반짝였고 백조들이 떼를 지어 노닐고 있었습니다.
팔당댐 못미쳐 갑자기 저혈당이 찾아와 준비해간 사탕과 귤과 고구마를 다 소진시키고 겨우 페이스를 정상화 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팔당댐 옆의 터널을 통과한 후, 곧바로 음식점을 찾아서, 저는 묵비빔밥을, 원경이는 토마토스파게티를 사 먹었습니다.
그리고 그 음식점 바로 뒤에 있는 한 친구의 무덤을 떠올렸습니다.
그 근처 천주교 팔당 묘역에 안장되어 있는데, 20대의 백혈병으로 시작하여 50대의 식도암으로, 3년반 전 먼저 이 세상을 뜬 친구입니다.
제가 집안에 틀어박혀 은거하고 있어도^^ 이 친구만은 일년에 두어번 전화로 자신과 다른 친구들의 소식을 전해주곤 하였는데, 그가 가고 나니 아무도 그런 전화를 걸어주는 친구가 없습니다.
몇년 되었지만 어렴풋한 기억으로 친구의 묘를 찾을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원경이를 대동하여 그 가파른 묘역을 올라갔습니다.
아스팔트로 된 도로 맨 위까지 올라갔지만, 그래서 그 날 그 화창하던 두물머리의 아름다움 풍경으로 인해 더욱 슬펐던 그 분위기는 상기해 낼 수 있었지만, 그 친구의 묘는 찾지 못했습니다. 어설픈 기억력에 너무나 비슷한 묘들이 많아서...
그곳에서 내려와
버스정류장 앞의 가게에서 만두를 1인분 사고 하늘보리라는 음료수를 한병 산 뒤 길을 물어 정약용 생가에 도착하였습니다.
그 생가를 둘러 싼 ... 정경에
저는 뭐랄까...모욕감같은 것을 느꼈습니다.
공무원들이 저지른 것이 분명해 보이는, 허여멀건한 콘크리트로 된 전통가옥 흉내를 낸 전시관들과
정약용을 이용하여 돈을 벌어보자는 듯 보이는 주변의 음식점들...
지난번 자전거를 타고 두번이나 정약용생가를 못 찾은 이유가...너무나 작은 간판으로 안내해 놓은 때문이라는 것과, 소형버스 56번 한대 달랑 운길산역까지 오가게 만들어 놓은 정황과 영 부대끼었습니다.
정약용을 그에 걸맞게 대접해 주지 못하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어쨌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썰렁한 전시관들과 옛 건물들인 여유당, 글고 그 뒤에 높이 올라 있는 정약용의 묘까지 잘 살펴 보았습니다.
56번버스를 타고 운길산역에서 내려, 운길산-상봉-건대입구...오후 5시가 조금 넘어 도착하였습니다. 저는 지팡이를 떨어뜨릴 정도로 전철 안에서 꾸벅거리며 졸았고, 원경이는 여전히 모비딕을 읽었습니다.
...
만보계를 가지고 가지 않은 탓에 몇 보를 걸었는지는 모르지만
"평지가 이렇게 걷기 좋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라는 원경이의 묘지 여행 후 소감에서 보듯이, 힘들게 열심히 걸은 하루였습니다.
그리고
친구에게 미안하고, 정약용선생께 미안한...
그렇지만 전체적으로는 재미있고 의미있었던 하루였습니다.
-
원경이는 예외가 없는 곱고 착한 아이네요.
답글
아빠랑 둘만의 나들이가 정말 부럽습니다.
서울 한 복판에 살면서도 그렇게 소박한 나들이를 할 수 있다는 증거를 보여 주셨어요.
무덤 이야기에서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도 났구요.
일전에 올케의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부여에 갔었는데 눈물이 나더군요.
이번주가 많은 의미를 부여할 것 같네요.
어떤 결과를 가져오더라도 원경이에게 아낌없는 칭찬과 축복과 응원을 보냅니다. -
좋은 여행하셨네요
답글
정약용 생가는 가까이 있는 저도 잘 인갑니다. 생가보다 생가주변 팔당호변을 따라 걷는 산책길이 일품입니다. -
조안면 능내리였던가요...
답글
생가에서는 감동없이 바닥을 쳤고 가만히 가만히 흐르는 강물이 떠오르는...
저는 상봉터미널에선가 버스를 타고 찾아들어갔던 거 같은데...
아주 오래 전에... 혼자서요...
다산 선생께 뿅 가서 그분의 생가를 시작으로 강진의 유배지를 찾는 여행을 했었군요...^^
원경이가 정말 부럽다... 저는 뭐든 다 혼자였는데~^^*
그 무렵 그 시기...
부근, 남양주의 모란공원 전태일 열사의 무덤을 홀로 찾아 갔던 기억도 새록새록 나네요.^^
암튼, 주방보조님... 글을 읽다보면 어쩜 그리 정서적 공감을 부르는 말씀들을 주시는지...
낯설지 않고 편안히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정서가 있습니다.
주방보조님께선 어린시절 기독교 문화권 내에서의 성장을 그 배경으로 들어주셨더랬는데,
솔직히 그 말씀엔 전혀 동의하지 않구요.
그것과 상관없는 사고방식의 기준이 되는 가치관에서 낯설지 않게 느껴지는 뭐가 있네요.^^
ㅎㅎㅎ 저도 무지 골났었거든요. 몹씨 화가 나더라구요.
진짜 선생께서 모독 당하시고 이용 당하신다는 생각과 느낌... 등~
혼자라서 승질 낼 데도, 사람도 없고...
강가로 내려와 걷다 알지도 못하는 주변 길을 걸어 다니다... 버스 타는 곳을 찾아 나왔더랬죠...
가차역을 건너 나왔던 거 같은데... 기억이 가물가물~
암튼 생각에서는 다산 선생을 느낄 수 없었다는 강한 실망감이 기억됩니다.
그러나... 다산초당, 전남 강진 유배지의 그곳은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초의선사와 함께 차를 마시던 바다가 바라다 보이는 정자하며
백련사로 이어지는 초당의 뒷길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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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딸과 소풍... 보기 좋습니다. ^^
답글
저 딸을 시집보낼 때 억장이 무너질 원필님의 심경... 미리 애도합니다. ㅋ
문득 생각난 것은
원필님과 말장로님 그리고 저...
이렇게 셋이 한번 저런 짧은 하루 여행을 가면 어떨까...
행복할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