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번트님과 유샛다운앳더라이네스님과의 대화는
우리 모두에게 큰 도전과 유익이 될 것입니다.
매번 이렇게 두분의 토론을 번갈아 칼럼에 싣는 것도 말할 수 없는 칼럼지기의 행운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유샛다운앳더라이네스님이...곧 부대에 복귀해야 한다는 점이 아쉽습니다마는...
...
다음은 서번트님의 글(어제 칼럼입니다. 매우 정성들여 쓰신 긴 글이니만큼 신중히 읽어 주시길...)에 대한
유샛다운 앳더라이네스님의 답글입니다.
>>감사합니다. 우선 저의 몇 자 안되는 글을 주의 깊게 읽어주시고,
단지 글자를 읽은 것 뿐 아니라, 저 자신의 생각이 무엇인지를 ‘읽어내’ 주신 것에 대해 감사를 드립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저의 교만과 무지함이 작은 글에서도 풀풀 나고 있었다는 데에 대해서 쓰게 웃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냉소의 웃음이 아님을 알아주시길)
그리고 여러 당부의 말씀을 보면서, 그냥 조용히 읽고 새겨 넘어갈 수도 있겠으나, 이런 장문의 글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피력함이 마땅하다고 생각하여,
짧은 글을 적어놓고 가려고 합니다.
우선 앞서 밝히지만, 저는 예전 예수와 안티예수 칼럼에서 제가 만인구원론자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이것은 제가 완전한 만인구원론자라기 보다도 칼빈주의에 대한 불신에서 나왔던 것입니다.
당연히 첫 번째로 추천하여주셨던 저서 ‘신앙과 정서’와 제가 정서적으로 교감할 수 있는 부분은 거의 없었습니다.
죠나단 에드워즈는 거의 철저하게 칼빈의 유산을 이어받고 있으니까요.
저는
“성경이 가르치는 근본교리라는 내용자체가..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고 인간사회와 문화가 도저히 감당할수 없는 내용“이라고 하신 서번트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그러나 저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칼빈이 가장 잘 해석하였거나 완전한 해석을 하였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서번트님의 글 가운데 이런 뉘앙스가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은 사실이 아닐 것입니다.
예를들어 말씀하신 칼빈의 교리 중 예정에 대한 교리를 믿지 않습니다. 칼빈의 예정론은 이중예정입니다. 하나님께서 천국에 갈자와 지옥에 갈 자를 미리 정해놓으셨다는 것으로 그 안에서 인간은 꼭두각시에 불과하며, 인간의 구원도, 십자가의 은혜가 아니라, 태초 전에 예정된 어떤 알 수 없는 선택에 의해서 시작됩니다.
칼빈 자신이 십자가는 그 선택이 ‘드러나는’ 것에 지나지 않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칼빈은 이중예정을 부정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하나님보다 더 선하게 되려고 하지 말라’는 무서운 말로 공격하고 있습니다만, 이건 인신공격의 오류에 지나지 않습니다.
스스로 자기 교리를 하나님의 뜻으로 선포해놓고 논쟁에 임하는 일입니다.
저는 칼빈과 기독교강요가, 그 시대 이후 성경 해석의 ‘주자’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종교개혁당시의 혼란으로부터 프로테스탄트를 확고히 정립시키려는 과정에서의 편협한 논리와 아집이 당시로서는 개신교계의 빛과 같은 존재가 될 수 있었고,
수많은 교회들의 모범이 된 것이 사실이나,
칼빈이 종교재판을 통해, ‘그’의 뜻을 거부하는 많은 사람들을 사형으로 몰아넣었던 것처럼,
그 이후의 기독교가 저지른 많은 죄악의 원인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서번트님의 말씀가운데 특히 신앙의 교리를 변명하지 말라는 말씀에는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신앙이 있는 자들은 신앙을 변명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증거할 뿐이지요.
그런 점에서 저의 신앙이 아직도 한참 멀었다고 자인할 따름입니다.
또한, 죄를 아시냐고 저에게 물으셨습니다.
아니오... 가 제 답이 되리라고 봅니다. 머릿속 개념이야 알고 있으나, 하나님 앞에서 실제적인, 정상가중된 죄에 대하여 저는 아주 아주 적은 분량도 제대로 알고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다만 저는 '자신의 죄를 알고 있다'라고 말하는 일부 기독교인들의 위선에 대하여 혐오합니다.
자신이 죄의식을 지니고 있음을, 그것을 통해 자기가 좀 더 '기독교적'인 사람이라고 믿고 있는,
선행이나 적극적 사랑보다도, 자기가 얼마나 죄인인지를 자랑하고 다니는
일부 사람들은 경계하고 싶습니다.
“죄에대한 현저히 부족한 이해와 경험..
하나님의 거룩과 공의과 사랑에 대한 현저히 부족한 이해와 경험..
교리에 대한 현저히 부족한 이해와 경험..
거기에 자신의 완고한 성품과 고집.. 선입견이 더해져서..
나온 결과인것입니다..
(그 몇마디 짧은 말에서 어떻게 그렇게 많은 결론을 도출할수 있냐고 반문하셔도 사실입니다..)“
이와 같은 서번트님의 말씀에 대하여 저는 정말로 제가 그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것이 진심이라고 생각하고 싶군요.
그러나 또한 서번트님께 질문드리고 싶은 것은,
서번트님께서 그토록 신봉(극단적으로 말하자면)하고 계신 칼빈주의라는 것에 대하여 재고할 여지가 있으시지 않은가 하는 것입니다.
서번트님은 단숨에 알미니안주의와 웨슬리주의, 이성주의, 자유주의등 에 대하여 비기독교적인 것으로 단죄하셨는데,
이것이 열려진 마음에서 그와 같은 것들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이뤄진 후에 나타난 것인지에 대해서도 여쭙고 싶습니다.
칼빈주의자들의 장황한 논리와 공격적 태도에 의하여 그렇게 ‘간주’하게 되신 것은 아닌가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후학의... (아마 저보다 훨씬 선배이시리라 생각되므로) 질문이 무례하다면 너그러이 생각해주십시오.
이번에도 이 글들을 읽어내 주시리라 믿습니다.
답글을 기다리겠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큰 도전과 유익이 될 것입니다.
매번 이렇게 두분의 토론을 번갈아 칼럼에 싣는 것도 말할 수 없는 칼럼지기의 행운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유샛다운앳더라이네스님이...곧 부대에 복귀해야 한다는 점이 아쉽습니다마는...
...
다음은 서번트님의 글(어제 칼럼입니다. 매우 정성들여 쓰신 긴 글이니만큼 신중히 읽어 주시길...)에 대한
유샛다운 앳더라이네스님의 답글입니다.
>>감사합니다. 우선 저의 몇 자 안되는 글을 주의 깊게 읽어주시고,
단지 글자를 읽은 것 뿐 아니라, 저 자신의 생각이 무엇인지를 ‘읽어내’ 주신 것에 대해 감사를 드립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저의 교만과 무지함이 작은 글에서도 풀풀 나고 있었다는 데에 대해서 쓰게 웃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냉소의 웃음이 아님을 알아주시길)
그리고 여러 당부의 말씀을 보면서, 그냥 조용히 읽고 새겨 넘어갈 수도 있겠으나, 이런 장문의 글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피력함이 마땅하다고 생각하여,
짧은 글을 적어놓고 가려고 합니다.
우선 앞서 밝히지만, 저는 예전 예수와 안티예수 칼럼에서 제가 만인구원론자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이것은 제가 완전한 만인구원론자라기 보다도 칼빈주의에 대한 불신에서 나왔던 것입니다.
당연히 첫 번째로 추천하여주셨던 저서 ‘신앙과 정서’와 제가 정서적으로 교감할 수 있는 부분은 거의 없었습니다.
죠나단 에드워즈는 거의 철저하게 칼빈의 유산을 이어받고 있으니까요.
저는
“성경이 가르치는 근본교리라는 내용자체가..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고 인간사회와 문화가 도저히 감당할수 없는 내용“이라고 하신 서번트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그러나 저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칼빈이 가장 잘 해석하였거나 완전한 해석을 하였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서번트님의 글 가운데 이런 뉘앙스가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은 사실이 아닐 것입니다.
예를들어 말씀하신 칼빈의 교리 중 예정에 대한 교리를 믿지 않습니다. 칼빈의 예정론은 이중예정입니다. 하나님께서 천국에 갈자와 지옥에 갈 자를 미리 정해놓으셨다는 것으로 그 안에서 인간은 꼭두각시에 불과하며, 인간의 구원도, 십자가의 은혜가 아니라, 태초 전에 예정된 어떤 알 수 없는 선택에 의해서 시작됩니다.
칼빈 자신이 십자가는 그 선택이 ‘드러나는’ 것에 지나지 않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칼빈은 이중예정을 부정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하나님보다 더 선하게 되려고 하지 말라’는 무서운 말로 공격하고 있습니다만, 이건 인신공격의 오류에 지나지 않습니다.
스스로 자기 교리를 하나님의 뜻으로 선포해놓고 논쟁에 임하는 일입니다.
저는 칼빈과 기독교강요가, 그 시대 이후 성경 해석의 ‘주자’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종교개혁당시의 혼란으로부터 프로테스탄트를 확고히 정립시키려는 과정에서의 편협한 논리와 아집이 당시로서는 개신교계의 빛과 같은 존재가 될 수 있었고,
수많은 교회들의 모범이 된 것이 사실이나,
칼빈이 종교재판을 통해, ‘그’의 뜻을 거부하는 많은 사람들을 사형으로 몰아넣었던 것처럼,
그 이후의 기독교가 저지른 많은 죄악의 원인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서번트님의 말씀가운데 특히 신앙의 교리를 변명하지 말라는 말씀에는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신앙이 있는 자들은 신앙을 변명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증거할 뿐이지요.
그런 점에서 저의 신앙이 아직도 한참 멀었다고 자인할 따름입니다.
또한, 죄를 아시냐고 저에게 물으셨습니다.
아니오... 가 제 답이 되리라고 봅니다. 머릿속 개념이야 알고 있으나, 하나님 앞에서 실제적인, 정상가중된 죄에 대하여 저는 아주 아주 적은 분량도 제대로 알고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다만 저는 '자신의 죄를 알고 있다'라고 말하는 일부 기독교인들의 위선에 대하여 혐오합니다.
자신이 죄의식을 지니고 있음을, 그것을 통해 자기가 좀 더 '기독교적'인 사람이라고 믿고 있는,
선행이나 적극적 사랑보다도, 자기가 얼마나 죄인인지를 자랑하고 다니는
일부 사람들은 경계하고 싶습니다.
“죄에대한 현저히 부족한 이해와 경험..
하나님의 거룩과 공의과 사랑에 대한 현저히 부족한 이해와 경험..
교리에 대한 현저히 부족한 이해와 경험..
거기에 자신의 완고한 성품과 고집.. 선입견이 더해져서..
나온 결과인것입니다..
(그 몇마디 짧은 말에서 어떻게 그렇게 많은 결론을 도출할수 있냐고 반문하셔도 사실입니다..)“
이와 같은 서번트님의 말씀에 대하여 저는 정말로 제가 그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것이 진심이라고 생각하고 싶군요.
그러나 또한 서번트님께 질문드리고 싶은 것은,
서번트님께서 그토록 신봉(극단적으로 말하자면)하고 계신 칼빈주의라는 것에 대하여 재고할 여지가 있으시지 않은가 하는 것입니다.
서번트님은 단숨에 알미니안주의와 웨슬리주의, 이성주의, 자유주의등 에 대하여 비기독교적인 것으로 단죄하셨는데,
이것이 열려진 마음에서 그와 같은 것들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이뤄진 후에 나타난 것인지에 대해서도 여쭙고 싶습니다.
칼빈주의자들의 장황한 논리와 공격적 태도에 의하여 그렇게 ‘간주’하게 되신 것은 아닌가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후학의... (아마 저보다 훨씬 선배이시리라 생각되므로) 질문이 무례하다면 너그러이 생각해주십시오.
이번에도 이 글들을 읽어내 주시리라 믿습니다.
답글을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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