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아래..
원필님의 글을 잘 읽었습니다..
제가 숙연해질 수밖에 없군요..
원필님의 실존적인 삶의 체험과 신에 대한 의식을 서술한 것은..
적어도 절 진지하게 만드는군요
적어도 자기 인생, 자기 실존에 대해 쓴 글은
자기 주장, 자기 논리만을 쓴 것보다 훨씬 설득력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것은 그야말로 그 사람의 인생 자체이기 때문이지요
말만 번지르르하게 잘하는 것은 누구나 잘 합니다
그러나 인생을 진지하게 살아나가는 것은 아무나 잘 못합니다
제가 감히 원필님의 실존적인 인생에 대해 뭐라고 지껄일 자격이
없는 듯 하군요
하지만, 그래도 제 생각은 말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보통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두려움을 갖습니다.
그러나 제가 살아나가며 미약하나마 체득한 진리 중 하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고 걱정할 게 없다'는 것입니다
두려워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걱정할 것도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든 삶의 과정이 완벽합니다
고로 오직 기뻐할 일만이 존재합니다
오직 기쁨과 감사만이 삶에 있어서 존재할 뿐입니다
물론 이것이 이성의 마비와 맹목적 긍정적 의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조심'해야 할 일은 있습니다. '신중'해야 할 일은 있습니다
인간은 정말 주위 사람들이 답답하게 여길 정도로 조심하고 신중해야 합니다
그러나 두려워하거나 걱정해야 할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전 이 세상이 있는 그대로 완벽하다고 봅니다
제 인생도 완벽하게 전개되리라 믿습니다
고로 아무것도 두려워하거나 걱정하지 않습니다
두려움과 걱정은 인간의 마음이 지어내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기 ??문입니다
예수도 말했습니다. '너희가 무엇을 입고 무엇을 먹을까 근심 걱정하지 말라..'
성경 구절에도 '두려워 말라..'라는 구절이 있지요.
이것이 허공에 뜬 형이상학적 궤변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십니까?
실제 삶과는 유리된 것이라고 보십니까?
그러나 저는 나름대로 이것을 제 삶에 적응시키려고 치열하게 노력을
했습니다.
이것이 나름대로 구체적으로 서술된 제 글이 반문동 9번 게시판에 있습니다. '암흑
터널'이라고....읽어보시면 참고가 될 줄로 압니다.
물론 원필님의 거의 죽음에 임박한 체험 앞에선 보잘것없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물론 전 감히 원필님을 설득하려는건 아닙니다. 님은 적어도 저보단 인생을 많이
사셨고 나름대로 수많은 의미와 곡절이 내재해 계실 텐데 제가 감히 어떻게 짧은
지식으로 한 실존을 변화시키려 하겠습니까
하지만,
죽음을 의연함과 당당함으로 받아들이고
오히려 죽음을 신에게 다가가는 기쁨으로 여긴
수많은 성자들이 있음을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마하바타 바바지, 파라마한사 요가난다, 라즈니쉬, 크리슈나무르티.... 등등
이들의 위대함은 결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것이며
죽음은 단지 새로운 삶의 시작일 뿐이라는 것을 인식했다는 것입니다.
라즈니쉬도 죽음을 앞에 두고 너무나도 평온하고 침착했습니다.
그리고 울며 슬퍼하려는 그의 주치의에게 '그러는게 아니다'라고
하기까지 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어땠습니까??
그도 역시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에, 의연했습니다
세계문학사상 가장 감동적인 장면 중 하나인 이 부분은 플라톤의
저서에 잘 묘사되 있지요.
물론 제가 원필님의 입장이 되보면 다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역시
두려움이란 없다는것을 믿고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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