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교회 정도가 되니 이룰 수 있는 막강한 찬양인듯 합니다.
허접한 유투브동영상으로 이정도 감동을 뿜뿜 내놓으니
실제 현장에서 느끼는 감동은 어마어마할 듯 합니다.
그러나
사랑이 있든 없든
정직이 있든 없든
오만이 있든 없든
빚이 있든 없든
법적쟁투가 있든 없든
저들의 신앙은 전혀 상관하지 않습니다.
은혜, 저 성가대의 성가 제목에 들어 있는 그 은혜가 아니라
자기감동이란 세뇌된 은혜만 받으면 족하기 때문입니다.
성가대의 찬양에 취하고
목사의 달콤한 설교에 취하고
거대한 성전의 광휘에 취하고
오로지
듣고 싶은 것에만 귀를 열고
보고 싶은 것에만 눈을 열고
은혜가 충만하다고 박수 치고 외쳐댑니다.
그렇게
저들이
저 성전(저들은 그렇게 부릅니다)이 얼마나 우람하고 저 찬양이 얼마나 아름다우냐고 감탄하는 것은
예루살렘성전을 보고
예수께 제자들이 성전건물들의 그 아름다운 돌과 헌물로 꾸민 것을 말하였을 때와 다를 바가 전혀 없을 것입니다.
주님의 대답은 그때처럼 지금도 명료하실 것입니다.
'너희 보는 이것들이 날이 이르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을 것이라고...
밖에서는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하는데
벙어리 개가 되어버린 이 교회의 저 아름다운 찬양은 깊은 무덤속의 함성입니다.
아...
너무 감동적인 찬양을 들으면서
이런 해괴한 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우니
이것이 무슨 비극이란 말입니까?
'예수와 우리 > 교회에 대하여'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나님을 본받는 자 (엡5:1-2) - 손봉호 (0) | 2018.11.05 |
---|---|
이인규권사 조사보고서(기감) (0) | 2018.11.03 |
법인 사유화는 배교적 헌금 횡령(신성남집사) (0) | 2018.10.27 |
신옥주 은혜로 교회의 실상...(은대위, 기독교포털) (0) | 2018.10.21 |
개나 소나 받는 복(신성남집사, 당당) (0) | 2018.10.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