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스트레일리아/다섯아이키우기

법의 몰락...^^

주방보조 2012. 6. 12. 14:00

 

우리 맏아들

김충신...

작년 대학 수시 합격 후부터

합격축하금에, 세뱃돈에, 입학축하금, 그리고 매주 타는 용돈에서 점심값 아껴 남기는 돈, 거기 더하여 슬쩍 무슨 회비니 뭐니하며 제게 갹출해 가는 돈이 허락하는 한

그리고 녀석 특유의 뻔뻔함으로 친구들에게 빈대붙는 능력이 허용하는 한

늦게 들어오기 시작하였습니다.

고3때도 12시 넘어 1시경에 들어오는 것이 상당히 많았지만, 그래도 그것은 오전 1시가 데드라인이었습니다. 야자끝나는 시간에 맞춰 게임방에서 학교로 갔다가 친구들과 축구를 하거나 잡담을 나누고 들어오는 것이라서 12시를 잘 넘기지 않았을 뿐 아니라 새벽 1시정도로 늦으면 제 호통 한 번에 스스로 겁을 먹고 상당기간 수정을 하였기 때문에 특별히 법을 제정하지 않았었습니다.

그런데 일단 대학에 합격하고 나서는 서서히 귀가 시간이 늦어지더니 2시를 넘어 3시까지 전화 한통 없이 들어오지 않는 일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집 유일한 입법기관인

저는

특별법을 제정했습니다.^^

충신이는 12시가 통행금지 시간이다. 12시 안으로 들어와라.

대학생인데 말도 안된다고 불평을하면서도 일단은 제 포스에 굴복하는듯 보였습니다.

그러더니

몇번 시간을 어기기 시작하였으며 그렇게 어겨보았더니 금지법만 있지 별 다른 제재가 없자 용감해져서 또 시간을 어기기 시작했지요.

 

법을 수정했습니다.   

충신이는 12시 넘어 들어오면 엉덩이를 맞는다.

한번 1대를 세게 맞더니 잠시 주춤하였으나 솔직히 대학생쯤 되는 놈을 때린다는 것이 저 스스로도 이상하여 그만 두었더니 다시 늦게 들어오는 일이 빈번하여졌습니다.

 

법을 다시 수정을 했습니다.

충신이는 12시가 넘어 들어오면 점심값을 4천원에서 1천원으로 깎는다.

그동안도 그랬지만 법을 제정하고 제대로 실행을 못했지만 이번 법은 실제로 실행할 수가 없었습니다. 밥값을 깎는다는 것이 마음이 아파서 말이지요.

드디어 이 녀석이 용감해져서 '12시 통금은 대학생이라면 누구도 지킬 수 없는 법'이라며 제게 대항하기 시작했고 마침내는 술을 마시고 3시 넘어 들어오기까지 하였습니다. 공부는 오직 학교 수업시간만 하고, 밤의 친구들과 거의 하루도 빼지 않고 놀다보니 간덩이가 퉁퉁 부어가는 듯 보였습니다.

 

마지막으로 법을 수정하였습니다.  학기말 시험기간이라는 것도 감안하여 좀 더 엄격하게 수정하였습니다.

충신이는 12시가 넘으면 집에 못 들어온다.

이 법을 제정할 때 팁을 하나 주었습니다.  피치못하게 늦을 경우 제발 전화라도 해라.

지난 주일 새벽 2시...깔깔 웃는 분위기의 배경음 가운데서 충신이 한마디 합니다. '여기 면목동인데요 지금부터 열심히 걸어갈께요'

이미 두번이나 맘이 약해서 그냥 들어오게 해주었더니 이젠 배째라입니다.^^ 전화했잖느냐는 것이지요.

수화기에 대고 버럭 소리를 질렀지요. 그냥 거기서 자고 와라.

녀석은 인생의 첫 외박을 하고...아침 7시에 당당하게 걸어 들어왔습니다.

아버지가 시키는대로 했다며...교회학교 보조교사도 접은 채 ...아버지때문에 잠을 못 잤다며...11시가 다 되어서야 일어나 교회를 다녀왔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리고, 어제 하루 12시 조금 전에 들어왔고

오늘은 새벽 2시반에 초인종을 눌러대었습니다.

문을 열고 ...뻘쭘히 서 있는 녀석에게 한강에 나가서 벤취에서나 자고 오라고 하고 ...문을 닫으면서도 문을 잠그지는 않았습니다. 아니 이 마음 약해진 아비는 문을 잠그지 못했습니다. 

 

5분쯤 후 몰래 들어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

 

이렇게

모든 법이 깨져버렸습니다. 막강한 충신이입니다.

 

"충신이는 12시가 통행금지"...이 법은 결국 충신이의 분투 노력에 의해 죽어버렸습니다.

 

유일한 입법기관인 저는...녀석의 뻔뻔함에 넉 아웃이 되어선지 감기몸살로 끙끙거리며 누워있고, 아웃로^^인 충신이는 당당하게 학교를 가셨습니다.

 

...

 

이젠 오직

충신이의 천적인 나실이가 돌아오기만 손꼽아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ㅎㅎㅎㅎ...근데 그것이 한달이나 남았습니다.

 

 

 

 

 

  • 주방보조2012.06.12 14:21

    토인비가 그랬나요...역사는 반복된다고?
    이 글을 작성하고 나니...예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던 것 같은 기억이 납니다.
    기억이 가물거려 찾을 수는 없네요...

    답글
  • 한재웅2012.06.12 20:00 신고

    따님들을 애타게 기다리고 계시군요^^

    답글
    • 주방보조2012.06.12 22:16

      예, 지난달부터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데 날자가 정말 천천히 가네요.

      하루가여삼추...라는 말이 실감이 납니다. ㅎㅎ

    • 한재웅2012.06.13 09:34 신고

      ㅋㅋㅋ 원래는 일각여삼추죠^^

    • 주방보조2012.06.13 10:54

      아, 맞습니다. 일각여삼추... 요즘 머리가 둔해져서인지 여삼추 앞이 생각이 나질 않았어요.
      그래서 시경을 떠올렸죠. 일일불견여삼추...
      그래서 그냥 찝찝한채로 하루가 여삼추라고 해버렸어요.

  • malmiama2012.06.13 11:34 신고

    과정입니다.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답글
    • 주방보조2012.06.13 12:56

      시험기간인데...새벽3시까지 유럽2012 축구본다고...버티고, 아침에 깨워놓고 어딜 잠시 다녀왔더니 ... 자고 있고...10시 수업인데 10시30분에 학교로 갔습니다.
      ㅠㅠㅠㅠㅠㅠ.......
      정말 걱정 안 해도 될까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