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가지 사정으로 자주 예배드리러 나오지 못하던 초신자 부부가 같이 밥을 먹자고 한다. 대접을 하고 싶다고 한다. 그것도 비싼 장어구이를 먹으러 가자고 한다. 식당으로 오라고 하면 될 텐데 아파트로 모시러 오겠다고 한다. 장어를 맛있게 먹고 커피도 쏘겠단다. ...카페에서 시원한 커피를 마시면서 이야기하다가 학습을 받기 위해 평일 저녁에 성경공부를 하겠다고 시간을 내어 달라고 한다. 앞으로 주일 예배도 열심히 나오겠다고 한다. 이럴 때 목사는 신이 난다. 목회할 힘이 난다. 이 부부는 지친 목사에게 주신 영양제이다. 영양제(營養劑)가 아니고 영양제(靈養劑)!”
어떤 페친 목사님이 올린 글이다. 이 글을 오래 전에 보았다. 오래 보관해두었다가 글을 쓴다. 적어도 페이스에 올린 글은 누구나 읽고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나눌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조금만 싫은 소리를 해도 불같은 싸움이 일어난다. 그래서 어떤 분이 이 글을 썼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시간이 지난 후에 이 글을 쓴다. 일전에 어떤 분의 글을 인용해 조금 다른 의견을 제시했더니 페친을 조리돌림 한다고 난리를 치던 기억이 있다. 혹 이 글을 쓰신 분이 보시더라도 조리돌림이 아니라 신앙선배의 충고로 너그럽게 이해해주시기를 바란다.
기본적으로 이 분의 마음을 이해한다. 열심히 목회를 하다 이 글의 부부처럼 자신을 잘 대해주는 분을 만나면 힘이 날 것이다.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이후에는 이런 경험들로 인해 자신이 어떻게 될지를 생각해보셨으면 좋겠다. 좀 송구스러운 말이지만 이런 일에 힘을 얻고 이런 일이 그토록 기쁘다면 먹사가 되기 십상이다. 목회하는 교회는 가난한 자가 아니라 부자나 성공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는 교회가 될 것이다. 어쩌면 내가 농담에 죽자 사자 달려드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가랑비에 옷이 젖는다. 특히 진리의 길에서 그런 일은 치명적이다.
내가 목사가 되고 목회를 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일은 기존의 관행이나 인간적인 사고에 함몰되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2천에서 3천 명 정도가 모이는 교회에서 목사후보자가 되고 전도사 생활을 하였다. 하지만 나는 교육 부서를 맡지 않았다. 교육 부서를 맡게 되면 교역자들과 어울려야 한다. 그 질서에 순응해야 한다. 하지만 나는 목사가 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그 교회의 교육전도사로 있었지만 그런 교회의 전통을 배우고 싶지 않았고 따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수차례 담임목사님의 권유가 있었지만 교육 부서를 맡지 않았다. 사실 맡는 것보다 맡지 않는 것이 더 어려웠다. 자칫 찍히면 목사가 되는 길이 막힌다. 그래서 나는 담임목사님에게 “제가 나이 들어 늦게 신대원을 다니고 있는데 가능하면 공부에 전념하고 싶습니다.”라는 말로 어떤 부서라도 원하는 곳을 맡으라는 목사님의 호의를 완곡히 거절하였다.
나는 교역자들의 분위기가 어떤지를 잘 알고 있었다. 한 마디로 그것은 조직문화이다. 그것도 최하층 조직문화이다. 그래서 전도사들과 부목사들은 강단에 오르기 전에 목사님의 신발을 반대방향으로 가지런히 돌려놓는 것부터 배운다. 부목사는 스스로 자원하여 담임목사의 친한 친구 목사가 방문하면 그 목사의 차를 닦는다. 담임목사 스스로 자신을 부대장이라 인식하고 있고 군인처럼 ‘쪼인타’를 까기도 한다. 그래도 아무 말 못하는 것이 그곳의 분위기다. 나이도 철저히 무시된다.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전도사는 목사의 꼬붕이다. 평신도는 장로라도 유치원생 취급을 해야 한다고 알고 있는 곳이다.
전도사들이나 부목사들은 그래서 대부분 그 교회를 떠나면 그 교회와 단절하고 그 교회가 있는 쪽을 향해서는 오줌도 누지 않는다는 말은 사실이다. 그것은 떠난 사람이 결정한 일도 아니다. 내가 그 교회를 떠나기 며칠 전 담임목사님이 나와 아내를 불렀다. 그리고 자신 외에는 아무에게도 연락하거나 만나지 않겠다는 맹세를 하라는 강요를 받았다. 그 말을 마친 후 먼곳에서 온 우리에게 가보시라고 하였다.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토록 매정한 사회인지는 정말 몰랐다. 호출을 받았을 때는 덕담 한 마디라도 들을 줄 알았다. 식사라도 한 끼 대접하려는 것으로 알았다. 내가 기존 교회에 완전히 절망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그런 교회에서 3년이 지나면 자신도 모르게 똑같은 사람이 된다. 아무리 바른 생각을 가지고 깨어있는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그렇다. 내가 목사가 되는 길에서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것은 기존 교회의 관행을 배우지 않고 따르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성도의 대접을 받고 영양제라며 기뻐하는 젊은 목사님에게 그것은 영양제가 아니라 사탕발림이라는 말을 꼭 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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