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필님 오랫만입니다.
유니텔에서는 재미좀 보셨는지요?
늦었지만 득남도 축하하구요.
그리고 보다 못해 한 마디 합니다만, 영지주의에 관해서는 진석님이
올리신 레포트라도 좀 읽어보시고 말씀을 하시는 게 도리일 듯 싶네요.
좀 너저분하긴 하지만, 그래도 영지주의에 관한 정통 기독교의 시각을
대체로 대변한다고 보여집니다.
그 기준에 맞추어 얘길 하세요. 영지주의의 정의를 턱없이 확대하지
마시고요.
성경의 계시외에 인간의 이성으로 예수를 논하면 그것도 영지주의의
범주에 든다고 말씀하시는데, 지나가던 소가 웃을 얘기지요.
그건 영지주의가 아니고, 스콜라 철학의 아류쯤 되겠지요.
근데 말입니다. 제가 보기엔 종원님은 절대 영지주의가 아녜요.
그분은 영지주의가 되고 싶어도 될 수 없어요. 스스로를 변증법적
유물론자로 지칭하시는 분인데, 영지주의가 가당키나 한 말입니까?
종원님이 영지주의자면 원필님을 포함한 모든 기독교인이 영지주의자지요.
그리고 제게 주신 글입니다.
>예수가 죽어서 이곳에 없다...하는 것과
>예수가 우리에게 함께 하겠다고 ...명백히 약속한 것은
>어떻게 조화될 수 있는 일일지...궁금합니다.
그 두 문제를 조화시킬 수 없음에 기독교의 한계가 있습니다.
그것은 님이 스스로 풀어야 할 숙제지요.
지금 기독교 안에는 사람의 아들 예수는 없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만
있습니다. 요게 바로 영지주의의 아류이기도 하구요.
사람의 아들이 배제된 하나님의 아들은 인간들에게 우상으로
군림합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사도 요한이 그토록 경계한 우상에서
자신을 멀리하지 못하고 예수를 우상으로 만들고 말았지요.
죽은 시인도 시인이라는 님의 생각이 예수가 우상화되는 첩경입니다.
제 얘기는 예수의 약속이 헛것이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 약속을 믿지 않는 기독교인들의 불신을 책망하는 말이지요.
제 얘기가 어렵다는 님의 지적에는 뼈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어디 글이 어렵겠습니까?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 자리가 없음이 문제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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