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스트레일리아/다섯아이키우기

정약용생가를 가다...

주방보조 2013. 12. 3. 23:00

합격발표, 또는 불합격발표...가 3일 남은 원경이를

하루 여행에 초대했습니다.

팔당역에서 정약용생가까지 걷기...

정약용생가는 원경이가 정약용에 대한 책들을 섭렵하면서 오래 전에 한번 가보고 싶다고 하였던 곳입니다.

합격발표가 나면 다행이지만, 불합격발표가 나면 혹 다시 1년을 더 입시공부에 매달려야 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하루라도 편하게 가벼운 여행을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기 때문에 제안한 것인데...

원경이도 기꺼이 동의해 주었습니다.

 

10시 정각에 집에서 출발하여 건대입구-상봉-팔당...에 도착하였습니다.

전철에서 저는 졸고 원경이는  1/3 남은 모비딕을 탐독하였습니다.

11시 조금 넘어 팔당역에서 내린 우리는 약 4-5km정도 되는 길을 걸었습니다.

아쉽게도 연무가 뿌옇게 끼었지만, 그 길은 처음 가보는 원경이를 충분히 즐겁게 할만 하였습니다.

아래 강에는 햇빛이 아름답게 물결을 따라 반짝였고 백조들이 떼를 지어 노닐고 있었습니다.

 

팔당댐 못미쳐 갑자기 저혈당이 찾아와 준비해간 사탕과 귤과 고구마를 다 소진시키고 겨우 페이스를 정상화 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팔당댐 옆의 터널을 통과한 후, 곧바로 음식점을 찾아서, 저는 묵비빔밥을, 원경이는 토마토스파게티를 사 먹었습니다.

 

그리고 그 음식점 바로 뒤에 있는 한 친구의 무덤을 떠올렸습니다.

그 근처 천주교 팔당 묘역에 안장되어 있는데, 20대의 백혈병으로 시작하여 50대의 식도암으로, 3년반 전 먼저 이 세상을 뜬  친구입니다.

제가 집안에 틀어박혀 은거하고 있어도^^ 이 친구만은 일년에 두어번 전화로 자신과 다른 친구들의 소식을 전해주곤 하였는데, 그가 가고 나니 아무도 그런 전화를 걸어주는 친구가 없습니다.

몇년 되었지만 어렴풋한 기억으로 친구의 묘를 찾을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원경이를 대동하여 그 가파른 묘역을 올라갔습니다.

아스팔트로 된 도로 맨 위까지 올라갔지만, 그래서 그 날 그 화창하던 두물머리의 아름다움 풍경으로 인해 더욱 슬펐던 그 분위기는 상기해 낼 수 있었지만, 그 친구의 묘는 찾지 못했습니다. 어설픈 기억력에 너무나 비슷한 묘들이 많아서...

 

그곳에서 내려와

버스정류장 앞의 가게에서 만두를 1인분 사고 하늘보리라는 음료수를 한병 산 뒤 길을 물어 정약용 생가에 도착하였습니다.

그 생가를 둘러 싼 ... 정경에

저는 뭐랄까...모욕감같은 것을 느꼈습니다.

공무원들이 저지른 것이 분명해 보이는, 허여멀건한 콘크리트로 된 전통가옥 흉내를 낸 전시관들과

정약용을 이용하여 돈을 벌어보자는 듯 보이는 주변의 음식점들...

지난번 자전거를 타고 두번이나 정약용생가를 못 찾은 이유가...너무나 작은 간판으로 안내해 놓은 때문이라는 것과, 소형버스 56번 한대 달랑 운길산역까지 오가게 만들어 놓은 정황과 영 부대끼었습니다.

정약용을 그에 걸맞게 대접해 주지 못하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어쨌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썰렁한 전시관들과 옛 건물들인 여유당, 글고 그 뒤에 높이 올라 있는 정약용의 묘까지 잘 살펴 보았습니다.

 

56번버스를 타고 운길산역에서 내려, 운길산-상봉-건대입구...오후 5시가 조금 넘어 도착하였습니다. 저는 지팡이를 떨어뜨릴 정도로 전철 안에서 꾸벅거리며 졸았고, 원경이는 여전히 모비딕을 읽었습니다.

 

...

 

만보계를 가지고 가지 않은 탓에 몇 보를 걸었는지는 모르지만

"평지가 이렇게 걷기 좋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라는 원경이의 묘지 여행 후 소감에서 보듯이, 힘들게 열심히 걸은 하루였습니다.

그리고

친구에게 미안하고, 정약용선생께 미안한...

그렇지만 전체적으로는 재미있고 의미있었던 하루였습니다.  

 

 

 

 

    

 

 

 

 

 

 

  • 김순옥2013.12.04 08:05 신고

    원경이는 예외가 없는 곱고 착한 아이네요.
    아빠랑 둘만의 나들이가 정말 부럽습니다.
    서울 한 복판에 살면서도 그렇게 소박한 나들이를 할 수 있다는 증거를 보여 주셨어요.
    무덤 이야기에서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도 났구요.
    일전에 올케의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부여에 갔었는데 눈물이 나더군요.

    이번주가 많은 의미를 부여할 것 같네요.
    어떤 결과를 가져오더라도 원경이에게 아낌없는 칭찬과 축복과 응원을 보냅니다.

    답글
    • 주방보조2013.12.04 16:06

      최선을 다한 결과이니, 원경이는 어떤 결과에 대하여도 잘 받아들일 것입니다.
      무한한 격려...감사합니다.

      원경이는 기차여행이 좋다고 했는데...기차사촌인 전철여행이 되었습니다. 합격하는 행운이 따르면...기차 타고 부석사 무량수전을 보러 갈 것입니다.^^

  • 한재웅2013.12.04 09:03 신고

    좋은 여행하셨네요
    정약용 생가는 가까이 있는 저도 잘 인갑니다. 생가보다 생가주변 팔당호변을 따라 걷는 산책길이 일품입니다.

    답글
    • 주방보조2013.12.04 16:14

      정약용생가에 도착하기까지 꽤 많이 걸어서, 그 주변을 주밀하게 걸어다녀보지는 못했습니다.
      다음번에 다리가 낫고 자전거로 가게 되면,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정약용 생가는 팔당호가 있기 전에는 상당히 높은 지대였겠다...생각했습니다.

  • Shir2013.12.04 17:49 신고

    조안면 능내리였던가요...
    생가에서는 감동없이 바닥을 쳤고 가만히 가만히 흐르는 강물이 떠오르는...
    저는 상봉터미널에선가 버스를 타고 찾아들어갔던 거 같은데...
    아주 오래 전에... 혼자서요...

    다산 선생께 뿅 가서 그분의 생가를 시작으로 강진의 유배지를 찾는 여행을 했었군요...^^

    원경이가 정말 부럽다... 저는 뭐든 다 혼자였는데~^^*
    그 무렵 그 시기...
    부근, 남양주의 모란공원 전태일 열사의 무덤을 홀로 찾아 갔던 기억도 새록새록 나네요.^^

    암튼, 주방보조님... 글을 읽다보면 어쩜 그리 정서적 공감을 부르는 말씀들을 주시는지...
    낯설지 않고 편안히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정서가 있습니다.
    주방보조님께선 어린시절 기독교 문화권 내에서의 성장을 그 배경으로 들어주셨더랬는데,
    솔직히 그 말씀엔 전혀 동의하지 않구요.
    그것과 상관없는 사고방식의 기준이 되는 가치관에서 낯설지 않게 느껴지는 뭐가 있네요.^^
    ㅎㅎㅎ 저도 무지 골났었거든요. 몹씨 화가 나더라구요.
    진짜 선생께서 모독 당하시고 이용 당하신다는 생각과 느낌... 등~
    혼자라서 승질 낼 데도, 사람도 없고...
    강가로 내려와 걷다 알지도 못하는 주변 길을 걸어 다니다... 버스 타는 곳을 찾아 나왔더랬죠...
    가차역을 건너 나왔던 거 같은데... 기억이 가물가물~

    암튼 생각에서는 다산 선생을 느낄 수 없었다는 강한 실망감이 기억됩니다.
    그러나... 다산초당, 전남 강진 유배지의 그곳은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초의선사와 함께 차를 마시던 바다가 바라다 보이는 정자하며
    백련사로 이어지는 초당의 뒷길 등...*

    답글
    • 주방보조2013.12.05 01:13

      원인을 모른다 해도^^
      낯설지 않은 가치관...누군가와 공감대가 비슷하다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강진도 언젠가는 가고 싶습니다만
      버수를 세시간 이상 타면 한달은 족히 몸살을 앓는 체질이라서 먼 곳은 앞으로 시간이 넉넉해 지면 가능할 것같습니다.
      ㅎㅎ...원경이 부러워 하지 마십시오. 마음따라 어디든 갈 수 있는 혼자가 정말 좋은 것 아니겠습니까?


  • malmiama2013.12.05 21:54 신고

    원경이는 이리저리 봐도 두루 예뻐요~^^

    답글
    • 주방보조2013.12.06 07:41

      고맙습니다.
      예쁜 원경이가
      요즘 이어지는 불합격통보때문에^^...지쳐갑니다. ㅎㅎ

  • 이사야2013.12.13 09:41 신고

    예쁜 딸과 소풍... 보기 좋습니다. ^^
    저 딸을 시집보낼 때 억장이 무너질 원필님의 심경... 미리 애도합니다. ㅋ

    문득 생각난 것은
    원필님과 말장로님 그리고 저...
    이렇게 셋이 한번 저런 짧은 하루 여행을 가면 어떨까...
    행복할 것 같습니다. ^^

    답글
    • 주방보조2013.12.14 02:51

      딸 시집보내는 일... 게다가 저런 딸이 셋이나 되니...솔직히 겁이 납니다. 그러나 시집 가기전에 미운 짓 좀 하지 않겠습니까?

      짧은 하루여행...생각만으로도 즐겁네요.
      말장로님과 이사야님이 조율을 해 보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